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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플롯][서사] 소설과 드라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서사 패턴 959』

by 노지재배 2018.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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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책은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 패턴 959』라는 책이다. 출판사는 아시아다.


소설가 방현석이 쓴 책으로 오랜 시간 동안 인류를 사로잡았고 앞으로도 인류와 함께할 서사 예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다룬 책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실제 소설뿐만 아니라 시나리오 집필 등을 통해 영상미학에도 조예가 깊은 작가다. 


특히, 국내 독자들에게 익숙할 만한 한국문학 작품이나 세계문학 작품을 예로 들고 있어 외국인들이 쓴 창작기법서나 플롯 분석서와 비교해 읽기 편하고 이해도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서사 예술 장르로서 소설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 등에도 같은 분석 기법을 적용해 '논픽션'을 '픽션'으로 만드는 플롯의 기술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작가의 말마따나 사람들은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지어낼 줄 알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모두 소설이나 드라마가 되는 것도, 뛰어난 이야기꾼이 모두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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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빈번하게 개입하는 우리의 일상과 무질서가 횡행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여럿이 모여 수다를 떨기에는 충분한 이야깃감이지만 서사 예술이 되지는 않는다. 저마다 가진 소중한 사연이 소설과 영화, 드라마, 뮤지컬과 같은 서사 예술로 만들어지려면 매혹과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한 내밀한 질서를 갖추어야 한다.

이야기를 서사 예술로 바꾸는 내밀한 질서의 핵심은 서사 패턴이다. 이 책은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 연출자, 감독, 프로듀서를 위한 서사 창작방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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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처럼 논픽션이 픽션이 되기 위해서는 우연과 요행이 아닌, 작가의 철저한 계산에 따른 이야기의 재배열 또는 흥미로운 이야기의 규칙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는 "훌륭한 작가는 드러난 이야기의 배후에서 보이지 않는 질서를 만드는 장인"이라고 강조한다. 곧, "서사 예술은 혼란과 모순으로 가득한 이야기에 질서를 부여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장인들에 의해서 탄생한다"는 것이 작가의 말이다.


이처럼 개성적인 인물과 흥미로운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 질서 체계에 의해 튼튼하게 뒷받침될 때 매혹적인 서사가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매력적인 이야기를 완성하는 9가지 유형의 첫 장면과 5가지 유형의 마지막 장면, 9가지 유형의 플롯으로 나누어 서사 패턴을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창작방법론이 지닌 특징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패턴별로 대표적인 소설과 영화, 드라마, 신화와 민담을 예로 들고 있다. 특히나 예로 들고 있는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작품이 국내 독자들에게 대부분 익숙한 작품들이어서 책의 효용가치를 더욱 높인다.


끝으로 작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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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패턴을 어떻게 시작 장면의 유형 9개, 마지막 장면의 유형 5개, 플롯의 유형 9개로만 나눌 수 있겠는가? 만 편의 영화가 있다면 거기에는 만 개의 질서가 있다. 만 편의 드라마가 있다면 거기에도 만 개의 서로 다른 질서가 있을 것이다. 서사 패턴 959는 창작방법론으로서 다른 패턴과 구별되는 아주 분명한 특성을 가지고 있고, 실제 창작에서의 범용성이 작품의 성과로 확인된 가장 대표적인 질서를 체계화한 것이다.


(...)


우리가 살펴본 서사 패턴 959를 가지고 서사 질서의 유형을 모두 명료하게 포괄할 수 있고, 이 방법론으로 훌륭한 서사를 창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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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작가는 "서사가 지닌 복잡한 질서는 오로지 작품을 통해서만 완전히 구현된다. 텍스트에 내재한 서사 질서의 완전한 실체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취가 명백한 텍스트의 핵심적인 창작방법론을 스스로 읽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을 집어 든 독자들이 서사 방법론, 창작 방법론의 이해에서 만족하지 말고, 인류를 사로잡아온 서사 예술의 새로운 곁가지 하나를 만들어 보라는 것이 결국 작가가 이 책을 쓴 이유라고 하겠다.


한두 번 또는 여러 번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써보려다가 좌절했던 독자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책에도 인용된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중 한 구절처럼 이 책이 수많은 서사 예술의 편린 속에서 갈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별빛이 돼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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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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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방현석


소설가. 1961년 경남 울산 출생. 1988년 [실천문학]에 단편 「내딛는 첫발은」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장편 『십년간』, 『당신의 왼편』,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등이 있다. 그 밖의 저서로 『소설의 길 영화의 길』, 『백 개의 아시아』(공저), 『서사 패턴 959』 등이 있다.




■목차



머리글 이야기를 서사로 만드는 비밀 


제1장 이야기는 어떻게 서사 예술이 되는가 

이야기의 재배열 

이야기의 생략과 강조 

이야기의 허구화 


제2장 서사 예술은 어떻게 질서화 되는가 

서사 예술의 통제 

서사 예술의 질서화 


제3장 첫 장면은 서사 예술의 시작이 아니다 

첫 장면의 중요성 

첫 장면의 역할 


제4장 첫 장면의 아홉 가지 유형 

독자를 마중하는 첫 장면 

독자를 유혹하는 첫 장면 


제5장 마지막 장면은 서사 예술의 목표다 

마지막 장면의 중요성 

마지막 장면의 역할 


제6장 마지막 장면의 다섯 가지 유형 

내화형 결말 

확장형 결말 

반전형 결말 

회귀형 결말 

개방형 결말 


제7장 핵심 장면은 서사 전략의 승부처다 

핵심 장면의 중요성 

핵심 장면의 역할 


제8장 서사 예술의 아홉 가지 유형 

단일 모티프 플롯 

도주와 추적 플롯 

만남과 엇갈림 플롯 

배신과 헌신 플롯 

버림과 도전 플롯 

비루와 숭고 플롯 

성장과 고백 플롯 

환상과 초월 플롯 

원형서사 활용 플롯 

맺음글 서사 예술의 질서와 코드는 작품에 숨겨져 있다




■책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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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이야기는 어떻게 서사 예술이 되는가



이야기의 재배열

"서사는 스토리의 재배열과 생략에서 시작된다."


소설이나 드라마의 서사는 단순한 이야기와 다르다. 소설이나 드라마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전개되는, 질서를 가진 이야기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재편성의 과정을 거친 이야기는 어떤 경우에도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논픽션이나 다큐멘터리의 서사도 엄격한 의미에서는 사실 그 자체라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집필자나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이야기의 순서가 재배치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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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야기를 질서화하기 이한 재편성 과정은 단순한 이야기를 서사로 만드는 첫 단계다.

우리는 흔히 서사를 꾸며낸 이야기로 여긴다. 이런 생각은 자칫 서사화 작업의 출발점이 허구적 가공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보다 먼저,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를 재배열해야 한다. 어느 장면을 먼저 보여주고, 어느 장면을 중간에 배치하고, 어떤 장면을 마지막에 걸어둘지 결정해야 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에 관한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작가는 대문 앞에서 울고 있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먼저 보여줄지, 시어머니가 집 안에서 며느리에게 행한 비열한 행동을 먼저 알릴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며느리가 대문 앞에서 울고 있는 시어머니를 안으로 모셔가는 장면으로 마칠 것인지, 며느리를 따라 들어간 시어머니가 집에서 다시 행패를 부리는 것으로 마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순서도 작가의 의도에 의해 정해진다. 작가는 자신의 의도대로 독자가 반응할 수 있게 이야기를 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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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생략과 강조


이야기의 재배열이 서사를 만드는 첫걸음이라면, 서사화의 두 번째 단계는 이야기의 생략과 강조다. 작가는 대상이 되는 이야기에서 어떤 부분은 남기고 어떤 부분은 의도적으로 빼버린다.

이러한 취사선택은 오로지 작가의 몫이다. 앞에서 예로 제시한 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야기에서, 며느리를 따라 들어간 시어머니가 집에서 다시 행패를 부리는 이야기를 넣느냐, 아니면 이 부분을 삭제하고 며느리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끝내느냐에 따라서 이야기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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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허구화

"픽션은 논픽션의 반대말이 아니다"


픽션은 논픽션의 반대말이 아니다.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삶이 전개되는 현실 위에서 생겨났다. 논픽션과 픽션이 태어난 자리도 바로 여기다. 그러나 논픽션의 서사는 사실에서 멈추지만 픽션은 사살에서 멈추지 않는다. 실재하는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 부족하다고 느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이야기가 꾸며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즉, 픽션은 논픽션의 반대편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논픽션의 다음 단계에서 출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픽션은 논픽션의 대척점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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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불완전하다. 어느 한순간, 한 장면이 감동적이지만 그것은 체계적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속적이지 않고 일관성이 없는 분절된 이야기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을 서사화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논픽션과 픽션이 다르지 않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이 단계까지는 같은 길을 걷는다.

현실이 지닌 불완전한 감동을 완전한 감동으로 만들기 위해 허구를 동원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지점에서 픽션은 논픽션과 작별하게 된다. 소설이나 드라마는 논픽션이나 다큐멘터리가 이루지 못한 완결성을 지닌 미적 성취에 도전하는 서사 예술이다.

완전한 감동을 주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배제한다. 그것으로도 부족할 때, 모자란 것을 상상력으로 채운다. 허구화는 있는 이야기를 생략하거나 강조하는 것으로 부족할 때, 빈 부분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채워 넣음으로써 완전한 미적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예술적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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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보다 못한 완성도와 감동을 가진 픽션은 픽션이 왜 픽션인지 모르는 픽션이다. 독자가 왜 소설인지 모를 소설을 읽게 되는 것은 픽션이 왜 픽션인지 모른 채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다는 뜻이다. 관객이 왜 영화와 드라마인지 모를 영상을 자주 보게 되는 것은 픽션이 무엇인지 모른 채 영상 서사를 만드는 감독이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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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서사 예술은 어떻게 질서화 되는가

"플롯은 서사 예술의 통합사령부다"



서사 예술의 통제


서사 예술은 결국 스토리와 플롯의 문제고 귀결된다.

스토리는 서사 내용의 최상위 개념이고 플롯은 서사 형식의 최상위 개념이다. 스토리는 시간 순서대로 나열된 사건의 서술이고 플롯은 작가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마련된 유기적인 질서다. 플롯은 이야기의 순서를 재배열하고 생략과 강조를 통해 의미를 강화한 뒤, 허구화를 통해 완전한 미적 구조물을 만드는 과정까지를 포한한다. 더 나아가 플롯은 서사를 구성하는 각급의 요소와, 그 요소 간의 질서 전체를 총칭하는 개념이다. 인물, 사건, 배경, 문체, 시점, 시제를 통일적으로 배치하고 조율하여 질서화하는 서사 전략이 넓은 의미에서 플롯인 것이다.

그러므로 서사 예술에서 통합 사령부의 역할을 수행하는 플롯은 인물, 사건, 배경 등 서사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해체하여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재배치하는 과정을 통해 원형 스토리가 지닌 내용을 변형시킨다. 동일한 내용의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플롯이 달라지면 담론은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플롯이 최종적으로 질서화하는 것은 논리와 미학이다. 논리는 서사에 대한 이성적 설득력을, 미학은 서사의 매혹과 신비를 담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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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예술의 질서화

"사건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


'왕이 죽고 나서 왕비가 죽었다.'

여기에 왕의 죽음과 왕비의 죽음이라는 두 개의 독립된 사건이 있다. 이 두 사건 사이에는 상호 인과관계가 없다. 인과관계가 없는 이야기는 서사가 아니다. 이 단순한 이야기에 서사적 상상력을 불어넣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가 제시한 고전적 예문이 있다.

'왕이 죽자, 슬픔을 이기지 못해 왕비도 죽었다.

왕비의 죽은음 왕의 죽음으로 인한 것이다. 왕의 죽음은 왕비의 죽음을 야기했다. 이렇게 해서 인과관계를 가진 플롯이 만들어졌고 왕과 왕비의 죽음은 서사가 됐다. 서사와 플롯에 관해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 인과관계가 생겼다고 미적으로 완성된 구조물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왕이 죽구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왕비가 죽었다는 것은 두 사건의 관계를 질서화하고 있을 뿐이다. 왕비가 왕을 뒤따라 죽은 것은 두 사람이 나눈 사랑의 깊이를 짐작하게 하므로 인간관계또 질서화한 것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물의 내적 질서와 배격의 질서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이야기가 매혹적인 서사가 되려면 사건의 질서와 더불어 인물관계의 질서, 인물의 내적 질서, 배경의 질서가 제대로 구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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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더해지는 것이 매체의 질서가 구현하는 미학이다. 서사 예술의 장르에 따라서 매체는 달라진다. 소설은 문장 미학을 통해 매체의 질서를 구현한다. 영화와 드라마는 영상미학을 통해 매체의 질서를 구현한다. 뮤지컬은 노래와 연기를 통해 매체의 질서를 구현한다. 여기에서 소설과 시나리오, 텔레비전 드라마, 애니메이션, 뮤지컬의 길이 갈린다. 문자를 도구로 하는 소설가는 문장 미학을 통해 매체의 질서를 최적화한다. 아무리 훌륭하게 인간관계와 캐릭터, 사건과 배경을 질서화해도 문장을 다룰 줄 모르면 소설은 성공할 수 없다. 영상을 도구로 매체의 질서를 구현하는 영화나 드라마 작가는 영상미학을 통해 매체의 질서를 최적화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문자로는 아주 뛰어나지만 영상이 가진 힘을 이끌어낼 수 없는 시나리오는 죽은 시나리오다. 훌륭한 소설가라도 바로 훌륭한 드라마 작가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대와 배우의 역할을 극대화할 수 없는 대본으로 좋은 연극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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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첫 장면은 사서예술의 시작이 아니다



첫 장면의 중요성

"첫 장면의 실패는 실패의 시작이다."


픽션은 허구의 세계다. 픽션이 펼쳐 보이는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층위가 다른 세상이다. 동일시할 수 없다. 소설을 읽고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실제 세계를 벗어나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행위다. 그 영화나 소설이 준비한 서사의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가 바로 첫 장면이다.

우리는 첫 장면을 통하지 않고서는 허구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새로운 세계, 다른 환경, 낯선 사람과 조우할 때 경계심과 두려움을 가진다. 들어갈까 말까, 만날까 말까, 망설이고 주저한다. 소중한 시간을 일부 내어줄 만한 일인지, 허탈하거나 불쾌한 경험은 아닌지, 의심하며 살핀다. 그래서 첫 장면이 독자의 의심과 경계심을 누그러뜨려야 작가는 독자를 픽션의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다. 첫 장면이 실패하면 독자는 픽션의 세계로 진입하기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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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첫 장면은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독자에게 첫 장면은 소설의 시작이다. 하지만 작가에게 첫 장면은 시작이 절대 아니다. 작가에게 첫 장면이란 소설 쓰기의 준비가 완료된 다음이다. 첫 장면을 쓴다는 것은 소설 쓰기의 준비를 마쳤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첫 장면은 소설 전체를 함축하고 규정한다.

작가가 첫 장면을 쓸 때는 이미 끝 장면이 준비되어 있다. 물론 중간에 대한 구상도 마련되어 있다. 즉, 작가가 소설의 첫 장면을 쓴다는 것은 이미 소설의 내용과 방법론에 대한 구성이 완료되었다는 뜻이다. 소설 쓰기의 마지막 채비를 마친 작가가 독자와 조우하는 지점에서 독자를 붙잡지 못하면 끝이다. 그래서 첫 장면은 독자에게는 시작이지만 작가에게는 소설 쓰기의 마지막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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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감독은 서사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이다. 이야기를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를 거쳐 어디에서 끝내겠다는 구상을 하고, 적합한 인물과 사건을 필요한 지점에 배치한다. 인물들이 통과할 지점의 자연환경과 사회 조건에 따른 장애물을 예측하고 돌파할 방법을 강구한다. 가파른 서사에 탄력을 줄 에피소드도 준비해야 한다. 어떤 문장을 쓸 것인지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려한 문체로 갈 것인지, 건조한 문체로 갈 것인지, 아니면 하드보일드하게 갈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첫 장면이 탄생한다. 아니면,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첫 장면을 완성한다.

다시 말해, 첫 장면에는 서사의 전체가 다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첫 장면을 그르친 소설과 영화가 실패할 확률은 9할이 넘는다. 서사 전체에 대한 구상이 전부 녹아있는 첫 장면을 실패하고도 그것의 확장인 작품이 성공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김동리 선생이 첫 한두 문장을 가지고 한 시간을 강의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첫 문장, 첫 장면만으로도 작가의 역량과 작품의 문제점이 무언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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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사 예술에서 첫 장면은 압도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성경에는 '비록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마지막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씀이 있다. 그러나 첫 장면에서 독자를 매혹하는 데 실패한 소설과 드라마가 마지막에 창대하게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다. 첫 장면은 전체의 첫걸음일 뿐만 아니라 전체의 압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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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의 역할


첫 장면의 중요성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전체 서사에서 첫 장면이 차지하는 기능과 역할, 그 효과를 포괄하여 설명해야 한다. 작품 속에서 첫 장면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으며, 마무리와 어떻게 맞물리는가? 첫 장면이 어떻게 다음 이야기를 유발하고 서사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능을 하는가. 또, 중심 사건에서 어떤 단서로 기능하는가? 첫 장면은 이 모든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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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이 실패하면 끝 장면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반면, 첫 장면이 그럴듯하다고 해서 그 작품의 성공 확률이 대단히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 뒤에도 풀어야 할 많은 숙제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첫 장면과 달리 지리멸렬한 마지막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그러므로 작품의 첫 장면이 끝 장면과 어떤 관련을 맺고, 서사가 발전하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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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을 잇는 매혹적인 과정은 전개와 갈등에서 비롯된다.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이 재미도 없는 기승전결을 줄기차게 강조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승전결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이야기가 유기적인 서사로 직조되는 필수 과정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기승전결의 출발점은 첫 장면에 있다. 그리고 첫 장면은 아홉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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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첫 장면의 아홉 가지 유형



독자를 마중하는 첫 장면


독자와 관객에게 첫 장면은 실제 세계에서 서사 세계로, 논픽션의 세계에서 픽션의 세계로 존재를 옮기는 지점이다. 반면, 작가나 감독에게 첫 장면은 자신이 구축할 서사에 대한 계획을 수립한 다음, 초대에 응한 독자를 맞이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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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첫 장면은 배경 제시형, 일상 제시형, 인물 제시형, 회상형, 전체 압축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유형의 특징과 대표적인 작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배경 제시형


배경 제시형 첫 장면은 사건이 벌어질 시·공간에 대한 설명과 묘사로 이뤄진다. 여기서 형상화된 정조는 서사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간혹, 밝음과 어둠이나 조용함과 소란스러움 등 정조의 대비를 통해 서사의 긴장감을 높이는 경우도 있다.

배경 제시형을 이용한 대표적인 작품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톨스토이의 『부활』,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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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제시형 첫 장면을 채택한 영화로는 조 라이트 감독의 《오만과 편견》, 롭 마샬 감독의 《시카고》,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사운드 오브 뮤직》이 대표적이다.



일상 제시형


일상 제시형 첫 장면은 인물이 어떤 사건에 던져지기 전의 모습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묘사한다. 대체로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이 그려지는데, 이 경우 독자나 관객은 서사 세계로 들어가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후, 일상 유지와 일상 파괴의 경계에서 독자와 관객들은 더 깊숙한 서사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일상 제시형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으로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오정희의 「동경」, 박경리의 『토지』 등을 꼽을 수 있다. 



인물 제시형


인물 제시형 첫 장면은 인물의 성격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와 관객에게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짐작게 하고 사건의 전개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첫 장면을 채택한 서사들은 인물의 성격이 운명을 지배한다.

인물 제시형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존 쿳시의 『추락』,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윤흥길의 『완장』 등이 있다.

첫 장면을 인물 제시형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임상수 감독의 『봄날은 간다』와 스텐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를 꼽을 수 있다.



회상형


모든 이야기의 본성은 지나간 일들에 대한 회상이다. 그래서 작가들에게 회상의 형식이란 이야기의 본성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상투적인 형식으로 여겨진다. 대다수 작가들은 회상형 첫 장면의 사용을 가능한 한 피하지만, 뛰어난 작가들은 이 낡은 형식을 사용하여 소박하고 진솔한 회상의 효용성을 극대화한다. 이 회상형 첫 장면을 이용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르 끌레지오의 『사막』, 밀란 쿤데라의 『농담』 등을 들 수 있다.



전체 압축형


전체 압축형 첫 장면은 서사 전체의 문제의식을 아우르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거나 은유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김훈의 『남한산성』, 폴 하딩의 『팅거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게츠비』,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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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에 전체 압축형이 쓰인 영화로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과 마이클 만 감독의 《라스트 모히칸》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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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유혹하는 첫 장면


독자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려 서사 세계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작가들은 좀 더 강력한 방법을 사용한다. 강도 높은 첫 장면을 이용해 독자의 흥미와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독자가 미처 경계할 틈도 없이 '다음은 어떻게 될까?' 혹은 '다음 장면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작가에게 그보다 유쾌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첫 장면의 유형으로는 사건 발생형, 행동형, 대비 상징형, 의문 유발형이 있다.



사건 발생형


사건 발생형 첫 장면은 인물과 배경에 대한 설명이나 인과관계의 제시는 뒤로 미루고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건을 먼저 제시한다. 이를 접한 독자나 관객은 사건에 매혹되어 자연스럽게 다음 페이지로 시선을 옮긴다.

사건 발생형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사랑과 다른 악마』,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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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형 첫 장면의 영화로는 카비르 칸 감독의 인도영화 《카불 익스프레스》를 들 수 있다.



행동형


행동형 첫 장면은 인물의 습관적인 행위에 집중한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행위라 할지라도 반복성을 띠면서 사건을 추동하고 국면을 전환하며 의미와 상징성을 획득한다. 그래서 행동형 첫 장면으로 성공한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모방 욕구까지도 불러일으킨다.

대표적인 행동형 첫 장면의 작품으로는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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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형 첫 장면의 영화를 꼽을 때 빠뜨릴 수 없는 작품은 대니 보일 감독의 《트레인스포팅》이다. 



대비 상징형


대비 상징형 첫 장면은 인물이나 사물, 이미지의 대비와 충돌을 통해서 서사 전개에 필요한 추동력을 얻는다. 흔히 인물 간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서 필연적인 갈등을 암시한다. 대비 상징형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파울로 코엘료의 『오 자히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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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 상징형의 영상미학을 보여주는 영화는 니나가와 미카 감독의 《사쿠란》이다.



의문 유발형


의문 유발형 첫 장면은 독자에게 궁금증을 유발한다. 단서를 친절하게 제공하기보다 비일상적인 사건이나 상황을 기술하여 독자를 매혹한다. 드물지만 자연법칙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사건이나 상황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의문 유발형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오상원의 『모반』, 레이몬드 카버의 「제리와 몰리와 샘」, 푸옌테스의 『아우라』, 이순원의 『은비령』, 조해일의 『매일 죽는 사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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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마지막 장면은 서사 예술의 목표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마지막 장면의 중요성


완결된 서사에서 첫 장면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두 번째 장면이다. 그러나 서사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첫 장면 다음에 오는 것은 마지막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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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1천5백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롤리타』를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소설을 시작하면 많은 방법론이 있을 것 같지만, 소설을 시작하면 목표는 오로지 이 작품을 끝내겠다는 그 생각 하나뿐이었다."

작품을 시작하는 순간 작가에게 지상 최대 목표는 작품을 끝내는 것이다. 끝나지 않은 작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작품이다. 마지막 장면이 첫 장면 다음이 되는 이유다.

독자가 서사의 세계로 진입하는 입구가 시작 장면이라면, 마지막 장면은 독자가 서사에서 빠져나와 현실의 세계로 복귀하는 출구에 해당한다. 픽션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온 이들에게 작품이 강한 여운으로 남아 실제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마지막 장면은 성공한 것이다.

한 편의 소설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것은 서사의 영향력이 독자의 실제 삶을 바꿔 놓을 만큼 강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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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서사의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마지막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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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의 역할


서사 예술이 독자와 관객들에게 어떤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가는 마지막 장면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훌륭한 서사는 어느 한 부분의 성취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지만 미학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결말은 관객을 실망시키는 치명적인 요인이다.

마지막 장면의 성공은 독자와 관객이 느끼는 감동과 여운의 파장으로 드러난다. 뛰어난 작품은 독자나 관객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해서 질문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좋지 않은 작품은 책 한 권을 다 읽어냈다는 성취감을 남길 뿐이다. 심지어는 내가 이것을 왜 읽었는가 하는 회의감을 안겨주는 작품들도 있다.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와 여운을 남기는 서사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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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힘이 감동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는 마지막 장면에서 특별한 성취에 도달하거나 극적 반전을 일으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취를 통해 감동을 이끌어내는 결말은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이나 마지드 마지디의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서 확인하 수 있다. 반전을 통해 감동을 이끌어내는 결말은 여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나 시드니 루멧의 영화 《허공에의 질주》, 박찬욱의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를 들 수 있다.

서사의 힘이 여운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는 마지막 장면에서 질문을 던지거나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질문을 던지는 것을 통해서 여운을 이끌어내는 결말로는 옌렌커의 『딩씨 마을의 꿈』이나 이안의 영화 《색계》, 이창동의 영화 《밀양》을 들 수 있다. 성찰을 통해 여운을 이끌어내는 결말은 로힌튼 미스트리의 소설 『적절한 균형』이나 로버트 레드포드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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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마지막 장면의 다섯 가지 유형


모든 서사는 감동과 여운을 지향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독자와 관객을 웃게 만드는 작품일지라도 그 웃음에 경직된 인물이나 사회를 풍자하고 비틀어 뒷맛을 남기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독자와 관객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려는 작가의 뻔한 시도에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와 독자, 감독과 관객의 싸움은 마지막 장면까지 계속된다.

첫 장면을 통해서 독자나 관객을 픽션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면, 마지막 장면에서는 감동과 여운을 가지고 독자와 관객이 현실의 세계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작가와 감독은 마지막 장면들을 두고 많은 고민을 한다. 그 고민과 투쟁의 결과물은 크게 다섯 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의 다섯 가지 유형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서사 속의 인물이 내적인 성숙을 이루는 내화형 결말, 서사 속에서 인물이 갖게 된 인식이 주변 인물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사회의 변화를 조장하는 확장형 결말, 독자나 관객의 예측을 배반하는 반전형 결말,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이어지거나 겹쳐지는 회귀형 결말, 이야기의 결말을 은유적으로 마치고 뒷이야기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개방형 결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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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화형 결말


서사 예술이란 인생에 대한 미적 탐색 행위다. 그래서 서사 속 인물은 차츰 변화해야 한다.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야가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져야 하는 것이다. 인물의 그 변화 과정이 서사 내용이 된다. 서사 작품이 결말에 도달했을 때, 그 서사 속의 인물이 내적인 성숙을 이루는 유형을 내화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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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종착점에 당도했을 때, 다른 높이에 도달해 있는 인물들의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 내화형 결말이다.

이 내화형 결말은 문예공모전에서 가장 빈번하게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는 유형이다. 서사 속 인물이 자신에게 매질하던 아버지안 차별하던 어머니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향한다. 목적지로 이동하는 고정에서 그들도 나 못지않은 아픔을 안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새삼 자신이 그들과 함께 나눴던 따뜻한 시간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흐른다. 이런 상투적인 이야기가 공모전에 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정한던 바를 서서히 받아들이고 용서하며 마무리되는, 이 강박적인 화해의 결말이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사용되어온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성숙을 표방하는 주요 형식으로 인정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을 깊이 성찰하고 세상을 진지하게 통찰하려는 노력이 내화형 결말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서사 예술은 인간을 다른 각도와 다른 높이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면적 성숙으로 귀결되는 내화형 플롯을 차용한 작품이 개연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화해에는 화해에 도달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과정의 필연성이 없는 성숙은 계몽적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심정적으로 온정주의에 끌린다는 이유로 무조건 화해하는 결말은 거짓이다. 미움이나 분노를 털어버리고 포용과 하해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성숙한 태도지만, 그것을 서사 안에서 성취하려면 빈틈없는 과정이 구축되어야 한다. 진정한 화해는 결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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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에서 도식적인 화해와 성숙은 현실에서의 화해보다 훨씬 손쉽다. 그러나 픽션에서 진정한 화해와 성숙에 도달하는 일은 현실에서의 화해보다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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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형 결말


확장형의 결말은 서사 속에서 인물에게 형성된 의식이 주변으로 확장되거나 외부로 표출되는 유형이다. 개인이 처한 문제 상황이 사회적인 은유로 확장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내화형 결말은 인물의 내적 변화가 사회적 문제로 분출되거나 확장되는 않는다. 주인공 자기 자신만 변하는 것이다. 반면 확장형 결말의 유형은 주인공의 의식 변화가 외부로 확장된다. 많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소설들이 이런 확장의 속성을 지나고 있다. 이런 유형을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강경애의 『모자』와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들 수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포본으로 일컬어지는 『어머니』는 러시아 혁명시기에 만들어진 혁명적 노동자와 그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계급적 처지를 자각하고 민중 혁명에 참여해 희생당한 자식을 둔 어머니가 아들의 뒤를 이어 혁명의 대열에 뛰어든다. 이 작품은 어머니의 절규와 호소가 군중들에게 흐느낌을 야기하고 이것이 점차 번져나가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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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형 결말


작가들은 독자와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면서도 호시탐탐 독자와 시청자들의 기대를 배신할 기회를 노린다. 작가가 독자의 기대를 배반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가 바로 마지막 장면이다.

이 길을 따라가면 도착지가 저기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전복적 결말로 서사를 마무리하는 유형을 반전형이라고 한다. 전복적 상상력의 정점에 기 드 모파상의 「목걸이」와 레이몬드 카버의 「당신, 의사세요?」 가은 작품이 있다. 반전의 미학에 능숙한 신상웅의 소설 『돌아온 우리의 친구』도 뛰어난 전복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970년대 발표된 『돌아온 우리의 친구』는 친구들이 술집에 모여 중동으로 돈 벌러 갔다가 돌아오는 친구를 어떻게 환영할 것인지를 의논한다. 드디어 그들은 귀국하는 친구를 맞으로 공항으로 가고, 독자들은 친구들의 시끌벅적한 재회를 예상한다. 그러나 정작 공항에 도착한 것은 치구의 뼛가루다. 중동에서 죽어 유골로 돌아온 것이다. 전날 친구들이 모여 한 이야기는 모두 죽어 돌아오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중동에서 한몫 챙겨 폼 잡고 돌아오는 친구의 모습을 나름대로 상상하며 작품을 읽었는데, 결국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런 극적 반전을 통해 한 시대, 한 인간의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유쾌하게 친구 환영식으로 시작하지만 결말에 가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반전을 통해 작품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이 반전형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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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형 결말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이어지거나 겹치는 유형을 회귀형 결말이라고 한다. 회기형의 마지막 장면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결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중간 과정에서 우여곡적을 겪지만 결국에는 처음 이야기를 시작했던 자리로 돌아옴으로써 문제의 핵심을 강조하는 기법이다. 긴 여정을 쫓아 이야기의 결말에 다다랐지만 그곳이 출발한 그 자리와 다르지 않을 때, 같은 장면임에도 처음과는 전혀 다른 의미와 효과를 지닌다.

그 효과란 독자를 단순한 이야기의 시작 지점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시작된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도록 하여 서사의 의미와 정서적인 감흥을 되짚어 보게 만드는 것이다. 

회귀형 결말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카뮈의 『이방인』과 아옌데의 『영혼의 집』, 김동리의 「찔레꽃」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찔레꽃」의 시작 장면은 가난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모녀의 안타까움을 그리고 있다.

가난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모녀가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그린 첫 장면은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대로 다시 쓰인다. 첫 장면의 반복을 통해서, 오랜만에 보리 풍년이 들었는데도 가난 탓에 헤어져야만 하는 모녀의 운명이 그대로임을 보여준다. 풍성하게 핀 찔레꽃과 가난한 모녀의 운명을 대비시키는 장면의 외형은 반복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다른 깊이른 지닌 대비다. 이 대비를 통해서 모녀의 별리를 둘러싼 비극성은 새롭게 증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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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형 결말


인간은 이야기와 더불어 살고 이야기로 남겨진다.

시대가 변하고 미디어는 진화하지만 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줄어든 적이 없다. 서사 예술이 쇠락하지 않는 이유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 못지않게 보는 사람의 몫이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방형 결말은 독자와 관객의 몫을 가장 많이 남겨두는 유형이다. 이러한 유형의 결말은 인물의 이어지는 삶이나 사건의 파급, 이야기의 은유를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심지어 이야기의 대단원이 어떻게 막을 내릴지조차 독자의 상상에 맡겨버리기도 한다.

이런 유형의 마지막 장면을 가진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하재영의 「밥 같이 먹을래요?」와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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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핵심 장면은 서사 전략의 승부처다



핵심 장면의 중요성


소설을 처음 쓰려는 사람들이 가장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다. 소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나 드라마 극본을 처음 쓰려는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 둔 이야기가 있는데 무엇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는 늘 이렇게 대답해왔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먼저 정하고, 그다음에 처음과 마지막을 무엇으로 채우고 이을지 궁리하세요."

서사 창작의 첫걸음은 시작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구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첫 작업부터 막연하다면, 사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가장 핵심이 되는 장면을 구체화해보는 것이다. 그 장면은 하나일 수도 있고, 둘일 수도 있고, 다수일 수도 있다. 그 장면이 어디에 놓일지는 상관없다. 나중의 문제다. 시작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구상을 마치고 서사의 핵심 장면마저 구체화했다면, 서사 예술의 완성에 이르는 징검다리를 모두 놓은 것이다.

서사의 핵심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서사를 창작하는 행위가 바로 서사의 핵심 장면을 극대화하고 확장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작가로 하여금 지치지 않고 서사를 끝까지 밀어붙이게 하는 힘의 원천도 서사의 핵심이 되는 그 장면 안에 꿈틀거리고 있다.



핵심 장면의 역할


핵심 장면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서사 작품의 모든 것이라고 말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구상하는 작품의 구체적인 핵심 장면은 무엇이 될까. 만약 작가나 감독이 자신이 계획한 서사 작품에서 핵심 장면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 아직 작품을 시작할 준비가 안 된 것이다. 그래도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대하 구상이 대략 끝났다면, 핵심 장면을 추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마지막 장면을 서사 속의 인물이 내적인 성숙을 이루는 내화형 결말로 정했다면, 주인공이 내적 변화를 겪거나 이를 야기하는 사건이 핵심 장면이 될 것이다. 또는, 모두이 예성을 뒤엎는 전복적 결말로 서사를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면, 독자나 관객이 자신의 예측을 확신하게끔 만들거나 이를 배반하는 장면이 핵심 장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사에서 핵심 장면의 역할은 시작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비해 조금도 모자라지 않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드라마의 줄거리를 설명할 때, 시작 장면과 핵심 장면과 마지막 장면 중 어느 하나라도 빠뜨린다면 상대방은 서사 내용뿐만 아니라 사서의 의미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서사 예술이란 인생에 대한 미적 탐색 행위인데, 오늘의 내가 어떤 경험으로 인해 어제의 어떤 나를 깨고 나왔는지 알 수 없다면 서사 예술은 여지없이 존재의 의미를 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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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서사 예술의 아홉 가지 유형



모든 서사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시작과 끝을 잇는 중간이 있다. 모든 서사에는 시작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있고, 시작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잇는 핵심 장면이 있다.

시작 장면의 역할은 서사 세계에 찾아온 독자를 편안하게 안내하고 설렘과 기대를 품은 채 한발 한발 내딛게끔 하는 것이다. 나를 이끄는 곳이 어디든 분명히 뭔가 대단한 일이 생길 거야, 하는 즐거운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첫 장면이다. 의미의 실로 짠 중대한 사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첫 장면이다.

마지막 장면의 역할은 서사 세계에서 떠나는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과 감동을 심어주는 것이다. 서사 세계에서 빠져나와서도 서사 속의 인물과 이야기를 쉽게 잊을 수 없도록 각인시키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멋진 여행은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사람들에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멋진, 훌륭한 서사도 독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긴다. 서사 속 인물과의 작별이 너무나 아쉬울 때, 서사 속 세계가 너무나 매혹적일 때, 독자들은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서사의 중간, 그리고 핵심 장면은 시작 장면에서 마지막 장면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고 서사의 알리바이다. 시작에서 결말에 이르는 이야기의 전개가 그럴 법하지 않거나 인물의 행동이 타당하지 않으면 서사의 설득력은 확보될 수 없다. 그렇다고 서사의 중간이 단지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데 그쳐서도 안 된다. 경찰에 소환된 피의자는 수사관에게 자신의 알리바이만 입증하면 되지만, 서사 예술에서는 독자와 관객의 흥미와 공감을 이끌어낼 알리바이가 필요하다. 훌륭한 작가는 서사의 중간을 방어적인 알리바이가 아니라 긴장과 감동으로 채울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서사 예술의 완성은 시작 장면과 마지막 장면, 시작 장면과 마지막 장명을 잇는 핵심 장면이 빈틈없이 결합돼야 한다. 그리고 세 장면은 어느 게 먼저랄 것 없이 서로 보완하고 의미를 확장한다. 가령, 서사의 핵심 장면이 뚜렷해지면 시작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윤곽도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뚜렷해지면 핵심 장면의 방향도 선명해진다.

시작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유형이 있는 것처럼 시작 장명과 마지막 장면을 잇는 중간 과정에도 유형이 있다. 그리고 모든 완성된 작품에는 이야기 전체를 질서화하는 서사의 체계오 방법론이 있다. 작품을 쓴 작가가 그 질서를 의식하고 썼든 아니든 만들어진 작품 안에는 작품의 시작에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질서화하는 방법론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플롯은 흥미로운 출발에서 멋진 결말에 도달하기까지의 알리바이를 유기적이고 역동적으로 구축하는 방법론이다. 작가들은 각기 서사의 알리바이를 구축하는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여행자마다 각기 다른 여행의 방법론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들도 서사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방법론을 각자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작가일지라도 작품에 따라 다른 방법론을 동원한다. 여행자가 여행의 목적에 따라 다른 경로와 방법을 선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행자는 목적지가 정해지면 그곳에 가기 위한 교통수단과 일정을 선택한다. 작가들은 서사 내용을 정하면 그 내용을 관철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알리바이의 형식과 서사 전략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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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모티프 플롯



단일 모티프 플롯의 개요


단일 모티프 플롯은 하나의 모티프가 서사의 시작부터 끝을 규정하고 그 시작과 끝 사이를 채워나가는 플롯의 유형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예로, 여화의 『허삼관 매혈기』와 옌렌커의 『딩씨 마을의 꿈』 등을 들 수 있다. 소설 『허삼관 매혈기』는 한평생 피를 팔아서 가족을 돌보는 허삼관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매혈이라는 모티프가 소설의 시작과 끝, 전개 과정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영하로는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과 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천국의 아이들》이 대표적인데, 각각 자전거와 신발을 매개로 서사 전체를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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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프(motif)에 대한 정의는 연구자에 따라 매우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창작의 동기 혹은 그것을 이루는 작가의 내부 충동이나 욕망'으로 정리한다. 이를 창작자의 입장에서 다시 정의 내린다면, 창작자의 이성과 감성에 충격을 가하여 '이것을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요인이 모티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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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데 주력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모티프가 "더는 분해할 수 없는 가장 작은 이야기의 단위가 되는 테마"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 동의하더라도 모티프는 이야기의 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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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매혹적인 모티프에서 출발했다고 무조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는 없다. 씨를 뿌린 다음 물과 거름을 주고 잡초를 고르는 것이 농부의 일이라면, 모티프를 풍성하고 매력적으로 키우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매혹적인 모티프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어떻게 짜임새 있는 서사 작품을 만들어내는가는 전적으로 작가의 능력에 달려 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점은, 참신한 서사는 참신한 모티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이미 오래전에 닳도록 사용된 모티프에 매달려서는 의미 있는 작품을 창작할 수 없다. 창작자들은 뛰어난 서사 예술작품을 참고하여, 지금 이곳에서 내가 새롭게 보여줄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단일 모티프 플롯의 역할


서사 창작의 실제에서 모티프는 결코 이야기의 가장 작은 단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착상의 단계에서 창작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 전체의 전개에 있어서 나침판과 같은 기능도 한다. 그래서 모티프는 단지 파편적인 발상이 아니라 이야기의 발원지이자, 그 발원지에서 솟아난 물줄기고, 물줄기가 바다에 이르도록 하는 힘이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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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와 추적 플롯



도주와 추적 플롯의 개요


도주와 추적 플롯은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대결이 전체 서사를 끌어나가는 방법으로, 픽션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 이 범주에 완전히 속하지 않는 유형의 영화나 드라마도 도주와 추적 플롯의 기본 요소를 얼마간 이용한다.

도주와 추적 플롯은 인류 역사와 함게 발전해온 서사 전개 형식이자 방법론이다. 그 기원은 사냥과 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 사냥은 잡느냐 못 잡느냐, 먹느냐 굶느냐가 걸린 일이다. 전쟁은 쫓고 쫓기는, 죽느냐 죽이느냐가 걸린 일이다. 결국, 사냥과 전쟁은 인간의 생명이 걸린 원형적 생존게임이다. 그리고 예술은 생활양식의 반영이며 연장이다. 예술이 반영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생존 조건만이 아니다. 인간의 기쁨과 두려움, 꿈과 욕망에 대한 표현 욕구가 예술로 발전되었다. 즉, 예술 속에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고투와 생을 지탱해주는 오락적 요소가 함께 깃들어 있다.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본능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암각화의 주제는 대부분 사냥과 전쟁이다. 이는 생존을 위한 기억 저장 행위로, 고대인들에게 기억하는 정보의 양은 생존 가능성과 직결되었다. 어디로 가야 사냥감이 있고 과실이 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북극성은 변치 않는 밤의 안내인이었다. 북극성을 기억하고 찾아내는 사람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고, 찾지 못하는 사람은 돌아올 수 없다. 그래서 세계의 모든 민족은 북극성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살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필수다. 그 정보를 기록하는 방법은 바위에 새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위에 얼마나 많은 것을 새길 수 있겠는가? 그리고 바위로부터 멀리 떠났을 때 필요한 정보는 어떻게 불러내서 사용할 수 있겠는가? 바위를 들고 다니며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겠지만 기억은 끊임없이 휘발된다. 늘 도주하는 기억을 붙들어두기 위한 인간의 필사적인 노력의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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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이 달린 것보다 더 강력한 이야기는 없다.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스토리텔링의 방법론이자, 목숨과 생존의 문제가 걸린 큰일을 다루는 플롯의 유형이 바로 도주와 추적의 유형이다.



도주와 추적 플롯의 규칙


인류의 생존에 관한 서사인 도주와 추적은 세상이 발전하면서 오락의 기능이 점차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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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잡기와 숨바꼭질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게임의 양식이다. 술래잡기는 잡느냐 잡히느냐, 숨바꼭질은 찾느냐 숨느냐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도주와 추적의 플롯에도 이 두 가지 규칙이 대결적 구도로 짜여 있다. 쫓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쫓기는 자가 있다. 숨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찾는 자가 있다. 그래서 주인공과 도망자, 주인공과 추격자가 양립하는 구조가 성립한다.

도주와 추적의 플롯이 강력한 힘을 갖는 이유는 늘 생명과 생존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죽게 되거나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이 서사는 자기 전부를 걸어야 하는, 판돈이 큰 게임이다.

도박은 위험이 클수록 희열도 크다. 아니, 위험이 적으며 진정한 도박이라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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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와 추적의 플롯 역시 위험이 클수록 독자나 관객의 희열이 커진다. 도주의 실패가 주인공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흥미는 반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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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와 추적 플롯의 공간


도주와 추적 플롯에서 극적 긴장감과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간의 제약이 필요하다. 숨바꼭질에서 술래와 숨은 이가 숨을 죽이는 이유는 장롱 밖 혹은 장롱 안에 상대방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래잡기의 공간이 집 안이 아니라 마을 전체로 확장된다면 이런 긴장감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동일한 이유로 도주와 추적의 플롯에서는 감옥과 수용소, 정신병원, 고립 공간 등의 공간이 자주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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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설정한 공간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새롭고 신선한 공간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새로운 것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기존의 공간을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공간에 새로운 감각과 인식을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 일가족이 한강에서 서식하는 돌연변이 괴물과 맞서는 이야기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한강이라는 익숙한 공간에 새로운 감각을 부여했다. 한강이 괴생명체가 살아갈 만큼 어둡고 음산한 곳으로 다시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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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엇갈림 플롯



만남과 엇갈림 플롯의 개요


만남과 엇갈림 플롯은 소재나 사건이 아닌, 인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체 서사를 풀어나가는 플롯 유형이다. 그래서 이 플롯은 관계 중심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유형은 흔히 두 사람의 만남과 이별을 둘러싼 관계에 의해서 서사가 전개된다. 그 결과, 이성보다 감성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플롯은 정서와 감정에 서사 전개를 의존하며, 이것은 당연히 관계로부터 발생한다. 그러므로 서사의 성패는 관계의 특수성에 달려 있다. 그 관계가 얼마나 매혹적이고 흡입력이 있으며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가. 독자나 관객을 얼마나 애타게 하고 긴장시키며 슬프게 하는가. 이러한 것이 두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보통 사람에서 특별한 사람으로 지위가 상승된다. 거리에선 만 명 중 한 명에 불과한 사람이지만, 이 플롯의 관계 속에서는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사람이 된다. 더 나아가 선한 사람이 더 없는 악인이 될 수도, 보잘것없는 사람이 유일하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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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이러한 플롯은 인물의 행복 혹은 불행으로 연결되는데, 이 역시 관계로부터 발생한다. 즉, 관계로 시작해서 관계로 끝난다는 점이 이 플롯의 특징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역사라는 우리 소설의 일반적인 형식에 가장 잘 들어맞는 유형이다.



만남과 엇갈림 플롯의 구조


소설의 구성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은 것은 기승전결이나 발단·전개·절정·결말이다. 이 네 단계의 서사 발전 과정은 만남과 엇갈림의 유형에 특히 유용하다.

발단 단계는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이 시작되는 단계다. 또는 이미 헤어진 사람이 등장해서 만남의 의지를 가지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는 출발한다. 그러나 이 만남은 근원적인 한계, 제약, 방해물을 반드시 맞닥뜨린다. 이는 인종이나 계급, 이념 등 태생적인 한계와 제약이다. 물론, 두 사람의 만남은 아무런 전제가 없는, 서로의 배경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우연적이고 운명적인 만남이다. 하지만 그 운명으로 인해서 고려하지 않았던 제한 요인들이 갑작스럽게 등장하여 관객들의 흥미와 기대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전개 단계에서는 관계가 깊어지고 태생적인 제약요인이 현실화된다. 두 인물은 상대방을 더욱 간절히 원하고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 더욱 노력한다. 그리고 사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내재해 있던 근원적 제약이 작동한다. 신분의 차이, 이념의 차이, 종교의 차이, 연령의 차이, 국적의 차이, 혹은 성별의 동일성(동성애), 가계의 동일성(근친상간) 모두 근원적 제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금지된 사랑의 서사에 많이 나타난다. 사랑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이런 제약이 은밀하게 내재된 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이 결실을 맺게 되면서 다양한 문제들이 현실로 불거진다. 만약 태생적 장애요인이 없다면, 유학을 떠났던 옛 애인이 돌아오는 등 장애물이 돌발적으로 등장한다. 이 장애물은 서사의 직접적인 갈등요인이 된다.

절정 단계에서는 두 인물이 태생적 제약요인이나 장애물과 정면으로 충돌하여 파국에 이르거나 사랑을 쟁취한다. 이 파국 혹은 쟁취는 두 인물의 강력하고 절박한 의지로 인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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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충돌과 투쟁으로 인한 결과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성취, 두 번째는 파탄, 세 번째는 파멸이다. 여기서 성취는 사랑의 성취, 파탄은 이별하거나 대립하는 것, 파멸은 죽음에 상응하는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절정은 시련에 대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는 단계인 것이다.

결말 단계는 절정의 선택에 따른 여진을 처리하는 단계이다. 절정에서 무엇을 선택했는가에 따라서 상황이 변화되어 제시된다. 



만남과 엇갈림 플롯의 관계


만남과 엇갈림 플롯의 성공과 실패는 관계의 매혹이 좌우한다. 관계의 매혹은 환상적인 관계에서 비롯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관계가 존재하지만 그중 신분의 차이가 제약요인으로 등장하는 서사는 독자를 매혹한다. 가난한 딸이 왕자님을 만나고 시골 출신의 똑똑한 남자가 재벌 집 딸을 만나는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독자들의 욕망을 가장 잘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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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엇갈림의 플롯은 인류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그 이유는 만남과 엇갈림의 플롯만이 가진, 욕망을 충족시키는 환상 때문이다.

인간에겐 현실에서 결코 채울 수 없는 환상이 있다. 그래서 모든 예술은 현실을 재현하는 것과 더불어 환상을 생산하고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서사 예술에서는 만남과 엇갈림의 플롯만큼 인간의 환상과 욕망을 잘 채워줄 수 있는 유형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지치지 않고 활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독자와 관객을 사로잡기가 쉽지 않다. 또한 신파로 흘러갈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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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과 헌신 플롯



배신과 헌신 플롯의 개요


배신과 헌신의 플롯은 동물적인 본능에서 비롯된 배신과 인간적인 이성에서 비롯된 헌신 간의 갈등을 그리는 서사 유형이다. 배신과 헌신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필연적인 선택의 과정이다.

인간의 삶은 다른 동물의 삶과 마찬가지로 경쟁과 투쟁의 연속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DNA가 98.8퍼센트나 동일한 것처럼, 인간의 사회와 침팬지의 정글은 98.8퍼센트의 승자 독식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세련된 도시 문명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이곳도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이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제도화하고 관리하는 거대한 시스템이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잡의 위치와 크기가 주어지고, 학교가 정해지고, 직업과 수입이 결정된다. 죽음을 맞는 병원과 영안실, 조화와 조문객의 수가 결정된다. 이러한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한 어른들은 자신의 자식들이 경쟁에서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도록 우수한 강사가 있는 학원을 물색하고 비싼 비용을 지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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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가설은 배신과 헌신 플롯의 핵심을 설명해준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에서 경쟁은 일상적이고 배신은 필연적이다. 모든 동물은 경쟁자를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비록 경쟁자가 가족이나 친구일지라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서사 속에서는 오히려 경쟁자가 가까운 관계일수록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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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가진 인간은 이타성 덕분에 자연도태라는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있었다. 이는 침팬지와 같은 98.8퍼센트의 유전자가 아니라 나머지 1.2퍼센트의 유전자 안에 존재한다. 이 작은 차이가 인간이라는 종의 절멸을 막았고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타성도 결국 이기성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타성과 이기성이 대척점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동물적 본능에 기반을 둔 이기성, 인간적 이성에 기반을 둔 이타성. 이 둘의 문학적 표현은 배신과 헌신이다. 그리고 이 둘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떨어질 수 없다.

인간이 발을 딛고 선 이 사회는 이기성이 팽배한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사람들은 자기 생존을 위한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제도적인 경쟁 안에서 사람들은 결핍된 이타성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이런 인간성에 대한 갈증을 잘 채워주는 것이 바로 배신과 헌신 플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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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과 도전 플롯



버림과 도전 플롯의 개요


버림과 도전 플롯은 주인공이 어떤 대상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방법론이다. 여기서 탐색의 대상은 자신의 존재와 인생 전체를 걸 만한 가치를 지녀야 한다. 이 서사 유형은 소설이나 영화뿐 아니라, 게임 콘텐츠 등에서도 다양하게 변주되어 사용된다.

신화를 비롯한 근대 이전의 서사에서는 영웅이 등장하는 모험 서사가 대부분이다. 수긍할 수 없는 현실세계를 벗어나서 자신의 뿌리나 이상적인 세계를 찾아 떠나는 모험 서사는 버림과 도전 서사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버림과 도전 플롯의 구조


버림과 도전 서사의 대부분은 이상적 자아를 추구해가는 과정에 할애된다. 고통스러운 도전을 이어가면서 주인공은 인생의 가치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자신이 현실에서 팽개쳐버린 것이 더 가치 있는지 혹은 이상적인 세계에서 쟁취할 것이 더 가치가 있는지 갈등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도전의 가치와 자기 존재의 가치조차 의문시한다. 이와 같이 내적 갈등의 진폭은 격렬하지만, 외형적으로는 인물의 변화가 의외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이미 강한 동기를 내면화하여 모든 것을 내건 채 도전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목표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다, 포기는 죽음이다. 바로 이것이 버림과 도전 플롯의 인물이 지닌 신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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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에 등장하는 조드 일가는 가문과 모래바람 탓에 폐허가 된 토지를 버리고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캘리포니아에는 일자리가 얼마든지 있다'는 전잔 한 장에 모든 것을 건 채, 낡은 자동차를 타고 산맥과 사막을 가로질러 수 천 마일을 달려간다. 도중에 조부모를 차례로 잃지만 매장도 못 하고 시신을 차에 실은 채 서쪽으로 향한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는 이기적인 대자본가의 땅이었다. 각지에서 모여든 25만 명의 농민들은 농장주의 착취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온종일 쉬지 않고 일해도 간신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임금. 조드 일가는 굶주리면서 이주민 캠프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탐스럽게 익어가는 농장의 포도는 오히려 분노의 포도라고 부를 만했다.

급기야 농민들은 임금 인상을 주장하며 파업을 시작한다. 농장주들은 농민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폭력단을 끌어들인다. 폭력단은 농민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목사 짐 케이시를 곤봉으로 살해한다. 그 참상을 목격한 차남 톰 조드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상대를 때려죽인다. 조드 일가는 경찰의 추격을 피해 목적지 없는 노정을 떠난다. 간신히 정착해서 목화 따는 일을 시작하지만, 사흘 동안 내린 비 때문에 집과 일자리를 모두 잃는다. 조드 일가는 비를 피해 언덕 위의 헛간으로 간다. 그곳에는 엿새를 굶은 노동자 사내와 그 아들이 있었다. 음식을 아들에게만 먹여온 사내는 굶주려 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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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과 피로로 아이를 사산한 톰 조드의 딸 로저샨은 아사 직전의 사내에게 다가가 자신의 젖을 물린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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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와 숭고 플롯



비루와 숭고 플롯의 개요


비루와 숭고 플롯은 비극 속에서 숭고한 희망을 발견하는 서사 유형이다. 처참하고 비루한 상황 속에서 명징하게 드러나는 삶의 비극을 보여줌으로써 인생의 본질과 세상의 질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와 같이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한 형식이다.



비루와 숭고 플롯의 구조


우리의 삶은 너절하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도 한 없이 비속하다. 그럼에도 삶의 비루함과 세상의 불미함을 총체적으로 인지하여, 한 편의 서사로 압축해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떤 경우에는 전 인생을 내걸고 집요하게 추적해야 그 본질에 근접할 수 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세계에서 비루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을 적절히 다룰 때, 독자나 관객은 매혹을 넘어서는 숭고함을 경험하게 된다.

비루와 숭고 플롯의 감동은 비극적인 플롯에서 비롯된다. 비극적인 플롯이란, 시작도 불행하고 중간도 불행하고 마지막은 더 불행한 것을 말한다. 하지만 희망은 비루함 속에서 더 힘차게 생동한다. 시궁창 속에서 핀 연꽃이 더욱 진귀한 것처럼 비루함 속에서 핀 희망은 더없이 숭고하다.

로힌턴 미스트리의 소설 『적절한 균형』에 등장하는 옴프라카시와 이시바는 인도의 불가촉천민으로, 출생부터 줄곧 불행하다. 그들의 삶에서 비극을 제외한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만큼 불행하다. 그래도 늘 자신의 삶이 더 나아지리라 믿고 고민하지만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다. 오히려 애를 쓰면 쓸수록 상황은 더 악화된다. 불가촉천민에서 벗어나 재봉사를 해보려고 발버둥 치던 주인공은 정부의 출산 억제 정책에 의해 거세당한다. 이는 미래로까지 깃든 비극이다. 본인들의 파멸을 넘어 다음 세대마저 절멸한 것이다.

이 소설은 인간 불행의 정점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서사다. 불행하게 태어나고 더 불행하게 살아가고 가장 불행한 인간으로 완성된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다. 그들의 불행에는 이유가 없다. 두 시간만 자며 일한다 하더라도 운명은 여전하다. 개선의 몸부림은 어차피 몸부림일 뿐이다. 나의 의지와 인생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가장 커다란 불행은 자신의 의지가 무용해질 때다. 내가 어떤 결심을 하고 어떤 노력을 해도 주어진 운명을 바꿀 수 없을 때, 인간은 절망한다. 자신의 불행한 운명에 개입할 수 없는 인간보다 더 비극적인 인간이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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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고백 플롯



성장과 고백 플롯의 개요


성장과 고백 플롯은 주인공이 세계나 타자와 갈등을 겪으면서 내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서사 유형이다. 이 서사 유형과 관련된 문학용어로는 성장소설, 교양소설, 자전소설, 고백 소설 등이 있다.



성장과 고백 플롯의 구조


성장과 고백 플롯의 주인공은 서사 전체에 걸쳐 자아의 확립을 위한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를 치른다. 그것은 주인공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개인이 맞서 변화시킬 수 없는 운명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반적인 것 이상의 통과의례를 치르지 않은 인물은 성장과 고백 플롯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주인공이 경험하는 통과의례는 어떠한 것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현실에 순종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인식체계를 뒤흔들 만큼 특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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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초월 플롯



환상과 초월 플롯의 개요


세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근대 서사의 방법론이 무력화되자 소설의 위기론은 증폭되었다. 특히, 근대소설을 통해 서구 근대정신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규범으로 세운 서구는 더 이상 세계문학전집의 권수를 늘리기 어렵게 되었다. 세계는 어느새 더 복잡해졌고 이성의 범위 안에서 세계를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일도 그만큼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인간이 '규범적인 객관성'으로 새로운 길을 정립할 수 없으리라는 회의가 발생했고, 그 대안으로 환상과 초월 플롯이 새로운 주목을 받게 되었다.

물론, 현실을 뛰어넘은 환상과 초월의 서사는 동서양의 신화에 폭넓게 존재해왔다.



환상과 초월 플롯의 구조


환상과 초월의 플롯은 합리주의에 기반을 둔 근대 서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서사 양식이다. 그래서 이 유형의 서사는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성과 비이성의 벽을 부순다. 그로 인해 환상과 초월의 플롯은 논리성의 잣대로부터 자유롭다. 근대 합리주의 서사는 논리적이고 인과관계가 정확히 성립되어야 하지만 환상과 초월의 플롯은 인과관계의 알리바이 자체를 거부한다. 오히려 인과관계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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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환상과 초월의 서사 유형은 판타지 장르 서사와 다르다. 판타지 장르 서사는 환상 그 자체가 목표일 뿐 인간의 문제를 은유하고 해명하는 걸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또한 유희적 기능 자체가 창작 동기이자 목적이다. 반면 환상과 초월 플롯은 환상성을 통해 인간과 세상의 진실로 접근하는 서사 방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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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서사 활용 플롯



 

원형서사 활용 플롯의 개요


원형서사 활용 플롯은 신화와 전설, 민담과 같은 이야기를 전용하거나 일부를 차용하여 새롭게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을 만드는 방법론이다. 특정 원형서사의 시점, 성격, 사건 등을 모티프로 삼아 전혀 다른 관점과 형식의 작품을 창출해내는 방법도 원형서사 활용 플롯에 포함된다.

이 플롯은 원형서사가 지니고 있는 잠재적 의미를 극대화하는 방법론 모두를 포괄하는데, 과거의 이야기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에 맞게 변용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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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그렇듯 이야기도 탄생과 소멸의 과정을 반복한다.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이야기의 탄생과 소멸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장구한 인류의 역사에서 소멸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원형서사는 그만큼 강한 생명력을 가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신화와 전설, 민담과 같은 원형서사에는 그 민족이 지키려고 하는 중요한 가치체계와 그 민족을 열광시키는 매혹적인 이야기의 구조가 내장되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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