<게공선>은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 작가로 알려진 고바야시 다키지의 작품이다.
고바야시 다키지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했으며, 노동계급의 고통과 그 고통의 사회적 원인을 파헤치는 작품을 주로 썼다. 특히 고바야시 다키지는 계급투쟁과 인간해방을 위해 지하운동을 전개하다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29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이번에 소개하는 <게공선> 외에도 <1928년 3월 15일> <부재지주(不在地主)>와 <누마지리 마을(沼尻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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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공선>은 캄차카 바다에서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배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과 이들을 감시하고 조롱하며 자본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관리자 그룹, 자본과 손잡고 노동자들의 파업을 타도하는 국가권력 간의 갈등을 다룬 소설이다.
게공선은 '선박'이 아닌 '공장선'이기 때문에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고, 또 순수한 '공장'이긴 하지만 공장법에 적용을 받지 않는 독특한 공간이다. 소설은 이러한 법의 사각지대에서 혹사당하고 학대받는 어업노동자들이 그 가혹한 노동조건에 분노를 느끼며 태업과 파업으로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린다.
보통 계급주의 문학이 보여주는 투박함은 자칫 독자에게 거부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본이 자본을 벌어들이는 노골적인 부작용 속에서 <게공선>의 현실은 거의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씁쓸함이 남는다. 자본과 노동착취, 자본에 기생하는 권력관계는 사실 교묘해진 것 같지만 오히려 더욱 노골화됐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일본에서도 <게공선>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 매스컴이 일본 사회의 빈곤 현상을 '워킹 푸어'(아무리 일해도 최소한의 생활조차 꾸려나가지 못하는 빈곤층)와 <게공선>의 작품세계를 연결해 보도한 것이 <게공선>의 인기몰이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더구나 책을 구매한 대다수가 이삼십대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본도 봉급생활자의 소득 감소와 비정규직 확대 등으로, 예전과 똑같은 노동 강도에 시달리면서도 상대적으로 무척 낮은 임금 탓에 안정된 생활을 꾸려갈 수 없는, 이른바 '일하는 빈곤층'인 워킹 푸어가 늘고 있다.
글로벌 경기 불황 속에서도 예년보다 훨씬 많은 유보자금을 열심히 쌓고 있다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고용시장의 탄력성을 부르짖고 있다. <게공선> 속 노동자들의 외침처럼 "우리에겐 우리 말고는 같은 편이 없"는 것일까. 현재 박근혜 정부 역시 ▲쉬운 해고 도입 ▲임금피크제와 직무·성과급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악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비정규직 기간 연장 ▲특별연장근로 허용 등으로 노동자들의 입지를 좁히려 들고 있다.
2016년 현재도 우리에게 <게공선>의 일독이 필요한 데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를 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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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봐, 가령 부자가 돈을 내서 만든 배가 있다고 치자구. 선원과 보일러공이 없으면 배가 움직일까? 게가 바닷속에 수억 있다고 하자. 만약에 여러 가지 준비를 해서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일하지 않는다면, 부자가 제아무리 돈을 냈다고 해도 게가 한 마리라도 부자의 호주머니에 들어가겠어? 그럼 우리가 여기서 한여름 일해서 대체 얼마나 수중에 돈이 들어오겠어. 그런데 부자들은 이 배 한 척으로 사실상 손에 넣는 게, 사오십만 엔이라는 돈을 착복하는 거야. 자 그렇다면 그 돈의 출처인데. 무에서 유가 된 거야. 알겠어. 모두 우리의 힘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지금이라도 죽을 듯한 우울한 얼굴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더욱 힘을 내자구. 갈 데까지 가면, 거짓말이 아니야. 저들이 우리를 더 무서워한단 말이야. 벌벌 떨지 마. 선원과 보일러공이 없었으면 배는 움직이지 않아. 노동자가 일하지 않으면 동전 한 푼도 부자의 호주머니에 들어갈 수 없어. 배를 사거나 도구를 준비하는 돈도, 마찬가지로 다른 노동자가 피를 짜서 벌어준 거야. 우리한테서 착취해간 돈이야. 부자와 우리는 부모와 자식 같은 거야......."
감독이 들어왔다.
다들 바닥에 앉아 있다가 부스럭부스럭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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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두워질 즈음이었다. 갑판 승강구에서 보초를 서던 어업노동자가 구축함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서둘러서 '똥통'으로 뛰어들었다.
"아뿔싸!"
학생 하나가 용수철처럼 뛰어 올라왔다. 차츰 얼굴색이 변해갔다.
"착각하지 마."
말더듬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여기 우리의 상태와 처지, 그리고 요구 등을 사관들에게 자세히 설명하여 도움을 받으면, 오히려 이 파업은 유리하게 해결할 수 있다. 당연한 거야."
다른 사람도 '그건 그렇다'고 동의했다.
"우리나라의 군함이다. 우리 국민의 편일 게 분명해."
"아니야, 아니야......."
학생은 머리를 흔들었다.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말조차 더듬었다.
"국민의 편이라고? 아니 아니야."
"바보처럼 굴지 마! 국민의 편이 아닌 우리나라 군함이라는, 그런 이치에 안 맞는 일이 어디 있겠어."
"구축함이 왔다!"
"구축함이 왔다!"
모두의 흥분이 학생의 말을 우격다짐으로 깔아뭉갰다. 다들 어디 어디 하면서 '똥통'에서 갑판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한목소리로 난데없이 '우리 군함 만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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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했다! 젠장 우리가 당했다!"
시바우라도, 선원과 보일러공의 대표도 비로소 부르짖었다.
"저 꼬락서니를 봐라!"
감독이었다. 파업이 일어났을 때부터 감독이 보였던 이상야릇한 태도가 이제야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죄가 '있고 없고'를 따지지도 않았다. "'개망나니', '불충한 놈', '로스캐를 흉내 내는 매국노'라고 매도당하여, 대표 아홉 사람은 총칼의 위협 아래 구축함으로 호송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다들 영문도 모른 채 멍하니 지켜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것은 완전히 죄의 유무를 막론한 일이었다. 신문지 낱장이 불태워지는 걸 바라보는 일보다 하잘것없었다.
간단히 상황은 정리되고 말았다.
"우리에겐, 우리 말고는, 같은 편이 없어. 이제야 알았다."
"우리 군함 좋아하네, 허풍이나 떠는 부자들의 앞잡이잖아. 국민들과 한편? 웃기고 자빠졌네, 엿이나 먹어라!"
수병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사흘 동안 본선에 머물렀다. 그사이 상관들은 매일 밤 객실에서 감독을 비롯한 몇몇과 함께 취해 있었다.
'원래 그런 법이다.'
아무리 어업노동자들이라고 해도 지금이야말로 '누가 적'인가를, 그리고 그 적들이 전혀 뜻밖이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몸소 알게 되었다.
해마다 어기가 끝나면 천황에게 바치는 게통조림 '현상품'을 만드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터무니없지만, 늘 특별히 '목욕재계'를 하고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어업노동자들은 감독이 너무 심한 일을 시킨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과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의 진짜 피와 살을 짜서 만든 거다. 흥, 아마 맛있을 거다. 먹고 나서 복통이나 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돌멩이라도 넣어버려! 상관없어!"
'우리에겐, 우리 말고는 같은 편이 없다.'
이 말은 지금에 와서 모두의 마음속에, 깊이 아주 깊이 파고들고 있었다.
'어디 두고 보자!'
그러나 두고 보자고 아무리 수없이 되씹는다고 해도 어떻게 되지는 않았다. 파업이 처참하게 깨지고 나서, 작업은 상상도 못 할 만큼 가혹해졌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가혹함에 감독의 복수가 더해진 가혹함이었다. 한계라고는 하지만 그 한계를 훨씬 넘어선, 가장 극단적인 상황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우리가 틀렸었어. 저렇게 아홉이면 아홉 사람 모두 넘겨주는 게 아니었어. 이건 마치 우리의 급소가 여기다 하고 알려주는 꼴이지 않은가. 우리 모두, 모두가 하나라는 식으로 행동해야만 했어. 그랬으면 감독이라고 해도 구축함에 무전을 치지 않았을 거야. 설마 우리를 모조리 넘겨버릴 순 없었을 거야. 작업을 시킬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러네."
"그렇다니까. 이번에야말로 이대로 내내 작업하면 우리 모두 죽고 말 거야. 희생자가 나지 않도록 모두 함께 태업을 하는 거야. 요전에 했던, 그 같은 방법으로. 말더듬이가 말했잖아. 무엇보다도 힘을 합해야 한다고. 게다가 힘을 합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도 알고 있잖아."
"그래도 만약에 구축함을 부르면, 다들 그때야말로 힘을 합해서 한 사람도 빼놓지 말고 싹 다 잡혀가자. 그렇게 하는 게 오히려 살 수 있는 방법이야."
"그럴지도 몰라.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감독이 제일 당황할 거야. 회사의 자기 체면상, 우리를 대신할 사람들을 하코다테에서 불러오기엔 너무 늦고, 생산량도 말도 안 되게 적고 말야....... 잘하면 이거야말로 의외로 괜찮겠어."
"괜찮을 거야. 게다가 다들 이상하리만치 무서워하지 않아. 모두 무척 화가 나 있는 듯해."
"사실을 말하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 그런 장래의 가능성 따윈 아무래도 좋아. 왜냐하면 이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야."
"응 그래, 다시 한 번 더!"
그리고 그들은 들고 일어섰다. 다시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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