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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릴케][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릴케의 시와 예술관/인생관

by 노지재배 2017.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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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 제목이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라는 시인의 이름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 책이 서양 서간 문학 작품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라거나 적어도 그런 작품 중 하나라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독일을 대표하며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시인을 꿈꾸는 젊은 장교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에게 쓴 10통의 편지를 묶은 서간 작품집이다. 리뷰에서 들여다  본 책에는 이 10통의 편지 외에 1919년부터 1924년 사이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리자 하이제라는 여인에게 쓴 편지도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로 함께 엮였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좋아하거나 들어보았거나, 시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의 시작은 이렇다.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시인으로서의 삶을 꿈꾸지만 군인의 길을 걷고 있는 한 청년이 자신의 습작시와 함께 조언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 청년의 편지에 진솔한 마음을 담아 답신을 보낸다. 그리고 이 답신 안에 카푸스가 보낸 습작시에 대한 조언과, 시인으로서 슬픔이나 인생을 대하는 자세 등에 대해 릴케는 정성을 다해 답을 하고 있다.  때로는 그 무엇도 답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 인생이지만 그럴 때도 릴케는 이렇게 말한다. 


"삶이 되어가는 대로 자신을 내맡기십시오. 내 말을 믿어도 좋습니다. 어떤 경우든 삶은 늘 옳으니까요."




무엇보다 이 서간문들은 2천 편이 넘는 시를 쓴 릴케라는 시성이 시나 시 창작 과정에 관해,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인생이나 운명에 관해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다.


한편, 우리 시단의 빛나는 별인 백석과 윤동주는 시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직접 언급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릴케나 릴케의 시를 모르더라도 이들의 작품을 통해 릴케의 이름을 색다르게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일 것이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BR>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짬, 라이넬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 윤동주 <별 헤는 밤> 중에서



아마도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가장 귀해하고 사랑한 이 시인들은 백석의 시 그대로 그렇게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처럼 아름답고 오래 빛나는 시들을 우리에게 남길 수 있었으리라.




■저자 소개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저서(총 73권) 1875년 프라하에서 미숙아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다. 릴케의 어머니는 릴케의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르네Rene라 짓고, 여섯 살까지 딸처럼 키웠다. 열한 살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지만 적응하지 못한다. 이후 로베르트 무질의 첫 장편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의 배경이 되는 육군고등사관학교로 옮기나 결국 자퇴한다. 1895년 프라하대학에 입학하고서 1896년 뮌헨으로 대학을 옮기는데, 뮌헨에서 릴케는 운명의 여인 루 살로메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평생 시인으로 살겠다고 결심한다. 살로메의 권유로 르네를 독일식 이름인 라이너로 바꿔 필명으로 사용한다. 1901년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만나 결혼한다. 1902년 파리에서 로댕을 만나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는다. 클라라와 헤어진 릴케는 로마에 머무르며 《말테의 수기》를 완성하였으며, 이후 1911년에 마리 폰 투른 운트 탁시스-호엔로에 후작 부인의 호의로 두이노 성에서 겨울을 보낸다. 이곳에서 바로 전 세계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될 릴케 만년의 대작이며 10년이 걸려 완성한 《두이노 비가》의 집필을 시작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릴케는 스위스의 뮈조트 성에 머무는데, 이곳에서 그는 폴 발레리 등과 교유하며 여생을 보낸다. 발레리의 작품을 독어로 번역하고 또 직접 프랑스어로 시를 쓰던 시인은 1926년 백혈병으로 스위스의 발몽 요양소에서 죽는다. 



 

■목차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십시오 

사물의 깊이를 추구하십시오 

예술작품은 무한한 고독에서 나옵니다 

고독을 사랑하고 고통을 견뎌내십시오 

적막함을 즐기십시오 

당신은 정말 신을 잃었나요? 

사랑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슬플 때 정신을 집중하십시오 

삶은 늘 옳습니다 

예술 역시 삶의 한 방식에 불과합니다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 


예술은 극한적인 고통과 기쁨에서 나옵니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의 나락’에서 벗어나는 길은 창작밖에 없습니다 

‘의문’이 들 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전체’입니다 

고독을 통해 행복은 안전해집니다 

아무리 평범한 것이라도 결국 무한한 빛을 향한 갈망이 됩니다 

내면의 정원을 가꿀 때 타인을 더 깊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위기가 오면 자신의 내밀한 본성에 맞게 극복하면서…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십시오 

새로운 변화 속에서 자유롭게 변신하는 모든 존재에 익숙해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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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체험도 너무 하찮은 것일 수는 없으며,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운명처럼 전개되고, 그 운명 자체는 넓게 짜인 보기 좋은 천과도 같습니다. 그 천을 이루고 있는 실은 모두 끝없이 부드러운 손에 이끌려 다른 실 옆에 짜 넣어져서는 수백수천의 다른 실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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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예술작품이란 무한한 고독에서 나오는 것이며 비평을 가지고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만이 예술작품을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으며 공정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매번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감정이 옳았음을 인정하면서 그런 식의 몰두나 논의에 대해서는 부당한 입장을 취한다면, 내면적인 삶의 자연스러운 성장이 당신을 서서히 다른 인식으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판단이 조용히 자기 나름의 발전을 해나갈 수 있도록 방해하지 마십시오. 그 발전은 언제나 그렇듯 깊은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야 하며, 무엇을 통해 밀어붙여지거나 가속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탄생의 순간을 맞는 법입니다.


어떤 인상이든, 그리고 어떤 감정의 싹이든 자기 내면과 어둠, 말로 할 수 없는 것, 무의식적인 것, 자신의 이성과 닿지 않는 것 안에서 온전히 완성되게 하고, 겸허한 마음과 인내심을 가지고 새로운 확신이 탄생하는 순간을 기다려야만 이해에 있어서나 창작에 있어서나 예술가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삶에는 시간을 재는 일 같은 것이 없어서 1년이든 10년이든 아무 의미가 어 습니다. 예술가라면 계산하거나 셈하지 않으며, 억지로 수액을 짜내려 하지 않고 봄의 짓궂은 비바람 속에서도 여름이 안 오면 어쩌나 불안해하는 일 없이 침착하게 서 있는 나무처럼 성숙해야 합니다.


여름은 언젠가 오긴 하겠지만, 인내심 있는 사람, 즉 마치 자기 앞에 영원의 시간이 놓여 있기라도 한 듯 아무 걱정 없고 여유 있는 사람한테만 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매일같이, 그리고 내가 고맙게 생각하는 고통 속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인내심이 전부라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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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스쳐 지나가는 여러 가지 큰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것조차도 당신한테 힘들고 마음 상하는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처럼 큰 슬픔이 그냥 스쳐 지나갔다기보다는 당신의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지는 않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의 내면에서 많은 것이 변하지 않았습니까? 슬픔에 잠겨 있는 동안 당신의 본질 가운데 어딘가, 어떤 부분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다만 슬픔을 사람들 틈으로 가져가서 그 슬픔이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위험하고 나쁜 일입니다. 어처구니없는 방법으로 대충 병을 치료할 때처럼 그 슬픔은 잠시 물러났다가 짧은 휴식을 취한 뒤 훨씬 더 걷잡을 수 없는 모습으로 엄습해오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마음속에 쌓이는 그 슬픔은 삶, 즉 그로 인해 우리가 죽을 수도 있으며 살아지지 않고 거부된, 잃어버린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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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때가 바로 무언가 새로운 것 또는 미지의 것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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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슬픔은 거의 모두가 우리의 생소해진 감정이 살아 있는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어서 우리에게 마비된 상태로 느껴지는 긴장의 순간이라고 생각됩니다. 친숙하고 익숙한 모든 것은 우리한테서 잠시 떨어져 나가고 우리는 자신에게 나타난 생소한 것과 혼자 있게 됩니다.


또 우리는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상태인 어떤 과도기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 또한 스쳐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새로운 것, 즉 새로 추가된 것은 우리 심장 안으로 들어왔다가 그 가장 안쪽에 있는 심실로 옮겨간 후 그곳에도 더 이상 없고 이미 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우리를 믿게 만들기가 쉬울지 모르겠으나, 손님이 오면 집이 달라지듯 우리도 변했습니다. 우리는 누가 왔는지 말할 수 없고 또 어쩌면 그것을 영영 모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가 다가오기에 앞서 우리의 내면부터 달라지기 위해 미래가 그런 식으로 우리 안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징후는 많습니다. 또 바로 그 때문에 우리가 슬플 때 고독한 상태에서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고 멍한 듯한 순간에 미래는 우리를 기습하며, 그밖에 소란스러운 불의의 시점보다 훨씬 더 삶에 가까이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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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카푸스 씨, 당신이 아직 본 적 없을 만큼 큰 슬픔이 당신 앞에 나타나더라도 놀라서는 안 됩니다. 불안감이 마치 빛과 구름 그림자처럼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삶이 당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며 당신을 손 안에 꼭 쥔 채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어째서 당신은 어떤 불안감이나 어떤 고통, 어떤 우울한 기분 같은 것을 당신의 삶에서 내쫓으려 합니까? 그런 상태들이 당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아직 모르면서 말입니다. 당신은 어째서 그 모든 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로 자신을 괴롭히려 합니까? 당신이 과도기에 있으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당신의 과정 가운데 무언가 병적인 것이 있다면, 병은 곧 유기체를 낯선 존재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아프다는 것, 자신의 병을 품고 있다가 터져 나오는 것은 유기체에게 도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유기체의 발전을 의미하는 셈이니까요.


카푸스 씨, 당신 안에서 지금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아픈 사람처럼 인내심을 가져야 하고, 병이 나아가는 사람처럼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어쩌면 당신은 아픈 사람인 동시에 병이 나아가는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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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한 가지 더 당부할 것이 있다면, 이런 것입니다. 당신을 위로해주고자 하는 사람은 가끔씩 당신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간단하고 담담한 말이나 늘어놓으며 힘들이지 않고 지낼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의 삶은 많은 고난과 슬픔을 지니고 있으며 당신의 삶보다도 훨씬 뒤처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삶이 아니었더라면, 그 사람은 그런 말들을 절대 찾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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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삶이 되어가는 대로 자신을 내맡기십시오. 내 말을 믿어도 좋습니다. 어떤 경우든 삶은 늘 옳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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