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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선][선불교][자기계발] 활쏘기의 선 - 손가락을 거쳐 달을 본다

by 노지재배 2017.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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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할 책은 《활쏘기의 선》이다.


견월망지見月亡指.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대해 자세하게 짚어주는 책'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이 책은 바로 서양의 철학자가 궁도弓道와 선禪에 대해 쓴 보고서 형식의 책이다. 그렇지만 딱딱한 보고서가 아닌, 자신이 직접 체험하며 깨달은 선에의 여정을 자세하게 그리고 있어 서양 독자들을 비롯한 세계인들에게 많은 영감과 열정을 일깨워줬다.


활쏘기의 선

이 책의 저자인 오이겐 헤리겔 교수는 1920년대에 일본에 객원교수로 체류하는 동안 일본 궁도의 명인 아와 겐조에게서 궁도를 사사하면서 선의 세계에 입문했다. 


책은 1948년 독일에서 처음 출판된 이래 세계 12개 국어로 번역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정신의 길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의 독서가 중요한 경험으로 회자되었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루 코엘류도 젊은 시절 자신의 영감과 열정을 일깨워 준 책으로 이 책을 들었다. 


책은 특히, 동양인인 우리에게 익숙한 선과 불교적인 색채와 사고에 서양인이 어떻게 적응해 나가는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에 익숙한 유럽인이 어떻게 감성적이고 모순적인 사고가 가득한 선과 불교의 세계를 이해해 나가는지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주로 서양인을 포함해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이 책이 어필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서 얘기한 대로 불가에 견월망지見月亡指라는 말이 있다. 달을 봤으면 달을 가리키는 손을 잊으라는 뜻이다. 본질을 깨우쳤으면 그 본질에 이르는 수단들은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은 달이 아니라 달에 닿기 위해 우리가 거쳐야 하는 손가락, 그러니까 선에 닿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련과 통과의례 등의 과정을 자세하게 짚어주는 책이다. 어쩌면 달, 그러니까 선은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거기에 이르기 위한 손가락, 그 과정은 저자의 책에서처럼 살펴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 선이라고 부르는 불교 종파의 유래는 염화미소拈華微笑에서 비롯됐다. 불교의 대표적인 화두 가운데 하나인 염화미소는 염화시중拈花示衆이라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기록돼 있다.


영산靈山에서 범왕梵王이 석가에게 설법을 청하며 연꽃을 바치자, 석가가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으나, 가섭迦葉만은 참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고 이에 석가는 가섭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묘한 덕)과 열반묘심涅槃妙心(번뇌와 미망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는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생멸계를 떠난 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진리를 깨닫는 마음) 등의 불교 진리를 전해 주었다. 이는 곧,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뜻으로, 선 수행의 근거와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화두다. 


선에 대한 설명으로 따라다니는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도 선종의 특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이다. 교와 설 외에 체험에 의해 별도로 전해지는 것이 바로 선의 진수이므로 오직 좌선을 통해서 석가세존釋迦世尊의 깨달음에 바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선종에서는 이런 이유로 경전의 강술이나 언어 문자의 수단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리를 전하는 데 힘쓴다.


동양인인 우리들은 서양인들보다는 선이나 불교의 오묘한 사상과 설법에 익숙한 편이지만, 염화미소나 불립문자와 같은 가르침 속에서 해탈과 깨달음에 대한 집요한 물음은 오히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과 해탈에 대한 과정도 옅은 안개처럼 오묘함 속에 담겨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서양인인 저자는 해탈이나 깨달음의 경지 자체를 말로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이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만큼은 기록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교외별전, 불립문자와 같은 깨달음의 기준으로는 부질없는 짓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의 이러한 시도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특징을 내세우는 서양인들뿐만 아니라, 선과 불교 문화의 직관적이고 논리 초월적인 오묘함에 익숙한 동양인인 우리에게도 많은 부분 새로운 깨달음과 통찰을 던져준다.


이 책을 읽는다면 선과 불교 문화에 적극적이고 열성적으로 다가서는 이 서양 철학자의 기록을 통해, 선과 불교의 오묘한 실체 한 자락을 체험하는 특별한 독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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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죄송스런 마음에서 나름대로는 힘을 빼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노라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애를 쓴다는 사실, 그에 대해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바로 문제입니다. 다른 일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오직 숨쉬기에만 정신을 집중하십시오!"

선생이 요구하는 것을 달성하기까지 물론 또다시 긴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나는 결국 달성했다. 무념무상으로 숨쉬기에 빠져드는 것을 배웠고, 때때로 나 스스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숨 쉬어진다는 느낌을 가졌다. 이 기상천외한 발상에 저항해서 몇 시간이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선생이 약속했던 것이 숨쉬기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었다. 때때로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자주 몸 전체의 힘을 완전히 뺀 상태에서 활을 당기고 또 쏘기까지 그 자세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아직도 성공한 시도는 몇 번 안 되고 대부분 실패하고 마는데, 그 질적인 차이는 너무도 명확해서 마침내 나는 '정신적으로' 활을 당긴다는 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이해한다고 기꺼이 인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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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인은 동시에 위대한 스승입니다. 우리에게 두 가지가 한데 속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만약 수업을 호흡법에서 시작했다면, 아마도 호흡에 결정적인 것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먼저 스스로의 거듭된 시도를 통해서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던져 주는 구명 튜브를 움켜쥘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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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겨진 활시위를 마치 어른이 쥐여 준 손가락을 잡는 어린아이처럼 잡아야 합니다. 아이는 손가락을 강하게 감아쥐어서, 우리는 그 작은 손에서 어떻게 그런 큰 힘이 나오는지 놀라곤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손가락을 놓을 때는 아무 미동도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아이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제 손을 놓고 다른 것을 잡아야지 하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아무 생각도 의도도 없이 아이는 이것에서 저것으로 관심을 돌립니다. 우리는 아이가 사물을 가지고 논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사물이 아이들과 논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있지 않습니까? 제가 활을 당기고 있으면, 어느덧 지금 당장 발사하지 않으면 더 이상 당기고 있을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옵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숨이 가빠 온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원하든 원치 않든 저 스스로 화살을 발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디에 어려움이 있는지를 아주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왜 발사의 순간을 기다릴 수 없고, 왜 발사가 되기 이전에 숨이 가빠지는지 아십니까? 올바른 순간에 올바른 발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스스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성공에 온 정신을 쏟는 것이 아니라 미리부터 실패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당신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그런 동작을 스스로 불러오는 길밖에 없는데, 그러면 손은 올바른 방식으로, 즉 어린아이의 손처럼 열리지 않습니다. 당신의 손이 잘 익은 과일의 껍질처럼 저절로 벌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


"진정한 기예는 목적도 의도도 없습니다. 목표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서 화살을 발사하는 법을 배우는 데 집착하면 할수록 목표를 맞추기는 더 어렵고, 또 발사하는 법은 더 배워지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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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본의 교육은 이렇게 기본 형식을 무조건 익히도록 가르친다. 연습, 반복, 그리고 반복이 오랜 시간에 걸쳐 점점 더 강도 높게 진행되는 데 일본식 교육의 특징이 있다. 적어도 전통적인 기예를 배우는 경우에는 언제나 그렇다. 시연과 시범, 그리고 공감과 모방, 이것이 교육에서 기본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물론 지난 수십 년 동안 새로운 교과들이 도입됨으로써 유럽식 수업 방법도 뿌리를 내리고 또 올바르게 적용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입 초기의 대대적인 열광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기예들이 본질적인 면에서는 이 새로운 수업 방식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


일본의 제자는 세 가지를 이미 갖추고 있는데, 즉 예의범절, 자기가 선택한 기예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 스승에 대한 무비판적 존경이 그것이다. 예로부터 사제간의 관계는 근본적인 삶의 유대에 속하기 때문에, 스승의 입장에서 보자면 수업의 틀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책임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우선 제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스승이 보여 주는 시범을 신중하게 모방하는 것뿐이다. 스승은 장황한 설교와 설명을 피하고 단지 간략한 지침들을 제시하는 데 그치며, 제자로부터 어떠한 질문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덤덤하게 학생들의 실수 섞인 노력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자립성이나 독창성 등도 바라지 않고 그저 참을성 있게 제자가 성장하고 원숙해지기를 기다린다. 양쪽 모두 서두르지 않는다. 스승은 윽박지르지 않고, 제자는 성급하게 발걸음을 놀리지 않는다.

스승은 제자의 내면에 있는 예술적 재능을 일찍 깨우려 하기보다는 무엇보다 먼저 제자를 완벽한 기술을 가진 장인으로 만들려고 한다. 제자는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통해서 이런 의도에 응답한다. 그는 더 이상의 욕심이 없는 듯 묵묵히 헌신적으로 순종을 하는데, 여러 해가 지난 후 그동안 완전하게 익힌 기본 형식들이 더 이상 자신을 억압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제자는 날이 갈수록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영감을 기술적으로 손쉽게 실행할 수 있게 되며, 또한 세심한 관찰을 통해서 새로운 영감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붓을 움직이는 손은 정신이 움직이는 바로 그 순간에 이미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을 그리고 완성한다. 그래서 제자는 정신과 손, 둘 중 어느 것이 그 그림을 그린 주체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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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승은 필수적이긴 하지만 초보적인 수준의 준비 작업을 가령 경험 있는 제자에게 맡기지 않는가? 자신이 직접 먹을 갈면 상상력이 고양되고, 꽃다발 끈을 잘라 내던지는 대신에 직접 조심스럽게 풀면 조형의 능력이 향상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무엇 때문에 그는 매 수업 시간마다 항상 똑같이 엄격하게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반복하며, 또 제자들로 하여금 똑같이 따라 하게 하는가?

그가 이러한 전통적인 의식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러한 준비 과정이 동시에 창조를 위한 올바른 마음의 틀을 제시해 준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준비 작업을 할 때의 명상적인 고요함 덕분에 우리는 결정적 의미를 지닌 이완('힘 빼기')과 자신의 모든 힘의 조화, 그리고 정신 집중과 정신의 현존 등을 달성할 수 있다. 이것은 제대로 된 작품을 창조하기 위한 전제 조건들이다. 아무 의도도 없이 자신의 행위에 침잠함으로써 머릿속을 맴돌던 작품이 마치 저절로 되는 듯이 완성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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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로 가는 길은 가파르다. 종종 제자는 오직 스승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간신히 수련을 계속하게 된다. 왜냐하면 스승을 통해서 이제 겨우 제자는 대가의 단계를 어슴푸레하게나마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

제자가 얼마나 멀리까지 달성할 것인가는 스승과 대가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다. 스승과 대가는 제자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자마자 제자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가도록 한다. 제작가 고독을 이겨 내도록 하기 위해서 스승과 대가가 할 일이 아직 한 가지 더 있다. 그는 자기보다 더 먼 데까지 나아가도록, 그리고 "스승의 어깨에 올라서도록" 진심으로 요구함으로써, 제자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대가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길이 그를 어디로 인도하든 간에 제자는 스승을 시야에서 잃을 수는 있을지언정 잊을 수는 없다. 초심자의 무비판적 존경과 예술가로서의 구원적인 믿음은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감사로 바뀌고, 제자는 스승의 자리를 물려받는다.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예들이 보여 주듯이, 이 감사의 마음은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볼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능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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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선생은 나에게 충고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당기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당신이 진정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통의 대나무 잎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눈이 쌓이면 대나무 잎은 점점 더 고개를 숙이게 되지요. 그러다가 일순간 대나무 잎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데도 눈이 미끄러져 떨어집니다. 이와 같이 발사가 저절로 이루어질 때까지 최대로 활을 당긴 상태에 머물러 있으세요.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최대로 활이 당겨지면, 발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발사는 사수가 의도하기도 전에, 마치 대나무 잎에 쌓인 눈처럼 사수를 떠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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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활을 발사했는데, 선생님이 깊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며 수업을 중단했다. 그가 "방금 '그것'이 쏘았습니다"라고 소리쳤을 때, 나는 영문을 몰라 그를 멀끔히 쳐다보았다. 마침내 그 뜻을 이해했을 때, 나는 치솟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러나 선생은 이렇게 나무랐다. "지금 나는 칭찬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감격할 이유는 없지요. 내가 절을 한 것도 당신에게 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기도 모른 채 그렇게 쏘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당신은 완전히 자신을 잊고 아무 의도도 없이 최대한 활을 당긴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그러자 잘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 발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연습을 계속하십시오!"

그 후로 한참 지나서야 다시 가끔씩 올바른 발사가 이뤄어졌다. 그때마다 선생은 말없이 절을 함으로써,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어떻게 내 꽉 움켜쥔 오른손이 열리면서 뒤로 움직였는지,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확실하며, 그것만이 중요하다. 그러나 점차 적어도 올바른 발사와 실패한 발사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양자 간의 질적인 차이는 너무 커서 한 번 경험하기만 하면, 도저히 모르고 지나칠 수가 없다.

올바른 발사는 외적으로는 또는 관찰자에게는 오른손의 급작스러운 움직임이 완충되어, 몸의 떨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서 알려진다. 한편 잘못된 발사 후에는 참았던 숨이 폭발하듯 터져 나와서, 급히 숨을 들이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반해 올바른 발사 후에는 숨이 부드럽게 흘러나와서, 서두르지 않고 숨을 들이마실 수 있으며, 심장은 균일한 속도로 평온하게 뛰고 정신 집중이 그대로 유지되어, 지체 없이 다음 발사로 이행할 수 있다.

그러나 내적으로 또는 궁사 자신에게 올바른 발사는 마치 이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듯이 느껴진다. 올바른 발사 이후에 궁사는 모든 올바른 행위와 더 중요하게는 모든 올바른 무위를 행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는 크나큼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이 상태에 도달한 사람은 마치 그것을 가지지 않은 듯이 가져야 한다고 선생은 엷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흔들림 없는 평상심을 유지해야만, 그 상태가 망설임 없이 다시 찾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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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려운 고비는 넘긴 셈인가 보네요." 어느 날 선생님이 이제 새로운 연습으로 넘어가겠다고 하셨을 때, 나는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우리 속담에 100리 길을 가는 사람은 90리를 중간 지점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새로 배워야 할 것은 표적을 맞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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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본래적인, 내적인 표적이 무엇인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사수가 겨냥하지 않고도 외적 목표인 표적지를 맞출 수 있는지, 또 그렇다면 명중이 어떻게 내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외적인 검증이 되는지, 이러한 상호 일치를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 후 선생은 충고의 말을 했다. "이 현묘한 연관에 대해 대강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그것은 착각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과정은 지성의 접근이 불가능한 영역에 놓여 있습니다. 개념으로는 파악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너무 현실적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그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상호 일치들이 자연에는 존재합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자주 생각하던 하나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거미가 춤추며 거미줄을 칠 때, 거미는 거미줄에 걸릴 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햇빛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춤추던 파리가 영문도 모른 채 거미줄에 걸립니다. 이 두 가지 사태를 통해서 춤추고 있는 것은 '그것'입니다. 이 춤 속에서 내면과 외면은 통일되어 하나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수는 외적으로 겨냥하지 않은 채 표적을 맞힙니다. 이렇게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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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눈을 가리시고서도 표적을 맞히실 수 있어야만 합니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선생님은 내 말에 상처를 입으신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 나를 찾아오십시오!"


(...)


사대에는 불이 밝혀져 있었다. 선생은 뜨개바늘처럼 길고 가느다란 모기향을 표적 앞의 모래 위에 꽂으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표적이 있는 모래 언덕에는 불을 밝히지 못하게 했다. 너무 어두워서 나는 표적의 윤곽조차 볼 수 없었다. 모기향의 작은 불꽃이 없었다면, 나로서는 표적이 있는 자리를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을지언정 그 자리를 정확하게 분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선생은 의식을 "춤추었다." 그가 쏜 첫 번째 화살이 밝은 사대를 벗어나 깊은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화살이 꽂히는 소리를 통해서 표적에 명중했음을 알았다. 두 번째 화살도 명중했다.

내가 표적대의 불을 밝혔을 때, 나는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화살이 표적 정가운데의 검은 점에 꽂혔고, 두 번째 화살은 첫 번째 화살의 깃을 찢고, 더 나아가 대를 약간 쪼개면서, 역시 검은 점에 나란히 꽂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차마 화살을 하나씩 뽑지 못하고 표적에 꽂힌 채로 가져왔다. 선생은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고 나서 말했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첫 번째 발사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저 표적대에 익숙해진 나머지, 나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표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서는 다른 변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화살을 맞힌 두 번째 화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찌 됐든 이 두 번째 발사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쏘았고, 명중시켰습니다. 부처께 하듯이 표적 앞에 예를 표합시다!"

이 두 개의 화살로 선생은 분명히 나도 명중시켰다. 밤새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나는 더 이상 내 화살에 대해서,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걱정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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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 특별히 훌륭한 발사를 했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물었다. "이제 '그것'이 쏜다는 말, '그것'이 명중시킨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시겠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도대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가장 단순 명료한 것조차 혼란스럽게 느껴지는군요. 제가 활을 당기는 것인지, 아니면 활이 저를 최대의 긴장으로 당기는 것인지, 제가 목표를 명중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목표가 저를 맞추는 것인지. '그것'은 육신의 눈으로 보면 정신적이고, 정신의 눈으로 보면 육체적인지, 또는 달 다인지. 그도 아니면 둘 중 아무것도 아닌지. 활, 화살, 목표, 그리고 저 자신, 이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어서 더 이상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분리하려는 욕구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활을 잡고 쏘는 순간 모든 것이 너무도 맑고 명료하며, 그저 우습게 느껴지기..."

이 때 나의 말을 끊으며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방금 마침내 활시위가 당신의 한가운데를 꿰뚫고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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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5년여가 흘렀을 때, 선생은 시험을 치를 것을 제안했다. "기술을 펼쳐 보이는 것을 별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궁사의 정신적 태도에 훨씬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부분에까지 말입니다. 특히 관중 때문에 흔들리지 말고 우리끼리만 있는 것처럼 차분하게 의식을 치르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뒤이은 몇 주 동안에도 시험 준비 같은 것은커녕 그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그리고 몇 발 쏘지도 않고 수업이 끝났다. 대신에 집에서 의식을 차근차근 그리고 무엇보다도 올바른 호흡과 함께 수행하고 깊은 자기몰입을 행하라는 숙제를 받았다.

우리는 선생의 말씀대로 연습했는데, 활과 화살 없이 의식을 "춤추는" 데에 익숙해지자마자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즉 몇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도 벌써 비상하게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으며, 우리가 가볍게 힘을 빼서 집중의 과정을 쉽게 하려 노력하면 할수록 집중은 더 강해졌다. 그러고 나서 수업에서 다시 활과 화살을 잡으면, 집에서의 연습이 십이분 영향을 발휘하여 힘들이지 않고 '정신의 현존' 상태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너무도 마음이 평온했기 때문에, 시험 날임에도 그리고 관중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평정심을 유지했다. 우리는 선생이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관중들로부터 양해를 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즉석에서 쓴 인증서를 받았다. 거기에는 나와 나의 처가 각기 달성한 숙달의 단계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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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장 상세히 설명했던 것은 '기예 없는 기예'의 본질에 대해서였는데, 활쏘기가 완성되려면 바로 거기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토끼의 뿔과 거북이의 머리카락으로 쏠 수 있는 사람, 즉 활(뿔)과 화살(머리카락) 없이 명중시킬 수 있는 사람이 비로소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의 명인, 즉 '기예 없는 기예'의 명인입니다. 더 나아가 그는 기예 없는 기예 자체이며, 또한 명인인 동시에 명인이 아닙니다. 이러한 전환과 함께 활쏘기는 운동 없는 운동으로서, 춤 없는 춤으로서 선으로 이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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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아닌 이별에 대한 선물로 그는 나에게 그가 가장 아끼는 활을 주었다. "당신이 이 활을 쏠 때면, 명인의 숨결이 깃들어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이 활을 단지 호기심을 가진 사람 손에는 쥐여주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 활을 자유자재로 당길 수 있게 된 다음에는 기념품으로 소장하거나 하지 마십시오. 한 줌의 재밖에 남지 않도록 태워 없애 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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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제자는 불만에 가득 찼다. 왜냐하면 그가 산에 온 것은 검술을 배우기 위함이지, 늙은이의 종노릇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스승에게 검술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스승은 그러자고 했다.

그 결과 젊은이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가 이른 새벽에 밥을 짓기 시작하면, 갑자기 스승이 뒤에 나타나서 지팡이로 후려쳤다. 방바닥에 걸레질을 하고 있을 때도 언제 어느 곳에서 지팡이가 날아올지 몰랐다. 그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고, 항상 깨어 있어야 했다.

몇 년이 지나자, 그는 지팡이가 언제 어느 방향에서 날아와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스승은 아직도 만족하지 않았다. 어느 날 스승이 불 앞에서 채소를 끓이고 있을 때였다. 제자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커다란 장작개비를 들어 채소를 젓느라 솥을 들여다보고 있는 스승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러나 스승은 솥뚜껑으로 제자의 장작개비를 막았다.

이 일로 제자는 비로소 검술의 비밀에 눈뜨게 되었다. 그때서야 처음으로 제자는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


여기서 그의 제자는 새로운 감각,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감각의 새로운 각성을 획득해야 한다. 그래서 마치 미리 예감했다는 듯이 위협적인 공격을 피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이러한 피함의 기예를 터득하면, 더 이상 상대의 또는 여러 상대들의 운동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제 막 시작되려는 것을 보고 예감하는 순간, 그는 이미 본능적으로 이 사건의 결과로부터 몸을 피했다. 마치 보고 느낌과 피함 사이에 "깻잎 한 장 차이도" 없다는 듯이.

그것이 중요한 점이다. 이런 직접적인 전광석화 같은 반응을 위해서는 의식적인 관찰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적어도 이런 의미에서 그 제자는 더 이상 아무런 의식적인 예측도 하지 않게 되었다. 이로써 그는 많은 것을 배운 것이다. 

그러나 훨씬 더 어렵고 또 수료를 위해서 정말로 결정적인 스승의 임무는 제자가 상대를 어떻게 가장 잘 공략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탐색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다. 바로 그렇다.

제자는 상대와 마주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생사가 걸린 문제라는 사실에 대해 까맣게 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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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규 다지노카미는 검도의 위대한 명인으로서, 당시의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에게 검술을 가르쳤다. 어느 날 쇼군의 호위병 중 하나가 다지마노카미에게 와서 검술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명인은 말햇다. "내가 보기에 그대 자신이 이미 검의 명인인 듯 하오. 우리가 스스오가 제자의 연을 맺기 전에 어떤 문하에서 배웠는지 먼저 알려 주오."

호위병은 이렇게 말했다. "부끄럽습니다만, 고백하건대 저는 검술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대는 나를 조롱하려 하는가? 나는 경애하는 쇼균의 사범이며, 내 눈이 거짓말을 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네."

"제가 사범님의 명예에 누를 끼쳤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정말로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 말에 명인은 생각에 잠기더니,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러나 분명히 그대는 하나의 분야에서 대가가 틀림없소. 어느 분야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사범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완벽한 대가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긴 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사무라이는 어떤 경우에도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벌써 몇 년이 흘렀는데) 끊임없이 죽음의 문제와 드잡이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문제는 더 이상 저의 근심거리가 되기를 그쳤습니다. 혹시 이것이 사범님께서 알고 싶은 것이었습니까?"

다지노카미는 소리쳤다. "바로 그것이오.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이오.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아서 다행이군. 사실 검도의 마지막 비밀은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에 있소. 그 목표를 향해서 지금까지 수백 명의 제자를 가르쳐 왔지만, 검도의 최고 단계에 도달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소. 그대에게는 기술적 수련이 더 이상 필요 없소. 그대는 이미 명인이오...."


검도를 배우는 연습장은 예로부터 이렇게 불리고 있다. 

"깨달음의 장소(도장道場)!"


"




■ 저자


오이겐 헤리겔(EUGEN HERRIGEL)


독일의 사상가, 철학자. 1884년 케엘(KEHL) 출생.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다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신칸트학파의 두 대가인 빈델반트W. WINDELBAND에게 배우고 리케르트H. RICKERT의 지도하에 교수 자격 논문을 썼다. 


1923년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로 있던 중 일본 도호쿠 제국대학의 초청을 받고 1924년부터 1929년까지 이 대학 객원교수로 철학을 강의했다. 귀국 후 1951년까지 에를랑겐 대학 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상적으로는 신칸트학파와 결별하고 독일 신비주의와 일본 선사상을 연구했다. 1955년 사망했다. 


《활쏘기의 선》은 지은이가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배웠던 궁도와 선에 대한 보고로서, 1948년 독일에서 처음 출판되고 1953년 영어로 번역된 이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저서로 이 책 외에 칸트에 대한 연구서인 《형이상학적 형식DIE METAPHYSISCHE FORM》과 유고집 《선의 길DER ZEN-WEG》이 있다. 




■ 옮긴이 


정창호


철학박사. 1960년 경기도 반월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문과와 같은 대학 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헤겔 철학에서 본질과 현상의 관계를 다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독일 함부르크 대학 교육학과에서 철학 교육을 연구하면서 집필과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역서로 《기상천외의 발굴! 로빈슨 크루소의 그림일기》(2004), 《황홀한 사기극》(2003), 《스피노자》(2000) 등이 있다.




■ 목차


서문 


1. 선과 활쏘기 

2. 수업 

3. 올바른 호흡법 

4. 처음에 쉬우면 나중에 어렵다 

5. 연습 또 연습 

6. 스승과 제자 

7. 대나무 잎에 쌓인 눈처럼 

8. 어둠 속의 표적 

9. 시험 

10. 명인의 경지 

11. 기예 없는 기예의 길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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