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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촘스키][철학] 최고의 언어학자가 말하는 인간론, 《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by 노지재배 2018.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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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책은 최고의 언어학자로서 사회문제에까지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인지과학자, 철학자로 유명한 노엄 촘스키의 책 《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이다. 출판사는 와이즈베리다.


책은 언어학자로서의 노엄 촘스키의 언어학적 인간 탐구에서부터 사회적 지성인으로서의 사회문화적 인간 탐구까지 다루고 있다.


언어학적인 소양이나 역사 또는 사회학적 기본 배경지식 없이는 전체적이고 무난한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언어학 대가이면서 이 시대 최고 지성으로 꼽히는 저자가 자신의 인간에 대한 탐구와 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는 책인 만큼 쉽게 읽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수 있다.


다만, 언어학적 소양이 없다거나 기본적인 사회, 문화적인 배경지식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책의 중심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는 언어학자로서 역시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최대 차이점이 바로 '언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개념 변화를 살펴보면서 인간 사회의 발전과 함께 언어의 문제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언어에 대한 완전한 탐구나 인간의 정신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여전히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고 있으며, 현재 우리 인류로서는 그러한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한 영역을 저자는 '미스터리'라고 부른다.


이어 책의 후반부에서는 아나키스트로 알려진 저자가 아메리카 군사학교를 비롯한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문제나 금권정치로 변화해버린 민주주의의 폐해, 이러한 금권정치 앞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의 건강보험 등의 사회문제를 언급하면서 공공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대학 시절이나 독서를 통해 노엄 촘스키를 한 번쯤 들어본 사람이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전체적인 그의 언어학적 관점이나 사회문화적 시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라고 본다.


 


■ 저자


노암 촘스키 


미국의 언어학자, 철학자, 인지과학자이자 수십 권의 책을 쓴 저자. 1928년 12월 7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유대계 러시아 이민자 가정의 2세로 태어난 노암 촘스키는 역사 언어학자이자 저명한 히브리어 학자였던 아버지 윌리엄 촘스키의 영향으로 언어학에 입문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언어학과 수학, 철학을 공부했으며, 하버드 대학교 특별연구회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의 기초 연구를 수행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시절 언어학 교수인 젤리그 해리스의 영향으로 언어학을 공부하게 된 촘스키는 생성문법 이론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 그의 저술들은 1960년대 이후 학계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 시작했으며, 왕성한 저술활동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강의 활동을 했다. 1955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변형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강의를 시작하였고 1960년에는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었다. '변형생성문법'이라는 새로운 언어학 이론으로 학계에 혁명을 일으켰으며 그의 수많은 논문들은 주요 연구 대상이 되었다. 1976년에는 MIT 석좌 교수가 되었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는 오늘날 단순히 한 명의 언어학자일 뿐만 아니라 숱한 정치적 사건에 대해 발언하며 세계 여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 되고 있다. 




■ 목차


감수의 글 


서문 


1장 언어란 무엇인가?

2장 우리는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가?

3장 공공선이란 무엇인가?

4장 자연의 신비- 얼마나 깊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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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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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는 이렇게 썼다.

"언어는 아주 독특하게도 끝이 없는 정말로 무한한 영역과 마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의 본질이다. 따라서 언어는 유한한 수단을 무한히 활용해야 하며, 언어와 사고를 일치시키는 능력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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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기능이 의사소통이라고 보는 것은 정말로 도그마나 다름없다. (…)

우선 언어가 목적을 갖는다는 생각 자체가 이상하다. 언어는 인간이 설계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물학적 실체다. 시각 계통이나 면역 계통, 소화기 계통과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나 이따금 이런 기관도 기능이 있다거나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고 할 때가 있지만 그 또한 명확한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척추를 예로 들어보자. 척추의 기능은 우리가 똑바로 서 있게 해 주는 것인가, 아니면 신경을 보호하는 것인가? 아니면 혈액 세포를 생산하는 것인가, 칼슘을 저장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인가? 언어의 기능과 설계에 관해 물을 때도 이와 비슷한 의문이 생긴다. 여기서 보통 진화론적 고려를 하게 되는데, 결코 간단치가 않다. 척추도 마찬가지다. 언어에 관한 한 진화와 관련된 여러 가지 추측은 대개 동물계 전체에서 발견되는 유형의 의사소통 체계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 또한 근대적인 도그마를 반영하는 것이며, 더 파고들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일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했으며 뒤에서 다시 살펴볼 것이다.

더군다나 언어가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된다 하더라도 의미(혹은 소리나 구조)가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의사소통은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유사성이 충분치 않을 경우 의사소통에 어느 정도 문제가 생기며 그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의사소통이라는 용어가 실질적인 의미는 거의 없고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됨에도 그게 무슨 상관 이냐는 듯 의사소통은 여전히 실질적인 언어 사용의 일부분으로 남아있다. 요컨대 의사소통에 관한 일반적인 도그마를 뒷받침할 아무런 근 거가 없으며 이제는 그것이 엉터리에 불과하다는 증거가 꽤 많다. 언어가 이따금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옷 입는 스타일이나 얼굴 표정, 눈빛, 그 밖에 다른 여러 가지도 마찬가지다. 언어 설계의 기본적인 속성은 언어가 본질적으로 생각의 도구라고 여기는 풍부한 전통이 옳다는 것을 보여준다. 훔볼트처럼 언어와 사고를 동일시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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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천사가 아닌 생물 유기체라면, 우리의 인지 능력은 신체 능력이라고 불리는 다른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신체의 다른 기관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소화기 계통을 예로 들어보자 척추동물에게는 '제2의 뇌'라고 불리는 '장-뇌gut brain'가 있다. "독립적으로 신경을 통합하고 처리하는" 장 내 신경계를 말한다. 그 구조와 성분 세포를 보면 "주변의 다른 기관보다 두뇌와의 유사성이 더 강하다." 장에는 척추보다도 많은 신경세포가 있으며, 사실 다른 말초신경계 전부를 합한 것보다도 많다. 작은창자에만 1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장-뇌는 "두뇌에서 발견되는 모든 종류의 신경전달물질을 고스란히 보유한 거대한 화학물질 창고이기도 해서 "뇌처럼 복잡하고 풍부한 내부 소통도 가능하다. 장은 "두뇌나 척수의 명령이 전혀 없어도 반사적으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고유의 신경계를 갖춘 유일한 기관"이다. 장에 있는 뇌는 머리에 있는 뇌와 동일한 속도로 진화했다. 그 결과 "활발하고 근대적인 데이터 처리 센터가 되었으며, 그 덕분에 우리는 아주 중요하면서도 썩 유쾌하지 않은 일들을 정신적으로 조금도 애쓰지 않고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운이 좋으면 "효율적으로"그렇게 되어서 "아예 의식조차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장-뇌가 신경증(psychoneroses, 신경계의 기능 이상으로 생기는 정신 질환이다-옮긴이)에 걸리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오늘날 일부 연구자는 장-뇌가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자폐 같은 뇌 질환에 걸리기 쉽다고 보고한다. 장뇌는 고유의 감각 변환기와 조절 장치도 갖고 있다. 그래서 장-뇌와 상호작용하는 기관들이 부과하는 임무만 처리하고 나머지는 배제한다.

논란의 여지없이 "자연의 신성한 손끝은 장-뇌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즉 장-뇌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그 범위를 벗어나 있는 '미스터리'를 결정한다. 


(…)


제1 뇌, 특히 그것의 인지적 측면이 장-뇌나 다른 신체 요소를 연구할 때와 근본적으로 다른 방법으로 연구되어야 하는 이유를 찾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신비주의는 널리 알려진 바와 달리, 내재주의와 같은 자명한 이치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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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마지막 10년은 '뇌 연구 10년the Decade of the Brain'으로 지정되었다(1989년에 미국 의회가 1990년부터 향후 10년을 '뇌 연구 10년'으로 지정함에 따라 뇌 연구가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옮긴이). 그 결과물을 검토하는 논문집 서문에서 신경과학자 버논 마운트캐슬Vernon Mountcastle은 전체적인 주제를 "정신적인 것, 실로 정신이라는 것은 두뇌에서 발생하는 속성이며, 그것이 어떤 원리로 발생하는지는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분자생물학의 논지로 표현했다. 이 또한 18세기 사상을 사실상 똑같은 말로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구절에 주의할 필요 가 있다. 1927년 버트런드 러셀이 화학 법칙에 대해 "지금은 물리학 법칙으로 환원될 수 없다"라고 한 말을 기억할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탁월한 과학자들은 화학이 진정한 과학이 아니라 실험 결과를 예측하는 계산법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진 바에 따르면 러셀의 주장이 정확하지만 절제된 표현이었다. 실제로 화학 법칙이 당시 이해되던 방식의 물리학으로는 아예 환원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물리학이 양자이론 혁명과 더불어 급격한 변화를 겪고 난 다음, 사실상 달라진 것이 없는 화학과 통합이 되었다. 

여기서 신경과학과 정신철학에 적용될 만한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다. 현대 신경과학은 100년 전의 물리학만큼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다. 정신철학의 기본 전제와 관련해 내게는 꽤 있다고 느껴지는 비판들도 있다. 정신에 대한 연구가 추상적인 차원의 '신경과학'이라는 통념은 90년 전 화학에 대한 통념과 마찬가지로 오해로 판명이 날 것이다. 이 또한 오늘날의 신경과학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질문이 이 책에서와 같이 정신을 어느 정도 추상적인 개념의 두뇌라고 여기는 태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토머스 네이 젤Thomas Nagel은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던 최근 연구에서 이렇게 썼다.

"짐작건대 정신은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이거나 신이 내린 기이한 선물이 아니라 현대 과학의 정설이 갖고 있는 태생적 한계를 초월하지 않는 한 이해하지 못할 자연의 근본적인 측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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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하고자 한 것은 '집'이라는 단어가 이 집의 실체였다는 점에 주목하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그것이 실체는 재료와 형상의 결합이라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였다. 17세기에 인지 혁명을 겪으면서, 경험을 이해하게 만드는 '타고난 인식력'을 탐색하는 쪽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점이 바뀌었다. 이런 주제와 관련된 수년간의 연구를 요약하면서 흄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마음이나 채소, 동물의 몸, 그밖에 다른 실체에 "우리가 부여하는 정체성은 이 형상에 속하는 특유의 본질"이 아니라 "비슷한 대상에 대한"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이다.

지칭의미론의 결함을 잘 보여주는 한 가지 예가 바로 '인간person'이라는 개념으로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특히 17세기 이후에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다. 존스라는 이름은 그것을 가진 인간을 가리킨다고 말할 때, 그것을 가진 인간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단순히 물질적인 몸이 될 수는 없다. 로크의 의견처럼, 같은 인간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몸을 가졌을지 모른다고 생각해도 전혀 모순점이 없다. 똑같은 의식이 하나의 생각하는 실체에서 또 다른 생각하는 실체로 전달될 수 있다면 두 개의 생각하는 실체가 한 인간을 구성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다른 복잡한 문제가 많다. 따라서 개인의 정체는 일종의 '의식의 동질성', 즉 정신적 일관성과(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 게다가 로크는 '인간'(혹은 '자신self'이나 '영혼soul')이라는 말이 어떤  행위와 그 행위의 가치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법정 용어라서 법과 행복, 그리고 고통을 이해하는 지적인 주체들에게만 해당된다"라고 덧붙인다.(…)

미국 수정헌법 제5조는 인간의 권리를 보장한다. 결정적으로 '적당한 법적 절차 없이 생명과 자유, 재산권을 박탈할 수 없다"라고 규정한다. 이것은 마그나카르타 대헌장에서 유래된 조항이다. 하지만 그 '인간'이라는 개념이 심하게 제한적이었다. 여기에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노예가 포함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식민지로 전수된 영국 관습법하에서 여성은 기본적으로 소유물이었다. 그 소유권이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 양도되었다. 당시 만연했던 이런 생각을 몇 년 뒤 칸트가 표현했다. 그는 여성에게는 "시민으로서의 됨됨이가 전혀 없는데 그 이유는 "시민으로서의 됨됨이"가 부족한 도제나 하인처럼, "다른 인간들의 호의에 의존해 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수정헌법 제14조는 원칙적으로나마 인간의 지위를 해방된 노예에게까지 확대했다. 현실적으로는 불과 몇 년 만에 남북협약이 이루어져 노예를 소유한 주에서 흑인을 교묘하게 범죄인 취급을 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를 시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렇게 값싸고 훈련된 노동력이 산업혁명의 많은 부분에 기여했으며, 이런 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무임금 노동의 수요가 생길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추악한 역사가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정부 이후 잔인한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재연되었다.

여성과 관련해서는, 1975년이 되어서야 미국 대법원이 여성에게 연방 배심원단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대등한 인간'으로 인정했다. 비로소 온전한 인간으로서 지위를 얻은 것이다. 최근 들어 미국 법원의 결정은 인간으로서 누릴 권리를 확대하는 추세다. 그러나 이미 기업에까지 주어진 이 권리의 범주에 외국인 불법 체류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인간의 권리가 밀입국자보다 침팬지에게 먼저 주어진다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인간'을 법정 용어로 이해하면 인간에 관한 여러 가지 복잡한 골칫거리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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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세상의 어떤 부분이 하나의 사물을 구성하느냐를 결정하는 데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이 관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요인 중에는 사고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을 연구해서는 파악될 수 없는 인간의 의도와 설계,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상이라고 표현한 속성도 포함된다. 만약에 사고에 의존하는 환경을 벗어나서는 사물이 '사물성'을 얻지 못한다면, 그럼 무엇이 사물이 될 수 있겠는가?

데닛이 예로 들었던 파리와 런던은 어떤가? 우리는 파리와 런던을 지시할 수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내가 방문했던 바로 다음 해에 런던이 대화재로 파괴되었다가 템스강 상류 50마일 지점까지 완전히 새로운 재료와 설계로 재건되었다고 하니 내년에 또 방문해볼 생각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사고를 벗어난 외부 세계에는 이런 속성을 지닌 실체가 없다. 그러니까 물리학자들이 원칙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실체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런던'이라는 표현이나 그것과 연결된 대명사를 사용함으로써, 아니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라는 좀 더 복잡한 어구를 써서 런던을 가리킬 수 있다. 나의 I-언어에는 '런던' 이라는 내재적 실제가 있는 것이다. 당신의 런던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것을 구성하는 성분이 세상의 여러 가지 측면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한다. 반면에 [ta]라는 내면의 음성학적 실체가 지닌 특성들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을 소리로 표현하고 해석하는 수단을 제공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플루타르크의 기록에 나오는 '테세우스의 배(아주 오래전 테세우스를 비롯한 아테네 젊은이들이 탔던 배를 길이 보존하기 위해 아테네인이 낡은 목재를 제거하고 새 목재로 갈아 끼웠다면 그 배는 예전과 같은 배인가 아닌가 하는 유명한 패러독스이다-옮긴이)'에서부터 솔 크립키Saul A. Kripke가 제시한 여러 가지 문제(직접지시론을 주장한 미국 철학자 솔 크립키는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다' '에베레스트는 가우리샹카이다' '물은 산소와 수소로 되어 있다' 등의 명제가 참인지 여부를 독창적으로 풀어낸 것으로 유명하다-옮긴이)에 이르기까지, 지칭의미론의 가정을 토대로 한 고전적인 패러독스는 만들어지기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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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은 우리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동질성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자연적 성향, 즉 일종의 본능이며, 이것 때문에 우리의 경험이 우리의 인지 양식에 맞게 구성되며, 동물계의 그 어떤 것과 비교해도 심한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다양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어도 동질성을 부여하려는 성향이 무척 강해서, 상상력을 통해 관련 대상의 변화까지 모두 하나로 묶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고 부분 부분을 연결하는 우리가 잘 모르는 신비한 뭔가를 상상하게 된다고 했다. 따라서 동질성이라는 것은 상상력으로 만든 결과물이며 이런 상상을 구성하는 데 관여한 요인들이 인지 과학의 주제가 되는 것이다.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상상력이 "일종의 기적 같은 요인이라서… 사람의 이해력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설명이 불가능하다"라는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인간에게는 아직도 미스터리라면, 흄이 난색을 표했을 테지만.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지금은 부활 같은 신화적 요소나 과거의 형이상학적 틀에서 벗어났지만, 영혼의 본질에 관해 고민한 풍부하고 교훈적인 기록들도 새롭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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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인간에게는 미스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비통해할 일은 아니라 대단히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귀추법에 한계가 없다면 우리의 인지 능력에도 범위가 따로 없게 된다. 그것은 유전적 재능이 유기체의 성장과 발달에 한계를 두지 않을 경우 그 유기체는 일정한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마치 알 수 없는 환경 재해를 반영하는 것처럼, 아메바와 비슷한 생물밖에 안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인간 배아가 벌레가 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조건은 그 배아가 인간이 될 수 있음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인지 영역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미학 이론은 범위와 한계 사이에 이 같은 관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규칙 없이는 진정으로 창의적인 활동도 있을 수 없다. 창의적인 노력으로 주요 규칙에 도전하고 그것을 개선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우리가 창의성에 관한 한 16세기 스페인의 의사이자 철학자였던 후안 우아르테 Juan Huarte(촘스키는 우아르테가 데카르트 이전에 이미 인간의 이해력과 행동에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생성적 능력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여러 책에서 높이 평가했다-옮긴이)보다 아는 것이 별로 없음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때 이미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과 공통적으로 소유한 유형의 지능이 있으며, 창의적인 언어 사용과 같은 더 높은 차원의 지능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구분했다. 더 나아가 실로 예술적이고 과학적인 창의성으로 표현되는 훨씬 높은 차원의 지능도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이런 의문이 과연 인간이 가진 이해력의 범위에 들어가는지, 아니면 흄이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던 자연의 궁극적인 비밀에 속하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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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커의 말을 인용하자면, 어쨌거나 아나키즘은 이런 생각을 발전시켜 "경제적 착취로부터의 노동 해방"과 "종교적, 혹은 정치적 감독 체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회를 추구한다. 그렇게 해서 "공동체 이익에 부합하는 협업적인 노동과 조직적인 관리를 바탕으로 남녀 집단이 자유롭게 연합"하는 길을 열어가려는 것이다. 로커는 나아가 아나키스트 '운동가'로서, 아나키스트의 상징적 존재인 미하일 바쿠닌Mikhail Bakunin의 권고를 따라 대중 조직이 "미래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그 미래 자체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전통적 아나키스트의 슬로건은 "Ni Dieu ni maitre", 즉 "신도 없고 주인도 없다"이다. 이는 대니얼 게렝Daniel Guerin의 소중한 아나키스트 고전 모음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신도 없다'라는 슬로건은 로커의 말에 비춰보면 종교적 감독 체제에 반대하는 것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개인의 종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기독교적 아나키즘이 강렬하고 인상적인 전통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로시 데이 rothy Day의 가톨릭 노동자 운동이 대표적이다. 반세기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시작된 해방신학의 여러 가지 성과도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것을 계기로 미국 정부는 교회와의 잔혹한 전쟁을 시작했다. 복음서의 근본적인 평화주의 메시지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을 이단으로 간주하고 파괴에 나선 것이다. 아메리카 군사학교School of the Americas(후에 이름을 바꿈)가 라틴아메리카인에게 암살과 고문 기술을 가르치고는 미군이 해방신학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자랑스럽게 떠드는 것을 보면, 전쟁은 성공적이었다. 끔찍한 탄압이 라틴아메리카 전체를 휩쓸면서 순교자가 줄을 이었을 정도로 대단한 성공이었다.

이런 사실은 대부분 기존의 역사에서 빠져 있다. 부적절한 기관의 잘못된 조치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범죄를 공식적인 적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그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또한 이중의 보편성을 갖는 그 흥미로운 윤리 원칙의 또 다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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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순수 학문에서도 1960년부터 "소비에트가 붕괴한 1990년까지 라틴아메리카에서 정치적으로 비폭력 저항을 하다 수감되고 고문을 당하고 처형된 사람의 수가 같은 시기 소비에트 연방과 유럽 위성 국가 전체에서 그렇게 희생된 사람의 수보다 월등히 많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하면, 희생자 수로 볼 때 1960년부터 1990년까지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국가 전체보다도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국가가 더 심한 탄압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다." 중앙 아메리카에서만도 "전례 없는 인류 재앙"이 발생했으며, 특히 레이건 정부 시절에 심했다. 처형된 사람 중 상당수가 순교자였으며 미국 정부가 줄곧 지원을 하거나 직접 개입한 대량학살도 있었다. 일반적인 수사학적 틀을 벗어나면, 탄압이 만연했던 이유가 냉전과는 기의 관계가 없음을 알게 된다. 그보다는 피지배가 '가난한 자를 우대하는 선택'을 하는 것에 자극을 받아 감히 개를 들기 시작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문득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종교재판소장의 이야기가 떠오른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종교재판소장은 인간에게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할 자유를 주었다는 이유로 그리스도를 부정한다-옮긴이).

전통적 아나키스트의 슬로건에서 '주인도 없다'는 말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은 개인의 신념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즉 지배 종속 관계와 관련이 있다. 아나키즘은 이런 관계가 어떻게든 그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혹독한 부담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에 완전히 무너뜨리고 아래로부터 다시 세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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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자명한 이치에서 벗어나 논란이 많은 주제로 옮겨왔다. 특히 미국의 자유의지론은 이제 전통적 자유의지에서 심하게 벗어나 있다. 노동자가 경제를 지배하는 사람에게 순종하고, 모든 사람이 제한적 규제와 시장의 파괴적인 특성에 복종하는 것을 용인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지지하기까지 한다. 파고들만 한 가치가 있는 주제이지만 여기서는 좌파 자유의지론자libertarian left와 우파 자유의지론자libertarian right의 에너지를 한데 모을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언급만 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예컨대 경제학자 데이비드 엘리먼David Ellerman의 이론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연구를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한다.

아나키즘은 국가에 반대한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로커가 말한 대로 "공동체 이익에 부합하는 조직적인 관리"는 지지한다. 나아가 자치공동체와 일터의 폭넓은 연합도 지지한다. 오늘날 현실 세계에서는 이런 목표에 헌신적인 아나키스트들이 정부 권력을 지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집중된 민간자본의 횡포로부터 사람과 사회, 그리고 지구까지도 보호하기 위해서다. 1886년에 피터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 상호부조론을 주창한 러시아의 아나키스트이다-옮긴이)의 추종자들이 사회주의 아나키스트 잡지로 처음 만든 유서 깊은 《자유Freedom》를 예로 들어보자. 책장을 펼치면 많은 사람이 안전 규제와 건강, 환경 보호 같은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이따금 국가 권력에 호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모순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기존 사회라는 현실 세계에서 생활하고, 고통을 겪고, 견뎌낸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자신을 보호하고 이롭게 하는 방법이 있으면 어떤 것이든 활용하려고 해야 한다. 비록 장기적인 목표는 그런 수단을 없애고 더 나은 대안을 세우는 것이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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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이미지를 좀 더 확대해 우리를 가두는 억압적인 국가 제도가 새장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잔인한 짐승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장치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 포식자들은 정부 지원을 받는 자본주의 제도를 가리키며, 원칙적으로 지배자들의 비도덕적인 금언에 충실하고 사적인 이득과 권력, 지배에 전념한다. 공동체 이익과 그 구성원은 부차적인 것이라 말로만 소중히 여길뿐 현실에서는 원칙상은 물론이고 심지어 법적으로도 무시되기 일쑤다. 

아나키스트들이 비난했던 국가가 실제로 존재했던 국가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같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민주주의의 꿈과 비전을 비난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들은 바쿠닌이 '붉은 관료주의'라고 부르며 인류가 창조한 가장 끔찍한 것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그런 규칙에 격렬히 반대한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과 같이 계급 통치의 수단이 된 의회제도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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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아주 치밀하게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인구의 대다수가 사실상 선거권을 박탈당한 상태다. 재산·소득 등급 하위 약 70퍼센트는 정책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그보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영향력은 점차 증가해 마침내 최고 등급에 이르면 정책을 결정하다시피 하는 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의 수단은 분명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도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금권정치다.

이러한 현실 인식이 너무나 깊이 자리 잡은 나머지 사실상 눈에 띄지도 않는다. 어떤 때는 놀랄 정도로 그렇다. 건강보험을 생각해보자. 이것이 수년째 미국인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건강보험 제도가 치욕스럽기 때문이다. 경제협력 기구OECD 회원 국가보다 1인당 비용이 두 배 가까이 높은데도 결과물은 오히려 더 형편없으니 경제적으로 엄청난 낭비다. 게다가 거의 민영화되었으면서도 규제를 받지 않는 유일한 제도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은 교훈적인 면에서 주목을 받는다. 실패한 건강보험에 대한〈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비용 부담이 적은 건강보험을 추구하는 데 근본적인 장애가 있다. 다른 모든 선진국은 직접적인 정부 개입이나 협상, 요율 설정 등에 크게 의존하는데 반해 이 나라에서는 그것이 정치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 기사에 인용된 한 전문가는 건강보험개혁법Affordable Care Act이 복잡해진 이유를 건강보험을 민간 시장에 의존하여 제공해야 하는 미국 내 정치적 수요에서 찾는다. 그에 따른 결과물은 "카프카적인", 부조리하고 암울한 법안이다. 수혜자가 수천만 명인 노인의료보험 제도조차도 약값을 조정하는 협상이 허용되지 않는다." 

'정치적 불가능'이란 문제는 전에도 주목을 받은 바 있다. 2004 년 대통령 선거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존 케리John Kerry 후보가 "진땀을 흘리며… 건강보험 혜택을 확대하려는 그의 계획이 정부 차원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못할 것임을 밝혔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건강보험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정치적 지지를 거의 못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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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입이나 심지어 약값을 정하기 위한 협상조차도 "이 나라에서는 정치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체 왜 "정치적 지지를 거의 못 받는" 것일까? 수년에 걸친 여론조사 결과가 분명히 나타내듯 그 이유가 대중의 의견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대중의 85퍼센트는 '고령자를 위한 약값을 낮추기 위해 연방정부가 제약회사와 협상에 나서는 것을 허용하자'라는 의견을 지지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외면했던 대중의 선택 또한 60퍼센트의 지지를 받는 것이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중의 높은 지지율을 받은 건강보험 제도는 다른 선진국이나 아니면 몇몇 더 가난한 나라와 유사한 형태였다. 그런 제도에 대한 지지율이 얼마나 높았는지 레이건 정권 후반기에는 대중의 70퍼센트 이상이 '건강보험 제도가 헌법에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40퍼센트는 '이미 그렇다'라고 알고 있었다.

여기서 '정치적 지지'가 제약회사와 금융기관의 지지를 뜻한다는 것은 암묵적으로 이해하는 사실이다. 그들의 결정에 따라 '정치적으로 허용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가 정해진다. 요컨대 금권정치가 사실상 불가피한 진실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좀 더 친절하게 말하면, 영국의 법학자 코너 기어티Connor Gearty가 '신민주주의neo-democracy'라고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의 파트너인 신민주주의는 겉으로는 보편적이고 형식적인 권리를 보장하지만 안으로는 소수만이 자유를 누리고, 완전한 의미에서의 안전은 오직 엘리트층에게만 허용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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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듀이의 경우를 살펴보자. 사회적·정치적으로 그의 주된 관심은 민주주의와 교육이었다. 누구도 듀이를 아나키스트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견해를 살펴보자.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에서는 부당하게 강압적인 구조는 붕괴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은행과 토지, 산업을 사적으로 통제하고, 언론과 언론 홍보기관, 그 외 다른 광고 및 선전 수단을 제어하는 능력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사기업"에 의한 지배도 포함된다. 듀이는 민주주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음에도 "오늘날의 권력은 생산과 거래, 광고, 운송, 그리고 소통을 장악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라며 "누구든 그것을 소유하는 자가 국가 전체의 삶을 지배한다"라고 인식했다. 생산과 거래, 광고, 운송, 그리고 소통이 대중의 손에 들어오지 않는 한, 정치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사회에 거대 기업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듀이는 공공 지배 형식을 촉구하는 수준에서 훨씬 나아갔다. 그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사용자가 빌려 쓰는 도구가 아니라 "각자 속한 산업의 운명을 지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국가 권력의 지시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입장은 많은 사람 중에서도 특히 훔볼트와 스미스가 밝히고 아나키스트 전통에서 확대된, 고전적 자유주의의 주요 발상과 일치한다.

교육으로 돌아가서, 듀이는 "자유롭고 현명하게" 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키는 대로 일하기 위해"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은 "반자유주의적이고 비도덕적"이라고 믿었다. 예컨대 아이들이 시험 점수를 받기 위해 공부를 한다면 그것은 "자유롭게 시작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로운 행위가 아니다." 계몽주의 시대 때부터 전해 오는 이미지로 보면, 교육은 그릇에 물을 붓는 일, 더군다나 우리 모두 경험해 보았듯이 깨져서 물이 줄줄 새는 그릇에 물을 붓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훔볼트가 표현한 대로, 줄을 하나 늘어놓고 아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 줄을 따라 나아가도록 하는 일로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고 향상시켜 나가면서 발견의 기쁨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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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은 아주 자연스럽게 노동자의 생산시설 지배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19세기 사상가, 특히 칼 마르크스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존 스튜어트 밀이 상상했던 모습이다. 밀은 "만약에 인류가 발전을 계속한다고 할 때 우세할 것으로 예상되는 연합의 형태는 분명히… 노동자들이 평등한 조건에서 자발적으로 모여 작업에 사용하는 자본을 공동으로 소유하며, 그들이 선출할 수 있고 무효화시킬 수도 있는 관리자의 지휘 아래 일하는 연합 형태일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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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19세기 중반) 산업 노동자들에 대해 최초로 순수학문적으로 연구한 이는 노먼 웨어Norman Ware였다. 90년도 더 된 연구지만 아직까지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아주 크다. 이 책은 예전에 독립적인 수공업자였던 이들과 농민, 그리고 농촌을 떠나 보스턴 인근 직물공장에서 일하던 '여공 factory girls'에게 주어진 끔찍한 사업 환경을 돌아본다. 그러나 노먼 웨어가 주로 관심을 집중하는 부분은 "산업 노동자가 힘들게 겪었던 수모"와 "지위와 독립의" 상실이다. 이런 고통은 물질적인 상황이 개선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급진적 자본주의에 의한 사회 혁명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이 혁명으로 공동체 전체가 갖고 있던 경제적 주권이 특정 계급을 유지하려는 지배자에게 넘어갔다. 그 지배자는 대개 생산과는 거리가 멀고 "생산자와도 이질적인" 집단이다. 노먼 웨어는 "기계 공업에 저항하는 모든 시위에서는 언제나 자본주의적 생산과 규제로 인한 새로운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라고 기록한다.

노동자는 단지 빵과 장미를 얻기 위해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존엄성과 자립, 그리고 자유로운 남성 혹은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다. 그들은 잡지를 통해 "군주제의 원칙들이 민주주의의 토양에 끼친 폭발적인 영향"을 비난했다. 그 영향력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공장의 주인이 되고", 자유로운 생산자가 자주권을 회복해야만 극복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더 이상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이나 낯선 폭군[부재지주]에 예속된 미천한 신분, 엄격하게 말하면… 주인을 위해 힘들게 일하는 노예"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자유로운 미국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되찾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혁명은 가격에서 임금으로의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다. 노먼 웨어는 생산자가 자기 상품을 일정한 가격을 받고 팔 때는 "그의 인격이 유지됐지만, 그가 자신의 노동을 팔기 시작했을 때는 그의 인격도 함께 팔렸다"라고 말한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노예, 흔히 말하는 '임금 노예'가 되었다. 170년 전쯤에 뉴욕의 한 숙련 노동자 집단은 날품팔이가 노예제와 같다는 상식적인 견해를 거듭 밝히며, 임금 노동자들이 "자립심이나 자존감과는 정반대로 어쩔 수 없이 강요된 체제 안에서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이 무엇인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리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날카롭게 경고했다. 물론 그날이 "아득히 멀기"만을 빌면서 한 말이다.

노동 운동가들은 '자기만 생각하고 부자 되기'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런 모욕적인 시대정신에 대한 뚜렷한 반응으로 일어난 노동자와 진보적인 농민의 운동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민주적 대중 운동으로서 연대와 상호부조를 위해 헌신했다. 이 투쟁은 여러 차례 후퇴하고 폭력적인 탄압도 자주 받았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태다.

임금 노예의 급진적 혁명을 지지하는 사람은 노동자가 자유 계약과 자발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체제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영국의 시인 셀리Percy Bysshe Shelley가 이미 200년 전에 〈무질서의 가면극Masque of Anarchy〉이라는 멋진 시로 화답했다. 영국 기병대가 의회 개혁을 요구하는 수만 명의 평화 시위대를 잔인하게 공격한 피털루 대학살 직후에 쓴 시다.

셸리는 우리가 노예 상태가 어떤 것인지 안다며 이렇게 썼다.



당신의 사지로 힘들게 일하고

하루하루 겨우 목숨을 부지할 정도의

임금을 받는 것. 감옥 같은 곳에서

폭군의 지시를 기다리며 사는 것.





영혼까지 노예가 되는 것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제어하지 못하고, 다 되어주는 것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존엄성과 자립심,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했던 장인이나 여공들은 당연히 셸리의 글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훌륭한 도서관이 있었고 수준 있는 영문학 작품도 자주 접했다고 접했다고 기록한다. 기계화가 진행되고 임금 제도가 자립심과 문화를 파괴하기 전까지만 해도 작업장은 라이시움(lyceum,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장소를 일컫는 말이며, 강연이나 공개 토론 등을 통해 교양을 쌓는 문화 단체나 운동을 의미하기도 한다-옮긴이) 같았다고 노먼 웨어는 말한다. 그들의 일터는 읽고 토론하며 서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사회적 작업장"이었다. 여공과 마찬가지로 장인 역시 그들 고유의 문화가 파괴되는 것에 격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영국도 사정은 똑같았다. 당시 노동 계급의 독서 습관을 조사한 조너선 로즈Jonathan Rose 의 기념비적인 연구가 있다. 조너선 로즈는 "독학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치열한 지식 추구"와 "영국 귀족 계층에 만연한 속물근성"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그 잔재가 뉴욕 노동자 사이에 남아 있었던 것을 기억할 만큼 나이가 많다. 그 들은 대공황이 한창이던 시절에도 고급문화에 심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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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서 듀이와 미국 노동자들이 자유의지 요소가 강한 민주주의 형태를 지지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지금껏 우세했던 것은 전혀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다. 그것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표현은 주류 지식인의 스펙트럼에서 가장 진보적인 쪽에 속하는 윌슨-루즈벨트-케네디 시절의 진보적 학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개만 인용하겠다. 대중은 "무식하고 간섭하기 좋아하는 문외한들이라 그들이 하찮은 존재임을 알게 해야 한다." 의사결정은 "소수의 영리하고 책임 있는 사람들이 맡아야 하며 그들은 "우왕좌왕하는 무리가 함부로 짓밟거나 소란을 피우는 것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 무리에게도 한 가지 기능이 있다. 몇 년에 한 번씩 책임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그것을 제외하면 그들의 기능은 "관중으로서 지켜보는 것일 뿐 행동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전부 그들을 위한 일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에게 이로운 일을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독단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절대 그러지 못한다. 책임 있는 우리가 해주어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태도와 의견도 정해주고 제어를 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군대에서 장병들의 신체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 대한 주입식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에 더 나은 학습법을 도입해야 한다. 그것이 실현된다면 전통적인 엘리트들이 "험한 시절"이라고 표현하는, 1960년대와 같은 위험한 시기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민주주의의 절제가 좀 더 이루어지면서 "트루먼 대통령이 비교적 적은 수의 월스트리트 변호사 및 금융인들과 협력하여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던" 그 좋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이런 말은 모두 진보적 지배계층의 우상으로 일컬어지는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 해럴드 라스Harold Lasswell, 새무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과 카터 행정부에 크게 기여한 삼각 위원회 Trilateral Commission(1973년 데이비드 록펠러가 북미와 유럽, 일본의 긴밀한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민간 모임. 삼각위원회의 지시로 카터 행정부가 출범했으며, 삼각위원회의 핵심 멤버였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카터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됐다. 촘스키는 삼각위원회가 민주주의의 절제를 추구하며 사람들이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태도로 돌아가 국가 권력을 제약하지 못하게 만들고자 했다고 비판한다-옮긴이)의 발언을 인용한 깃이다. 

이렇게 왜곡된 민주주의 개념에는 단단한 뿌리가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민주주의가 가진 위험 요소를 많이 우려했다. 제헌회의 당시 헌법의 초안을 만든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은 이런 위험성을 직접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영국을 자신의 본보기로 삼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에 영국에서 모든 계층의 사람에게 선거권을 인정했다면, 오늘날 지주들의 재산이 안전하게 지켜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장 토지분배법이 시행되어" 재산권을 훼손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부당함을 막기 위해 "우리 정부는 영구적인 국익을 혁신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며 투표 양식을 정하고 견 제와 균형을 실천함으로, "소수의 부유층을 다수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올바른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는 것이다.

매디슨이 우려한 대로 민주주의의 위협은 훨씬 커졌다. "삶의 온갖 역경 속에서도 일을 계속하면서, 삶의 영광을 좀 더 평등하게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남몰래 한숨 쉬는 이들"도 증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이즈의 반란(Shays s Rebellion, 1786-178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서 일이난 농민 반란이다-옮긴이)에 영향을 받은 매디슨은 '평등한 참정권'을 인정하면 순식간에 권력이 그들의 손아귀로 넘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아직까지 이 나라에서 토지 분배에 대한 시도는 없었다"며 "그러나 평등을 요구하는 기운이 … 일부 지역에서 미래에 닥칠 위험을 경고할 만큼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이유로 매디슨은 헌법 체계에 관한 주된 권력을 가진 상원위원이 "반드시 부유층으로 구성되어 부유층을 대변해야 하며" "좀 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고 믿었다. 또한 민주적 통치를 제한하는 다른 규정들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디슨의 이런 고민은 지금껏 정부 고위 관리들을 괴롭혀 왔다. 예컨대 1958년에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 국무장관은 당시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직면한 어려움을 고민했다. 그는 현지 공산주의자들이 "대중 운동을 장악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에 우리는 "그렇게 할 역량이 없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했다. 현지 공산주의자들이 유리한 점은 "그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호소하고 있으며 언제나 약탈하고 싶어 한다"라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들을 모아놓고 정부가 "소수의 부유층을 다수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납득시킬 수가 없다. 격식에 맞추어 우리의 생각을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 우리로 하여금 폭력에 의존하게 만든다. 이것은 우리의 고상한 원칙에 반하는 일이라 대단히 유감스럽다.

매디슨은 "우리가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는 체제의 틀을 만드는 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통치자가 소수의 부유층에서 배출되도록 단단히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평등하고 보편적인 참정권으로 인해 부를 소유하지 않은 이들에게 부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하게 되는 위험으로부터 재산의 권리rights of property를 보호"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재산에 '대한' 권리rights to property, 즉 재산 소유자가 갖는 권리라는 의미로 보통 '재산의 권리'라는 어구가 사용되었다. 수년 뒤인 1829년에 매디슨은 "가진 재산이 없거나 그럴 희망도 없는" 이들은 "재산권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없으며 그에 대한 권한을 안전하게 수행할 수도 없다"라고 생각했다. 해결책은 정치 참여를 부유층과 그 대리인들의 손에 효과적으로 맡기고 대중의 참여를 제한함으로써 확실하게 분리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학자들은 "헌법이 본질적으로 당대의 민주주의 경향을 단속하려고 만든 귀족적인 문서였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

부유하거나 가문이 좋거나, 유명한 사람이 아니면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배제하고 "더 나은 유형의" 사람들에게 권력을 넘겨줌으로써 말이다.

매디슨을 두둔하자면, 우리는 그가 "지금은 거의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철저하게 명예를 중시하는 18세기 신사였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가 권력을 장악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깨우친 정치인"과 "자비로운 철학자"였다. "순수하고 고귀"하기까지 하면 더할 나위 없는 이런 "지혜롭고 애국심이 투철하며 재산과 독립적인 환경을 갖춘 사람들"은 "시민의 선택을 받은 집단으로서, 그들의 지혜로 국가의 진정한 이익을 가장 잘 가려내리라"고 믿었다. 또한 "애국심과 정의를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이 일시적이거나 편파적인 이유로 국익을 희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 결과 민주주의가 고집하는 다수의 "해악으로부터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며, 대중의 시각"을 "개선"하고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매디슨이 인식한 민주주의의 문제점은 이미 오래전에 아리스토텔레스도 알고 있었던 내용이다. 정치학 관련 첫 번째 저서인《정치학Politics》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정치 제도를 검토한 뒤에 그중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낫거나 어쩌면 가장 덜 나쁜 제도라고 결론지었다. 문제점도 찾아냈다. 엄청나게 다수인 가난한 사람들이 투표권을 이용해 부유한 이들의 재산을 빼앗는 부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매디슨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똑같은 문제에 부딪쳤지만 정반대 되는 해결책을 선택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흔히 복지국가의 방식이라고 여기는 방법을 동해 불평등을 줄여나갈 것을 권고했다. 반면에 매디슨은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이 나갈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민주주의에 대해 이렇듯 서로 대립되는 생각은 17세기에 영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근대 민주 혁명 때부터 있었다. 당시 왕당파와 의회파 간에 갈등이 심해서 내전이 발생했다. 스스로를 "최고의 품성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칭하는 젠트리 계층은 대중이 왕이나 의회의 통치를 원치 않고 "자기들과 같은 처지로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잘 아는 시골 사람들"의 통치를 원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대중이 제작한 팸플릿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사와 신사들이 우리를 경계할 목적으로 법을 만들어 우리를 억압하기만 할 뿐 사람들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결코 좋은 세상이 될 수 없다." 

지금도 끝나지 않은 갈등의 본질적인 면은 토머스 제퍼슨이 임기 말에 간략하게 아주 잘 표현했다. 그가 민주주의 실험의 가치와 결말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을 때다. 그는 "귀족정치주의자와 민주주의자"의 차이를 구분했다. 귀족정치주의자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불신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모든 권력을 빼앗아 더 높은 계층의 손에 남기고 싶어 한다." 반면에 민주주의자는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신뢰하며 비록 공익을 맡길 만큼 가장 현명하지는 않아도 정직하고 안전하다고 여기며 소중히 대한다."

"무식하고 간섭하기 좋아하는 문외한들"이 정치 영역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민주주의의 맹신"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그들이 하찮은 존재임을 알게" 하려고 애쓰는 근대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제퍼슨이 말한 귀족정치주의자에 속한다. 기본적인 시각 자체에 대해서는 이들 사이에 이견이 별로 없다. 다만 주도적인 역할을 누가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진보적인 '지식 사회'의 '기술 관료와 정책 지향적인 지식인'이 할 것이냐 금융인과 기업 경영인이 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맥락에서 중앙위원회나 헌법수호위원회의 성직자가 할 것이냐 등 의견이 분분하다. 모두 진정한 자유의지 전통을 무너뜨리고 아래로부터 재조직하고자 하는 '정치적 관리감독'의 사례인 것은 똑같다.

또한 진정한 자유의지 전통은 뿌리 깊은 자유의지 전통에 따라 산업 또한 '봉건적 질서'에서 노동자의 관리에 기초한 '민주적 질서'로 바꾸고자 하며, 타인에게 예속된 도구가 아니라 진정한 사람으로서 생산자의 존엄성을 존중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늙은 두더지처럼 땅속을 파헤치면서 적어도 내게는 공공선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결과를 가져오려고 항시 기회를 엿본다(마르크스는 늙은 두더지가 땅 속에서 능숙하게 굴을 파고 다니다가 단숨에 땅 위에 나타나는 것을 혁명에 비유했다-옮긴이). 가끔은 예상치 못한 놀라운 방식으로 그렇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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