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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아나키즘][아나키스트] 빵의 쟁취, 혁명에 필요한 것은 빵이다!

by 노지재배 2018.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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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하는 책은 크로포트킨의 《빵의 쟁취》다.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은 귀족 출신으로 아나키스트 사상의 일가를 이루면서, 아나키스트 운동가들에게 아나키스트 공公이라는 애칭까지 받은  아나키스트 사상가다.

 

 

국내에 번역된 책은 이책 출판사의 《빵의 쟁취》와 같은 제목으로 행성B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이책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크로포트킨 빵의 쟁취

 

 

 

 

 

책은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라는 크로포트킨의 사상을 담으면서도,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혁명의 시작과 성공까지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로 빵 즉, 식량을 들고 있다. 크로포트킨은 1789년, 1848년, 1871년의 프랑스혁명을 포함해 과거의 혁명들을 분석하면서 혁명가들이 바로 이 점을 간과해 혁명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많은 부분을 할애해 혁명 과정에서의 식량 문제와 해결 방법을 다룬다. 이 외에도 주택, 의복, 재원財源 등 혁명과 관련한 중요 사안들을 다루고 있지만 특히, 식량과 관련한 빵의 문제, 농업의 문제는 크로포트킨이 이 책에서 철저하게 천착하는 문제 중 하나다. 그만큼 크로포트킨은 사상과 혁명의 당위성이나 이상, 희망, 중요성을 떠나 빵, 즉 식량 자체라는 현실성을 부르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책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빵이다. 혁명에 필요한 것은 빵이다!" 다른 사람들이 화려한 선언문을 발표하는 데 몰두해도 내버려두어라. 다른 사람들이 어깨를 온통 장식줄로 꾸며도 내버려두어라. 끝으로 다른 사람들이 정치적 자유에 대해 비난해도 내버려두어라! 

우리의 임무는 혁명의 첫날부터 또 혁명이 지속되는 날까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곳에는 빵 없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게끔 하는 것이다. 

 

 

 

물론 《빵의 쟁취》는 책 제목처럼 식량에 대한 중요성에 천착하지만, 당연히 아나키스트 운동가들에게 사랑받는 사상가인 크로포트킨의 저서인 만큼 아름답고 매혹적인 아나키스트 사상도 담아내고 있다. 

 

크로포트킨은 말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부유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유하다."라고. 그러나 다만, "그것들이 모든 사람의 복지를 가져다주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크로포트킨은 강조한다. 

 

 

 

-문명화된 사회에 있는 우리는 부유하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있는 이 빈곤은 무엇 때문인가? 대중을 지치게 만드는 이 고통스러운 노동은 무엇 때문인가? 보수를 가장 많이 받는 노동자에게조차 내일에 대한 이 불안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부의 한가운데 있고 또 하루에 몇 시간만 일해도 모두에게 안락함을 주는 강력한 생산수단을 가졌는데도 말이다. (...) 생산에 필요한 모든 것, 즉 땅, 광산, 기계, 통신수단, 식량, 주택, 교육 지식 이 모든 것이 약탈, 집단이주, 전쟁, 무지와 억압의 긴 역사과정에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독점되었기 때문이다.

 

 

 

 

크로포트킨은 우리가 가난한 이유가 바로 소수의 사람들이 "과거에 얻은 소위 권리를 내세워(...) 오늘날 인간 노동의 산물 중 ⅔를 가로챈 다음 그것들을 분별없이 아주 지나치게 낭비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대중에게는 한 달이나 일주일 동안 먹고살기에도 부족한 상태에 있게 하고는, 그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장 많은 몫을 차지하는 것에 동의하는 자에게만 일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우리는 가난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러한 권리가 없다고 크로포트킨은 강조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철도와 수로로 연결되는 도시들은 수 세기를 살아온 유기체이다. 그 땅을 파면 당신은 거리, 집, 극장, 투기장, 공공건물 등이 포개져 있는 지층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지금도 집, 공장, 작업장, 창고, 그 하나하나의 가치는 땅 속에 묻힌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의 축적된 노동으로 이루어진 것일 뿐이다. 그 가치는 지금 그 특정한 지점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크로포트킨은 그런 점에서 "어떤 사상이나 발명도 과거와 현재에서 태어난 공유재산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그는 "과학과 공업, 지식과 응용, 발견과 새로운 발견으로 이끄는 실제적인 실행, 두뇌 노동과 육체노동, 사고와 육체 작업, 이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된다. 모든 발견, 모든 진보, 인류의 부의 모든 증가는 과거와 현재의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전체에서 기인한다."라면서 "그렇다면 어느 누구라도 무슨 권리로 이 엄청난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을 가로채고는 이것은 내 것이지 당신의 것이 아니리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부르짖는다. 

 

 

결국, 크로포트킨의 말처럼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이 매혹적인 사상가는 "19세기가 만들어낸 엄청난 도구가 있다. 우리가 기계라고 부르는 철로 된 수백만 명의 노예들이 있다. 이것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대패질하고, 톱으로 자르고, 베를 짜고, 실을 뽑는다. 이것들은 원료를 분해하고 재구성해 우리 시대의 놀라운 물건들을 만든다."라고 말한다. 그는 "누구도 이 기계들 중의 단 한 개라도 잡고 "이것은 내 것이다. 그것을 사용하려면 당신은 당신이 생산한 것 하나하나에 대한 세금을 나에게 지불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마치 중세시대의 영주가 농민에게 "이 언덕, 이 목초지는 내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수확하는 밀 다발, 쌓아 올리는 건초더미 하나하나에 대한 세금을 나에게 지불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크로포트킨은 역설한다.

 

 

다시 한번 크로포트킨은 외친다.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왜곡된 임금제도와 노예제도는 결국 같은 악습과 폐단일 뿐이라는 게 이 사상가의 외침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할 권리는 기껏해야 산업 징역un bagne industriel이다.

 

(...)

 

"일할 권리" 또는 "각자에게 그의 노동의 산물 전체를"과 같은 애매한 문구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선언하는 것은 복지를 누릴 권리이다. 즉 모두를 위한 복지이다.

 

 

 

책에서는 이 외에도 사회주의나 집산주의, 공산주의와도 결을 달리하는 크로포트킨의 고유한 아나키즘이 펼쳐진다. 이런 부분에서는 공유재산과 공유생산을 위한 도구나 주택, 의복, 식량 등의 수용 과정에서, 또는 혁명의 주체나 관리 지위를 놓고 달라지는 다른 사상과 크로포트킨의 사상과의 차이점 등도 다룬다.

 

크로포트킨은 혁명이 권력의 쟁취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곧, 혁명은 지도자를 바꾸는 정치혁명이 아니라 소유와 지배의 체제 자체를 바꾸는 사회혁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크로포트킨은 러시아혁명의 진행 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과정과 결과가 결국 "개인들의 자유로운 결속과 단체들의 자유로운 연합 속에서 새로운 조직을 찾아내는 아나키즘적 혁명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다만, 크로포트킨의 사상 역시 우리가 흔히 사회주의나 아나키즘을 놓고 비판하는 것 중 하나인 인간에 대한 순진한 믿음, 자유롭고 공정한 인간 사회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 등을 완벽하게 피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아나키즘 사상 자체가 어떤 구심점이나 주체로서의 국가나 조직, 단체 등을 거부하는 사상이니만큼 자유로운 인민의 이름과 인민의 행동으로 모든 것이 모두를 위한 복지에 쓰이기 위해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은 사실 공격받기 쉬운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의 매혹적인 사상이 결국 아름답고 목가적인 서정시에 불과한 백일몽과 같다는 흔하디 흔한 반동적 비난을 불러오는 경우들이 이와 같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 책의 역자가 쓴 다음 부분이 좋은 답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에 대해 그것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하나의 이상에 불과하다고 말할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영국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다음과 같은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먼저 이상理想은 당장에는 실행 가능성이 없더라도 올바르게 안내하는 데에는 언제나 필요하다. 시대상황이 필요로 하는(또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타협 속에 더 좋은 사회조직과 더 나쁜 사회조직에 대한 올바른 관념이 없다면, 그리고 순간의 요구를 넘어선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곧바로 가장 좋은 것을 으레 궁극적으로 가장 좋은 것과 동일시한다면, 진정한 진보는 있을 수 없다. 목적지가 아무리 멀어도, 종종 방해하는 장애물이 나타나 그 목적지를 향한 항로에서 우리를 이탈시키더라도, 그것이 어디쯤 있는지는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개인 대 국가》), 이책 242쪽).

 

 

 

 

 

■저자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과학자, 사회사상가이며 지리학자. 러시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시베리아에서 육군 장교로 근무하는 동안 지리학적 탐사활동을 하면서 중요한 연구들을 발표했다. 지리학, 동물학, 사회학, 역사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지만 세속적인 출세의 길을 버리고 혁명가의 길을 선택했으며, 귀족 세습권도 포기하고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해 일생을 헌신했다. 서유럽에서 30여 년간에 걸친 망명 생활 동안 아나키즘 운동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고 중국과 우리나라 등 아시아 아나키스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정부나 국가 없이 수평적으로 상호 협동하는 아나키즘적 코뮌주의 이론을 과학적 기반 위에 정립하려고 힘썼다.

지은 책으로는 《상호부조론》, 《빵의 쟁취》, 《논밭, 공장, 작업장》, 《어느 혁명가의 회고록》, 《청년에게 고함》 등이 있다.

 

 

 

■역자

 

이상률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니스 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주요 번역서로 가브리엘 타르드의 《여론과 군중》, 《모나돌로지와 사회학》, 《사회법칙》, 《모방의 법칙》, 프로이트의 《집단심리학과 자아분석》,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 막스 베버의 《유교와 도교》, 《직업으로서의 학문》, 칼 뢰비트의 《베버와 마르크스》, 로제 카이와의 《놀이와 인간》, 피터 버거의 《사회학에의 초대》,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 허버트 스펜서의 《개인 대 국가》 등이 있으며, 편역서로 《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가 있다.

 

 

 

■목차

 

머리말 • 004

01 우리의 부富 • 015

02 모두를 위한 복지 • 031

03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047

04 수용 • 063

05 식량 • 081

06 주택 • 117

07 의복 • 131

08 재원財源 • 137

09 사치 욕구 • 148

10 즐거운 노동 • 171

11 자유로운 합의 • 185

12 반대론 • 207

13 집산주의적 임금제도 • 233

14 소비와 생산 • 255

15 분업 • 266

16 공업의 분산 • 273

17 농업 •288

해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 322

옮긴이의 말 • 332

 

 

 

 

 

■책 속으로

 

"

 

01

 

우리의 부富

 

I

 

인류는 옛날부터 아주 먼 길을 왔다. 인간은 부싯돌로 초보적인 도구를 만들었으며, 사냥으로 얻은 노획물을 먹고살았다. 그리고 자식들에게는 바위 길의 움집과 돌로 만든 변변치 못한 도구만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그리고 인간은 초라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광대하고 무서운 미지의 자연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지만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 이 불안한 세월 동안 인류는 여태 들어본 적이 없는 보물들을 쌓아왔다. 토지를 개간했고 늪을 마른땅으로 만들었으며, 숲을 뚫어 길을 냈다. 인류는 건설하고 발명하고 관찰하고 추리하였다. 인류는 복잡한 기구를 만들어 자연으로부터 그 비밀을 캐냈으며 마침내는 증기기관을 사용하였다. 그 결과 문명인의 자녀는 오늘날 태어나면서부터 조상들이 축적한 거대한 자본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자본 덕분에 자신의 노동을 다른 사람들의 노동과 결합하면, 이제는 천일야화千一夜話에 나오는 동방인의 꿈도 능가하는 부를 얻을 수 있다.

땅의 일부를 개간해 좋은 종자를 심고 잘 경작하면 풍부한 수확을 얻을 수 있다. 인류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말이다. 경작방법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초원의 처녀지에서는 백 명이 강력한 기계의 도움을 받아 몇 개월 안에 만 명을 일 년 동안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밀을 생산한다. 그리고 소득을 두 배, 세 배, 백 배로 늘리고 싶은 곳에서는 땅을 기름지게 만들고 작물을 적절히 가꿔 엄청난 수확을 거둬들인다. 그리고 예전에는 사냥꾼이 가족의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백 평방 킬로미터의 땅을 돌아다녀야 했지만 문명인은 그 면적의 만 분의 일인 땅에서 수고는 훨씬 덜 하면서도 더 많은 확실성을 갖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키운다. 

기후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햇빛이 부족하면 인공열로 그것을 보충한다. 성장을 북돋우기 위해 빛도 만들어낼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유리와 온수파이프를 이용해 주어진 공간에서 전에 수확한 것보다 열 배나 많은 양을 수확한다.

공업에서 이루어진 성과는 더 놀랍다. 백 명이 현대의 기계-이것은 서너 세대에 걸친 발명가들의 산물로, 그들 대부분은 알려져 있지 않다-라는 이 똑똑한 존재를 사용해 만 명이 2년 동안 입을 옷을 만들어낸다. 잘 관리되는 탄광에서는 백 명의 광부가 해마다. 혹독한 추위 속에 있는 1만 가정을 따뜻하게 해주는 석탄을 캔다. 

 

(...)

 

그리고 공업과 농업에서는 우리의 사회조직 전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의 수고가 특히 매우 소수에게만 이익을 준다 하더라도, 확실한 것은 인류가 이미 소유한 강철과 철로 된 제품들로 부유하고 아주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이지 우리는 부유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유하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부유하다. 우리가 현재의 도구로 생산할 수 있는 것에서 보면 더 부유하다. 우리가 우리의 땅,우리의 공장, 우리의 과학, 우리의 기술지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에서 보면 훨씬 더 부유하다. 그것들이 모든 사람의 복지를 가져다주는 데 사용된다면 말이다.

 

(...)

 

II

 

문명화된 사회에 있는 우리는 부유하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있는 이 빈곤은 무엇 때문인가? 대중을 지치게 만드는 이 고통스러운 노동은 무엇 때문인가? 보수를 가장 많이 받는 노동자에게조차 내일에 대한 이 불안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부의 한가운데 있고 또 하루에 몇 시간만 일해도 모두에게 안락함을 주는 강력한 생산수단을 가졌는데도 말이다. 

사회주의자들은 그 이유를 말하였으며, 또 그것을 지겹도록 되풀이하였다. 매일 그들은 그것을 반복한다. 그리고 모든 과학에서 빌려온 주장을 통해 그것을 증명한다. 생산에 필요한 모든 것, 즉 땅, 광산, 기계, 통신수단, 식량, 주택, 교육 지식 이 모든 것이 약탈, 집단이주, 전쟁, 무지와 억압의 긴 역사과정에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독점되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자연의 힘을 정복하기 전에 이 긴 역사과정을 겪었다. 

과거에 얻은 소위 권리를 내세워 그 소수의 사람들이 오늘날 인간 노동의 산물 중 ⅔를 가로챈 다음 그것들을 분별없이 아주 지나치게 낭비하기 때문이다. 대중에게는 한 달이나 일주일 동안 먹고 살기에도 부족한 상태에 있게 하고는, 그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장 많은 몫을 차지하는 것에 동의하는 자에게만 일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 소수의 사람들이 그에게 필요한 것을 생산하지 못하게 하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독점자에게 가장 큰 이익을 약속하는 것을 생산하도록 그에게 강제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실제로 한 문명국의 예를 들어보자. 한때 그 나라를 뒤덮었던 삼림이 채벌되었고, 늪은 배수되었으며, 기후는 개선되었다. 그 나라는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되었다. 옛날에는 잡초만이 무성했던 땅이 오늘날에는 풍부한 수확을 제공하고 있다. 남부의 산골짜기 경사진 암반지대는 계단식으로 정비되어 금빛 열매의 포도나무들이 자라 고 있다. 옛날에는 떫은 열매나 먹을 수 없는 뿌리만을 준 야생식물들이 연속적인 재배를 통해 맛 좋은 채소로 변하거나 맛있는 열매들이 달린 나무로 변했다. 수많은 포장도로와 철도가 곳곳을 가로지르고 산을 관통한다. 기관차 소리가 알프스, 코카서스, 히말라야의 험한 골짜기에서 들려온다. 강들은 배가 다닐 수 있게 만들어졌다. 해안은 그 수심을 꼼꼼히 조사했기 때문에 접근하기 쉬워졌다. 바다의 거센 풍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힘들여 파낸 인공 항구는 배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한다. 바위에는 구멍을 깊이 뚫었다. 석탄이나 광물을 파낼 수 있는 곳에는 지하굴이 미로처럼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도로들이 교차하는 모든 지점에서는 도시들이 솟아나고 확장되었다. 그 구역에는 공업, 예술, 과학의 모든 보물이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세대들이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고, 그 주인들로부터 억압받고 학대받았으며, 고된 일로 완전히 지쳐버렸는데 그들은 이 거대한 유산을 19세기에게 전해주었다. 

수천 년 동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삼림을 벌채하고 늪을 마른땅으로 만들어 길을 내고, 강에 둑을 쌓기 위해 일하였다. 유럽에서 우리가 경작하는 땅의 헥타르 하나하나는 여러 인종이 땀을 흘리며 간 것이었다. 길 하나하나는 부역, 초인적인 노동, 인민의 고통의 역사를 갖고 있다. 1리외lieue[약 4km]의 철도마다, 1미터의 터널마다 인 간의 피가 서려있었다. 

광산 갱도의 바위에는 광부들의 곡괭이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갱도에 있는 받침 기둥 하나하나 사이의 공간은 갱내의 가스 폭발 붕괴나 홍수로 인해 한창 일할 나이에 목숨을 잃은 광부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잔해더미 밑에 깔린 사람의 보잘것없는 임금으로 먹고 산 가족에게는 그 무덤 하나하나가 많은 눈물, 큰 상실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철도와 수로로 연결되는 도시들은 수 세기를 살아온 유기체이다. 그 땅을 파면 당신은 거리, 집, 극장, 투기장, 공공건물 등이 포개져 있는 지층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의 역사를 뒤지면 그 도시의 문명, 산업 특징이 그 모든 주민들의 협력을 통해 서서히 성장하고 성숙해졌으며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집, 공장, 작업장, 창고, 그 하나하나의 가치는 땅 속에 묻힌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의 축적된 노동으로 이루어진 것일 뿐이다. 그 가치는 지금 그 특정한 지점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우리가 국부國富라고 부르는 것의 원자 하나하나는 그 거대한 전체의 일부라는 사실에 의해서만 그 가치를 얻는다. 런던의 독dock이나 파리의 백화점이 만일 국제교역의 이 큰 중심지들에 위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일 바다나 육지로 매일 운송되는 산더미 같은 상품들이 없다면, 우리의 광산, 우리의 공장, 우리의 작업장, 우리의 철도는 어떻게 되겠는가? 

수백만 명의 인간이 오늘날 우리가 자랑하는 이 문명을 창조하기 위해 일해 왔다. 지구의 모든 곳에 퍼져 있는 다른 수백만 명의 인간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일한다. 그들이 없다면、50년 후에는 잔해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상이나 발명도 과거와 현재에서 태어난 공유재산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간에 가난하게 살다가 죽은 수많은 발명가들은 사람들이 그 탁월함을 찬양하는 기계의 부분 하나하나를 발명하였다. 수많은 저술가들, 시인들, 학자들은 지식을 다듬고, 오류를 없애고, 과학적 사고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일하였다. 이 분위기가 없었다면 금세기의 놀라운 일들이 결코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수많은 철학자들, 시인들, 학자들, 발명가들 역시 지난 수 세기의 노동에 자극받지 않았는가? 그들은 살았을 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갖가지 종류의 수많은 노동자와 수공업자로부터 식량과 도움을 제공받지 않았는가?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에서 추진력을 얻지 않았는가?

 

(...)

 

모든 기계는 똑같은 역사를 갖고 있다. 즉 그 역사는 뜬눈으로 지새운 밤들과 가난, 실망과 기쁨, 알려지지 않은 노동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발견한 부분적인 개선의 긴 역사이다. 그 노동자들은 보잘것없는 사소한 것들을 처음의 발명에 덧붙였다.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결실을 맺지 못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든 새로운 발명은 종합이다. 즉 기계공학과 공업의 방대한 영역에서 이전의 수많은 발명들의 결과이다.

과학과 공업, 지식과 응용, 발견과 새로운 발견으로 이끄는 실제적인 실행, 두뇌 노동과 육체노동, 사고와 육체 작업, 이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된다. 모든 발견, 모든 진보, 인류의 부의 모든 증가는 과거와 현재의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전체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어느 누구라도 무슨 권리로 이 엄청난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을 가로채고는 이것은 내 것이지 당신의 것이 아니리고 말할 수 있겠는가? 

 

III

 

그렇지만 인류가 긴 세월을 지나는 동안 인간에게 생산할 수 있게 해 주고 또 그의 생산력을 증가시켜 주는 모든 것을 소수의 사람들이 독차지하게 되었다. (...) 

토지의 가치는 실제로 계속 증가하는 인구의 욕구에서 나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토지는 소수의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그 땅을 경작하지 못하게 막거나 못하게 할 수 있다. 또는 현대의 요구에 따라 경작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광산은 여러 세대의 노동을 나타낸다. 광산의 가치는 공업과 인구밀도라는 수요에서만 나오는데, 광산은 아직도 소수의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소수의 사람들은 그들의 자본에 더 유리한 투자처를 찾아낸다면, 석탄의 채굴을 제한하거나 완전히 금지한다. 기계 역시 아직은 소수만의 재산이다. 따라서 어떤 기계는 분명히 처음의 엔진에 세 세대의 노동자들이 가한 개선을 나타내지만 그럼에도 그 기계는 몇몇 고용주들의 것이다. 그리고 100년 전에 레이스 제조기를 만든 발명가의 손자들이 오늘날 바젤Bale이나 노팅엄Nottingham에 있는 공장에 나타나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들은 이런 말을 들을 것이다: "돌아가시오! 이 기계는 당신들의 것이 아니오." 만일 그들이 그 기계를 소유하려고 한다면, 그들은 총에 맞아 죽을 것이다. 

철도는 유럽의 조밀한 인구, 공업, 상업 및 교역이 없다면 쓸모없는 고철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는 아마도 중세의 왕보다 더 많은 수입을 가져다주는 노선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소수의 주주들의 것이다. 그런데 철로를 놓기 위해 긴 구덩이와 터널을 팔 때 수없이 죽은 사람들의 자식들이 어느 날 굶주리고 누더기를 걸친 모습으로 모여 주주들에게 빵을 요구한다면, 그들은 해산시키고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총검 세례를 받을 것이다. 

이 괴상한 제도 때문에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은 자신이 생산하는 것의 대부분을 주인에게 넘겨주지 않는다면 그가 경작할 수 있는 어떤 밭도, 그가 다룰 수 있는 어떤 기계도, 그가 파낼 어떤 탄광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는 보잘것없고 얼마만큼이 될지도 모르는 식량을 위해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발에서 물을 빼 공장을 세우고 기계를 향상시키기 위해 일하였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일하였다. 누가 이보다 더 많이 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후손은 가장 미개한 야만인보다 더 가난하게 태어났다. 만일 그가 밭을 경작할 수 있는 허가를 얻는다면, 이는 생산물의 ¼은 그 주인에게 바치고도 ¼은 정부와 중간상인들에게 넘겨준다는 조건에서다. 그리고 이 세금은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경작방법을 개선할 힘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가 공업 쪽으로 진출한다면, 생산물의 ⅓이나 절반만 받고 나머지는 법률이 기계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는 조건에서만 그에게 일하는 것이 허용될 것이다(그렇지만 이것조차 항상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농민이 수확량의 ¼을 바치지 않는 한 한 치의 땅도 경작하지 못하게 한 봉건 제후를 비난한다. 우리는 이때를 야만적인 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형태는 바뀌었지만 관계는 여전히 똑같다. 그리고 노동자는 자유계약이라는 이름 아래 봉건적인 의무를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어디에서도 그는 더 나은 조건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주인의 재산이 되었기 때문에, 그는 굴복하거나 아니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사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생산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기업은 사회의 필요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기업의 단 하나의 목적은 기업가의 이익을 늘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끊임없는 산업 변동, 만성적인 상태의 위기가 생겨난다. 위기가 일어날 때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쫓겨난다. 노동자들은 자신들 이 생산한 재물을 살 수 없기 때문에, 기업은 밖에서 즉 다른 나라의 재산가들에게서 시장을 찾는다. 동양에서든 아프리카에서든, 이집트, 통킹Tonkin, 콩고 어디에서든 유럽인은 이런 처지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농노 수를 늘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그는 경쟁자를 만난다. 모든 나라가 똑같은 방향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우선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영구적인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동양에서는 영토전쟁; 바다의 지배권을 위한 전쟁; 수입세를 부과하고 이웃국가들에게 여러 가지 조건을 강요하기 위한 전쟁; 반란을 일으키는 자들을 굴복시키기 위한 전쟁! 대포 소리가 유럽에서 끊이지 않는다. 여러 세대가 모두 학살되었으며 유럽의 나라들은 예산의 ⅓은 군비에 쓴다. 우리는 세금이 얼마나 되는지 또 세금이 가난한 사람들을 얼마나 압박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교육은 여전히 아주 소수의 특권이다. 노동자의 자녀는 열세 살이 되면 탄광으로 내려가든가 아니면 농장에서 아버지를 도와주지 않을 수 없는 마당에, 정말이지 교육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하루 종일 어쩔 수 없는 노동에 지치고 거의 언제나 녹초가 되어 저녁때 돌아오는 노동자에게 공부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사회는 적대적인 두 개의 진영으로 분리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자유는 공허한 말이 된다. 급진주의자는 정치적 자유의 더 많은 확대를 요구하면서도, 자유의 숨결이 빠르게 프롤레타리아의 봉기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는 곧 깨닫는다. 그러면 등을 돌리고 의견을 바꾼다. 그는 특별법과 무력통치로 돌아간다. 

법원, 판사, 형리, 헌병, 간수 등의 거대한 집단이 특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집단 자체가 밀고, 사기, 협박, 부패의 체제의 기원이 된다. 

게다가 이 체제는 사교적인[사람을 사귀기 쉬운] 감정의 발달을 막는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올바름이 없다면, 자존심이 없다면, 동정심이 없다면 또 상호부조가 없다면 인류는 멸망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강탈과 노예 사역使役으로 먹고사는 몇몇 동물종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배계급이 바라던 바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 반대를 증명하기 위해 완전히 거짓된 과학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들과 나누어가질 필요성에 대해서 멋진 말을 하였다. 그러나 이 원리를 실천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그 위대한 감정들이 시집詩集에서는 훌륭하지만 삶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았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자신을 비천하게 만드는 것이며, 자신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다"라고 우리는 말한다. 그런데 모든 문명생활은 거대한 기관이 되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아이들을 두 얼굴의 도덕을 가지고(즉 위선적으로) 사는 데 익숙해지게 한다. 그리고 두뇌는 거짓말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두뇌를 궤변에 익숙하게 만든다. 위선과 궤변이 문명인의 두 번째 본성이 된다. 

그러나 사회는 그렇게 해서는 살 수 없다. 사회는 진실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독점이라는 단순한 사실의 결과가 사회생활 전체에 퍼진다. 멸망하지 않으려면, 인간사회는 근본적인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 생산수단은 인류의 공동 산물이기 때문에, 그것은 인류의 공동재산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개인적으로 독차지하는 것은 올바르지도 않고 유익하지도 않다.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그들의 힘의 정도에 따라 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의 부 생산에서 각자의 몫을 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19세기가 만들어낸 엄청난 도구가 있다. 우리가 기계라고 부르는 철로 된 수백만 명의 노예들이 있다. 이것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대패질하고, 톱으로 자르고, 베를 짜고, 실을 뽑는다. 이것들은 원료를 분해하고 재구성해 우리 시대의 놀라운 물건들을 만든다. 누구도 이 기계들 중의 단 한 개라도 잡고 "이것은 내 것이다. 그것을 사용하려면 당신은 당신이 생산한 것 하나하나에 대한 세금을 나에게 지불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 이것은 중세시대의 영주가 농민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권리가 없는 것과 같다. "이 언덕, 이 목초지는 내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수확하는 밀 다발, 쌓아 올리는 건초더미 하나하나에 대한 세금을 나에게 지불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노동의 몫을 제공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모든 사람에 의해 생산되는 모든 것에 대해서 그들의 몫에 대한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몫은 그들에게 그 정도로도 복지를 줄 것이다! 

"일할 권리" 또는 "각자에게 그의 노동의 산물 전체를"과 같은 애매한 문구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선언하는 것은 복지를 누릴 권리이다. 즉 모두를 위한 복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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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모두를 위한 복지

 

I

 

모두를 위한 복지는 꿈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우리의 노동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한 것 덕분에 모두를 위한 복지는 가능하고 실현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실제로 문명국에서는 생산자들이 인구의 ⅓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그들은 각 가정에 어느 정도의 안락함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생산한다. 게다가 오늘날 다른 사람의 노동 산물을 낭비하는 모든 사람이 그들의 여가를 유용한 일에 쓰게 되면, 우리의 부가 생산자 수에 비례해서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르주아경제학의 거물 맬더스Thomas Malthus의 이론과는 반대로 인류의 생산력이 인구증가보다 더 빠르게 늘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들이 한 영토에 밀집해 살수록 그들의 생산력의 진보는 더욱더 빨라진다.  

실제로 영국의 인구가 1844년부터 [1890년까지] 62%밖에 증가하지 못했지만, 그 생산력은 최소한 두 배 즉 130%가 늘어났다. 프랑스에서는 인구가 느리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의 증가는 매우 빠르다. 농업이 공황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역의무, 은행, 금융 및 공업에 대한 국가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지난 80년 동안 밀의 생산은 네 배가 늘었고 공업생산은 열 배 이상 늘어났다. 미국에서는 진보가 더욱 인상적이다. 이민자들이 밀려들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바로 이 유럽의 잉여 노동자들 때문에 미국의 생산이 열 배나 늘어났다. 

그러나 이 숫자들은 우리의 생산이 더 나은 조건에서 어떻게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매우 희미한 관념밖에 주지 못한다. 오늘날 생산 능력이 발전함에 따라 놀고먹는 사람들과 중간상인들의 수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 사회주의자들이 말한 것, 즉 자본이 곧 극소수의 수중에 집중될 것이므로 소수 대부호의 재산을 몰수해 공동의 부로 소유해야 한다는 것과는 반대로 다른 사람의 노동에 기대어 먹고사는 사람들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30명의 인구 중에서 직접 생산자는 10명이 안 된다. 프랑스의 농업자원 진체는 700만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의 산물이며, 두 개의 큰 산업 즉 광업과 방직물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도 250만 명이 안 된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들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 영국(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제외)에서는 103만 명의 노동자들(성인 남자와 여자 아이들)이 모든 천을 만들고 있다.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은 50만 명이 조금 넘으며,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은 50만 명도 안 된다. 통계학자들은 2600만 명 인구에 대해서 생산자가 최대 800만 명이라는 것을 확증하기 위해 숫자를 과장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실제로 영국에서 세계 구석구석에 보내는 재물들의 생산자는 기껏해야 600만 명에서 700만 명의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금리 생활자나 중간상인은 얼마나 되는가? 중간상인은 생산자에게 지불하는 것보다 5배에서 20배를 소비자로 하여금 지불하게 함으로써 폭리를 취하고 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생산을 제한함으로써 계속 생산량을 줄인다. 굴을 부자들만 먹고 평민은 먹지 못하게 하려고 굴통을 바다에 던져버린다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자. 수많은 사치품들-옷감, 음식물 등-이 굴과 똑같은 방법으로 취급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말자.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들의 생산을 제한하는 방식만 상기해보자. 다수의 광부들은 매일 석탄을 캐내 그것을 추위에 떠는 사람들에게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 중의 ⅓또는 ⅔가 주일에 3일 이상 일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자주 있다. 석탄 값을 비싸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직조공들이 방적기에서 일할 수 없다. 그들의 아내들과 아이들은 누더기를 걸치고 있고, 유럽 인구의 ¾은 옷다운 옷이 없는데 말이다. 수백 개의 제철소, 수천 개의 공장이 계속 조업정지 중이다. 그 밖의 공장들은 조업시간의 절반밖에 일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모든 문명국에는 일자리를 요구하지만 거절당하는 약 200만 명의 인구가 항상 있다. 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황무지나 잘 경작되지 못한 땅을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는 밭으로 바꾼다면 행복해할 것이다. 1년간 머리를 쓰며 노동하면, 지금은 헥타르당 8헥토리터의 밀밖에 주지 못하는 땅의 생산량을 다섯 배로 충분히 늘릴 것이다. 그러나 이 대담한 개척자들은 실업상태에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땅, 광산, 공장의 소유자들은 그들의 자본(이들의 자본은 지역사회에서 빼앗은 것이다)을 터키나 이집트의 공채에 투자하거나 아니면 파타고니아Patagonie의 많은 금광에 투자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 소유자들은 이집트의 농부들, 조국에서 쫓겨난 이탈리아인들, 중국의 쿨리들coules로 하여금 자신들을 위해 일하게 한다!

이것은 생산을 의식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간접적이며 무의식적인 제한도 있다. 이 제한은 전혀 쓸모없는 물건이나 오지 부자들의 터무니없는 허영심을 만족시켜 주는 물건을 만드는 데에만 인간의 노동을 사용하는 것이다. 생산하는 데 쓰일 수 있는 힘, 특히 이 생산에 필요한 도구를 준비하는 데 쓰일 수 있는 힘을 낭비함으로써, 생산성이 간접적으로 얼마나 줄어드는지는 수치상으로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군비, 즉 이웃국가들에는 경제법칙을 강요하고 국내적으로는 착취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시장을 쟁취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는 군비에 유럽이 쏟아붓는 수십억 프랑의 금액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갖가지 종류의 관리들에게는 매년 수백만 프랑을 지불하는데, 이들의 임무는  소수의 권리를 유지하고 국가의 경제생활을 다스리는 것이다. 판사, 감옥, 경찰, 소위 사법기관을 위해 수백만 프랑을 쓰고 있다. 하지만 대도시의 빈곤을 조금이라도 감소시키면 범죄가 상당히 줄어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언론매체가 해로운 사상이나 거짓된 뉴스를 퍼뜨리는 데 수백만 프랑을 쓰고 있다. 그 해로운 사상이나 거짓된 뉴스는 이런저런 정당, 이런저런 정치인 또는 이런저런 착취자들의 회사에서나 이익이 될 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노동을 순전히 낭비에 불과한 것에 쓰기 때문이다. 즉 여기에서는 부자의 마구간, 개집, 하인들을 유지하기 위해, 저기서는 사교계의 변덕과 아주 퇴폐적인 사치에 응답하기 위해 말이다. 게다가 소비자에게 그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사게 하거나, 선전을 통해 나쁜 품질의 물건을 사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주 해롭지만 기업가에게는 이익이 되는 식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러한 식으로 낭비되는 노동은 유용한 생산을 두 배로 늘리는 데 충분하거나 아니면 작업장이나 공장의 도구들을 만들어내는 데 충분할 것이다. 그러면 곧 국민의 ⅔가 간절히 바라는 필수품으로 상점들을 가득 채울 것이다. 결국 [현재의 제도에서는] 각 나라에서 생산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½은 어김없이 매년 서너 달은 실직상태에 있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절반은 아닐지라도 ¼의 노동은 부자들의 향락이나 대중의 착취 이외에는 다른 결과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한편으로는 문명국들이 그들의 생산력을 늘리는 속도를 고려하고, 또 한편으로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현재의 조건에 의해 그 생산에 가해진 제약을 고려한다면, 다음과 같이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 즉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경제조직이라면 문명국가들로 하여금 이렇게 소리칠 정도로 많은 유용한 생산물들을  몇 년 안에 쌓게 할 것이라고 말이다: "충분하다. 석탄도 빵도 옷도 충분하다. 쉬면서 우리의 힘을 더 잘 사용하는 법과 우리의 여가를 더 짤 쓸 수 있는 법을 생각합시다."

아니다. 모두를 위한 복지는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인간이 엄청나게 고생해야 1헥타르에서 8헥토리터나 10헥토리터를 수확하는 데 성공하거나 농업과 공업에 필요한 기계 도구를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데 성공할 때에는 모두를 위한 복지가 꿈일 수 있었다. 지금은 그것이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인간이 모터를 발명한 후로는 말이다. 모터는 약간의 철과 몇 킬로그램의 석탄만 있어도 인간에게 아주 복잡한 기계를 움직일 수 있는 유순하고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말의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지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이 거대한 자본-도시, 집, 경작지, 공장, 교통도로, 교육-이 더 이상 독점자가 마음대로 쓰는 사유재산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조상들이 힘들여 얻었고 건설했고 만들었으며 또 발명해낸 이 훌륭한 생산도구는 공동재산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단체정신이 그것으로부터 모두를 위한 가장 큰 이익을 이끌어낸다 수용이 필요하다. 모두를 위한 복지는 목적이고, 수용은 수단이다.

 

(...)

 

 

II

 

(...)사람들의 정신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진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 진화는 소수 말하자면 유산계급에 의해 억압되었기 때문에 구체화될 수 없었다. 따라서 그 진화는 힘으로 장애물들을 부수고 혁명을 통해 강력하게 실현되어야 한다.

혁명은 어디에서 올 것인가? 혁명의 도래는 어떻게 알리는가? 누구도 이 문제에 대답할 수 없다.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관찰하며 심사숙고하는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자들과 착취자들도, 혁명가들과 보수주의자들도, 사상가들과 실천가들도 모두 혁명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혁명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모두는 혁명의 드라마틱한 측면을 많이 연구하였다. 그러나 그 진실로 혁명적인 작업은 거의 연구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 중의 많은 이 들은 이 위대한 운동에서 단지 그 연출, 초기의 투쟁, 바리케이드만을 본다. 그러나 이 투쟁, 그 초기의 교전은 곧 끝난다. 혁명의 실제 작업이 시작되는 것은 오로지 옛 정부들이 패배한 다음이다. 무능하고 무기력하며 사방에서 공격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곧 반란의 숨결에 의해 쓰러졌다. 1848년의 부르주아 군주제는 며칠 만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마차가 루이 필리프Louis Philippe를 프랑스 밖으로 데리고 갔을 때, 파리는 이미 전왕前王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1871년 3월 18일 티에르AdolpheTiers 정부는 몇 시간 만에 사라졌으며 파리를 그 운명에 맡겼다. 그렇지만 1848년과 1871년은 반란에 불과하였다. 인민혁명 앞에서 통치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들은 다른 곳에서 모의했을지 모르지만, 여하튼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나중에 복귀하려고 애썼다. 

옛 정부가 사라지자 군대는 인민봉기의 물결 앞에서 머뭇거리며 더 이상 우두머리들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우두머리들 역시 조용히 도망쳤다. 군대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있거나 아니면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는 반란자들에게 합류하였다. 경찰도 군중을 쳐야 하는지 아니면 "코뮌 만세!" 라고 외쳐야 하는지 더 이상 모른 채 팔을 흔들었다. 도시에 있는 하사관들은 숙소로 돌아가서 새로운 정부를 기다렸다. 부유한 부르주아들은 짐을 꾸려서 안전한 곳으로 갔다. 인민은 남았다. 이렇게 해서 혁명의 도래를 알렸다. 

몇몇 대도시에서는 코뮌이 선포되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녔다. 저녁때는 급히 만들어진 집회소에 몰려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었다. 그리고 공적인 문제들을 열렬하게 토론하였다.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졌다. 어제는 가장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아마도 가장 열광적이었을 것이다. 도처에 많은 선의善意와 승리를 확보하고 싶은 강한 열망이 가득하였다. 훌륭한 헌신적인 행위들이 일어났다. 인민은 앞으로 나갈 것만을 요구하였다. 

이 모든 것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직도 혁명이 아니다. 반대로 이제 혁명가의 일이 시작된다. 

틀림없이 보복행위들이 있었을 것이다. 와트랭Jules Watrin이나 토마JecquesLeon Clement Thomas 같은 사람들은 민심을 잃은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투쟁에서 우연한 사고에 불과한 것이지 혁명이 아니다. 

사회주의 정치인들, 급진주의자들, 인정받지 못한 저널리즘 천재들, 가두정치 연설가들-부르주아와 옛 노동자-은 시청이나 정부 청사로 달려가 빈자리를 차지하였다. 어떤 이틀은 견장肩章을 마음껏 달았다. 장관실의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에 감탄하고는, 새로운 직책에 어울리는 거드름을 피며 명령을 내리는 연습을 했을 것이다. 편집실이나 공장의 예전 동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려면, 붉은 띠나 수놓은 모자, 위엄 있는 몸짓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은 관청의 서류에 파묻혀서 그것들을 이해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들 은 법을 만들고 엄숙한 말로 된 법령을 반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집행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혁명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없었던 권위를 갖기 위해 예전 정부형식의 승인을 추구했었을 것이다. 그들은 임시정부 공안위원회, 시장, 시청 사령관, 공안위원장 등의 이름을 가졌을 것이다. 선거를 통해 뽑혔든 환호로써 지명되었든 간에, 그들은 국회나 코뮌위원회에 모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10개 또는 20개의 파벌에 속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났을 것이다. 이 파벌들은 흔히 말하는 것처럼 개인적인 당파가 아니었다. 그것 들은 혁명의 정도, 범위, 과제에 관해 서로 다른 많은 생각들을 대표하였다. 가능주의자들Possibilistes, 집산주의자들, 급진주의자들, 자코뱅파들Jacobins, 블랑키스트들Blanquistes은 어쩔 수 없이 모였기 때문에 말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했을 것이다. 정직한 사람들이 야심가들과 뒤섞였다. 이 야심가들은 지배만을 꿈꾸고 군중을 경멸하였다. 자신들이 거기 출신인데도 말이다.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한데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하루밖에 지속되지 않을 다수파를 만들기 위해 가짜 연합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언쟁하고 서로를 반동분자, 권위주의자 나쁜 놈이라고 불렀다. 중요한 대책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했고, 하찮은 일에 대해서는 하염없이 논의하였다. 실속 없이 화려한 선언만 남발하였다. 모두가 자신을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지만 운동의 진정한 힘은 거리에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연극을 좋아하는 자들을 즐겁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이루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언쟁 동안 인민은 고통을 겪는다. 공장들은 조업중단 상태에 있고 작업장들은 문이 닫혀 있다. 상업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노동 자는 이전에 그가 받았던 극히 적은 임금조차 벌지 못한다. 식료품 가격은 올라간다!

인민은 언제나 자산들의 특징이었으며 위대한 시대에는 숭고한 경지에까지 이르는 그 영웅적인 헌신 정신을 갖고 참아낸다. 인민은 1848년에 외쳤다: "우리는 공화국을 위해 3개월의 궁핍을 바친다." 그렇지만 "대표자들"과 새로운 정부의 신사들은-말단 교도관에 이르기까지-그들의 봉급을 꼬박꼬박 받았다! 인민은 고통을 겪고 있다. 어린애 같은 신뢰를 가지고, 지도자들을 믿는 대중의 순박함을 갖고서 인민은 저기 높은 곳에서 즉 의회에서, 시청에서 공안위원회에서 자산들을 돌보아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저기 높은 곳에서는 군중의 고통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것들을 생각한다. 1793년에 기아가 프랑스를 괴롭히고 혁명을 위태롭게 했을 때: 샹젤리제 거리는 사치스러운 장신구를 자랑하는 부인들의 호화로운 마차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인민은 비참해질 대로 비참해졌을 때, 로베스피에르Maxmilen de Robespierre는 자코뱅당원들에게 영국헌법에 대한 자신의 논문을 토론하라고 촉구하고 있었다! 1848년에 노동자들이 산업의 전반적인 정지로 고통받고 있었을 때, 임시정부와 의회는 군인연금과 죄수의 노역에 대해 하염없이 논의하고 있었다. 이 위기의 시대에 인민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프러시아군의 대포 밑에서 태어나서 70일밖에 존속하지 못한 파리코뮌을 비난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직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즉 코뮌혁명은 투사들이 잘 먹지 않고서는 승리할 수 없으며, 또 하루에 30수sou로는 성벽에서 싸우면서 동시에 자기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민은 고통받고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묻는다: "난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III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서 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하나의 대답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큰소리로 선언하는 것이다. 즉 각자는 과거의 지위가 무엇이든 간에, 힘이 세든 약하든 간에, 재능이 있든 없든 간에, 무엇보다도 우선 생존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사회는 그것이 처분할 수 있는 모든 생활수단을 인정하고 선언한 다음 그것에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 

혁명의 첫날부터 노동자가 자기 앞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끔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부터는 누구도 음식물이 많이 있는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궁전 옆에 있는 다리 밑에서 잘 필요가 없을 것이다. 누구도 모피가게 옆에서 추위에 떨 필요가 없을 것이다. 원칙적으로든 실제로든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끝으로, 인민에게 그 의무를 훈계하기 전에 인민의 필요를 생각하는 혁명이 역사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법령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오로지 모두의 생 를 보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즉각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소유하는 것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과학적인 유일한 실천방법인 동시에 인민대중이 이해할 수 있고 바라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반란을 일으킨 인민의 이름으로 밀 창고, 옷이 넘쳐흐르는 상점, 주택을 소유해야 한다. 어느 것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 배 고픈 사람들을 먹여 주고, 모든 필수품들을 제공하고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체 없이 조직해야 한다. 더 이상 이런저런 사람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살리고 발전시키기 위해 생산해야 한다. "일할 권리" 같은 애매한 말들은 더 이상 필요 없다. 1848년에 이 말로 인민을 속였는데, 아직도 그것으로 인민을 속이려고 한다. 복지가 이제부터는 가능하며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를 갖자. 

1848년에 노동자들이 일할 권리를 요구했을 때 국립작업장이나 시립작업장을 세웠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40수를 받았다. 그들이 노동조직을 요구했을 때, 그들은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들었다. "여러분 참으십시오. 정부가 그것을 주선하겠습니다. 오늘 치 40수가 여기 있습니다. 평생 힘들게 일해온 노동자 여러분 쉬십시오!"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대포를 조준하였다. 부대의 모든 군인들이 소집되었다. 노동자들 자신은 부르주아계급에게 잘 알려져 있는 수많은 방법으로 해산되었다. 어느 날 그들은 이런 말을 들었다. "아프리카로 가서 식민지를 개척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 희들을 총 쏴 죽일 것이다!" 

만일 노동자들이 복지에의 권리를 요구한다면, 결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그 권리를 요구하게 되면 그들은 사회의 모든 부를 차지할 권리를 선언하게 된다. 각 가족의 필요에 따라 집을 얻어 살고, 식량도 얻어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복지의 의미를 알게 된다. 배고픔을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부(과거와 현재 세대 노동의 산물)에 대해 권리를 선언한다.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면서 부르주아들이 너무 오랫동안 독점해온 예술과 과학의 고상한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복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그들은-이것은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 복지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를 그들 스스로가 결정할 권리를 선언한다. 즉 그 복지를 확보하려면 무엇을 생산해야 하는지 또 이제부터는 가치 없는 것으로서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그들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선언한다. 

복지에의 권리, 이것은 사람답게 살고 아이들을 우리보다 더 나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게끔 키울 가능성이다. 이에 반해 "일할 권리"는 계속 임금을 받는 노예로 있는 권리이다. 이 임금을 받는 노예란 내일의 부르주아에 의해 지배되고 착취당하는 고통받는 인간이다. 복지에의 권리, 이것은 사회혁명이다. 일할 권리는 기껏해야 산업 징역un bagne industriel이다. 바야흐로 노동자가 공동유산에 대해서 권리를 선언하고 그것을 소유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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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틀림없이 국가 없는 사회라는 생각은 적어도 사유자본이 없는 사회의 경제학만큼이나 반론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우리 모두는 국가의 섭리적 기능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요리의 모든 교육, 로마 전통의 교육, 로마법이라는 이름하에 연구하는 비잔틴 법전, 대학에서 가르치는 다양한 학문은 우리로 하여금 정부와 복지국가의 미덕을 믿는 데 익숙하게 한다. 

이 편견을 유지하기 위해 철학체계들이 다듬어졌으며, 또 그것들을 가르쳤다. 법에 대한 이론들도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정치도 이 원리에 입각해 있다. 그의 색깔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정치인은 인민에게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권력을 주시오. 나는 당신들을 짓누르는 비참한 상태로부터 당신들을 해방시키고 싶소. 또 그렇게 할 수 있소!"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의 모든 행동은 이 원리에 따른다. 사회학이나 법률학의 아무 책이나 펴보라 거기에는 정부의 조직과 법령이 매우 큰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정부와 정치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진다. 

언론도 똑같은 가르침을 갖가지 어조로 반복한다. 모든 지면이 의회에서의 논쟁과 정치인들의 음모에 대한 글로 채워져 있다. 반면에 국민의 방대한 일상생활은 기껏해야 경제문제나 법에 대한 몇 줄의 기사에, 또는 경찰을 통해 3면 기사에 나타날 뿐이다. 그러므로 신문을 읽어도, 여러분은 자라나고 죽고 고통을 겪고 일하고 소비하고 창조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거의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의 무지로 인해 과장된 소수의 거추장스러운 인물들의 그림자가 인류를 가릴 정도로까지, 사람들이 그들을 칭송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쇄물에서 생활 자체로 넘어가자마자 사회를 한번 훑어보자마자 정부가 행하는 역할이 지극히 작은 것에 놀란다. 이미 발자크Honore de Balzac가 언급한 것처럼, 수백만의 농민들은 무거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평생 동안 국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있다. 매일 수백만 건의 거래가 정부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 중 대부분-상업거래와 증권거래-은 계약 당사자들 중 한쪽이 그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려고 한다 해도 정부를 내세우지 않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상업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라. 그는 상인들 사이에서 매일 이루어지는 교환이 상호신용에 기초해 있지 않다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습관, 신용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욕망만으로도 이 상대적인 정직한 즉 상업상의 정직함은 아주 충분히 유지된다. 화려한 라벨을 붙여서 유해한 약품을 팔아 고객을 중독시키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계약은 명예를 걸고 지키려고 한다. 그러므로 치부致富가 유일한 동기이고 목적인 현재의 상태에서도 이 상대적인 도덕성이 발달할 수 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노동 산물을 차지하는 것이 더 이상 사회의 기초가 되지 않게 되면 도덕성이 빠르게 진보한다는 것을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는가? 

 

(...)

 

만일 자유로운 조직들이 아직도 생활 전체에 퍼져나가지 않고 있다면, 이는 그것들이 노동자들의 가난에서, 현재 사회의 카스트에서, 자본의 사적인 소유에서, 국가에서 넘을 수 없는 장애물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이 장애물들을 제거하라. 그러면 당신은 자유로운 조직들이 문명인들의 광대한 활동영역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될 것이다.

지난 50년의 역사는 우리가 맡기고 싶어 한 임무들을 대의정부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무능력의 생생한 증거를 제공하였다. 19세기는 의회주의가 실패한 시기로 인용될 것이다. 

그러나 이 무능은 모든 사람에게 매우 분명해지고 있다. 의회주의의 결함과 대의제 원리의 근본적인 결점은 매우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비판한 몇몇 사상가들(존 스튜어트 밀, 에밀 르베르데Emile Leverdays)은 인민의 불만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몇 사람을 지명해 그들에게 "당신들 중 누구도 그것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리의 모든 생활영역을 규제하는 법을 만드시오"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모르겠는가? 다수의 동지란 나라의 모든 일을 의회나 선거인 집회에서 다수를 이루는 자들, 말하자면 "늪지대의 개구리들", 한 마디로 말해 의견이 없는 자들에게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기 시작했다. 인류는 새로운 출구를 구하고 있으며, 이미 그것을 찾아냈다.

국제우편연합, 철도조합, 학회는 법 대신에 자유로운 합의를 통해 찾아낸 해결책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단체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 단결하려고 할 때, 그들은 더 이상 무엇을 해도 좋은 대의원들의 국제 의회를 선출해 그 대의원들에게 "규칙을 만들어 주시오. 그것에 따르겠소"라고 말하지 않는다. 직접 만나서든 서신으로든 합의할 수 없을 때는 현안에 정통한 대표들을 파견하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러저러한 문제에 대해 합의를 보도록 노력하시오. 그리고 당신들 호주머니 속에 법률이 아니라 합의안을 가지고 돌아오시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소.' 

이미 유럽과 미국에 걸쳐 있는 큰 회사들. 학회, 갖가지 종류의 단체들은 이런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그리고 자유로운 사회는 이런 식으로 행동해야 할 것이다. 수용을 하려면, 의회대의제 원리에 따라 조직되어서는 결코 그 수용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농노제에 입각한 사회는 절대군주제에 만족할 수 있었다. 임금제와 자본가에 의한 대중 착취에 입각한 사회는 의회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공동유산의 소유권을 되찾은 자유사회는 자유로운 결속과 단체들의 자유로운 연합 속에서 새로운 조직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새로운 조직이 역사의 새로운 경제 단계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각각의 경제 단계에는 그 정치 단계가 대응한다. 새로운 정치생활 방식도 동시에 찾지 않으면서 소유권[사유재산]을 건드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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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수용

 

I

 

(...)농부가 생산량의 절반을 내놓지 않고 땅을 경작할 수 있게 되는 날, 많은 수확을 위해 땅을 가꾸는 데 필요한 기계들이 남아돌아 경작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날, 공장노동자가 독점자 들을 위해 생산하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 생산하게 되는 날 노동자 들은 더 이상 누더기를 걸치고 다니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로스차일드가도 그 밖의 착취자들도 없을 것이다. 

누구도 자신이 생산한 것의 일부에 불과한 임금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그러나 로스차일드가 같은 사람들이 외부에서 들어올 것이다. 중국에서 수백만금을 모아 온 사람이 당신네 나라에서 사는 것을 당신들이 막을 수 있겠소? 그가 자기 주위에 하인들과 임금노동자들을 모아 놓고 그들을 착취하고 희생시켜서 치부致富하는 것을 당신들이 막을 수 있겠소?" 

"당신들은 혁명을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일으킬 수 없소. 아니면 당신들은 당신네 나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수색해 그들이 가지고 들어오는 돈을 압수하기 위해 국경에 세관을 세우겠습니까? 여행자들에게 총을 쏘는 아나키스트 경찰관이라니 좋은 구경거리가 되겠소!" 

그렇지만 이런 추론 밑에는 큰 오류가 있다. 부자들의 재산이 어디서 왔는지는 결코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심사숙고해도 이 재산의 기원이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없는 곳에는 그들을 착취하는 부자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큰 재산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중세를 잠시 보자. 

한 봉건영주가 비옥한 유역을 빼앗았다. 그러나 그 평야에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주는 결코 부자가 아니다. 그의 땅은 그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달 속의 재산을 소유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우리의 영주는 부자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농민을 찾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모든 농민이 세금이 없는 한 조각의 땅을 가졌다면, 게다가 경작에 필요한 도구와 가축을 가졌다면, 누가 영주의 땅을 개간하러 가겠는가? 각자 자기 땅을 돌볼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으로 망했고, 어떤 사람들은 가뭄으로 망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전염병으로 망했다. 그들은 말도 없고 쟁기도 없다(철은 중세에는 비쌌고, 경작용 말은 더 비쌌다).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더 좋은 조건을 찾았다. 그들은 어느 날 우리 영주의 토지 경계에 있는 도로에서 푯말을 보았다. 이 푯말은 이해할 수 있는 몇 가지 기호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알렸다. 즉 이 토지에 정착하는 노동자는 땅과 함께 초가집을 짓고 밭에 씨를 뿌릴 도구와 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으며 몇 년간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 세금 면제의 햇수는 푯말에 십자 기호로 나타냈으며, 이 십자 기호의 의미를 농민은 이해하였다. 

이렇게 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영주의 땅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길을 만들었고, 늪의 물을 뺐으며, 마을을 건설하였다. 9년 후 영주는 그들에게 임대차 계약을 강요하고, 5년 뒤에는 소작료를 징수한다. 그다음에는 소작료를 두 배로 올린다. 농민은 이 새로운 조건을 받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 더 좋은 조건을 찾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주들이 만드는 법의 도움으로 점차 농민의 가난이 영주의 부富의 원천이 되었다. 그리고 영주만이 아니라 많은 고리대금업자들이 마을에 들이닥쳤다. 농민이 가난해지면 가난해질수록 이 고리대금업자들의 수는 더욱더 늘어났다. 

이런 일들이 중세에 일어났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계속 마찬가지가 아닌가? 농민이 마음대로 경작할 수 있는 노는 땅이 있다면, 그는  한 조각의 땅을 팔아주는 자작님에게 헥타르당 1000프랑을 지불할 것인가? 그는 생산량의 ⅓을 빼앗아가는 비싼 임대료를 지불할 것인가? 그는 반타작 소작인이 되어 수확량의 절반을 지주에게 줄 것인가? 그러나 그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땅을 경작해 살 수만 있다면 그는 모든 조건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지주에게 돈을 벌게 해줄 것이다. 

19세기에도 중세와 마찬가지로 지주에게 돈을 벌어주는 것은 여전히 농민의 가난이다. 

 

 

II

 

지주는 농민의 가난에 의해서 부유해진다. 기업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해서든 50만 프랑의 재산을 소유한 부르주아가 있다고 해 보자. 그는 확실히 해마다 5만 프랑씩 자기 돈을 쓸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볼 수 있는 분별없이 흥청망청 쓰는 사치에 비하면 사실 별것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는 10년 후에는 무일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실리적인 사람으로서 그는 자기 재산에는 손대지 않고 상당한 연수입을 얻는 쪽을 택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주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도시나 시골은 한 달이나 심지어는 보름도 살아갈 돈이 없는 노동자들로 우글거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부르주아는 공장을 세운다. 특히 그가 유능하다는 평판이 있다면 은행들은 서둘러 그에게 50만 프랑이라도 빌려준다. 이 많은 돈으로 그는 500명의 노동자를 일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 부근에 생계가 보장된 남녀들만 있다면, 누가 우리 부르주아에게 일하러 가겠는가? 아무도 하루에 3프랑의 임금을 받고 5프랑 또는 10프랑 가치의 상품을 만드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불행하게도-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도시의 가난한 구역들이나 이웃 마을에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먹이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공장이 완성되기도 전에 노동자들이 채용되기 위해 달려간다. 백 명밖에 필요하지 않은데, 이미 천명이 왔다. 그러므로 공장이 돌아가자마자, 사장은-그가 지독한 바보가 아니라면-자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한 명당 1년에 천 프랑 가량의 순이익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고용주는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 만일 어떤 수지맞는 사업 부분을 선택했다면 그리고 수완이 있다면, 그는 공장을 조금씩 확대할 것이며 아울러 자신이 착취하는 사람들의 수를 두 배로 늘려 자신의 수입을 늘릴 것이다. 

그러면 그는 그의 나라에서 명사名士가 될 것이다. 그는 다른 명사, 지방의회 의원들이나 국회의원들을 점심식사에 초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 재산을 다른 재산과 결합시키고[부자와 결혼하고], 나중에는 자기 자녀들을 유리한 자리에 앉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국가로부터 어떤 사업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군대나 경찰에 물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따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재산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마침내 전쟁이나 단순한 전쟁 소문, 투기 그리고 증권거래소가 그에게 크게 한탕 해먹을 수 있게 해준다.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거대한 재산의 9/10는 (헨리 조지Henry George가 그의《사회문제Social Problems》에서 매우 잘 말한 것처럼) 국가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큰 부정행위에 기인한다. 유럽의 경우에도 우리 군주국과 공화국에서 만들어지는 재산의 9/10는 똑같은 기원을 갖고 있다. 백만장자가 되는 데 두 가지 방식은 없다. 

부의 모든 비밀은 거기에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에게 프랑을 지불하고는 10프랑어치만큼 생산하게 해라 이렇게 해서 재산을 모은다. 그다음에는 국가의 도움을 얻어 한몫 잡아 그 재산을 늘리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저축해서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조금의 재산에 대해서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가? "저축한" 잔돈이 굶주린 사람들을 착취하는 데 사용되지 않는 한 저축 그 자체는 아무것도 "가져다주지"않는데 말이다.

구두장이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벌이가 좋고 고객도 많다고 해보자. 그는 절약해 하루에 2프랑 한 달에 50프랑을 저축한다! 우리의 구두장이는 결코 아프지 않고, 열심히 저축하면서도 실컷 먹으며,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고, 결핵으로 죽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당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정해보자!

그럼에도 그는 50세에 15000프랑도 저축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일할 수 없는 노년 동안 살기에 충분할 만큼의 돈도 되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이렇게 해서는 재산이 쌓이지 않는다. 

그러나 또 한 명의 구두장이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몇 수sou가 생길 때마다 그 돈을 꼬박꼬박 저축은행에 맡길 것이다. 저축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려는 부르주아에게 그 돈을 빌려줄 것이다. 그다음 그 구두장이는 도제를 고용할 것이다. 이 도제는 가난한 사람의 아들인데, 그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자식이 5년에 걸쳐 그 일을 배워 밥벌이를 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도제는 우리의 구두장이에게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구두장이에게 고객이 많다면, 그는 서둘러서 두 번째 제자, 세 번째 제자를 받아들일 것이다. 나중에는 두세 명의 노동자를 고용할 것이다. 이들은 하루에 6프랑어치만큼의 일을 하고 3프랑만 받아도 만족해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의 구두장이 가 "운이 좋다면" 즉 꽤 교활하다면, 그의 노동자들과 도제들이 그 자신의 노동 이상으로 그에게 하루에 20여 프랑을 더 벌게 해줄 것이다. 그는 사업을 확장해 점점 더 부자가 될 것이며, 허리띠를 졸라맬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는 자기 아들에게 약간의 재산을 남겨줄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절약하고 검소한 습관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이다. 

무역은 이 규칙에서 예외인 것 같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중국에서 차를 사서 그것을 프랑스로 수입해 자기 돈의 30%를 번다. 그는 아무도 착취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만일 우리의 상인이 차茶를 등에 져서 옮겼다면 좋다! 옛날 중세 초기에는 무역이 바로 그런 방식으로 행해졌다. 그래서 오늘날과 같은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얻지 못했다. 당시에는 상인은 힘들고 위험한 항해를 한 다음에야 간신히 몇 개의 금화를 얻었다. 그가 무역을 하게 된 것은 이득에 대한 욕망보다는 항해와 모험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방법이 더 단순하다. 자본을 소유한 상인은 사무실을 떠나지 않아도 부자가 된다. 그는 100톤의 차를 산다는 주문을 중개인에게 전보로 보낸다. 그는 배를 빌린다. 몇 주 후에, 범선이라면 3개월 후에, 배는 그에게 화물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그는 항해의 위험을 부담하지 않는다. 그의 차와 배가 보험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그가 10만 프랑을 썼다면, 그는 13만 프랑을 손에 넣을 것이다. 그가 어떤 새로운 상품에 투기해서 재산을 두 배로 늘리든가 아니면 몽땅 잃어버리든가 하는 모험을 시도하지 않는 경우라면 말이다. 

그런데 그는 보잘것없는 임금을 받고서 (피로를 견디고 목숨을 걸면서 바다를 횡단하거나 중국까지 왕복하는) 힘든 일을 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어떻게 구할 수 있었는가? 그는 일하는 동안 굶어 죽지 않을 만큼 임금을 받고 배에 짐을 싣고 내리는 부두 노동자들을 어떻게 구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해서 말인가?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항구에 가서 부두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보라. 배에서 일거리를 얻으려고 새벽부터 몰려와 부두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라. 몇 주 또는 몇 달의 기다림 끝에 먼 항해를 하는 일자리를 얻었다고 좋아하는 선원들을 보라. 그들은 평생 동안 이 배 저 배를 타고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배를 타고 살 것이다. 언젠가 파도 속에서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그들의 움막에 들어가서 누더기를 걸친 채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사는 아내들과 아이들을 보아라. 당신들은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것이다. 

예를 늘리고, 그중에서 당산들이 보기에 좋은 것들을 선택해보라. 상업, 금융업, 공업 또는 토지에서 생겨난 크고 작은 모든 재산의 기원을 생각해보라. 한쪽 사람들의 부가 다른 쪽 사람들의 가난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당신들은 어디에서나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나키즘 사회는 미지의 로스차일드가 갑자기 나타나 그 한가운데에 자리 잡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만일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몇 시간의 생산적인 노동을 한 다음에는 문명이 제공하는 모든 즐거움에 대해서 (즉 과학과 예술이 교양 있는 사람에게 주는 깊은 기쁨에 대해서)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는 보잘것없는 양식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문제의 로스차일드를 부자로 만들기 위해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은화는 여러 가지 목적에 유용한 금속조각일 뿐이며, 새끼를 칠 수 없을 것이다.

위의 반대론에 대답하면서 우리는 동시에 수용의 한계를 결정하였다. 

수용은 누구든 - 그가 은행가이든 기업가이든 지주든 - 다른 사람의 노동을 차지할 수 있게 하는 모든 것에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의 말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우리는 누구에게서도 그의 외투를 빼앗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그들을 착취할 수 있게 해주는 모든 것을 돌려주고 싶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누구에게도 부족함이 없게 할 것이다. 그 자신과 아이들이 생존하기 위해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수용의 의미이다. 이것은 혁명 기간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200년 후가 아니라 가까운 장래에 혁명이 도래하리라고 본다. 

 

 

III

 

일반적인 아나키즘 사상과 특별히 이 수용 사상은 자주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들과 게으름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공감을 얻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친구들은 종종 우리에게 말한다: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인류는 하루 사이에 바뀔 수 없으니, 수용과 아나키즘 계획을 너무 서두르지 마시오. 서두르면 당신들은 지속적인 결과에는 하나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요!" 

그런데 수용에 관해서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너무 멀리 나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이것이다. 즉 수용이 너무 작은 범위에서 이루어져서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혁명의 기세가 중도에서 멈추고 고갈되고 어정쩡해져서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굉장한 혼란과 기능의 정지를 일으키면서도 전반적인 불만의 씨를 퍼뜨려 반드시 반동의 승리를 야기시킬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우리가 부분적으로 그것만 건드린다면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기존 관계들이 있다. 우리 경제조직의 여러 기구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전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단 하나도 바꿀 수 없다. 그 어떤 것이든 수용하려고 하면 이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 제한된 수용이 이르어진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면, 최근 헨리 조지가 요구한 것처럼 공장은 손대지 않고 대지주들 의 땅을 수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 또는 어느 도시에서 집은 수용하면서 소비물자는 공유화하지 않는 것, 어떤 공장 지역에서는 공장은 수용하지만 대토지 소유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결과는 언제나 똑같을 것이다. 경제생활의 엄청난 대혼란이 일어나는데도, 이 경제생활을 새로운 기초 위에 재조직할 수단이 없다. 산업과 금융이 정지되어도, 정의의 원리로 돌아가지 못한다. 조화로운 전체로 재건하지 못한다. 

농업이 대지주로부터 해방되어도 공업이 자본가나 상인이나 은행가로부터 해방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농민은 오늘날 지주에게 소작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만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다. 그는 현재의 조건 전체 때문에도 괴로움을 겪는다. 그는 기업가에게 착취당하고 있다. 기업가는-농민의 노동에 비하 면-그 가치가 15수밖에 되지 않는 삽을 그에게 3프랑 받고 판다. 농민은 국가가 징수하는 세금으로도 괴로움을 겪는다. 국가는 엄청난 계급 조직의 관리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농민은 국가가 보유하는 군대 유지비용으로도 괴로움을 겪는다. 국가가 군대를 보유하는 이유는 모든 나라의 기업가들이 시장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 고 있으며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어딘가를 착취할 때 일어나는 분쟁으로 전쟁이 매일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농민은 시골의 인구 감소로도 고통받는다. 농촌 청년들은 대도시의 공장으로 떠난다. 사치품 생산자들이 일시적으로 주는 높은 임금의 유혹 때문이거나, 활기찬 생활의 즐거움 때문이다. 농민은 또한 인위적인 공업 보호, 외국의 상품 폭리, 주가조작 토지 개량이나 도구 개선의 어려움 등으로 고통을 겪는다. 요컨대 농민은 소작료 때문에 고통을 겪을 뿐만 아니라 착취에 기초한 우리 사회의 조건 전체 때문에도  고통을 겪는다. 그러므로 수용으로 모두가 땅을 경작할 수 있고 또 소작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해서 농업이 일시적으로 번영한다 하더라도(이것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그것은 곧 오늘날 처해 있는 침체에 다시 빠질 것이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새로운 어려움을 가지고 말이다. 

공업도 마찬가지다. 농민을 토지 소유자로 만든 것처럼 공장을 내일 노동자들에게 돌려준다고 해보자. 사장은 없애지만, 지주에게는 땅을. 은행가에게는 돈을, 상인에게는 증권거래소를 남겨준다고 해보자. 노동자의 노동에 얹혀 사는 게으름뱅이들의 무리, 수많은 중간상인들, 무수히 많은 관료들을 갖고 있는 국가를 그대로 남겨놓는다고 해보자, 그러면 공업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가난한 상태에 있는 농민 대중에서 구매자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원료가 없고 (일부는 무역의 중단으로, 특히 공업이 전 세계에 보급되어) 제품을 수출할 수 없기 때문에 공업은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고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릴 것이다. 이 굶주린 무리들은 일거리만 보장해준다면 어떤 음모가든 기꺼이 따르거나 구체제로 돌아갈 용의가 있다.

또는 끝으로, 지주의 토지를 수용하고 노동자들에게 공장을 돌려주지만, 많은 중간상인들을 그대로 내버려둔다고 해보자. 이 중간상인들이 우리 공장의 제품을 팔아치우는 동시에, 오늘날에는 큰 상업 중심지에서 옥수수와 밀가루, 고기와 향신료에 투기하는데도 말이다. 그럴 경우 거래는 중단되고 제품들은 더 이상 유통되지 않을 것이다. 파리에서는 빵이 부족하고 리옹Lyon은 비단을 살 사람들을 찾지 못할 것이다. 무시무시한 반동이 다시 일어나 시체를 짓밟고 도시와 농촌으로 기관총을 가지고 다니면서 처형과 유형流刑의 향연을 벌일 것이다. 1815년, 1848년, 1871년에 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 전체를 흔들지 않고는 그 무엇이든 개혁할 수 없다. 

사유재산의 어느 한 형태를-토지든 공장이든-강타하는 날에는 다른 모든 사유재산 형태도 강타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혁명이 성공할 것이다. 

게다가 부분적인 수용을 바란다 하더라도 그것에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단 신성한 소유권Sainte Prepriete원리가 흔들리면, 이론가들은 그 소유권이 여기에서는 토지에 딸려 있는 농노들에 의해서, 자기서는 공장의 노예들에 의해서 파괴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만일 대도시(예를 들면 파리)가 집이나 공장만을 수용한다고 해도, 반드시 대도시는 이전에 대출해 준 돈에 대한 이자로 5000만 프랑을 코뮌에 징수할 권리가 은행가에게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대도시는 농민들과 교류하면 기필코 농민들을 지주들로부터 해방시켜야 할 것이다. 먹고 생산할 수 있기 위해서, 대도시는 철도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물자 낭비를 피하고 1793년의 코뮌처럼 상인들이 밀가루를 매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대도시는 시민들에게 가게에 물자를 공급하고 생산물을 분배하는 일을 맡겨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몇몇 사회주의자들은 아직도 구분하려고 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토지, 광산, 공장은 수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바란다. 그것들은 생산수단이다. 그것들을 공공재산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 식량 옷, 주택 등의 소비재는 사유재산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보통의 상식은 이 교묘한 구분보다 한 수 위에 있다. 사실 우리는 숲 속의 나뭇가지 밑에서 살고 있는 야만인이 아니다. 일하는 유럽인에게는 방, 집, 침대, 난로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자에게는 침대, 방, 집이 게으름의 장소이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따뜻하고 밝은 방은 기계나 도구와 마찬가지로 생산수단이다. 그것은 내일 일할 때 쓰는 근육과 신경을 회복시키는 장소이다. 노동자의 휴식, 그것은 기계의 준비작업이다. 

식량의 경우에는 더욱 명백하다. 방금 언급한 구분을 하는 소위 경제학자들도 기계 안에서 연소되는 석탄을 원료 자체와 마찬가지로 생산에 필요한 사물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식량을 (식량이 없다면 인간이라는 기계가 조금의 노력도 할 수 없는데) 생산자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사물에서 제외시킬 수 있는가? 그것은 종교의 형이상학의 잔재인가?

부자의 푸짐한 고급 식사는 물론 사치스러운 소비이다. 그러나 생산자의 식사는 증기기관에서 태우는 석탄과 마찬가지로 생산에 필요한 사물 중 하나이다.

옷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생산재와 소비재 간에 이런 구분을 하는 경제학자들이 뉴기니아 야만인들의 복장을 하였다면, 우리는 그러한 보류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서는 글 한 줄 쓸 수 없는 사람들이 그들의 셔츠와 펜을 아주 다르게 구분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그리고 부인들의 화사한 의상은 사치품이지만 일정한 양의 천, 면, 양모는 생산자에게는 노동자가 일하러 갈 때 입는 셔츠와 바지, 하루의 일과가 끝났을 때 입는 웃옷, 모자는 망치나 모루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필요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인민은 혁명을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 정부를 몰아내자마자 인민은 무엇보다도 위생적인 주거 충분한 음식과 옷을 무상으로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인민은 옳을 것이다. 인민의 이러한 행동방식은 생산도구와 소비재를 아주 많이 구분하는 경제 학자들의 방식보다 "과학"에 더 잘 일치한다. 인민은 혁명이 바로 그렇게 시작되어야 한다고 이해한다. 그리고 그들은 과학이 될 자격을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학문인 경제 학의 기초를 쌓을 것이다. 이 학문은 이렇게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인류의 필요와 그것을 만족시켜주는 경제적 수단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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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식량

 

I

 

다가올 혁명이 사회혁명임에 틀림없다면 그것은 목적뿐만 아니라 그 방법 때문에도 이전의 봉기들과 구분될 것이다.

한 세기 전부터 프랑스에서 일어난 세 개의 큰 대중운동은 많은 면에서 서로 다르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 인민은 구체제를 뒤엎으려고 싸웠다. 그들은 고귀한 피를 흘렸다. 그 후 용감하게 맞선 다음 그들은 잊혔다. 다소 정직한 사람들로 구성된 정부가 만들어져서 1793년의 공화국, 1848년의 작업장, 1871년의 자유코뮌을 조직하려고 했다. 

자코뱅 사상에 물들어있는 이 정부는 무엇보다도 정치문제에 몰두하였다. 권력기구의 재조직, 관료의 숙청, 교회와 국가의 분리, 시민의 자유 등등. 

노동자 클럽들이 새로운 위정자들을 감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종종 그들은 자산들의 생각을 강요한다. 그러나 이 클럽들에서조차 연설자가 부르주아든 노동자든 간에 지배하는 것은 언제나 부르주아 사상이다. 정치문제에 대해 많이 말했지만 빵 문제는 잊고 있었다. 

위대한 사상, 즉 세계를 움직인 사상은 그런 시기에 나왔다. 이때 한 말은 한 세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나 변두리 지역에는 빵이 부족하였다 혁명이 일어나자마자 노동은 불가피하게 중단되었다. 생산물의 유통은 멈추었으며 자본은 자취를 감추었다. 고용주는 이 시기에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주위의 가난을 이용해 투기하지는 않았지만 금리로 먹고살았다. 그러나 임금노동자는 곧 하루살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식량과 생활필수품의 부족이 예고되었다.

비참한 생활이 나타났다. 구체제하에서도 거의 볼 수 없었던 비참한 생활이었다. 

1793년 변두리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말하였다. "지롱드당원*들이 우리를 굶기고 있다." 그래서 지롱드당원들이 단두대에서 처형되었고, 산악당**과 파리코뮌이 전권을 장악했다. 코뮌은 실제로 빵 문제에 신경을 썼다. 코뮌은 파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영웅적인 노력을 하였다. 리옹에서는 푸셰Joseph Fouche**와 콜로 데르부아Jean Marie Collot d'Herbois가 곡식 저장소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채우기에는 돈이 조금밖에 없었다. 시의회는 밀을 구하려고 애썼다. 밀가루를 매점한 제빵업자들이 교수형에 처해졌지만, 빵은 계속 부족하였다.

따라서 사람들은 왕당파의 음모자들을 비난하였다. 하루에 12명 내지 15명을 단두대에서 처형하였다. 하인들과 공작부인들도 함께 처형하였는데, 특히 하인들이 많았다. 공작부인들은 코블 렌즈Coblentz[독일 서부에 있는 도시]로 도망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일 100명의 공작과 자작을 단두대에서 처형했다 하더라도, 사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궁핍은 점점 심해졌다. 살기 위해서는 언제나 임금을 받아야 했는데, 임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여 구의 시체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때 인민은 싫증 나기 시작했다. 반동분자는 노동자의 귀에 속삭였다. "이게 당신들의 혁명이요. 당신들은 전보다 더 궁핍해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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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롱드당Girondins: 프랑스혁명 때 입법의회와 국민공회의 당파. 자코뱅당과 마찬가지로 공화정을 내세웠지만, 온건한 의회주의, 소유권과 재산권의 옹호, 통제경제 반대, 연방주의를 제창하고 부르주아 본위의 정책과 현상유지를 주장하였다.

**프랑스혁명기 국민공회의 좌파.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자코뱅당에 속하는 급진적인 의원들로 소시민과 무산계층을 기반으로 삼았으며, 지롱드당과 대립하였다.

 

부자들은 조금씩 힘을 냈다. 그들은 은신처에서 나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화려한 사치를 뽐냈다. 그들은 멋 부린 옷차림을 하고는 노동자들에게 말하였다. "여보시오. 바보 같은 짓은 이제 지긋지긋하오. 당신들이 혁명으로 얻은 것이 무엇이요? 이제 그만하시오!" 

혁명가는 가슴이 아팠지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침내 자인하였다. "혁명은 또 실패하였다!" 그는 누추한 집으로 돌아가 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러자 반동이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동이 쿠데타를 수행하였다. 혁명은 죽었으며, 시체를 짓밟는 일만이 남았다. 시체를 짓밟았다. 피가 넘쳐흘렀다. 백색테러가 사람들을 쓰러뜨렸으며, 감옥은 만원을 이루었다. 이러는 동안 고급 사기 집단의 향연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혁명의 모습이다. 1848년 파리 노동자들은 공화국을 위해 "3개월의 궁핍"을 바쳤다. 3개월 후[1848년 6월] 그들은 더 이상 할 수 없이 마지막 필사적인 노력을 하였지만, 이 노력은 대학살로 끝났다. 

그리고 1871년의 코뮌은 전투원 부족으로 실패했다. 코뮌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잊지 않고 공포하였다. 하지만 모두에게 빵을 주는 일은 너무 늦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파리에서는 잘 차려입은 상류 계급 사람들이 파리코뮌의 국민군들을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꺼져 버려, 바보들아! 너희들이 몇 푼의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동안, 우리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잘 먹을 것이다!" 마침내 코뮌은 잘못을 깨닫고 공동급식소를 만들었지만, 너무 늦었다. 베르사유 정규군이 이미 성벽에 와 있었다! 

"빵이다. 혁명에 필요한 것은 빵이다!" 다른 사람들이 화려한 선언문을 발표하는 데 몰두해도 내버려두어라. 다른 사람들이 어깨를 온통 장식줄로 꾸며도 내버려두어라. 끝으로 다른 사람들이 정치적 자유에 대해 비난해도 내버려두어라! 

우리의 임무는 혁명의 첫날부터 또 혁명이 지속되는 날까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곳에는 빵 없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게끔 하는 것이다. 동냥으로 던져주는 겨가 섞인 빵 한 덩어리를 받아가려고 빵가게 앞에 줄 서는 여자가 단 한 명도 없게끔 하는 것이다. 허약한 체격에 필요한 것이 부족한 어린이가 단 한 명도 없게끔 하는 것이다.

부르주아 사상은 위대한 원리-아니 오히려 큰 거짓말-에 대하여 거드름 피우며 말하는 것이었다. 인민의 생각은 모두에게 빵을 보장해주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부르주아와 부르주아 사상에 감염된 노동자들이 간담회에서 잘난 척 하는 동안에, "실리적인 사람들"이 정부의 형태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우리 즉 "유토피아주의자들"인 우리는 매일의 빵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가 실컷 먹어야 하고 또 실컷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할 용기를 갖고 있다. 우리는 모두를 위한 빵이라는 표어를 가질 때만 혁명이 성공할 것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II

 

우리는 유토피아주의자이다. 이것은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유토피아주의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유토피아를 밀고 나가 혁명이 모두에게 집, 옷, 빵을 보장해주어야 하며 또 그럴 수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이것은 당파색에 상관없이 부르주아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배부른 인민을 제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그들이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바꾸지 않는다. 혁명을 일으킨 인민에게 빵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빵 문제가 모든 것보다 앞서야 한다. 빵 문제가 인민을 위한 방향으로 해결된다면, 혁명은 올바른 길로 나아갈 것이다. 사실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른 모든 해결책은 제쳐놓고 평등 원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 혁명은-이 점에서는 1848년의 혁명과 비슷한데-엄청난 산업 공황 속에서 터질 것임이 확실하다. 약 12년 전부터 우리는 이미 흥분의 도가니 속에 있다. 상황은 악화되고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이 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오래된 시장들의 정복을 위해 경기에 뛰어든 신흥국가들의 경쟁, 계속 늘어나는 세금, 국가의 부채, 내일의 불안, 먼 곳에서의 대규모 사업이 그렇다.

유럽의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은 이 순간에도 굶고 있다. 혁명이 일어나 화약의 도화선에 불을 지른 것처럼 퍼져나가면, 사정은 더 나빠질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에 바리케이드가 세워지면 곧바로 실업자들의 수는 두 배로 늘어날 것이다. 이 대중들에게 빵을 보장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실리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노골적으로 제시한 적이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은 그들이 임금제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업자들에게 빵을 주기 위해 "국립작업장"과 "공공사업"을 권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1789년과 1793년에 국립작업장을 열었기 때문에, 1848년에도 똑같은 방법에 의존했기 때문에, 나폴레옹 3세도 18년간 파리의 프롤레타리아들에게 공공사업을 주어 그들을 억누르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그 사업은 오늘날 파리에 20억 프랑의 빚과 일인당 90프랑의 지방체를 부담시키고 있다). "맹수를 길들이는 이 훌륭한 방법은 로마와 심지어는 4000년 전에 이집트에서도 실행되었기 때문에, 끝으로 전제군주들, 왕들, 황제들은 언제나 채찍을 잡는 시간을 벌기 위해 인민에게 빵 조각을 던져주었기 때문에, "실리적인" 사람들이 임금제도를 영속화하는 이 방법을 권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쓴 방법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데, 우리의 머리를 쥐어짜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만일 혁명이 불행하게도 이 길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실패할 것이다. 

1848년 2월 27일 국립작업장이 열렸을 때 파리의 실업자는 8000명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보름 후 실업자는 이미 49000명이나 되었다. 실업자는 곧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지방에서 올라온 자들을 계산에 넣지 않고서도 말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프랑스의 공업과 상업이 오늘날과 비교하면 절반도 고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혁명 때 가장 많이 고통받는 것은 무역과 공업이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수출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의 수만 생각해 보라. 소수의 부르주아를 고객으로 하는 사치품 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수를 생각해 보라!

유럽에서 혁명이 일어나면 공장들과 작업장들 중 적어도 절반은 즉시 조업을 멈춘다. 그것은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길거리로 쫓겨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국립작업장을 이용해 진실로 이 무시무시한 상황을 대비하려고 한다. 즉 실업자들을 고용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공장을 이용해서 말이다! 

프루동이 이미 말한 것처럼, 분명한 것은 재산에 대한 아무리 작은 침해도 사기업과 임금제도에 기초한 체제 전체를 완전히 해체시킬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회 그 자체가 생산을 모두 장악해 그것을 인구 전체의 필요에 따라 재조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재조직은 하루나 한 달 안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재조직은 일정한 기간의 적응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동안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생존수단이 없을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조건에서는 진실로 실리적인 해결책이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엄청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우리 자신이 지지할 수 없게 된 상황을 흐지부지 덮어버리지 말고-새로운 원리에 따라 생산을 재조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기에 실리적으로 행동하려면, 인민은 봉기한 패들에 있는 모든 식량을 즉시 장악해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도 낭비하지 말고 모은 재원을 이용해서 위기의 시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 기간 동안 공장노동자들과는 협정을 맺어 그들에게 부족한 원료를 제공하고 그들의 생계를 수개월 보장해 주어 농민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하게끔 해야 할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프랑스가 독일의 은행가들, 러시아나 샌드위치 제도iles Sandwich(하와이 제도의 옛 이름)의 왕후들을 위해 비단을 짠다면, 파리가 전 세계의 부자들을 위해 멋있는 잡화雜貨社 들을 만든다면, 프랑스 농민의 ⅔는 환하게 밝혀줄 램프도 갖지 못할 것이고, 오늘날 농업에 필요한 기계 도구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끝으로, 남아도는 비생산적인 토지를 개간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약적인 경작, 채소 재배, 원예 재배를 할 경우에 비해 ¼도 심지어는 1 /10도 생산 못하는 땅을 개량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실리적인 해결책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이 해결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III

 

현재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적인 독특한 특징은 임금제도이다. 

한 사람 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필요한 자본을 갖고 기업을 세운다. 그들은 작업장이나 공장에 원료를 공급하고 생산을 조직하고, 제품을 팔고,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임금을 지불하는 일을 맡는다. 끝으로 그들은 관리해준 대가를 받고 당면한 위험이나 그 제품의 시장 가격 변동에서 오는 손해를 보상한다는 구실하에 잉여가치 이익을 챙긴다. 

임금제도를 몇 마디 말로 하면 이렇다.

이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자본 소유자들은 몇 가지 양보를 할 용의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익의 일부를 노동자들과 나누어 갖거나 아니면 이익이 많을 때 임금을 올려주는 연동제를 제정하는 것이다. 요컨대 그 들은 기업을 경영하고 그 이익을 떼어낼 권리를 자기들에게 계속 남겨준다면 몇 가지 희생에 동의할 것이다.

잘 알다시피 집산주의는 이 체제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제도를 유지한다. 다만 국가 즉 전국 또는 지방의 대의제 정부가 고용주를 대신할 뿐이다. 국가나 코뮌의 대표자, 또는 그 대리인인 관료가 기업의 관리인이 된다. 이들은 또한 생산의 잉여가치를 모두에게 이익이 되게끔 사용할 권리를 보유한다. 게다가 이 체제에서는 일꾼[인부]의 노동과 미리 경력을 쌓은 사람의 노동 사이에 결과적으로는 매우 큰 교묘한 차별을 한다. 일꾼의 노동은 집산주의자가 보기에 단순한 노동에 불과하다. 반면에 장인, 엔지니어, 과학자 등등은 마르크스가 복잡한 노동이라고 부르는 일을 한다. 따라서 그들은 더 높은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일꾼과 엔지니어, 직조공과 과학자도 모두 국가의 임금노동자이다. 최근에는 감언이설로 꾀기 위해 "모두가 관료"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다음의 혁명이 인류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봉사는 모든 형태의 임금제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실시할 수 없게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임금제를 부정하는 공산주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사실 집산주의적 변화가 만일 번영과 평온의 시기 동안에 점진적으로 행해진다면, 그런 변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나로서는 이런 조건에서조차 그 가능성을 상당히 의심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혁명의 시대에는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무기를 들고 일어 선 다음 날부터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혁명은 산업을 뒤집어버리지 않고도 행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인민이 소유권[재산]에 손을 대는 혁명은 불가피하게 교환과 생산을 갑자기 중지시킬 것이다. 국고에 있는 수백만 프랑으로는 수백만 명의 실업자들에게 임금을 주기에 모자랄 것이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로운 기조에 입각한 산업의 재조직(이 문제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는 우리가 곧 보여줄 것이다)은 며칠 내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는 임금제를 지지하는 이론가들을 위해 몇 년 동안이나 곤궁을 참을 수도 없을 것이다. 궁핍의 시기를 잘 넘기기 위해 그들은 비슷한 경우에 항상 요구한 것, 즉 식량의 공유화(배급)를 요구할 것이다. 

인내심을 설교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인민은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 모든 식량이 공유화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빵가게를 약탈할 것이다. 

만일 인민의 압력이 충분히 강하지 않으면 인민은 총살당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질서, 규율, 복종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자칭 혁명가들에 의해 인민이 총살당 하는 것이 인민으로 하여금 혁명을 혐오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곧 알아차리기 때문에, 그들은 틀림없이 "질서"의 옹호자들(집산주의자들이라 하더라도)을 도와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다음번에 집산주의자들을 분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이런 식으로 해서 "질서가 회복되면", 결과는 쉽게 예견된다. "약탈자들"을 총살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무질서의 장본인들"을 찾을 것이고, 재판소와 교수대를 재건할 것이다. 가장 열렬한 혁명가들은 단두대 위에 오를 것이다. 1793년의 되풀이가 될 것이다.

반동이 지난 세기에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잊지 말자. 맨 먼저 에베르파les Hebertistes*와 과격파가 단두대로 보내졌다. 그들은 미네Francois Mignet**가 그 투쟁을 생생히 기억하면서 "아나키스트들"이라고 부른 사람들이다. 당통파les Dantoniens***가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

리고 로베스 피에르파les Robespierristes가 이 혁명가들을 처형했을 때, 이번에는 그들 자신이 단두대에 섰다. 이렇게 해서 인민은 혁명에 진저리를 냈으며, 혁명이 실패하는 것을 보고는 반동분자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질서가 회복된다면" 감히 말한다면 집산주의자들은 아나키스트들을 단두대로 보낼 것이다. 가능주의파는 집산주의자들을 단두대로 보낼 것이다. 끝으로 가능주의파 자신들은 반동분자에 의해 단두대에서 처형될 것이다. 혁명이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보면 인민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혁명이 일어나면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사상이 퍼져나갈 것이다. 이것은 억지로 꾸며낸 사상이 아니다. 인민 자신이 우리에게 그 사상을 불어넣었다. 다른 모든 해결책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해짐에 따라 공산주의자들의 수는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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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르파는 프랑스혁명기에 자크 르네 에 베르Jacques Rene Hebert(1757-1791)를 중심으로 한 정치파벌이다. 에베르는 자코뱅당의 강경파 인사 중의 한 사람으로 언론인이자 작가이다.

** 프랑스의 역사가(1796-1884), 저서로는 《프랑스 혁명사》(1824) 등이 있다.

***당통Gerorges Jacques Danton(1759-1794)은 프랑스의 혁명가이자 정치가이다. 국민공회에서는 산악당에 속하였고 자코뱅당의 우익을 형성하여 좌파인 에테르 일파와 대립하였다. 당통은 공포정치의 완화를 요구해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리고 만일 인민의 압력이 충분히 강하다면, 사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봉기한 도시들의 인민은 다음날은 굶어도 좋으니 몇몇 빵가게를 약탈하는 대신에 밀 창고, 도살장, 식품창고-요컨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식량창고-를 손에 넣을 것이다. 

선의의 남녀 시민들은 모든 상점과 모든 곡식 저장소에 있는 것의 목록을 만드는 일에 곧 착수할 것이다. 통계위원회가 있음에도 파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 그리고 [1871년] 포위되었을 때에도 알지 못한 것, 즉 얼마만큼의 식량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봉기한 코뮌은 24시간이면 알게 될 것이다. 48시간이면 모든 식량과 그것들이 저장된 장소, 분배 방법을 보여주는 정확한 도표 수백만 장이 이미 인쇄되었을 것이다. 

모든 가옥 집단에서 모든 거리와 구역에서 자원자 집단들(식량 자원자들)이 조직될 것이다. 이들은 서로 합의해가며 일을 처리할 것이다. 자코뱅파의 총칼이 끼어들지 않아야 할 것이다. 자칭 과학적인 이론가들이 혼란을 일으키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니, 그들이 명령하는 권한을 갖지 않는다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어라. 그러면 인민, 특히 프랑스 국민의 모든 사회계층이 지녔지만 실천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저 놀랄 만한 조직 정신이 혁명으로 끓어오르고 있는 파리와 같은 대도시에도 나타날 것이다. 그때에는 거대한 봉사가 자유롭게 구성되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식량이 공급될 것이다. 

다만 인민이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하라. 그러면 8일 이내에 식량이 놀라울 만큼 질서 정연하게 공급될 것이다. 인민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자들이나 평생을 책 속에 파묻혀 산 자들만이 그것을 의심할 것이다.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위대한 존재Grand Meconnu, 즉 인민의 조직가 정신에 대해서는 파리의 바리케이드 시절에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말하여라. 또는 50만 명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식량을 준 지난 런던의 대파업 때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말하여라. 그러면 그들은 인민이 관청의 관리들보다 얼마나 나은지 말해 줄 것이다! 

그렇지만 보름이나 한 달 동안은 어느 정도의 부분적이고 상대적인 무질서를 견뎌야 할 것이다.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중에게는 그래도 오늘날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혁명의 시기에는 사람들이 딱딱하게 굳은 소시지나 빵을 먹으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웃으면서, 심지어는 토론하며 지낼 것이다! 어쨌든 직접적인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것은 방에 처박혀 헌 책들 사이에서 또는 시청의 사무실에서 생각해낼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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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주택

 

I

 

노동자들의 정신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지켜본 사람들은 하나의 중요한 문제 즉 주택문제에 대해서 부지불식간에 의견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 프랑스의 대도시와 많은 소도시에서는 노동자들이 조금씩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즉 주택은 결코 국가가 그 소유자로 인정하는 자 들의 재산이 이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하나의 진화가 사람들의 정신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인민은 더 이상 집에 대한 소유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은 그 소유자가 지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세우고 꾸미고 장식한 것이다. 배고픔으로 인해 건설현장에 내몰렸으며, 생존 욕구로 인해 줄어든 임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이 말이다.

자칭 소유자라는 사람이 쓰는 돈은 그 자신의 노동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모든 부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의 ⅔ 또는 절반만을 지불하고는 돈을 모았다. 

끝으로 - 특히 여기서는 그 엄청남이 눈에 띈다 - 집의 실제 가치는 소유자가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달려 있다. 그런데 이 이익은 다음과 같은 사정에서 생겨날 것이다. 즉 집이 도시에 세워졌다는 것(도로가 포장되고, 가스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다른 도시들과 정기적인 통신을 할 수 있고, 공업, 상업, 학문 및 예술에 관한  시설들이 그 안에 모여 있는 도시에 세워졌다는 것), 도시가 다리나 부두, 기념건축물로 장식되어 있으며 여기에 사는 주민에게 농촌마을에서는 알지 못하는 많은 위락과 편익을 주고 있다는 것, 20-30세대 동안이나 사람들의 노동에 의해 도시가 살기 좋고 위생적이며 이름답게 되었다는 것이다.

파리의 몇몇 구역에 있는 어떤 집의 가치는 백만 프랑이다. 이는 그 집의 벽에 백만 프랑의 노동이 들어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집이 파리에 있기 때문이다. 수세기 전부터 노동자, 예술가, 사상가, 학자 및 문인이 파리를 오늘날과 같은 것, 즉 산업, 상업, 정치, 예술 및 학문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또한 파리는 과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거리가 문학 덕분에 지방과 외국에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파리가 1800년 동안의 노동의 산물, 오십 세대에 걸친 프랑스 전 국민의 노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땅의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도 가장 보잘것없는 건물이라도 차지할 권리가 있겠는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부정을 저지르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공동유산의 아무리 적은 부분이라도 누가 누구에게 팔 권리가 있겠는가? 

이 점에 관해서는, 말하자면 노동자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한다. 무상주택 사상은 파리 포위 때 매우 분명하게 표명되었다. 그것은 집주인들이 요청한 조항들의 무조건적인 파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1871년의 파리코뮌 때 다시 표명되었다. 이때 파리 노동자들은 코뮌 평의회로부터 집세 폐지에 대한 단호한 결정을 기대하였다. 이것은 여전히 혁명이 일어날 때 가난한 사람들의 첫 번째 관심사가 될 것이다. 

혁명 때든 아니든 노동자에게는 안식처. 즉 주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집이 아무리 나쁘고 비위생적이라 하더라도, 언제나 주인은 당신을 거기서 쫓아낼 수 있다. 사실 혁명 때는 집주인이 당신의 옷가지를 길거리에 던질 집달리나 경찰관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 새 정부가 겉으로는 혁명적인 척하면서도 또다시 강제력을 구성해 당신을 내쫓으려고 경찰 무리를 보낼지 누가 알겠는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파리코뮌은 4월 1일까지 내야 하는 집세의 면제를 선하였다 - 4월 1일까지만이다. 그 후 파리가 대혼란 상태에 빠져 산업이 정지했을 때애도 집세는 지불해야 했다. 이 때문에 혁명가는 돈이 30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노동자는 집주인에게 집세를 주지 않음으로써 단순히 권력 해체의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는 주택의 무상無償이 말하자면 인민의 동의에 의해 원칙으로 인정되고 재가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상주택이 인민에 의해 소리 높이 선언된 권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성실한 사람의 정의감과 아주 잘 일치하는 이 조치가 임시정부의 부르주아들과 섞여 있는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채택되기를 기다릴 것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 것이다. 반동의 복귀가 있을 때까지 말이다! 

이것이 진지한 혁명가들이 어깨띠와 모자 - 명령과 복종시키기의 표시 - 를 거부하고 인민 속의 인민으로 남아있으면서 집의 수용이 기정사실이 될 때까지 인민과 함께 일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사상의 흐름을 이 방향에서 만들려고 애쓸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사상을 실행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리고 그 사상이 무르익으면, 인민은 집의 수용을 실시할 것이다. 틀림없이 방해가 되는 이론들(즉 집주인들에게 지불하는 배상금에 대한 이론들)과 그 밖의 무의미한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집 수용이 이루어지는 날, 피착취자 즉 노동자는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 은 이제 더 이상 부자나 권력자에게 굴복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평등이 공공연하게 선포되었다. 혁명은 기정사실이며, 이미 너무나도 많이 본 연극적 가식이 아니다. 

 

 

II

 

만일 수용 사상이 인민에 의해 받아들여진다면, 흔히 우리를 위협하는 넘을 수 없는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그 사상은 실행에 옮겨질 것이다.

물론 계급장을 달고 내각이나 시청의 의자에 앉아있는 신사들은 틀림없이 장애물을 쌓아 올릴 것이다. 그들은 집주인들에게 배상금을 주는 일, 통계를 만드는 일, 긴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긴 보고서를 작성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실업의 궁핍에 짓눌리고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자 혁명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다. 결국 관료주의적 수용은 모든 사람에게 지긋지긋한 짓이 된다.

사실 여기에는 모든 것을 침몰시킬 수 있는 암초가 있다. 그러나 인민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하는 거짓된 논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새로운 생활은 새로운 방식을 요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들이 그 일을 스스로 한다면, 그때는 수용이 큰 어려움 없이 행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수용이 어떻게 행해질 수 있는가? 사람들은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조건부로 말할 것이다. 우리는 수용계획을 아주 세세한 점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일찍이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한 인간이나 한 집단이 오늘날 제시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인간의 생활에 의해 극복된다. 우리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생활은 사전에 지시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잘할 것이다. 그것도 더 쉽게 말이다. 

따라서 수용과 수용된 재산의 분배가 정부의 개입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을 개괄적으로 기술할 때, 우리는 그 일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에게 대답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이러저러한 조직 방식을 권할 생각이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수용이 인민의 발의에 의해 행해질 수 있고 달리 행해질 수는 없다는 사실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예상할 수 있다: 수용 행위가 처음 시작되면 곧 구역, 거리, 가옥 집단에서 선의를 지닌 시민들의 단체가 나타날 것이다. 도움을 주러 온 이들은 비어 있는 아파트들, 너무 많은 가족이 사는 아파트들, 비위생적인 주택들, 거주자들에 비해 너무 넓기 때문에 누추한 집에서 좁게 산 사람들이 들어와 살 수 있는 집들의 수를 조 사할 것이다. 이 자원자들은 며칠 내에 거리와 구역별로 위생적인 아파트와 비위생적인 아파트, 좁은 아파트와 넓은 아파트, 악취를 풍기는 주택과 호화주택에 대해 완전한 리스트를 작성할 것이다.

그들은 그 리스트를 자유롭게 서로 알려주어 며칠이면 완전한 통계를 가질 것이다. 거짓 통계는 사무실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정확한 진짜 통계는 개인으로부터만 즉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올라갈 때에만 나올 수 있다. 

이때 누구의 허가를 기다릴 것도 없이, 아마도 시민들은 누추한 집에 거주하는 동지들을 발견하게 되면 그들에게 즉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동지여, 이번에는 진정한 혁명이요, 오늘 저녁 이러저러한 장소로 오시오, 모든 구역의 사람들이 와서 아파트를 재분배받을 것이오, 만일 당신이 지금 사는 누추한 집에 싫증 났다면, 방 다섯 개짜리 아파트를 하나 고르시오. 그곳으로 이사하면 될 것이오, 당신을 쫓아내려는 자에게는 무장한 인민이 말할 것이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방 스무 개짜리의 아파트를 바랄 것이요!"라고 우리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인민은 물통 속의 달을 요구한 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인민이 부정을 고치려고 하는 것을 볼 때마다 그들이 양식良識과 정의감에 고취되어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감동한다. 인민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을 우리는 본 적이 있는가? 두 번의 포위 기간 동안 파리의 인민이 빵이나 땔감의 배급량을 둘러싸고 서로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이 나타낸 인내심을 외국 신문 기자들은 끊임없이 찬탄하였다. 그렇지만 이 인내심 있는 사람들도 제일 늦게 오는 자는 빵도 불도 없이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우리 사회의 혼자 행동하는 개인들에게는 많은 이기주의적 본능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본능을 일깨우거나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택 문제를 어떤 위원회에 맡기는 것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때에는 정말 모든 사악한 열정이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그 위원회에서 강력한 권한이 있는 자의 열정일 것이다. 아주 작은 불평등에도 고성이 오갈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아주 작은 이익이 주어지면 굉장한 고함소리가 터져 나올 것이다. 당연하다. 

그러나 인민 자신이 거리, 구역, 군별로 단결해 빈민가의 주민들을 부르주아의 넓은 주택으로 이주시키는 일을 한다면, 사소한 불편이나 작은 불평등은 쉽게 해결될 것이다. 대중의 좋은 본능에 호소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혁명 때 그런 일이 이따금 있긴 했다. 그것은 침몰하는 배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결코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언제나 이 호소에 위대한 자기희생으로 응답하였다. 

다음번 혁명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불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어떻게 해도 이기주의적인 구습을 버릴 수 없는 개인들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불의가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모든 역사, 모든 경험 그리고 사회심리학에 따르면 가장 공정한 방법은 문제를 당사자들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한다. 오직 그들만이 모든 관료주의적 재분배에서 누락되는 많은 사소한 일들을 고려하며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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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이상률

 

 

멸망하지 않으려면, 인간사회는 근본적인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 생산 수단은 인류의 공동산물이기 때문에, 그것은 인류의 공동재산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개인적으로 독차지하는 것은 올바르지도 않고 유익하지도 않다.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크로프트킨- 

 

 

I.아나키스트 공公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Pyotr Alekseyevich  Kropotkin(1842-1921)은 러시아출신의 지리학자이자 아나키즘운동가이다. 그의 사상은 미하일 바쿠닌(1814-1876)의 사상과 함께 19세기 후반 러시아 아나키즘을 대표하였으며, 20세기 초반에는 한중일 동아시아의 반反제국주의 아나키스트들과 독립운동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20세기 초는 프랑스 아나키즘 운동의 전성기였는데, 크로포트킨의 사상은 그 당시 파리에 거주하고 있었던 중국인 유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19017년 6월 잡지 《신세기新世紀》를 창간해 크로포트킨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소개하였다. 아들이 소개한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은 중국 아나키즘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특히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1902)은 중국의 초기 공산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 중국 공산주의가 인민주의적 성격과 윤리를 강조하는 특성을 갖는 데 기여하였다. 한편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한인 독립운동가들은 1920년대 초에 중국인 아나키스트들과의 교류를 통해 크로포트킨의 사상과 만났다. 그중에서도 단재 신채호(1880- 1936)는 크로포트킨의 영향으로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신채호는 석가, 공자, 예수, 마르크스와 함께 크로포트킨을 인류의 5대 사상가로 평가하였으며, 조선의 청년들에게 크로포트킨이 1907년에 발표한 《청년들에게 고함》을 읽어볼 것을 호소하였다. 일본에서는 사회주의자 고토쿠슈이스辛德秋水(1871-1911)가 크로포트킨의 저작을 읽고는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1909년에는 영역판 《빵의 쟁취》를 일본어로 번역하였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권위주의적 정당정치를 비판하며 아나키즘 운동을 주도하였다.

한편 재在일본 한인 독립운동가들은 1910년대 중반부터 일본인 아나키스트들과의 교류를 통해 아나키즘을 받아들였는데, 이 과정에서 부조론을 중심으로 한 크로포트킨의 사상과 접하였다. 

원래 귀족 출신이었는 데다가 이처럼 전 세계 아나키즘 운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사람들은 크로포트킨을 아나키스트공the Anarchist Prince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정작 본인은 권위주의적인 느낌이 있다는 이유로 이 별명을 싫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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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이 책은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Pyotr Alexseyevich Kropolkin(1842 1921)의 《빵의 쟁취》를 번역한 것이다. 번역의 대본으로는 출판사 다이얼렉틱스Dialectics(Saint Louis, Missouri, USA, 2013)에서 출간한 것을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아나키즘신문 《반란자Le Revolte》와 《반란La Revoite》(두 신문 모두 크로포트킨이 편집하였다)에 연재물로 발표하였으며, 1892년 파리(출판사: Trresse de Stock)에서 하나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불어책은 1906년에 영어로 번역되었고, 이 영역판은 1913년 통계수치가 보충되는 형태로 조금 수정되었다. 불어판의 머리말을 쓴 엘리제 르클뤼는 프랑스의 지리학자이자 아나키스트로 책의 제목도 제안한 크로포트킨의 동료였다.

《빵의 쟁취》는 정치이론과 아나키즘 사상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책으로 크로포트킨의 대표적인 저작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가 1902년에 세상에 내놓은 《상호부조》와 함께 아주 많은 독자를 얻었다. 크로포트킨은 《빵의 쟁취》에서 자본주의, 국가사회주의, 집산주의 등 여러 경제체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평등하며 자율적인 사회 즉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가를 서술한다. 그가 아나키즘적 공산주의라는 말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주창자 중 한 명으로 이 책에서 그 원리를 제시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의 산업 및 농업 생산력이 모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현대의 과학기술을 농업과 산업에 적용하면서 인간의 욕구에 근거해 생산을 재편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를 폐지하지 않으면 모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물자의 생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혁명이 필요하다. 

크로포트킨은 1789년, 1848년, 1871년의 프랑스혁명을 포함해 과거의 혁명들을 분석한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혁명은 단순히 지도자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성의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폭력을 폐지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오랫동안 길들여진 노예근성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행동하고, 상호부조와 과학을 통해 협동하며 전진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인민은 정치가나 지도자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이웃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생산수단을 사회화하고 공장, 상점, 학교, 주택 등을 자율적으로 운영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혁명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크로포트킨에 따르면,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사회는 인민 자신들에 의해 수행된 사회혁명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는 임시정부 또는 혁명적인 정당에 의한 과도적인 권력 장악을 거부하였다. 중앙집권적인 권력에 집착하며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를 표방한 볼셰비키정권에 대해서 그가 "혁명의 장송葬送"이라고 비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에 대해 그것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하나의 이상에 불과하다고 말할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영국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다음과 같은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먼저 이상理想은 당장에는 실행 가능성이 없더라도 올바르게 안내하는 데에는 언제나 필요하다. 시대상황이 필요로 하는(또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타협 속에 더 좋은 사회조직과 더 나쁜 사회조직에 대한 올바른 관념이 없다면, 그리고 순간의 요구를 넘어선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곧바로 가장 좋은 것을 으레 궁극적으로 가장 좋은 것과 동일시한다면, 진정한 진보는 있을 수 없다. 목적지가 아무리 멀어도, 종종 방해하는 장애물이 나타나 그 목적지를 향한 항로에서 우리를 이탈시키더라도, 그것이 어디쯤 있는지는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개인 대 국가》), 이책 242쪽).

 

2016년 5월 

이상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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