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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수필][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by 노지재배 2018.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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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책은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다. 


출판사는 「난다」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시집으로 유명한 박준 시인의 첫 번째 산문집이다.


덧붙여 이승기와 정소민이 주연을 맡았던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 등장한 책으로도 유명하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드라마에서도 그랬지만 실제로 책을 처음 봤을 때 눈, 코, 입이 모두 없는 인물들이 화폭을 채우는 표지와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참고로 표지 그림을 그린 사람은 이스라엘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 중인 화가 기드온 루빈이라는 화가다. 제목은 무제. 2018년 9월 한국에서 대규모 첫 전시가 있다고 한다. 표지 그림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가만가만 자기 이야기를, 감상을 풀어놓으면서도 독자를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드는 박준 시인의 시 같은 산문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 제목인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라는 구절 「고아」라는 제목을 단 글에 나온다.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위 글처럼 박준 시인의 산문들은 그냥 보면 큰 위로도, 웅변도 아니지만 가만히 읽어보면 왠지 찡하고 마음이 아리면서도 푸근해지는 힘이 있다.


중간중간 웃음 지으면서도, 산다는 게 만만치 않다는 데 동의하게도 만들고, 또 소외된 이웃들에게 관심 갖지 못하고 살아온 하루하루를 뒤돌아보게도 한다. 또 그런가 하면 책을 읽으면서 살포시 떠오르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을 때도 있는데, 작가가 그동안 보았던 유서 중에 가장 아름다운 유서라며 옮겨 놓은 아동 작가 권정생 선생의 유서를 읽을 때도 그러했다.

 


문학은 그 자체가 무엇을 위하거나, 무엇을 바꿀 수는 없다. 문학이 굶주린 사람에게 빵을 줄 수는 없지만, 굶주린 사람이 있다는 그 사실,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게 하는 것이 문학의 기능이라는 평론가 김현의 글이 생각난다.   



-문학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게 만드는 것이다.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기만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제목처럼 박준 시인의 글처럼,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될 것이다. 


하루하루 바쁘고 지치기만 하는 일상. 꼭 딱히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 없이 박준 시인의 산문과 함께 잠시 쉬며 같이 웃고 울어 보기를 추천한다.



■저자

 

박준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문학을 잘 배우면 다른 이에게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대학과 대학원에서 알았다.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펴냈다. 제31회 신동엽문학상 수상. 






■목차


들어서며-그늘 


1부

그해 인천 

그해 경주 

두 얼굴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새벽에 걸려온 전화―이문재 시인

기다리는 일, 기억하는 일

편지

그해 여수

아침밥

환절기

그해 협재

희고 마른 빛

벽제행

울음과 숨

꿈방

몸과 병

다시 지금은

고독과 외로움

여행과 생활


2부

내가 좋아지는 시간

그해 화암

그해 묵호

낮술

마음의 폐허

기억의 들판

해남에서 온 편지

울음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

소설가 김선생님

그해 혜화동

소리들

관계

답서

사랑의 시대


3부

봄 마중

작은 일과 큰일

다시 떠나는 꽃

그해 행신

알맞은 시절

일상의 공간, 여행의 시간

광장의 한때

극약과 극독

첫사랑

우산과 비

취향의 탄생

그해 삼척


4부

일과 가난

불친절한 노동

어른이 된다는 것

고아

초간장

그만 울고, 아버지

손을 흔들며

축! 박주헌 첫돌

중앙의원

순대와 혁명

죽음과 유서

내 마음의 나이


나아가며-그해 연화리





■책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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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한 문장 정도의 말을 기억하려 애쓰는 버릇이 있다. "뜨거운 물 좀 떠 와라"는 외할아버지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고 "그때 만났던 청요릿집에서 곧 보세"는 평소 좋아하던 원로 소설가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죄송스럽게도 두 분의 임종을 보지 못했으므로 이 말들은 두 분이 내게 남긴 유언이 되었다. 먼저 죽은 이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는 기억해두고 있는 말이 많다. "다음 만날 때에는 네가 좋아하는 종로에서 보자"라는 말은 분당의 어느 거리에서 헤어진 오래전 애인의 말이었고. "요즘 충무로에는 영화가 없어"는 이제는 연이 다해 자연스레 멀어진 전 직장동료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제 나는 그들을 만나지 않을 것이고 혹 거리에서 스친다고 하더라도 아마 짧은 눈빛으로 인사 정도를 하며 멀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 말들 역시 그들의 유언이 된 셈이다. 역으로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오늘만 하더라도 아침 업무회의 시간에 '전략' '전멸' 같이 알고 보면 끔찍한 뜻의 전쟁용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썼고 점심에는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에게 "언제 밥 먹자."라는 진부한 말을 했으며 저녁부터는 혼자 있느라 누군가에게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꼭 나처럼 습관적으로 타인의 말을 기억해두는 버릇이 없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에 꽤나 많은 말을 쌓아두고 지낸다. 어떤 말은 두렵고 어떤 말은 반갑고 어떤 말은 여전히 아플 것이며 또 어떤 말은 설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검은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유서처럼 그 수많은 유언들을 가득 담고 있을 당신의 마음을 생각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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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행


(…) 진짜 화장터에 처음 가본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당시 학교가 있던 종로에서 가장 집이 멀었던 준범이가 벽제에 살았다. 얼굴이 희고 눈이 크고 웃을 때에는 한 번만 웃지 않고 꼭 세 번씩 웃던, 준범이의 집은 벽제 화장터 근처 비닐하우스였다. 겉은 비닐하우스이지만 신기하게도 실내는 여느 가정집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준범이와 헤어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화장터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말고 언덕을 올라 주차장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그곳에는 스무 개가 넘는 화구가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웠고 아무 곳에서나 울고 있었다. 지하 식당에는 우거지탕을 먹는 사람들이 있었고 화장을 마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떠나는가 싶더니 곧 다른 버스에서 눈이 부은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시기의 일기장을 펴보았는데 내가 화장터에 간 날은 2000년 4월 5일이었다. "만약 다시 벽제에 가게 된다면 그것은 최대한 아주 먼 미래였으면 한다"라는 문장이 있었고 "그래도 사람의 마지막이 크고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진 관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라는 문장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희망과는 달리 나는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벽계로 가야 했다. 슬프지만 앞으로도 몇 번은 더 가야 할 것이다. 그래도 어느 깊은 숲에서 잘 자란 나무 한 그루와 한 시절을 함께했던 사람들의 슬픔 속에 우리들의 끝이 놓인다는 사실은 여전히 다행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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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마중


해남 보성 순천 여수 광양 하동 남해 진주 통영 거제 부산 제주 어디가 되었든 늦겨울, 남행南行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봄을 먼저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 시기의 남행은 봄 마중이다. 어차피 가만있어도 오는 봄을 굳이 먼 길을 내려가면서까지 먼저 만나볼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던 그리운 이가 있다면 그가 곧 올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공항이나 터미널 같은 곳까지 마중을 나가지 않는가.

마중을 나가서는 고개를 길게 빼두고 눈빛도 조금 멀리 두고 상대를 기다리지 않는가. 그러다 상대와 눈을 마주치고는 웃음을 지어 보이곤 하지 않는가 막 들기 시작하는 봄빛처럼,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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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과 큰일


산의 맨 이마를 덮어두는 구름처럼 요즘 나는 손으로 내 이마를 자주 짚어본다. 더러 미열을 앓는 날도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마에 손이 포개어질 때의 촉감은 손보다는 이마에서 더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손으로 코를 만질 때와 손으로 어깨를 잡을 때, 혹은 손으로 무릎을 긁을 때와는 달리 이마를 덮으며 손은 애써 감각을 양보하는 듯하다.

아마 이것은 오래된 습관이 만들어냈을 터이다. 대부분 우리의 이마를 짚어오는 손은 자신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 상대의 다정한 손인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고, 거꾸로 자신의 손을 이마에 포갤 때 그 이마는 내 것이 아니라 애정을 갖고 있는 상대의 것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무슨 커다란 발견인 양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사실 이것은 한없이 작은 일이다. 하긴 나는 이렇게 사소하고 작은 일들을 좋아한다. 밤새 내린 눈으로 산이 하얗게 변하는 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흰 산을 눈에 넣으며 감탄하는 일, 따듯한 물에 언 발을 담그는 일,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일, 우리와 함께하는 작은 일들은 모두 나열할 수 없을 만큼 흔한 것이다.

그런데 간혹 이런 작은 일들이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 오래 자란 나무가 갑자기 베어지는 일, 땅이 집을 잃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 자유롭게 흐르던 강물이 갇히는 일, 인간의 노동이 노동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일, 누군가의 죽음이 애도되지 못하는 일… 작은 일들은 작은 일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삼월도 지났다. 누구에게는 작은 일처럼 또 누구에게는 큰일처럼 사월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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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한 노동


아버지는 한평생 노동자로 살았다. 한국전쟁 중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아버지의 첫 노동은 쥐약을 먹고 죽은 개의 사체를 찾아 동네 어른들에게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죽은 개를 손질해 내장은 버리고 살코기를 몇 번이고 물에 씻어 삶아 먹었다. 들짐승도 없고 그렇다고 가축을 잘 키우지 않는 사대문 안 동네에서 가난한 이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큰 개의 사체를 찾은 날이면 아버지는 평소보다 몇 푼의 돈을 더 받아 쥐었다.

(…) 1965년 아버지는 메리야스 공장에 취직을 해 10년 넘게 일한다. 평시에는 2교대로 근무하고 일감이 떨어지는 단오端午부터 가을까지는 무급휴가를 주는 곳이었다. 전태일 열사가 인근 평화시장에 찾아든 것이 그 이듬해이니 꼭 아버지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나는 당시 그곳의 노동환경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서른 무렵부터 구청 기능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아버지의 삶은 조금 깊이 말하고 싶다. 아버지는 환경미화원들이 동네 골목을 돌며 리어카로 수거해온 생활쓰레기를 트럭에 싣고 난지도 매립지를 오갔다. 그때는 나도 종종 따라나선 적이 있다. 어린 눈으로 보았던 난지도는 사막 같았다. 커다란 쓰레기 더미들이 사구砂丘처럼 하루에도 몇 개씩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광활하고 삭막한 난지도의 풍경보다 더 선명한 기억으로 남은 것은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던 넝마주이들이었다.

넝마주이들은 난지도 입구에서 호객을 하듯 아버지의 트럭을 불러 세웠다. 이미 큰 산이 되어버린 그곳을 걷지 않고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해가 질 무렵 그들은 다시 아버지의 트럭을 얻어 타고 경사진 길을 내려왔다.

내가 아버지를 따라나선 날이면 넝마주이들은 낮 동안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낸 로봇 장난감 같은 것을 내 손에 쥐어 주곤 했다. 하나같이 팔이나 다리 한쪽이 떨어져 나간 것들이었다. 언제 한 번은 한쪽 눈이 없는 봉제 인형을 건네받은 적도 있었다. 그것을 본 아버지는 작은 단추로 없었던 인형의 한쪽 눈을 만들어주셨다.

2002년이 되자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난지도는 생태공원이 되었으며 넝마주이들이 살던 상암동에는 월드컵경기장이 지어졌다. 그리고 여전히 아버지는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어린 시절 보았던 난지도의 풍경을 찾아보려 관련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1978년 생겨난 난지도 매립장은 1992년 영구 폐쇄되었다. 90만 평의 부지 중 실제로 쓰레기를 매립, 매축할 수 있는 면적은 55만 평 정도였다. 다시 이것은 서울 시내 각 구청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20만 평의 땅과 청소대행업 차량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35만 평으로 분할되었다. 재건대원이라 불리기도 하던 넝마주이들은 약 3천여 명까지 불어났다. 여러 이권들이 개입하면서 고물을 줍는 것에도 권리금이 생겨났는데 강남구, 종로구같이 상류층이 주로 거주하는 동네가 두 배 정도 값이 더 나갔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 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는 평소 잘 들어오지 않는 내 방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시험을 치르지 말라고 했다. 내일 시험을 보면 대학에 갈 것이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을 공산이 큰데,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너무 불행하고 고된 일이라고 했다. 더욱이 가족이 생기면 그 불행이 개인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번져나가므로 여기에서 그 불행의 끈을 자르자고 했다. 절을 알아봐 줄 테니 출가를 하는 것도 생각해보라고도 덧붙였다. 당시 나는 그 길로 신경질을 내며 아버지에게 나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과 삶에 지친 날이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에서 설핏 가난을 느낄 때면 나는 그때 아버지의 말을 생각한다.

근대 이후 인간이 해야 하는 노동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관념적으로는 꽤나 신성한 가치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특히 누가 해도 비슷한 수준의 결과를 내는 노동의 직종들은 한없이 천대받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은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시를 쓰며 나는 여러 번 아버지의 노동을 작품 속에 등장시켰다. 시에서 아버지는 진폐증으로 죽은 태백의 광 부로 등장하기도 하고, 마을버스와 덤프트럭을 몰고, 연탄을 나르거나 실직 후 파주에서 혼자 살고 있는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어떤 것은 사실이고 어 떤 것은 사실이 아니다.

한 번은 태백에 살고 있는 한 독자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자신의 아버지도 광부로 살다 진폐증으로 돌아가셨다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편지였다. 반가움과 슬픔이 함께 묻어나는 그 편지에 대한 답서를 적었다. 편지의 말미에는 아래와 같은 글을 적었다. 

죄송한 일이지만 저희 아버지는 사실 광부로 산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직 생전에 계십니다. 태백과 광부가 등장하는 시는 몇 해전 광산에 대한 글을 청탁받고 취재를 하며 구상한 것입니다. 취재를 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갱도 일을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광부들이 모두 웃고 있던 것입니다. 소리 내어 웃는 것은 아니지만 미소를 지으며 드러내 보이는 흰 이가 참 환했습니다. 제가 왜 웃고 계시냐고 물었을 때 그분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일이 끝났으니 웃는다고 답했습니다.

광부의 삶과 저희 아버지의 삶은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하루 일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렇고 생의 대부분을 노동과 다음 노동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보내는 것도 그렇습니다. 수면욕, 식욕 같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만을 채우기 급급하다가 나이가 들어 병을 얻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 땅의 노동자들은 기약 없는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한 번 시작된 일의 끝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처럼 적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여러 사실들을 모아 희미하게나마 진실의 외연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죄송한 마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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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


(…) 저는 근대화된 조국의 특혜(?)를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제가 태어난 해에 국민소득이 2천 달러,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해에 6천 달러, 졸업하던 해에는 1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건강 위해 혼식하고 경제 위해 분식을 한 적도 혹은 '쥐를 잡자' 표어 아래 쥐꼬리를 학교에 가져다 낸 적도 없는 세대입니다. '보릿고개'나 '꿀꿀이죽'은 한참 더 먼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배고픈 거 모르고 살았습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덕에 집에 밥이 없는 날은 허다했지만 집에 쌀이 떨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환경호르몬이 검출된 컵라면을 간식으로 먹으면서 자랐습니다. 도시락 반찬으로는 아질산나트륨과 소르빈산칼륨이 가득 들어간 햄을 좋아했습니다. 친구들과 석면이 피어 있는 지하 보일러실에서 뛰놀았고 아토피 피부염과 비염도 오래 앓아왔습니다. 카드뮴, 수은, 세레늄, 비소, 크롬, 납, 불소, 포름알데히드 같은 것들도 지천에 널려 있었습니다. 내리는 것은 산성비이고 부는 것은 황사였습니다 당신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조국 근대화가 나쁘고 잘못되고 틀렸습니다. 조국 근대화라는 정언명령이 도시와 자연을 망쳐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식과 상상력까지 갈아엎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컵에 담긴 물과 흐르는 강물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과 탄소와 나무의 관계도를 그려내지 않습니다. GMO 식물들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잘 재배된다는 사실을 알아도 크게 놀라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얘기하는데 강들을 좀 놔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환경학자들은 머지않아 강들이 스스로 말라갈 것이라 예측합니다. 해수온도가 상승하는 현재 추이로 볼 때, 해안 지대에는 태풍, 해일, 기록적인 폭우와 홍수가 이어질 것입니다. 해안에 비를 다 뿌린 구름은 내륙 지방에 지독한 가뭄을 가져다 줄 테고요. 지금처럼 기를 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강은 우리를 곧 떠날 거라는 말입니다. 그때에도 여전히 갑문 사이로 지나가는 배나 로봇 물고기가 뛰노는 광경이 보고 싶다면 다 말라버린 땅에 인공 강을 만들든지 하면 될 것입니다.


글의 앞머리에서 아버지의 세발자전거를 잠깐 이야기했었는데요. 그때가 1953년이나 1954년 즈음입니다. 당시 며칠씩 생으로 굶던 처지의 어린 아버지가 갖기에는 값비싼 물건입니다. 그 자전거는 사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한 물건이었습니다. 며칠씩 울기만 하는 아들이 불쌍했는지 할아버지가 선물해준 것이 지요. 분명 자전거도 좋았겠지만 '엄마'라는 것이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인가요.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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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유서


시를 짓는 일이 유서를 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아마 이 것은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고, 이 숱한 사라짐의 기록이 내가 쓰는 작품 속으로 곧잘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사라지는 것들의 유언을 받아 적는다는 점에서 나의 시는 창작보다는 취재나 대필에 가깝다. 여주 이포보에서는 남한강의 유언을 상주보에서는 낙동강의 유언을 받아 적었다.

부산 영도의 크레인 밑에서는 자본에 맞아 죽은 노동의 곡소리를 들었고, 제주 강정마을에서는 구럼비의 주검을 만져보았다. 내가 그곳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유서를 시라는 장르를 통해 대필하는 일이었다.

물론 나도 직접 유서를 써 본 일이 있다. 군대에서였다. 신병 훈련을 마친 나는 군용 트럭에 실려 어딘가로 자꾸 가고 있었다. 포천을 지나고 나니 넓은 평야가 눈에 들어왔다. 철원이었다. 자대에 가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손톱을 깎고 유서를 쓰는 것이었다. 전쟁이 발발하면 죽기에 바쁠 것이므로 이곳에서는 미리 유서를 써두어야 한다고, 내 양말과 속옷에 중대와 소대 이름을 적어주며 고참이 말했다. 고참은 탈영을 하고 싶으면 무조건 남쪽으로 걸어야 하고, 부대 주변에 아직 지뢰가 많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도 친절하게 덧붙여주었다 물론 이런 말들은 신병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모르고 있던 당시의 나는 꽤 심각했다. 천천히 유서를 적어내려 갔다. 노트 두 장을 꽉 채웠지만 내용은 별게 없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고맙다, 미안했다. 사랑한다'의 반복이었다. 함께 유서를 적은 동기들의 유서 또한 내 유서의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이후 전역을 하고는 몇 통의 유서를 더 본 적이 있다. 다행히 자살 시도에 그친 이들의 유서도 있었고 안타깝게도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사람의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 유서들의 내용 또한 핏발 서린 분노와 원망보다는 고마움과 미안함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어쩌면 유서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넘어 자신이 스스로의 죽음을 위로하고 애도하는 것이므로. 얼마 전 일부 복직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7년의 시간을 견뎠다. 그것은 죽음보다 죽음에 가까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26명의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중 절반 이상이 자살을 했고 상당수가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등졌다.

그들이 유서조차 남기지 못한, 그래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분노와 슬픔과 죄책감에 빠지게 만든 세상에서 우리는 잘도 살아간다. 사람이 사람을 잃은 세상, 노동이 노동을 잃은 세상, 법이 법을 잃고 강이 맑음을 잃은 세상에서, 도처가 죽음으로 가득하지만 애도와 슬픔에까지 정치성을 들이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내가 사라지는 것들의 말을 받아 적는 이유는 그들의 사라짐을 붙잡아 화석처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조금 잔인하게 말하자면 나의 시는 충분한 애도와 슬픔을 통해 숱한 사라짐들을 완전히 잊기 위함이다. 한 존재가 온전히 존재하려면 온전히 소멸해야 한다. 우리가 존재했다는 것을 아무도 인식하지 못할 때 '영원'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발음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동안 보았던 유서 중에 가장 아름다운 유서, 아동 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 일부를 이 글의 유서처럼 옮겨 둔다(재단법인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홈페이지 참고).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 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길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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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빛이 늘어지는 오후에도 상점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수밀원 꽃집.

얼굴에 큰 화상 흉터가 있던 주인아저씨는 동네 형들의 이야기처럼 밤에 혼자 걷는 아이들의 입을 분재가위로 찢을 것이 분명했다. 심부름 봉지를 들고 꽃집 앞을 냅다 내달려야 했던 날들이 다 흘러가고.

오래전 그 길에 떨어뜨린 동전을 찾듯 수밀원 앞에서 머뭇거리다 너의 앞니 같은 안개꽃 다발을 들고 나와 입이 찢어져라 웃었던.

마냥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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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한때


누구인가를 만나고 사랑하다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엇인가 모르는 구석이 생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의 세계 속에서 자라는 상대가 점점 울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 이 것은 내가 상대의 세계로 더 깊이 걸어 들어왔다는 뜻이다 단칸방 투룸, 반지하, 옥탑 혹은 몇 평이라고 말하며 우리들의 마음을 더없이 비좁게 만드는 현실 세계의 공간 셈법과 달리 사랑의 세계에서 공간은 늘 광장처럼 드넓다.

이 광장에서 우리가 만나고 길을 잃고 다시 만나고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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