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창제자와 창제 원리를 알 수 있고 누구나 배우기 쉬운 과학적인 글자다.
그러나 세종대왕께서 이처럼 과학적인 글자인 한글을 창제하시기 전까지 우리는 한자를 사용해 문자생활을 해 왔다. 그리고 문자에 대한 접근 권한과 능력이 곧 권력과 연결된다는 점을 알고 있던 사대부들의 방해로 한글은 창제 이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천시를 받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말 어휘 가운데 70% 이상은 한자어를 기반으로 하게 됐고, 여전히 우리말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이해하고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생겨났다.
사실 지금의 한글세대들은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한글만으로 문자생활이 가능하고, 어려운 한자와 한문 교육 때문에 낭비되는 교육비와 시간을 절약한 세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 조상들이 쌓아온 한자로 된 우리의 문화도 당연한 우리 겨레의 문화유산이기에 이를 지키고 보존할 뿐만 아니라 계승해 나가야 한다는 당위성도 외면할 수 없다. 물론, 모든 이들이 한자를 읽고 쓰며 한글과 한자를 병행하는 문자생활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해 온 우리 생활과 밀접한 문자인 만큼 어느 정도의 이해와 교육이 필요하고, 또 우리 선조들의 사상을 포함한 위대한 동양고전을 공부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한자 공부는 필요하다는 점에 이의를 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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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최근 시작된 초등학교에서의 한자 교육 부활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오늘 소개하는 처음 읽는 [한문 계몽편·동몽선습]은 바로 우리 선조들이 처음 한자와 한문을 배울 때 사용한 교재를 사용해 한문을 공부하도록 한 책이다.
쉽게 말해 한자는 하나의 글자 하나하나를 뜻하고, 한문은 이러한 한자가 모여 문장이나 어구를 이룬 것을 해석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우리 선조들은 천자문으로 한자를 어느 정도 익힌 후에 계몽편과 동몽선습을 이용해 한자가 만나 문장을 이루는 문리(文理)를 터득하는 방법으로 한문을 공부했다.
옛 선조들의 교육방식은 서당에 앉아 훈장 어른의 선창에 뜻도 모르는 글월을 반복해서 따라 읽고 쓰면서 자연스럽게 한자와 한문의 이치를 깨닫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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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방법으로 한문을 공부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옛날부터 초학 교재로 쓰였던 계몽편과 동몽선습을 읽되, 문법 설명을 최소화하고 비슷한 구문을 반복해서 봄으로써 자연스럽게 문장에 친숙해지게끔 엮었다. 지은이는 또한 한문을 읽을 땐 문법보다는 옛 문화에 대한 상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텍스트와 관련되는 동양 문화 상식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글을 써나가고 있다. 한자와 한문을 공부한다는 것은 곧 우리 생활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동양사상과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훈은 추천사에서 "이재황 선생이 펴내는 책은 옛 서당의 교재를 그 본래의 교육 방식대로 후세에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으로 공부할 때 우리는 서당에 갓 입학한 조선 시대의 어린이가 된다. 이슬비에 땅이 젖고 군불에 아랫목이 따뜻해지듯이, 따라가면 저절로 문리가 트인, 작은 것을 바탕으로 큰 것을 알게 되고 배우면 스스로 즐겁다는 말이 진실로 옳다"고 적고 있다.
아무리 한글세대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중고등 과정을 거치면서 기초적인 한자는 습득을 하게 된다. 또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생활에서 지속적으로 한자에 노출되면서 어느 정도의 기초적인 글자들은 이미 체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책을 들고 차근차근 읽어나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옛 우리 선조들이 한문의 문리(文理)를 텄던 방법을 체득하게 되고 한문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래는 이 책에 쓰인 계몽편과 동몽선습의 내용 중 예로 들 만한 구절을 뽑아 이 책에 쓰인 번역문과 함께 실었다. 책에서는 한문으로 된 원문과 우리말 번역문 아래 각 구절에 대한 해석과 될 수 있는 한 문법적 요소를 제거한 구문에 대한 설명, 그리고 거기에 연관된 동양사상과 역사 등을 덧붙여 이해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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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편(啓夢篇/人篇)
有夫婦, 然後有父子; 夫婦者, 人道之始也. 故, 古之聖人, 制爲婚姻之禮, 以重其事. 人非父母, 無從而生; 且人生, 三歲, 然後始免於父母之懷. 故, 欲盡其孝, 則服勤至死; 父母沒, 則致喪三年, 以報其生成之恩. 耕於野者, 食君之土; 立於朝者, 食君之祿. 人固非父母, 則不生; 亦非君, 則不食. 故, 臣之事君, 如子之事父; 唯義所在, 則舍命效忠.
부부가 있은 뒤라야 아비와 아들이 있는 것이니, 부부라는 것은 사람 도리의 시초다. 그래서 옛날의 성인이 혼인하는 예절을 만들어서 그 일을 중요하게 하신 것이다. 사람은 부모가 아니면 태어날 방법이 없고, 또 사람은 태어나면 세 살이 된 후라야 비로소 부모의 품에서 벗어난다. 그러므로 그 효도를 다하고자 한다면 곧 돌아가시기까지 부지런히 힘써 섬기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곧 상례를 삼 년 동안 치러서 그 낳아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들에서 밭 가는 사람은 임금의 땅을 갈아 먹고살며, 조정에 서는(벼슬하는) 사람은 임금의 녹봉을 받아서 먹고산다. 사람이 참으로 부모가 아니면 태어나지 못하는 것이요, 또한 임금이 아니면 먹고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하가 임금 섬기기를 자식이 부모 섬기는 것과 같이 해서, 오직 도리에 합당하다면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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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몽선습(童夢先習/夫婦有別)
夫婦, 二姓之合, 生民之始, 萬福之原. 行媒·議婚·納幣·親迎者, 厚其別也. 是故, 娶妻, 不娶同姓; 爲宮室, 辨內外. 男子居外, 而不言內; 婦人居內, 而不言外. 苟能莊以涖之, 以體乾健之道, 柔以正之. 以承坤順之義, 則家道正矣. 反是, 而夫不能專制, 御之不以其道, 婦乘其夫, 事之不以其義, 昧三從之道, 有七去之惡, 則家道索矣. 須是夫敬其身, 以帥其婦, 婦敬其身, 以承其夫, 內外和順, 父母其安樂之矣. 昔者, 隙缺耨, 其妻饁之; 敬, 相待如賓. 夫婦之道, 當如是也. 子思曰: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부부는 두 성씨가 합쳐지는 것으로, 사람이 태어나는 시초이며 만복의 근원이다. 중매를 넣고 혼인을 의논하고 폐백을 들이고 직접 가서 맞아 오는 것은 그 분별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를 맞을 때 같은 성씨를 맞지 않고, 집을 꾸밀 때는 안팎을 구별한다. 남자는 사랑채에 거처해 안채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부인은 안채에 거처해 바깥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만일 (남편이) 근엄한 태도를 취해 하늘의 굳센 도리를 체득하고 (아내가) 부드러운 태도로 바로잡아 땅의 유순한 도리를 받든다면 집안의 법도가 바르게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남편이 주관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도리에 맞게 이끌지 못하며 아내가 그 남편을 깔보고 도리에 맞게 섬기지 않음으로써 삼종지도에 어둡고 칠거지악에 빠진다면 집안의 법도가 형편없어질 것이다. 모름지기 남편이 자신을 가다듬어 그 아내를 이끌고 아내는 자신을 가다듬어 그 남편을 받들어 내외가 화순해야만 부모가 안락해하실 것이다. 옛날에 극결이 김을 맬 때 그 아내가 들밥을 내오는데, 공경해 서로 손님 대하 듯했다. 부부간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자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군자의 도리는 부부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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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이재황
저자 이재황은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공부하고, 한국방송(KBS) 내외경제(현 헤럴드경제) 중앙일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동아시아의 역사와 언어 문자 등 동양 문화 전반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재편집해 번역한 《태조 정종본기》, 《태종본기》(3권)를 펴냈으며, 한자의 기원에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를 연재하고, 《한자의 재발견》과 《가장 빨리 외워지는 한자책》, 《기발한 한자사전》 등을 썼으며, 여러 인문서를 번역하기도 했다.
-목차
머리말 4
들어가기 전에 알고 막히면 다시 새겨야 할 것들 8
1부 계몽편
제1강 首篇 (1) 하늘과 땅과 사람 20
제2강 首篇 (2) 만물의 성질 30
제3강 天篇 (1) 하늘에 달려 있는 것들 33
제4강 天篇 (2) 시간을 세는 법 39
제5강 天篇 (3) 사계절과 이십사절기 47
제6강 天篇 (4) 나고 자라고 거두고 저장하고 54
제7강 地篇 (1) 오악과 사해 60
제8강 地篇 (2) 운무와 우설, 상로와 풍뢰 66
제9강 地篇 (3) 생활 터전과 도구들 72
제10강 地篇 (4) 오행의 상생과 상극 76
제11강 物篇 (1) 동양의 동식물 분류 82
제12강 物篇 (2) 유익한 동물, 무익한 동물 88
제13강 物篇 (3) 곡식과 과일과 채소 94
제14강 物篇 (4) 물건을 계량하는 법 102
제15강 人篇 (1) 사람이 가장 뛰어나다 108
제16강 人篇 (2) 가족과 친척의 호칭 112
제17강 人篇 (3) 부부와 부자와 군신 118
제18강 人篇 (4) 사회생활의 원리 125
제19강 人篇 (5) 형제와 친척 129
제20강 人篇 (6) 학문을 해야 하는 이유 136
2부 동몽선습
제1강 五倫 序 오륜이란 무엇인가 142
제2강 父子有親 천성적인 정 148
제3강 君臣有義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155
제4강 夫婦有別 두 성을 합친 것 161
제5강 長幼有序 천륜에 따른 차례 171
제6강 朋友有信 같은 부류의 사람 178
제7강 五倫 總論 오륜의 실천 188
제8강 五倫 結論 효도와 학문 196
제9강 中國史 (1) 요순시대 이전 200
제10강 中國史 (2) 하·상·주 삼대 207
제11강 中國史 (3) 통일과 분열의 반복 217
제12강 中國史 (4) 송에서 명까지 225
제13강 中國史 (5) 질서와 혼란, 흥과 망의 이유 232
제14강 韓國史 (1) 단군에서 삼한까지 237
제15강 韓國史 (2) 삼국에서 후백제까지 246
제16강 韓國史 (3) 고려와 조선 250
제17강 韓國史 (4) 기자가 끼친 영향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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