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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교정][교열][문장]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교정 교열 장인의 내공을 들여다본다

by 노지재배 2017.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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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할 책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이다.


저자인 김정선 작가는 는 20년간 교정 교열 일을 하며 남의 문장을 다듬고 살아왔다. 교정 교열로 먹고살아 온 저자가 문장과 씨름하며 터득한 올바른 문장을 쓰는 법을 담은 책이다. 부제로는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을 달고 있다.


내 분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작가는 이 책을 출판한 유유 출판사에서 앞서 『동사의 맛』을 내놓은 바 있다. 『동사의 맛』은 전문 교정자인 저자가, 동사를 제대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책이 마땅치 않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저술한 책이다. 최근에는 만화로 만든 『동사의 맛』 이 따로 출판될 만큼 인기 있는 저작이다. 앞선 리뷰가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동사의 맛 – 동사만으로 차린 먹음직스러운 우리말 상차림



책은 앞선 『동사의 맛』과 마찬가지로 두 갈래로 진행된다. 하나는 교정 교열 일을 하는 '나'와 '함인주'라는 저자가 이메일 대화와 만남을 통해 '문장'과 교정 교열에 관한 견해를 주고받는 내용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교정 교열 전문가인 저자가 문장을 다듬고 고칠 때 유의해서 봐야 할 주요 문제점을 다루는 내용이다. 이처럼 소설적인 이야기와 전문적인 교정 교열 지식이 교차되면서 진행되는 책의 형식은 저자의 전작이었던 『동사의 맛』 에서 시도됐던 것이다. 다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동사의 맛』 에서와 달리 이번 책에서 삽입된 이야기는 교정 교열을 다룬 내용과 좀 따로 논다거나 현학적인 취향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교정 교열과 관련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문장을 다듬는 일에 무슨 법칙이나 원칙 같은 게 있는 것처럼 말할 수는 없다. 이제껏 수많은 저자들의 문장을 다듬어 왔지만, 내가 문장을 다듬을 때 염두에 두는 원칙이라고는, '문장은 누가 쓰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순서에 따라 쓴다'뿐이다. 나머지는 알지 못한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건 아니다.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기준 삼아 남의 문장을 손보는 것도 물론 아니다. 문장 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문장을 어색하게 만드는 표현들은, 오답 노트까지는 아니어도 주의해야 할 표현 목록쯤으로 만들 수 있다. 바로 그 주의해야 할 표현 목록을 이 책에 담았다."



20년 교정 교열 경력의 저자가 담았다는 바로 이 '주의해야 할 표현 목록'은 어색한 문장을 살짝만 다듬어도 글이 훨씬 보기 좋고 우리말다운 문장으로 바꾸는 비결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마따나 '문장을 다듬는 일에 무슨 법칙이나 원칙 같은 게 있는 것처럼 말할 수는 없'듯이 책 속 대부분의 교정 교열 사례는 수긍이 가는 이야기들이지만, 일부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만드는 부분에서의 교정 교열 과정에서는 다소 저자와 견해를 달리할 수도 있다.




저자는 좋은 문장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필요 없는 요소를 가능한 대로 덜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로 예를 드는 것이 바로 '-적, -의, 것, 들'과 같은 말이다. 이러한 군더더기만 빼도 문장이 훨씬 좋아진다. 더불어 요즘 많이 보이는 군더더기 표현으로는 '있다(있다, -관계에 있다, -에게 있어, -하는 데 있어, -함에 있어, 있음(함)에 틀림없다)'를 남발하거나 '같다'라는 말로 단정적인 표현을 회피하는 경우 등을 들었다.


책에서 또 많은 부분을 할애해 다룬 내용은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과 처소나 방향을 나타내는 부사의 쓰임 등이다.


더불어 저자는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는 표현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고 있다. 이를 아무런 고민 없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에 대한(대해)

-들 중 한 사람, -들 중(가운데) 하나, - 들 중 어떤

-같은 경우

-에 의한, -으로 인한



또한, 부사의 사용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의 차이점과 사용에 유의하라고 조언한다.


'-에'와 '으로(로)'의 구분

'-에'와 '-을(를)'의 구분

'-로의'나 '-에게로', '-(으)로부터'와 같은 조사 겹침

'-에'와 '-에게', '-에게서'의 구분



이 밖에도 책에서는 문장을 쓸 때 주의해야 할 사동형과 피동형 문장, '시키다'의 남발 문제, 지시 대명사의 사용 등도 다루고 있다. 특히, 흔히 주격 조사로 불리는 '-은,-는,-이,-가'가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 가'만이 주격 조사고 '은, 는'은 보조사라는 지적은 눈여겨볼 만하다. 말하자면 주격 조사 '이, 가'가 붙는 낱말은 문장 안에서 주어의 자격을 갖게 되고, 보조사 '은, 는'이 붙는 낱말은 문장 안에서 주제, 곧 화제의 중심이 된다 게 저자의 설명이다.


바른 우리말 표현에 관심이 있는 독자나 글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20년 교정 교열 숙수의 '상차림'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 저자



저자 김정선은 20년 넘게 단행본 교정 교열 일을 했으며, 2000년부터는 외주 교정자로 문학과지성사, 생각의나무, 한겨레출판, 현암사, 시사IN북 등의 출판사에서 교정 교열 일을 했다. 




■ 목차


머리말 문장을 다듬는 시간

첫 번째 메일: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적·의를 보이는 것·들 ① 

함인주 

적·의를 보이는 것·들 ② 

편견 

적·의를 보이는 것·들 ③ 

답장 

적·의를 보이는 것·들 ④ 

감기 

적·의를 보이는 것·들 ⑤ 

꿈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① 

두 번째 메일: 뭔가 오해를 하신 모양이네요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② 

국수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③ 

교정지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 ① 

수건 돌리기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 ② 

기억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 ③ 

함인주의 문장 ①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 ④ 

함인주의 문장 ② 

내 문장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① 

함인주의 문장 ③ 

내 문장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② 

당신 문장은 이상합니다 

내 문장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③ 

손사래 

내 문장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④ 

도서관

당하고 시키는 말로 뒤덮인 문장 ① 

세 번째 메일: 내 문장을 쓴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당하고 시키는 말로 뒤덮인 문장 ② 

네 번째 메일: 몸에 새기는 문장 

당하고 시키는 말로 뒤덮인 문장 ③ 

답장: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문장 

당하고 시키는 말로 뒤덮인 문장 ④ 

다섯 번째 메일: 이해한 자 오해한 자 

사랑을 할 때와 사랑할 때의 차이 

답장: 이젠 없는 나와 아직 없는 나 

될 수 있는지 없는지 

강연 

문장은 손가락이 아니다 ① 

만남 

문장은 손가락이 아니다 ② 

다시 함인주 

과거형을 써야 하는지 안 써도 되는지 

지구인의 귀가 

시작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마지막 메일: 용서하세요 

말을 이어 붙이는 접속사는 삿된 것이다 

마지막 답장: 당신은 쓰고 나는 읽습니다 

문장 다듬기 ① 

가을의 끝 

문장 다듬기 ② 





■ 책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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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를 보이는 것·들


선배들 어깨너머로 교정 교열 일을 막 배우던 무렵, 머릿속에 문구 하나를 공식처럼 기억하고 다녔더랬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



접미사 '-적'的과 조사 '-의' 그리고 의존 명사 '것', 접미사 '-들'이 문장 안에 습관적으로 쓰일 때가 많으니 주의해서 잡아내야 한다는 뜻으로 선배들이 알려 준 문구였다. 실제로 예전엔 문장에 '적, 의, 것, 들'이 더러는 잡초처럼 더러는 자갈처럼 많이도 끼어 있었다. 잡초를 뽑아내고 자갈을 골라내듯 하도 빼다 보니 교정 교열자에게 '적의를 보이게 된 것들'이라는 뜻이기도 했고, 이쪽에서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


문제는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쓰는 데 있다. 어떤 표현은 한번 쓰면 그 편리함에 중독되어 자꾸 쓰게 된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니 아예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편리함의 중독자인지 살피라는 것뿐이다. 


(...)


의존 명사 '들'은 한자어로 치면 '등'等에 해당한다. (...) 대개의 경우 '-들, -들, -들'을 붙여서 좋을 건 없다. 예전엔 편집자들이 '-들'을 반복해서 쓴 원고를 '재봉틀 원고'라고 부르게도 했다. '들들들'만 눈에 띄니 마치 재봉틀로 바느질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였다. 그만큼 우리말 문장에서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 '-들'은 조금만 써도 문장을 어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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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주격 조사로 대부분 '이, 가'를 쓴 것이 특이했다. 흔히 주격 조사 하면 '은, 는, 이, 가'를 꼽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 가'만이 주격 조사고 '은, 는'은 보조사다. 사전에서는 '이, 가'에 대해 '어떤 상태나 상황에 놓인 대상, 또는 상태나 상황을 겪거나 일정한 동작을 하는 주체를 나타내는 격 조사. 문법적으로는 앞말이 서술어와 호응하는 주어임을 나타낸다'라고 설명했고, '은, 는'은 '문장 속에서 어떤 대상이 화제임을 나타내는 보조사'라고 풀어놓았다.

말하자면 주격 조사 '이, 가'가 붙는 낱말은 문장 안에서 주어의 자격을 갖게 되고, 보조사 '은, 는'이 붙는 낱말은 문장 안에서 주제, 곧 화제의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 가령 '모두가 예전 그대로였다'라는 문장에서 '모두'는 주격 조사 '가'가 붙어 주어의 자격을 갖는 반면 , '집'은 보조사 '은'이 붙어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서 '내가 말했다'와 '나는 말했다'는 다른 뜻을 갖는 문장인 셈이다. '내가 말했다'에서 '나'가 '말했다'라는 서술어의 주인이라면 '나는 말했다'의 '나'는 화제의 중심이다. '내가 말했다'는 그나 그녀, 그들이 아닌 바로 '내가' 말했다는 뜻이라면, '나는 말했다'는 다른 사람들은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말했다는 뜻이랄까.

물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나 '지구는 둥글다'처럼 바뀔 수 없는 명확한 사실을 말할 때 쓰는 '은, 는'도 보조사다. 하지만 내'가'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나가 지구를 본다면 아마도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지구'가' 둥글어, 내'가' 지금 보고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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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5천 원이십니다


모 일간 신문에 존칭을 나타내는 선어말 어미 '-시-'가 잘못 쓰인 예들이 실린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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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임말에 쓰이는 선어말 어미 ‘-시-'는 원래 동사에 붙는다. '가세요, 오세요, 드세요, 말씀하세요, 누우세요, 걸으세요'처럼 주로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에 붙여 그 주체를 높일 때 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용사에 쓰는 것도 허용될 때가 있다. 이른바 간접 높임말을 쓸 때다. 가령 '피부가 깨끗하시네요', '눈이 높으시군요', '손주 보시니까 좋으시죠?' 등으로 쓸 때다. 하지만 가끔은 그 간접의 경계가 분명치 않아서 지나치다고 느껴질 때도 많다. 가령 '옳으신 말씀입니다', '이 요양 병원에는 연세 드신 분들이 많으십니다' 같은 표현이 제대로 높인 경우인지 아닌지 가리기가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앞에 열거한 문장들이 어색하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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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렇게 써야 맞는다. 아마 말은 달리 해도 문장으로 적어 놓으면 어색한 표현이라는 걸 누구나 금방 알 수 있으리라. 그런데도 이렇게 잘못된 높임말을 많이 쓰는 이유는 뭘까? 그만큼 이 사회에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강도 또한 세졌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니 아무 데나 '-시-'를 붙여 쓰는 건 일종의 비아냥거림이자 비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굳이 높이지 않아도 되는 것에 높임말을

썼는데도 듣기 좋은 경우가 있다. 가령 어르신들이 몸이 찌뿌드드할 때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시는 말씀.

"비가 오시려나."

혹은 하대를 해도 무방한 상대에게 높임말을 쓸 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이럴 때 높임을 뜻하는 선어말 어미 '-시-'는 '시'詩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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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이어 붙이는 접속사는 삿된 것이다


김훈의 소설을 읽을 때면 공연한 걸 확인하게 된다. 가령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같은 접속 부사가 얼마나 쓰였는지 흑은 보조사 '은, 는'과 주격 조사 '이, 가' 중 '이, 가'가 얼마나 많이 쓰였는지 따위들. 소설을 읽을 생각은 않고 엉뚱한 계산만 한다.

『남한산성』을 읽을 땐 400여 쪽에 이르는 소설에서 딱 한 번 '그러나'가 노출된 것을 보았는데,『흑산에서』는 열다섯 개를 찾았다 『남한산성』에 비하면 훨씬 많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놀라운 숫자다. 미처 '이, 가'의 숫자까진 헤아리지 못했지만, 김훈의 소설에서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한 '이, 가'가 튀어나오는 일은 드물다.

접속 부사는 삿된 것이다. 그건 말이라기보다 말 밖에

서 말과 말을 이어 붙이거나 말의 방향을 트는 데 쓰는 도구에 불과하다. 말을 내 쪽으로 끌어오거나 아니면 상대 쪽으로 밀어붙이려는 꼼수를 부릴 때 필요한 삿된 도구. 그러나 말이 이야기가 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이야기란 원래 삿된 것이니까.

김훈은 좀처럼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세상의 삿된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 삿된 세상에 대해 말하려고 애쓴달까, 삿된 세상은 삿된 말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게다가 삿된 말들은 삿된 방식으로 이리저리 뒤틀리고 접붙여지기 일쑤다.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로 기워진 말들의 허접함이, 말하는 자 혹은 말해야 하는 자를 비참하게 만들 때 세상은 삿되다. 그 삿된 세상에서 주체는 오로지 주어의 자리를 차지하는 주격으로만 존재한다. '이, 가'가 지시하는 바로 그 대상. 서술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책임지지 못하는 주어로서만 '기능;하는 주체들. '나는 누구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말해 준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정의하기보다 성질과 취향이 대신 말해 주기를 바라는 주어들. 삿된 세상은 그런 주어들로 가득하다.

삿된 주어들은 지시 대명사나 인칭 대명사로 가리켜지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 그녀, 그것 그들. 김훈은, 소설 문장에선 금기시하는 반복된 호명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체를 오직 이름으로만 불러낸다. '그'라거나 '그녀'라는 삿된 대명사를 좀처럼 쓰지 않는다. 주어라면 모를까 주체는 손가락질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리라 그리고 김훈의 주체는 주어와 달리 첩질을 하지 않는다. 서술어를 여럿 거느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주어 하나에 서술어 하나, 서술어가 둘 이상일 땐 주어를 반복해서 쓴다. 밥이 차가운 데다 되기까지 해서 씹어 삼키기가 힘들었다'라는 문장이라면 김훈은 아마도 '밥은 차갑고, 차가운 밥은 차지지 못해서 밥을 삼키는 목은 그 차가움과 차지지 못함을 그대로 받아내느라 서럽고 처량했다'라고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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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다듬기 ①


문장을 쓸 때 유의해야 할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주어가 호응하도록 배치해야 하고 관형사나 부사처럼 꾸미는 말은 각각 체언과 용언 앞에 제대로 놓아야 하

며 수와 격을 일치시켜야 하는 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 너무 당연해서 원칙이라고 여기지 못하는 원칙, 그건 누구나 문장을 쓸 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써 나간다는 것이다.

이 말은 누구나 문장을 읽을 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읽어 나간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실제로 문장을 읽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그러니 문장을 쓰는 방법도 그와 다를 수 없다.

더군다나 한글 문장은 영어와 달리 되감는 구조가 아니라 펼쳐 내는 구조라서 역방향으로 되감는 일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풀어내야 한다. 영어가 되감는 구조인 이유는 관계사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관계 부사나 관계 대명사를 통해 앞에 놓인 말을 뒤에서 설명하며 되감았다가 다시 나아가는 구조가 흔할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어에서 관계사라고 할 만한 건 체언에 붙는 조사밖에 없다. 따라서 한글 문장은 되감았다가 다시 나아갈 이유가 없다.



The man who told me about the murder case that had happened the other day was found being dead this morning.


일전에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 준 그

남자가 오늘 아침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앞의 영어 문장이 관계사를 중심으로 두 번이나 되감기면서 의미를 확장해 나아갔다면, 한글 문장은 계속 펼쳐졌다. 영어 문장이 되감기는 공간으로 의미를 만들었다면 한글 문장은 펼쳐 내는 시간으로 의미를 만든 셈이다. 그러니 한글 문장은 순서대로 펼쳐 내면서, 앞에 적은 것들이 과거사가 되어 이미 잊히더라도 분장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문장 요소들 사이의 거리가 일정해야 한다



계속 걸어간 나는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나는 계속 걸어서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첫째 문장은 주어인 '나'를 수식하는, 동사 '걸어가다'의 관형형 '걸어간'과 그걸 수식하는 부사 '계속'이 만든 문구 '계속 걸어간 나는'이 만드는 거리와, 그 뒤로 이어진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가 만드는 거리가 다르다. 앞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밭은 느낌이다. 이렇게 거리가 일정하지 않으면 뭔가 펼쳐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둘째 문장처럼 거리가 일정하게 펼쳐 낸 경우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해진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장의 주인이 문장을 쓰는

내가 아니라 문장 안의 주어와 술어라는 사실이다. 문장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면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넘어가게 되거나(왜냐하면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문장의 기준점을 문장 안에 두지 않고 내가 위치한 지점에 두게 되어 자연스러운 문장을 쓰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이라고 쓰는 순간 글을 쓰는 나는 이미 자신과는 다른 나를 창조하는 셈이다. 인형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자신의 인형에게 이름도 지어 주고 옷도 입혀 주고 집도 지어 주는 것처럼 내가 쓰는 문장의 주인에게 나 또한 적당한 거처를 마련해 주고 성격도 부여해 주고 할 일도 만들어 주어 야만 한다. 그래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온전하게 펼쳐지는 글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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