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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 가볍지 않은 로맨스

by 노지재배 2017.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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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는 열다섯 살 소년과 서른여섯 살 여인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또한 전후 독일에서 일어난 전쟁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의 갈등과 인간의 자존감, 인생의 선택과 이에 따른 책임 등 다양한 내용이 중첩돼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시가 있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다.


아래 시를 실어 본다.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정현종 시인의 시처럼,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바로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가 함께 오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바로 이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전쟁이 휩쓸던 시대,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려던 노력과 이에 따른 선택, 그리고 그러한 선택이 부른 결과와 이에 대한 책임. 한나의 삶과 미하엘의 삶이 만나면서 같이 펼쳐지는 전후 독일의 세대 갈등과 과거사 청산 문제 등.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는 케이트 윈슬렛이 여주인공을 맡고, 스티븐 달드리가 감독을 맡아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됐고 우리나라에도 개봉한 바 있다.


책 읽어주는 남자
국내도서
저자 : 베른하르트 슐링크(Bernhard Schlink) / 김재혁역
출판 : 세계사 199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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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시대 독일에서 살아가면서 인간적인 수치심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몸부림 속에 의도치 않게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여인 한나. 그리고 이 여인과 우연하게 사랑에 빠져든 열다섯 살 소년 미하엘. 이들의 삶을 통해 인간의 자존감, 삶의 선택과 선택에 따른 책임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묻는 것이 소설의 내용이다.


소설을 먼저 읽었고, 영화를 뒤에 봤다. 전후 독일에서 전쟁범죄를 둘러싸고 일어난 세대 갈등은 한나와 미하엘의 사랑과 함께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중요 축이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사실 우리나라 역사나 배경이 아니다 보니, 절절하게 와 닿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소설보다 후에 만들어진 영화는 이 부분을 더욱 세세하고 친절하게 다루고 있어 소설보다 훨씬 이해하기 좋았다. 독일이나 유럽을 넘어 북미와 세계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할리우드에서 영화화한 만큼 이러한 부분을 좀 더 신경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밖에도 소설과 영화는 소소한 부분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여기서 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그만 읽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다섯 살 소년 미하엘과 서른여섯 살 여성 한나의 밀회는 여름 한 계절의 짧은 시간으로 끝이 난다. 한나가 미하엘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미하엘은 법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돼 전쟁범죄와 관련한 재판을 참관하는 과정에서 한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한나는 사실 전쟁 기간 유대인 수용소에서 여성 감시관으로 근무했던 전쟁범죄좌였던 것이다.


책 읽어주는 남자
국내도서
저자 : 베른하르트 슐링크(Bernhard Schlink) / 김재혁역
출판 : 시공사(단행본) 201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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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재판 과정에서 미하엘은 한나가 유대인 수용소에서 근무했다는 것 외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바로 한나가 문맹이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사실은 한나와 미하엘의 짧은 밀회에서 왜 책 읽기가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 한나가 미하엘에게 아무 말도 없이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결정적으로 한나가 왜 유대인 수용소에서 근무하게 됐는지, 그리고 같이 재판을 받았던 다른 수용소 여성 감시관들이 범죄를 모두 부인한 것과 달리 한나가 죄를 받아들이면서 왜 다른 이들보다 훨씬 무거운 형량을 받게 됐는지 밝혀 주는 복선으로 작용한다.


문맹인 한나가 미하엘과의 밀회에서 미하엘의 낭독을 통해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은 둘 사이의 사랑 행위에서 일종의 의식에 가까웠다. 미하엘은 한나가 자신이 책을 읽어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한나는 문맹이라는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전쟁범죄까지 저지르는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전쟁 당시 지멘스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하던 한나는 열심히 일한 대가로 회사에서 관리직 승진을 제안받지만, 문맹이라는 사실이 들통나게 될까 봐 유대인 수용소 여성 감시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노역에 시달리다 늙었거나 병든 60명의 유대인 수용자들이 매달 새롭게 들어오는 60명의 인원들과 자리를 바꿔 가스실로 향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한나가 유대인 수용소 여성 감시원으로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어린 소녀들을 매일 자기 방에 들여 책 읽기를 시켰고, 새로 들어오는 인원과 바꾸기 위해 가스실로 보내야 하는 인원에 이런 어린 소녀들을 넣기도 했다는 점이 밝혀진다. 사실, 한나는 전쟁 속에서 언젠가 가스실로 향하거나 노역에서 죽어갈 이 어린 소녀들이 당장의 추위와 노역에 시달리기보다는 자신의 방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런 어린 소녀들이 한나의 문맹을 감추는 데도 이용됐을 것으로 보인다. 


문맹이라는 수치를 감추기 위한 한나의 불행은 한나와 미하엘의 짧은 밀회에도 찾아온다. 전쟁 후 유대인 수용소 여성 감시원으로서의 경력을 속이고 전차의 차장으로 살아가던 한나는, 전차 운전수 자리를 제안받는다. 이 역시 먼저 지멘스에서와 마찬가지로 문맹이라는 사실을 들킬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이끌게 되고, 한나는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미하엘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나게 된다.


후에 미하엘은 한나의 재판 과정에서 한나가 문맹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가 왜 자신을 그렇게 떠났고, 둘의 밀회에서 책 읽기가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 깨닫게 된다. 재판에서 한나와 유대인 수용소 여성 감시원들은 전쟁 말기 유대인 여성 수용자들을 옮기는 과정에서 폭격으로 이들을 모두 불태워 죽인 혐의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를 부인하는 다른 여성 감시원들은 이에 대한 보고서를 한나가 작성했으며, 유대인 수용자들을 구하지 않고 불에 타서 죽도록 모든 일을 한나가 주도했다고 몰아간다. 그러나 한나는 자신이 글을 쓰고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을 꺼려, 그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유대인 수용자들을 불 속에 죽도록 방치한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결국, 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한나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미하엘은 후에 감방에 갇힌 그녀를 위해 자신들의 밀회 때처럼 책을 낭독하고, 이를 테이프에 녹음해 한나에게 보낸다. 이런 일을 통해 미하엘은 한나와의 사랑을 간직하고, 한나는 이런 과정을 통해 힘겹게 글자를 깨쳐 나간다. 한나는 미하엘에게 짧은 편지들을 보내지만, 감정 정리가 어려운 미하엘은 아무런 답장 없이 계속해서 책 읽기를 녹음한 테이프들만 보냈을 뿐이다. 


한나가 감옥에 갇힌 지 20년 뒤 이제 할머니가 돼버린 한나는 탄원서가 받아들여져 출소하게 된다. 그런데 한나는 한나의 출소 후 생활을 위해 이것저것 준비한 미하엘을 뒤로하고 출소 당일 교도소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글을 깨친 후 유대인 수용소와 관련한 책들을 읽은 한나는 자신이 모은 모든 재산을 자신의 재판에서 증언했던,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모녀에게 전달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소설은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한나, 전쟁 상황에서 생계를 위해 주어진 일을 한 한나,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벌어진 상처와 범죄에 관해 묻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쟁 범죄와 관련해 독일 사회에서 벌어졌던 전쟁 전후 세대 간의 갈등과 올바른 정의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재판 과정에서 그녀의 범죄를 추궁하는 판사에게 한나가 던진 질문은 "판사님이라면 그때 어떻게 했겠습니까?"다. 전쟁 상황 속에서 문맹을 감추고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한나는 유대인 수용소 여성 감시원이 됐다. 전쟁 상황에서 그녀에게 주어진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속에서 어떻게 해야 했나. 소설 속 판사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 한나처럼 드러난 범죄자 몇 명을 처벌한다고 과거사가 청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 시대를 같이 살아온 모두가 일정분의 책임을 함께 나눠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대나 삶을 통과하지 않은 이들의 잣대만으로 엄격한 단죄를 내리는 것도 고심해봐야 하는 일이 아닌가 하고 작가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밖에 무거운 주제 의식을 뒤로하고서도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로서의 강점을 뽐낸다. 소설 속에서 에로틱하게 그려지는 한나와 미하엘의 성적 탐닉과 사랑은 전후 독일의 과거사 청산이나, 문맹을 감추려는 한나의 노력이 보여주는, 인간으로서의 자존감 지키기 등과 같은 이 소설의 철학적 주제를 제외하고서도 이 소설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 저자 소개


법대 교수이자 판사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인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1944년 7월 6일 독일 빌레펠트에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와 만하임에서 자랐다. 하이델베르크와 베를린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975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관공서 간의 공무 협조에 관해 쓴 교수 자격 논문이 통과되었고, 이후 본, 프랑크푸르트 대학을 거쳐 현재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뉴욕 예시바 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겸임하고 있다. 


1987년 추리소설 『젤프의 법』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추리소설 『고르디우스의 매듭』 『젤프의 기만』 『젤프의 살인』과 장편소설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단편소설집 『사랑의 도피』, 『다른 남자』 장편소설 『귀향』 『주말』을 펴냈다. 『젤프의 법』은 1991년 독일 ZDF 방송국에서 「죽음은 친구처럼 왔다」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 방영했으며,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빌리 엘리어트」를 만든 스티븐 달드리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주연 케이트 윈슬렛 또한 호평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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