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뉘앙스 사전>은 뜻은 비슷하지만 쓰임이 다른 단어들의 뉘앙스를 정리한 책이다.
제목에 우리말이 들어가 있지만, 여기에서 우리말은 외래어는 물론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일부 외국어까지를 포함한 광의의 뜻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래서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 린치(Lynch) 징크스(jinx) 러브(Love) 등까지 등장한다.
책의 형식은 뉘앙스 사전이라는 제목처럼 비슷한 뜻을 지녔지만, 세세한 용법에서 그 쓰임이 다른 단어들을 그 유래와 유래에 따르는 에피소드를 담아 하나하나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낱말 풀이가 아니라 일종의 잡학 상식 사전의 성격도 띤다.
총 400여 개 단어가 소개되는데 각 단어들은 가나다순으로 의미가 비슷하거나 연상되는 단어를 두세 개씩 묶어 어원과 유래를 설명한 다음, 끝부분에 뜻풀이를 정리하고 예문을 제시해 실용성을 높였다.
사실 책 앞날개 부분에 우리말 뉘앙스를 테스트해보는 4개 질문이 있는데, 책 내용도 그렇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이 책을 읽는다면 뜻은 알고 있지만 평소 헷갈렸던 단어들의 쓰임새나 각 단어들의 유래를 살펴봄으로써 더욱 정확한 글쓰기를 구사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고 하겠다.
특히나 외래어나 외국어 단어들은 현재 우리말에 섞여 들어왔지만 그 출발선 자체가 우리말이 아니었기에 의미가 정확하게 와 닿지 않거나 글쓰기나 말하기에 사용하면서도 왠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외래어나 외국어 단어들의 유래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어 외래어나 외국어 단어들에서 오는 정서적 괴리감을 해소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요즘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 붐을 이루고 있지만, 문장의 기본이 되는 단어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이러한 책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자주 쓰는 말에서부터 그 의미와 파장을 유의하는 것이 곧 좋은 글쓰기와 말하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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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영수
문화 칼럼니스트이자 테마역사문화연구원 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역사, 문화, 풍속의 유래와 상징, 그리고 인들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주요 단행본으로 <암호 이야기, 역사 속에 숨겨진 코드> <색채의 상징, 색채의 심리> 등을 출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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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인용
이 책에 나온 단어 중 그 유래를 새롭게 알게 되거나 설명을 재미있게 읽었던 단어들은 하마평, 애물단지, 디데이, 노코멘트, 린치, 바보, 사보타주, 보이콧, 붐, 게리맨더링, 을씨년스럽다, 이판사판, 조금, 흥청망청, 징크스, 찍히다, 점찍다, 참작 짐작 가늠 철부지 칠칠찮다 등이다.
그중 몇 가지를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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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애물단지'는 어쩔 수 없이 갖고 있는 물건이나 사람을 뜻한다. 또한 계륵은 이득의 관점에서 필요 여부를 따지지만, 애물단지는 애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애물단지'는 '애물'의 낮춤말로, 애물은 본래 '어린 나이로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옛날에는 갓난아기나 어린 자식이 죽으면 단지(목 짧고 배가 부른 작은 항아리)에 담아서 묻었다. 정식으로 관을 장만해서 처리하기도, 맨땅에 그대로 묻을 수도 없어 생각해낸 방법이 단지 무덤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세상을 떠나는 자식은 대부분 죽기 전까지 내내 아파서 부모의 애를 태우기 일쑤였고, 죽은 뒤에도 평생 부모의 가슴에 남아서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래서 애물은 '몹시 애를 태우거나 성가시게 구는 물건(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여기에서의 '애'는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물건에 대해 혹시 잘못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을 뜻한다. 요즘에는 물건보다는 사람에 한해서 쓰는데 주로 말 안 듣고 속 썩이는 자식을 지칭하곤 한다. "자식은 애물단지"라는 속담은 그런 예이며, 자식은 언제나 부모에게 걱정만 끼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린치(Lynch)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라는 말이 있듯, 나라 법률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사형(私刑)이 있었다. 린치, 이지메 등이 그것인데, 지금은 그 뜻이 제각기 다르게 쓰이고 있다.
미국독립전쟁 중 법정 기능은 정지되어 있었다. 그 무렵 버지니아 주 베드포드에서는 찰스 린치(Charles Lynch)라는 치안판사가 비공식 법정을 열어 법 집행과 질서유지를 담당했다. 그가 내린 판결은 단 한 건의 범죄자에 대한 사형선고를 제외하면, 가장 무거운 것이라고 해도 벌금형이나 태형에 지나지 않았다.
단 한 번 사형 판결을 내린 적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범죄자의 음모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 주 정부가 1782년에 정당한 것으로 인정했고, 린치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1796년에 린치가 사망하고 한 세기가 지나자, 그의 자비로운 판결은 점점 잊혀지고 비공식 법정을 연 사실만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린치로서는 매우 억울한 일지지만, 그의 이름은 악의에 찬 폭도들의 '사사로운 형벌'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바보
바보는 본래 '밥보'가 변한 것으로서, 밥만 먹을 줄 알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킨다. 다만, 이때의 바보는 선천적으로 지능이 부족해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하지만 무능력한 사람은 정상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바보는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이르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붐
'붐' 또는 '문전성시'라는 용어는 어떤 것에 대해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관심을 가질 때 쓴다.
사회현상 용어인 붐(Boom)은 원래 영어의 의성어에서 비롯되었다. 예로부터 서양에서는 꿀벌이나 투구풍뎅이 등 씩씩하게 "붕붕"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라든가, 먼 우레나 포성(砲聲) 등 "쾅"하는 소리를 표현할 때 붐이라는 의성어를 썼다. 이 말은 19세기 말부터 미국의 만화에 자주 등장하면서 '갑자기 번창하는 것'의 뜻을 갖게 되었다. 즉 급작스레 호경기를 이루거나 도시가 번창할 때 혹은 장사가 급작스레 발전할 때 등에 사용하게 된 낱말이다. "동전 수집 붐이 일다", "뮤지컬 붐을 일으키다"처럼 쓰이고 있다.
-을씨년스럽다
흔히 날씨가 스산하고 썰렁하거나, 살림이 매우 군색할 때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우리나라의 국권 상실과 관련해 생겼으니, '을씨년'은 '을사년(乙巳年)'이 변한 말로 1905년을 가리킨다.
을사년(1905년)은 일제가 이완용, 이지용 등 을사오적(乙巳五賊)이라 부르는 친일 고관들을 내세워, 강제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統監) 정치를 실시한 해다. 당시 외무대신 박제순과 일본 특명전권공사 하야시 곤스케 사이에 이른바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으며, 이로써 자주적 국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형식적으로는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해 우리나라가 일본에 병합되었지만, 실제로는 이 조약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일본의 속국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을사년은 우리 민중들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해로 기억되었고, 상인들은 일제히 문을 닫아 항의의 뜻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거리 풍경이 더없이 적막하고 쓸쓸해 보여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이 생겼다. '을씨년스럽다'는 '보기에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라는 의미로 쓰였으며, 모든 걸 빼앗긴 나라의 형편에 빗대어 '보기에 살림이 매우 가난한 데가 있다'는 뜻으로까지 쓰였다.
-이판사판(理判事判)
'이판사판(理判事判)'은 이판(理判)가 사판(事判)의 합성어이다. '이판'은 경전을 공부하거나 불교 교리를 연구하는 스님이고, '사판'은 절의 산림(山林·産林)을 맡아 하는 스님이다. '산림'이란 절의 재산 관리를 뜻하는 말인데, "살림을 잘 꾸리다"에 쓰이는 '살림'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이판과 사판은 어느 한쪽이라도 없어서는 안 될 상호관계로 엮여 있다. 그런데 이 말이 조선의 억불정책에 의해 오늘날 엉뚱하게 쓰이고 있다. 조선 시대에 스님이 된다는 것은 이판이 되었건 사판이 되었건 마지막 신분 계층이 된다는 것을 뜻했고, '끝장' 혹은 '절박한 궁지'를 의미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이판사판'은 '막다른 데 이으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뜻한다.
-조금
조금의 어원은 바닷물과 관계가 있다. 아침에 밀려들었다가 나가는 바닷물 '조수(潮水)'는 바닷가에서 보면, 수면이 일정하지 않고 음력 한 달을 주기로 달의 위치에 따라 날마다 달라진다. 수면 차이는 초승달과 보름달일 때 최대가 되며, 상현달과 하현달일 때 최소가 된다. 그 차이를 '조차(潮差)'라고 하는데, 조차가 가장 작을 때를 '조금', 가장 클 때를 '사리'라고 한다.
이때의 '조금'은 '조감(潮減)'이 변한 말이다. 지금도 '조금(潮-)'은 조수(潮水)가 가장 낮은 때를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나아가 조금이라는 말은 고유어처럼 변하면서 명사로는 '작은 정도나 분량', '짧은 동안', 부사로는 '정도나 분량이 적 게'. '시간적으로 짧게'를 뜻하게 되었다. "위 조금 아래 골고루"라는 속담은 사람을 대접할 때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대하라는 뜻이다.
-철부지
철부지는 '계절'을 뜻하는 고유어 철에 한자어 '부지(不知)'가 더해져 생긴 말이다. '철'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한 해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시기를 가리키는 '절기(節氣)와 '계절의 변화'가 그것이다. 농경 사회에서 철을 모른다는 것은 상황 파악을 못 함을 의미한다. 대개의 경우 어른은 절기나 계절의 흐름을 잘 알지만, 아이들은 그런 변화에 둔감하고 제대로 모르기 일쑤다. 추어졌는데도 짧은 옷을 입겠다거나 타작해야 하는데 놀러 나가자고 조르는 것 따위가 철을 모르는 데서 빚어지는 일이다.
이에 연유하여 철부지라는 말은 '계절 변화를 모르는 어린 사람'에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벌이는 행위나 그런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철모르쟁이'라고도 한다.
-칠칠찮다
"이런 칠칠맞은 놈을 보게."
"칠칠찮기는, 쯧쯧쯧."
어떤 사람이 조금 못난 행동을 했을 때 흔히 '칠칠맞다'거나 '칠칠찮다'라고 한다. 여기서 '칠칠찮다'는 '칠칠하지 않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칠칠하다'의 의미는 무엇일까?
본래 '칠칠하다'는 '채소 따위가 잔병치레 없이 깨끗하게 잘 자랐다'는 말이었다. 채소가 잘 자란다는 것은 재배하는 사람의 손이 부지런하고 솜씨가 그만큼 남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이 말은 '일솜씨가 능란하고 빠르다'라는 뜻도 갖게 되었고, 그에 따라 '칠칠하지 않다'는 능숙하지 못하고 서툴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참 칠칠하다"와 같이 잘못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 경우 "참 칠칠하지 못하다"로 고쳐 써야 한다. 또한 '칠칠맞다'는 속어이며, 제대로 된 표기는 '칠칠치 않다', '칠칠찮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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