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외동으로 자라면서 어릴 적 외로움이 많았다는 부인을 위해 슬하에 생후 27개월에서 고등학교 2학년까지 모두 5명의 아이를 두었다고 하는데요. 결국, 음악소리가 시끄럽다는 핑계로 한 사람의 생명줄을 끊어버린 이번 범죄는 한 사람이 아닌 7명의 생명줄을 끊어버린 결과가 됐습니다.
이번 일은 지난 6월 8일 오전 8시10분쯤 경남 양산시 덕계동의 15층 높이 아파트에서 벌어졌습니다. 가해자인 입주민이 시끄럽다는 이유로 아파트 외벽에 매달려 도색 작업 중이던 고인의 줄을 끊으면서 추락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고인은 2~3년 전부터 건물 외벽 도색을 하는 일을 시작해 쉬는 날도 없이 열심히 일했지만 살림은 늘 빠듯했다고 합니다. 황망하게 세상을 등지게 된 고인의 유족들은 가장의 참담한 죽음 말고도 앞으로 또 얼마나 어려운 일들을 겪어나가야 할지 애석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고층에서 도색 작업을 하는 어려움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고인이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었던 게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사실 이번 사건의 가해자는 조울증 병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는 3~4년 전에 폭력 등의 혐의로 구속됐으며 이후 공주 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은 결과 조울증 등의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해자는 지난해 출소한 뒤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가해자가 사건 발생 당일 새벽 인력사무소에 나갔으나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고, 술을 마시면서 아파트 외벽에서 아침 시간에 도색 작업을 하면서 고인이 틀어놓았던 음악 소리에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조울증이란? 진단과 치료
조울증은 바이킹 놀이기구처럼 기분의 양쪽 극단을 오가는 질환입니다. 조증과 우울증이 기간을 두고 번갈아 나타나거나, 주기적으로 조증 상태만 나타나는 것으로, 우리 몸의 기분 조절 장치가 고장이 난 것입니다. 정신과에서는 양극성 장애라고 부릅니다.
우선, 조증이 나타나면 기분이 고조되고 에너지가 증가하며 자신만만해집니다. 그러나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작은 일에 쉽게 화를 내게도 됩니다. 충동조절이 안 돼 호기를 부리거나 일탈하기도 하고요. 나중에 후회할 일들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거나, 생각이 너무 많아져 집중을 못하고 망상에 빠지게 됩니다.
반면에 우울증이 나타나면 정반대 증상을 보이게 됩니다. 불안하고 절망감이 들며, 무기력해지죠. 잠이 안 오고, 식욕도 없어져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깁니다. 모든 일이 후회스럽고, 앞으로의 일이 걱정돼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며 모든 일을 자책하기도 합니다. 또 대인기피와 피해망상으로까지 번지게 됩니다.
조울증은 정신과 상담과 검사를 통해 진단하고, 정신치료와 약물 복용 등 포괄적인 치료 계획을 세워 관리해야 합니다. 진단 과정에서는 일반적인 신체 상태의 평가를 위한 다양한 검사와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 뇌구조 검사, 뇌파 및 신경전기생리검사, 심리검사, 신경인지기능검사 등의 포괄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치료 과정에서는 뇌의 병이기 때문에 뇌에 작용하는 약물 치료가 중요합니다.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가족의 격려,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다른 가족과의 교류도 증상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조울증 유전인가, 조울증을 겪은 유명인은?
조울증은 평생에 한 번 이상 발병할 확률이 1%로 알려져 있고 평균 발병 연령은 30세입니다.
조울증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연구를 통해 신경전달물질과 대사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5-HIAA(5-히드록시인돌초산) 등 신경전달 물질의 균형이 깨져서 생기는 병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뇌의 호르몬이나 생체 시간의 조절에 문제가 있거나 신경 해부학적 이상과 관련 있다는 생물학적 가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울증을 포함한 조현병 등 정신과적 질환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결합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조울증에 대한 많은 연구에서 유전적인 요소가 관련돼 있다는 점이 많이 시사됩니다.
정신질환의 경우 아빠가 정신 장애를 갖고 있으면 자녀가 정신 장애를 겪을 위험이 최고 10배까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영국 폴 라만다니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아빠가 우울증을 갖고 있으면 자녀가 행동, 감정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10~20%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전체 남성의 2%는 범불안장애를 갖고 있는데, 이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아빠의 자녀들은 범불안장애를 겪을 위험이 2배 높았습니다.
또한, 엄마나 아빠가 조울증이 있으면 자녀에게도 조울증이 있을 위험이 10배 높았으며, 조울증 외에 다른 정신 문제가 있을 위험은 3~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는 의학저널 ‘란셋(Lancet)’에 소개됐으며 영국 방송 BBC,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 인터넷판 등에 보도됐습니다.
한편, 조울증을 겪은 사람들 중에는 유명인도 많습니다. 한때 팝의 요정을 불리던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결혼과 이혼, 마약 복용, 폭식증, 자살 소동 등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면서 조울증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은 바 있습니다. 영화배우 비비언 리도 조울증이었고, 항상 익살스러운 역할을 맡은 배우 짐 캐리 역시 조울증으로 오랜 기간 약물 치료를 받았습니다.
■ 조울증 환자 매년 늘어, 조울증 자가 진단 테스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조울증에 대한 건강보험과 의료급여의 심사결정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해마다 조울증 환자가 늘고 있으며, 전체 진료인원 3명 가운데 1명은 40∼50대 중장년이었습니다.
조울증 진료인원은 2011년 6만 7,000명에서 2015년 9만 2,000명으로 최근 5년간 2만 6,000명(38.3%)이 증가했습니다. 증가율은 연평균 8.4%입니다. 2015년을 기준으로 진료 인원이 가장 많은 연령 구간은 40대로 전체의 20.8%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50대(19.2%) 30대(16.8%) 20대(13.5%)순이었습다.
아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조울증 자가진단 테스트입니다. 아래 제시된 1단계 문항은 총 13개로, 이 중에서 7개 미만을 택한 경우는 조울증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1단계에서 7개 이상의 질문에 '예'를 택한 경우 2단계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2단계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의 질문에 하나 이상 '예'라고 대답했다면, 그중 몇 가지는 같은 시기에 벌어진 것입니까?
앞서 말했듯 1단계 질문에서 7개 이상을 '예'를 택하고, 2단계 질문에서도 '예'를 택했을 경우는 조울증 확률이 60∼70% 정도로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합니다. 참고하세요.
<1단계 조울증 테스트 질문 13문항>
① 기분이 너무 좋거나 들떠서 다른 사람들이 평소의 당신 모습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 또는 너무 들떠서 문제가 생긴 적이 있다.
② 지나치게 흥분해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사람들과 싸우거나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③ 평소보다 더욱 자신감에 찬 적이 있다.
④ 평소보다 더욱 잠을 덜 잤거나 또는 잠 잘 필요를 느끼지 않은 적이 있다.
⑤ 평소보다 말이 더 많거나 매우 빨라진 적이 있다.
⑥ 생각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돌아가는 것처럼 느꼈거나 마음을 차분하게 하지 못한 적이 있다.
⑦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로 너무 쉽게 방해받았기 때문에 하던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거나 할 일을 계속해서 못 한 적이 있다.
⑧ 평소보다 더욱 에너지가 넘친 적이 있다.
⑨ 평소보다 더욱 활동적이었거나 더 많은 일을 한 적이 있다.
⑩ 평소보다 더욱 사교적이었거나 적극적인 적이 있다.
⑪ 평소보다 더욱 성행위에 관심이 간 적이 있다.
⑫ 평소의 당신과는 맞지 않은 행동을 하거나 남들이 생각하기에 지나치거나 바보 같거나 또는 위험한 행동을 한 적이 있다.
⑬ 돈 쓰는 문제로 자신이나 가족을 곤경에 빠뜨린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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