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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박열][가네코 후미코] 박열의 그녀, 가네코 후미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by 노지재배 2017.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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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할 책은 일본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가 쓴  옥중 수기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 영화로 잘 알려진,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朴烈)'의 동지이자 반려자였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출판사는 이학사로,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 수기가 일본에서 출간된 지 80년 만에 처음으로 초판본을 그대로 번역해 국내에 첫 출간했다고 한다.


박열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1926년 2월 27일, 박열과 함께 대역죄 및 폭발물단속벌칙 위반혐의로 재판정에 섰을 당시 가네코 후미코가 낭독한 '26일 밤'이라는 수기의 한 구절로 알 수 있다. 



"


나는 박열을 알고 있다. 박열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모든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 때문에 그가 나에게 저지른 모든 과오를 무조건 받아들인다. 박열의 동료들에게 말한다. 이 사건이 우습게 보인다면 뭐든 우리 두 사람을 비웃어도 좋다. 그렇지만 이것은 두 사람의 일이다. 재판관에게도 말한다. 부디 우리를 함께 단두대에 세워 달라. 박열과 함께 죽는다면 나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박열에게 말한다. 설령 재판관들이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해도 나는 당신을 결코 혼자 죽게 하지는 않겠다.


"


가네코 후미코, 최희서


영화 〈박열〉을 보면서 나는 이준익 감독처럼 여태껏 이런 인물을 모르고 있었다는 데 대한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일었다(이준인 감독은 제작에 참여했던 영화 〈아나키스트〉를 위한 취재 당시 박열에 대해 처음 알았고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박열만큼 영화 속 박열의 동지이자 반려자로 나왔던 가네코 후미코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갔다.


그러던 차에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 수기가 국내에 출간돼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의 기억이 시작된 4살 무렵부터 박열을 만나 1922년 4, 5월경 셋방을 얻어 동거를 막 시작하기 직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본래 이 수기는 일본 재판정에 서게 된 가네코 후미코가, 재판을 위해 자신의 이력을 제출하라는 판사의 권유에 의해 작성한 글이다.


〈박열〉 영화를 통해 잘 알려졌다시피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관동 대지진의 혼란을 조선인과 일본 내 사회주의자를 탄압하는 데 이용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재판정에 서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록됐던 이 수기가 이후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의 동료였던 구리하라 가즈오에게 전달돼 후미코 사후 5년 만에 세상에서 빛을 보게 된 것이 바로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이다.


책에는 가네코 후미코의 불행했던 가정사와 조선에서의 고생, 일본으로 돌아와 고학생 시절을 겪으며 사회주의로 경도됐던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문장으로 자신의 불행했던 삶을 담아낸 후미코의 이 수기는 가네코 후미코가 동료에게 원고를 넘기면서 '사실이라는 것에 생명을 두고자 하니 어디까지나 '사실의 기록'으로 보고 취급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체는 어디까지나 간단하고 솔직하게 하여 과장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너무 아름답고 시적인 문구를 쓰거나 현란한 형용사를 쓰는 일은 자제해주십시오.' 등의 당부가 잘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박열 포스터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의 동지이자 아내였던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의 천황제와 대결하고 잘못된 기존 제도, 관습과 투쟁해 독자적인 사상을 형성한 아나키스트로 대역죄로 복역하다 23살 꽃다운 나이에 감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후미코의 자살에 대해서는 평소 가네코 후미코의 언행에 비춰 자살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의견들도 있는데, 당시 그녀의 죽음과 시신 인계 과정 등에서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어 확실하게 규명하기는 어렵다.

 

그녀가 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선물이며 유품인 이 옥중 수기에는 공부를 매우 잘했고 머리가 좋았던 가네코 후미코와 그녀의 이러한 재능을 꽃 피우기 어렵게 만들었던 집안 환경 및 조선에서의 어려웠던 생활상, 그리고 도쿄에서의 힘들었던 고학생 생활이 모두 생생하고 뚜렷한 문장으로 기록돼 있다.


수기를 편집한 구리하라 가즈오는 서문에서 "아마 누구라도 눈물 없이는 읽기 힘들 이 수기를 전국의 뜻있는 독자들에게 보내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 가네코 후미코 본인은 "나로서는 누구보다도 이 세상의 부모들이 이것을 읽어주었으면 한다. 아니, 부모들뿐 아니라 사회를 좋게 하고자 하는 교육가, 정치가, 사회사상가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읽어주면 좋겠다."는 말을 수기 첫머리에 남겼다.


이 수기의 역자 역시 "아 이렇게 지지리 복도 없는 인생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혹한 환경에 놓인 존재였다. 불꽃처럼 살았다기보단 아프게 살다 간 한 여인의 삶이 오롯이 수기에 새겨져 있다."고 강조한다.


영화 〈박열〉 속 가네코 후미코에게 매력을 느꼈던 사람들이나, 불행한 삶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자신만의 사상을 완성해가고자 했던 당당한 여성 사상가의 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앞서 얘기했듯 수기 자체는 그녀가 사회주의에 경도되고, 박열과 동거를 시작하기 직전까지만 기록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박열과 그녀의 아나키스트 활동은 이 수기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옥중 수기는 어떻게 불우했던 시대에 그보다도 불행했던 삶에 던져진 한 여성이 자신만의 생각과 행동으로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맞섰는지 충실하고도 매력적으로 그리고 있다.


박열, 이제훈





■ 박열의 시, 〈개새끼〉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이 박열의 시 〈개새끼〉를 보고 이에 반해, 박열을 소개받고 적극적으로 구애를 한다. 영화와 그녀의 옥중 수기에 이러한 내용이 잘 나와 있지만, 영화에 나오지 않는 그녀의 사상 형성 과정과 어린 시절이 잘 그려진 옥중 수기를 읽는 것이 이런 과정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 관동대학살, 일제의 군·관·민이 합세한 잔혹 범죄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의 관동關東(간토) 지방에 대지진이 엄습했다. 


당시 일본은 한국과 중국의 민족해방운동에 직면해 한국인과 사회주의자를 탄압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에 일제는 도쿄와 요코하마 등지에서 조선인과 공산주의자들이 건물에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약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도쿄·가나가와 현·사이타마 현·지바 현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결국, 구조활동을 위해 출동한 일본군이 경찰, 자경단과 함께 조선인들에게 린치를 가하더니 급기야 잔인한 살상으로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간인들까지 가세한 폭도들은 집집마다 수색하여 조선인들을 끌어내 닥치는 대로 일본도와 죽창을 휘둘렀다. 그 결과 도쿄에서만 1,798명, 전국을 통틀어 6,618명의 조선인들이 희생됐다. 


일본 정부는 군대·관헌의 학살을 숨기고 자경단에게 그 책임을 전가해 재판에 회부했지만, 자경단원은 증거 불충분으로 모두 석방됐다. 


일본의 조선인 대학살 만행이 외국 언론들에 의해 알려지자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조선인 아나키스트와 일본 내 사회주의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길 궁리를 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희생양으로 지목된 조직이 바로 박열과 후미코가 활동했던 〈불령사〉였다.


박열, 가네코 후미코




■ 아나키즘(anarchism), 조선의 아나키스트


아나키즘은 권력 또는 정부나 통치의 부재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an archos’ 라는 어원에서 유래됐다.


우리말로 '무정부주의'라는 말로 번역되는 아나키즘은 모든 제도화된 정치 조직,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사상 및 운동을 뜻한다. 무정부주의는 현대국가의 개념에 어울릴 수 있는 도식이므로, 단순하게 무정부주의로 번역하기보다는 탈권위주의로 보는 것이 더욱 올바른 해석이라는 지적도 있다.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우고, 그에 대한 모든 억압적인 힘을 부정하는 사회철학이자 정치이념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을 전후로 활약했던  영국의 W.고드윈(William Godwin)에 의해 성립되기 시작했고,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며 사상을 형성시킨 프랑스의 P. J.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이 세계의 아나키즘을 이끌었다. 이후에는 러시아의 M.A. 바쿠닌(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Бакунин)이 민족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결부시켜 19세기 유럽의 혁명운동에 영향을 미쳤고, 남유럽, 북미 등 산업화 지역으로 확산됐다. 특히, 크로포트킨(Pyotr Alekseevich Kropotkin)의 이론에 의해 더욱 체계화된 아나키즘은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혁명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현대의 아나키즘은 생태주의, NGO 활동 등과 연계해 발전해가고 있다. 


일제 치하의 한국 아나키즘은 식민지 시대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일본과 중국에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됐다. 박열, 신채호, 김원봉, 유림, 이회영, 백정기, 유자명 등이 대표적인 조선의 아나키스트들이다. 




■ 저자


1903년 1월 25일 요코하마시 출생.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 모두에서 정상적인 돌봄을 받지 못한 가네코 후미코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오랜 기간 ‘무적자’로 살았다. 

1912년 당시 조선 충청북도 부강에 살던 고모의 양녀가 되어 조선으로 건너가 약 7년간 생활하며, 이때 외할아버지 가네코 도미타로의 다섯째 딸로 입적한다.

1919년 4월 12일 일본으로 돌아온 후미코는 1920년 봄에 상경하여 신문팔이나 식모살이 등을 하면서 학업을 병행한다. 이러한 고학의 과정에서 사회주의자들과 만난 것을 계기로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특히 니힐리즘에 심취했다.

박열의 시 [개새끼(犬コロ)]를 읽고 큰 감동을 받은 후미코는 1922년 4월경부터 박열과 동지로서 동거를 시작한다. 이후 두 사람은 아나키스트 활동 중에 불령사(不逞社)라는 조직을 결성한다. 관동대지진 직후 1923년 9월 3일, 후미코와 박열은 보호검속 명분으로 구속 및 기소되고 이후 1925년 7월 17일 대역죄 및 폭발물취급벌칙 죄로 기소된다. 1926년 2월 26일, 후미코와 박열에 대한 대심원특별형사부의 공판이 시작되고 3월 25일에는 사형선고를 받지만 4월 5일,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이후 가네코 후미코는 7월 23일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 것으로 돼 있지만, 후미코의 죽음이 진정 자살이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 목차



편집자(구리하라 가즈오)께 보내는 편지

서문

간행에 대한 나의 희망


수기를 시작하며

아버지

엄마

고바야시의 고향

외갓집

새로운 집

부강

이와시타가

나의 조선 생활

고향으로 돌아오다

호구虎口로

성에 눈뜨며

아버지여, 안녕

도쿄로!

작은외할아버지의 집

신문팔이

노점상

식모살이

거리의 방랑자

일! 나 자신의 일을 찾아!

수기를 쓴 후


가네코 후미코 연보

옮긴이의 말



박열, 가네코 후미코




■ 책 속으로


"


나로서는 누구보다도 이 세상의 부모들이 이것을 읽어주었으면 한다. 아니, 부모들뿐 아니라 사회를 좋게 하고자 하는 교육가, 정치가, 사회사상가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읽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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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자연과 친해진 것은 그 무렵이다. 그 덕분에 나는 시골 생활이 얼마나 이상적이고 얼마나 건강하며 또 얼마나 자연스러운가를 오늘날까지도 느끼고 있다. 그런데도 시골 사람들의 생활이 그토록 비참한 것은 왜일까. 아주 옛날은 모르겠다. 도쿠가와 시대의 봉건사회 그리고 오늘의 문명사회에서 시골은 도시 때문에 점점 수척해간다.

내 생각으로는 시골에서 양잠을 하면 시골 사람들은 그 실을 짜서 작업복도 비단옷으로 해 입으면 된다. 괜히 도시 상인한테 무명옷을 살 필요가 없다. 누에고치나 숯을 도회지에 팔아 그보다도 훨씬 나쁜 무명이나 비녀 같은 것을 사다 보니 교환상의 조화로 시골의 돈을 도회지에 빼앗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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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하타신문점은 고학생에게 면학의 편리를 제공한다는 것을 표면상의 이유로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곳에는 시라하타신문점을 위해 일함으로써 학교에 다니는 일단의 고학생이 있었다. 고학생들은 물론 나처럼 혼자서는 어쩌지 못하는 친구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됐든 학교에 다닐 기회를 준 시라하타 씨에 대해서는 감사해야 할지 모른다. 나는 그다지 그것이 부당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시라하타 씨가 만약 "내가 너희들을 살려주니까 너희들도 나를 위해 내가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 정당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학생들이 시라하타 씨로부터 면학의 기회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나 동시에 또 시라하타 씨가 고학생 때문에 먹고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본 바로는 시라하타 씨는 오히려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더 많았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처음에는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10일, 20일 있으면서 자연히 시라하타 씨의 인격이 우리 아버지와 별반 다르지 않고, 시라하타 씨의 가정이나 우리 가정이나 오십보백보라는 것을 앎과 동시에 시라하타 씨가 그러는 것은 그의 천성이 그럴 수도 있지만 적어도 시라하타 씨는 고학생들로부터 너무 많은 돈을 벌어들여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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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는 신神을 따르고 사람들에게 봉사하였다. 하지만 대가는 전혀 없었다. 나는 이미 3일이나 굶고 있었다. 게다가 또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지만 그 일거리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뿐 아니다. 내가 지불한 집세가 다 돼 집주인이 돈을 달라고 왔다. 하지만 나는 물론 집세를 치를 수가 없었다.


(...)


잠을 깨눈 것이 미안해 빌린 방에도 못 들어가고 노숙하거나, 용변 볼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고 힘든 생활에도 안 해도 되는 변소 청소까지 도맡아 했건만 그런 마음 씀씀이는 아무런 가치도 없었던 모양이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정말 옳은 것일까? 그것은 오직 사람 마음을 속이는 마취제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성의나 사랑이 타인을 움직이고 그것이 인간 세계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지 않는 한, 그런 가르침은 결국 기만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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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정말 괴로운 일과였다. 과도한 노동과 수면 부족은 지금까지의 어떤 일 못지않게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면서도 나는 주인집에 충실하려 애썼다. 나는 지금 참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은 주인집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그저 주인집에 잘 보이려고 동료인 오기요 상 몰래 일찍 일어나 오기요 상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식사 준비를 다 마쳐놓거나, 신 짱의 친구가 오면 나 자신이 단순한 식모가 아님을 보이기 위해 일부러 학교 이야기를 하거나 수학 노트를 들춰 "여기 틀렸네." 하며 허세를 부린 일 등을. 즉 나는 동료를 밟고 나 자신만 착한 척하려 했던 것이다. 신 짱의 자존심을 짓밟기까지 하며 나 자신의 우월을 과시하려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 자신의 생활 중 무엇보다 자신을 책하게 되는 대목이 이 부분이다. 어째서 그토록 비열한 짓을 했단 말인가.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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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료를 정하지 않은 것은 내가 잘못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한 것은 결국 아키모토 상의 가르침에 따랐기 때문이었다. 아키모토 상은 "돈 같은 건 말해선 안 됩니다. 돈 얘기를 하는 것은 비천한 것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나카기 상의 집은 훌륭한 상점이므로 막 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맡겨놓으세요."라고 했던 것이다. 나는 아키모토 상의 말을 따라 "그저 맡겼"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카기 상이 너무한 것은 아닐까. 나는 학교에 가고 싶어 했고 또 가와타 상이 그렇게 기회를 주었는데도 오직 나카기 집의 사정 때문에 나카기 집을 위해 나의 바람을 모두 버리고 일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나카기 집은 나에게 한 달에 5엔도 안 되는 보수를 준 것이다. 나한테 그 돈밖에 주지 않은 그들은 첩을 끼고 있거나 요릿집에 붙어 있거나 도박만 하는 노인과 치장하는 데 두 시간이나 걸리는 노부인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까지 늦잠을 자고 자신들만 사치에 빠져 있으면서 식모는 4, 5시간밖에 못 자게 하고 쉬지도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아아, 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얼마나 오만한 태도인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나 자신을 실컷 비웃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지폐와 종이를 마구 구겨 소매 안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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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는 나에게 특별히 새로운 것을 주지는 않았다. 그것은 다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을 통해 형성된 나의 감정이 정당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확인해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가난했다. 지금도 가난하다. 그 때문에 나도 돈 있는 사람들에게 혹사당하고, 가혹한 대우를 받고, 괴롭힘에 짓눌리며, 자유를 빼앗기고, 착취당하고, 지배받아왔다. 그리하여 나는 그런 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반감을 항상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마음으로부터 동정을 보내고 있었다. 조선에서 할머니 집의 머슴이었던 고 씨를 동정한 것도, 집에서 기르는 불쌍한 개를 거의 동료와 마찬가지로 여겼던 것도, 그 외 이 수기에는 쓰지 않았지만 할머니 주위에서 일어난 일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압박받고, 가혹한 대우를 받고, 착취당하던 불쌍한 조선인들에게 끝없는 동정심을 가진 것도 무도 그런 마음의 발로였다. 내 마음속에 타고 있던 이 반항이나 동정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것이 사회주의 사상이었다.

아 나는...... 해주고 싶다. 우리 불쌍한 계급을 위해 내 전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싸우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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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그즈음 나는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희망에 불탔던 나는 고학을 하여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아왔다. 하지만 나는 지금 확실히 알았다. 지금 세상에서는 고학 같은 것은 해서 훌륭한 인간이 될 턱이 없다는 것을, 아니 그뿐이 아니다. 소위 훌륭한 인간만큼 하찮은 것도 없다는 것을. 남들이 훌륭하다고 하는 일에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나는 남들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진정한 만족과 자유를 얻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아닌가. 나는 나 자신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타인의 노예로 살아왔다. 너무나 많은 남자의 노리개였다. 나 자신의 삶을 살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 나 자신의 일을 말이다. 그러나 그 나 자신이 일이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알고 싶다. 알아서 그것을 실행하고 싶다.


(...)


이 무렵부터 나는 사회주의라는 말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옅은 베일에 싸여 있던 세상의 모습이 점점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나처럼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해도 공부도 할 수 없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부유한 자가 더욱더 부유해지고 권력 있는 자가 뭐든지 할 수 있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또 사회주의가 설명하는 바에도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결코 사회주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사회주의는 억압받는 민중을 위해 사회의 변혁을 구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하는 바가 진실로 민중의 복지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의문이다.

'민중을 위하여'라고 하며 사회주의는 동란을 일으키리라. 민중은 자신들을 위해 일어선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생사를 같이 하리라. 그리하여 사회에 하나의 변혁이 도래했을 때 아아, 그때 과연 민중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지도자는 권력을 장악할 것이다. 그 권력으로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세울 것이다. 그리고 민중은 다시 그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혁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하나의 권력을 대신하여 다른 권력을 가져오는 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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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 출구가 가까워졌을 때 내가 물었다.

"그런데 오늘 밤 어디로 가요?"

"글쎄요." 하고 박은 조금 생각하더니 "고지마치 초의 친구한테나 가볼까." 하며 힘없이 대답했다.

"그래요. 그렇지만 그렇게 집이 없으니 쓸쓸하지 않아요?"

"쓸쓸해요." 박은 발밑을 응시하며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렇게 건강할 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만 병 같은 것이 걸리면 마음이 불안해요. 평소에는 잘해주던 사람들도 그럴 때는 싫어하니까요."

"그렇죠. 사람은 냉정하거든요. 게다가 당신은 좀 지나치게 말랐는데, 지금까지 심하게 앓은 적이 있어요? 도쿄에 와서......."

"있어요. 작년 봄에요. 나는 심하게 유행성 감기에 걸렸는데 아무도 간병해주는 이가 없어 3일 정도 마시지도 먹지도 못하고 혼조本所의 기친야도에서 끙끙 신음하고 있었죠. 그때야말로 내가 이대로 죽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안했습니다."

어느 한 감정이 가슴에 복받쳤다. 눈물이 글썽해진 눈을 깜박거리면서 나는 박의 손을 꼭 잡았다.

"아, 내가 알았더라면......."

잠시 뒤 박이 단호하고 낮은 어조로

"그럼 잘 가요. 또 만납시다." 하며 내 손을 놓고 간다 방면으로 가는 전차에 뛰어올랐다.

그를 배웅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하듯 말하고 있었다.

"기다려주세요. 조금 더 기다려요. 내가 학교를 졸업하면 우리 바로 함께 살아요. 그때는 내가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 겁니다. 결코 당신을 병 같은 것으로 고통받게 하지 않을 거예요. 죽을 거면 함께 죽읍시다. 우리 함께 살고 함께 죽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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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미코는 시몬 베유처럼 많이 배우거나 체계적인 사회운동을 지도했던 엘리트 여성운동가는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아 이렇게 지지리 복도 없는 인생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혹한 환경에 놓인 존재였다. 불꽃처럼 살았다기보단 아프게 살다 간 한 여인의 삶이 오롯이 수기에 새겨져 있다.


(...)


후미코가 태어나 성장한 시기는 러일전쟁이라는 근대 일본의 운명을 건 대규모 전쟁에 일본 국민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본격적인 제국주의로 돌진하던 시대였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적인 협조 분위기 속에 형성된 다이쇼데모크라시로 일컬어지던 '안으로는 입헌주의 밖으로는 제국주의'로 식민지 종주국의 민주주의 발달이 이루어진 시대였다. 또한 1971년의 러시아 혁명은 동아시아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만의 사상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기독교를 비롯하여 다양한 사상을 접하게 된다.

가네코 후미코가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은 성장사만큼이나 고달팠다. 식모살이를 마치고 도쿄에서 눈물 나는 고학을 하면서 자신이 꿈꿔왔던 입신출세가 얼마나 허망하며 의미가 없는 것인지, 가망이 없는 것인지를 깨달으며 고학을 통한 출세를 포기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기독교와 사회주의, 아나키즘을 만나는데, 기독교에는 실망하고 사회주의에는 처음에는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단호한 거부의 자세를 보인다. 공산주의 세상이 되어도 권력자가 교체되는 것일 뿐 민중들에게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그 뒤 박열과 만나면서 자신의 사상에 눈뜨고 아나키즘에 공명하여 박열과 함께 아나키스트로서 활동하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옥중 수기는 박열과 만나 생각을 같이하는 부분에서 끝난다.


(...)


당시 여성 운동가들이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은 인텔리 신여성이었음에 비해 가네코 후미코는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가난한 고학생으로 갖은 고생을 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만들어간 인물이어서 더 빛을 발하는지 모르겠다.

독자들이 딱딱한 혁명의 구호나 슬로건이 아닌, 한 시대를 살았던 한 여성의 생생한 삶의 육성으로 이 책을 읽어주기를 바란다. 또한 이 책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현재를 어렵게 헤쳐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된다면 옮긴이로서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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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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