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연설][명연설][위인] 사람을 움직이는 명연설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by 노지재배 2020. 9. 10.
반응형

 



오늘 소개하는 책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이다. 부제로는 〈어떤 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를 달고 있다. 

책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위인들의 명연설을 담고 있다. 윈스턴 처칠, 에이브러햄 링컨, 버락 오바마, 존 F. 케네디, 나폴레옹 등이다. 책의 제목을 빚지고 있는 마틴 루터 킹 목사 역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시대의 위인 맬콤 엑스와 함께 책에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예수의 산상수훈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어떤 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책의 말미에는 영어 연설문 원본도 싣고 있다. 해당하는 위인들이 영어만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번역서이면서 영문 원본을 싣고 있다는 점도 나쁘지는 않은 듯하다. 

책의 각 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처음에는 해당 인물과 그 연설이 있기 전까지의 시대 상황들을 간략히 설명한다. 그다음에는 연설문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연설 이후에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 어떤 변화들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아직 역사나 해당 위인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독자나 어린 독자들도 쉽게 연설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인 이유와 연설 이후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일반적으로 연설이란 청중이나 대중을 앞에 두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책에 실린 연설들은 연설자의 염원을 현실로 실현해 준 계기가 된 것도 있고, 연설자의 염원이 현실화되지 못한 사례들도 존재한다. 

결과적으로는 그 연설이 성공적이었든, 연설의 결과가 현실화했든 그렇지 않든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이미 명연설들은 성공 여부를 떠나 인상적인 대구(對句)와 '시대정신', 그리고 천재적인 '비유'를 통해 시대를 넘어 인류에게 회자되는 독특한 생명성을 띠고 있다. 

또한, 인류가 역사를 통해 그동안 보편타당하게 외치고 쟁취하고자 했던 '자유' '평등' '박애' 또는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돼왔던 도전정신과 소속감, 저항정신 등을 담음으로써, 앞으로도 우리가 나아갈 길을 밝히고 있다는 점도 이 명연설들이 시대를 넘어 인종과 국경을 넘어 오랜 기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하겠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국내도서
저자 : 퍼디 아디스 / 노효준역
출판 : 라이프맵 2012.03.28
상세보기



출판사의 책 소개에 이런 말이 나온다. 말은 전쟁을 일으키거나 공장을 가동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말은 분명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한 번쯤 조용한 시간에 일독하거나, 필요할 때 갈피갈피마다에 담긴 위인들의 열정을 참고한다면 이 책을 통해 사람을 움직이고, 역사를 움직여온 말의 힘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출판사의 책 소개 일부분을 옮긴다. 

"말은 전쟁을 일으키거나 공장을 가동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말은 분명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사람들은 급박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적절한 연설은 일관성 없이 북받쳐 오르는 고조된 감정을 실질적이며 조직화된 돌발적인 행동으로 바꿀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위대한 명연설들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어떻게 역사를 바꿀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목차

머리말_ 역사가 사랑한 위대한 연설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_ 버락 오바마 
우리는 정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해방을 위해 이라크로 갑니다_ 팀 콜린스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_ 조지 W. 부시 
우리나라는 80년 이상 이런 굴욕과 멸시를 맛보고 있습니다_ 오사마 빈 라덴 
자유가 지배하도록 합시다_ 넬슨 만델라 
권력이 부패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두려움이 부패하게 만듭니다_ 아웅 산 수 치 
이 장벽을 허물어버리십시오!_ 로널드 레이건 
이 여자는 돌아가지 않겠습니다_ 마거릿 대처 
투표가 아니면 총알을 선택할 것입니다_ 맬컴 엑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_ 마틴 루터 킹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으십시오_ 존 F. 케네디 
변화의 바람이 이 대륙 전체에 불고 있습니다_ 해럴드 맥밀런 
운명의 날이 다가왔습니다_ 자와할랄 네루 
우리는 계속해서 진격할 것이다_ 조지 S. 패튼 
조국에 미치는 손실은 우리만으로도 족하다네_ 로렌스 올리비에; 윌리엄 셰익스피어 
우리 국민은 정의로움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머쥘 것입니다_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이 전쟁은 해방 전쟁이며 정의의 전쟁입니다_ 요세프 스탈린 
저항의 불꽃은 꺼져선 안 되며 꺼지지도 않을 것입니다_ 샤를 드골 
단합된 힘으로 함께 전진합시다_ 윈스턴 처칠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_ 윈스턴 처칠 
“이때가 그들의 전성기였다”라고 말할 것입니다_ 윈스턴 처칠 
제가 배우지 않은 한 단어가 있다면 그건 바로 ‘항복’입니다_ 아돌프 히틀러 
인도에 구원은 없습니다_ 모한다스 간디 
충성심은 법이 아니라 감정입니다_ 로저 케이스먼트 
자유 없는 아일랜드는 결코 평화로워질 수 없습니다_ 패트릭 피어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줘야 하는 선택의 상황으로 적을 밀어 넣을 것입니다_ 에멀린 팽크허스트 
나는 더 이상 싸우지 않겠습니다_ 조지프 족장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_ 에이브러햄 링컨 
저는 여성이 아닙니까_ 소저너 트루스 
친위대여 잘 가거라_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그것은 바로 미덕입니다_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당신들이 행하지 않은 악덕이 한 가지라도 남아 있는가_ 올리버 크롬웰 
나는 왕으로서, 또한 영국의 왕으로서 용기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_ 엘리자베스 1세 
모든 사람은 서로 평등하게 창조되었습니다_ 존 볼 
누가 이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고 영토를 회복하겠습니까_ 교황 우르반 2세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축복이 있으니, 하늘나라가 그대들의 것이다_ 나사렛 예수 
너의 가슴은 분노로 짓이겨질 것이다_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웅변가들 

부록_ 영문 연설


■저자

퍼디 아디스

퍼디 아디스(FERDIE ADDIS)는 네 살 때 그림책으로 《오디세이》를 읽은 후로 고전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 학위를 받았다. 고대의 신화와 전설에 대한 책을 읽고 쓰면서 생활하고 있다. 저서로는 《판도라의 상자》가 있다.


■역자

노효준

노효준은 미국 유타대학교에서 마케팅 및 재무학을 전공하였으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은행에서 규율 및 제재 담당 업무를 맡았다.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책 속으로


"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요."
Because Mount's there.

1924년 6월 영국 산악인 조지 앨러리 Georgy Mallory는 에베레스트의 북쪽에 위치한 가파른 바위를 올라갔다. 그리고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75년이 지난 뒤 어느 산악팀이 수년간 햇빛과 눈으로 색이 바랜 채 얼어붙은 부러진 그의 사체를 발견했다. 
맬러리가 과연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올랐을까 하는 의문은 산악계에 해결되지 않은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만약 정상에 올랐다면 그는 에베레스트에 오른 최초의 산악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는 그다음에 성공한 원정대를 거의 30년이나 앞선 기록이다. 
비록 맬러리의 등정이 실패로 끝났다고 할지라도 그는 세상에 영원히 남을 만한 명언을 남겼다. 그것은 기자의 질문에 무심코 던진 대답이었는데, 이는 산악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신념이 되었다. 한 기자가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합니까?"라고 묻자 맬러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왜냐하면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요."

"

.
.
.


"

"자유는 절대 가져갈 수 없다!"
They will never take our freedom.

1995년 개봉한 서사영화 〈브레이브 하트 Braveheart〉에서 멜 깁슨은 세상을 향해 연설했다. 이 연설은 최근 소설에 등장했던 연설문들 가운데 가장 허구적이고 풍자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머리가 길고 (시대착오의) 얼굴에 파란 색칠을 한 윌리엄 월리스 역을 맡은 멜 깁슨은 충성스러운 스코틀랜드 군인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싸우세요, 그러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도망가세요, 그러면 최소한 얼마 동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 침대 위에서 죽어갈 때, 여러분은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날들을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 이날로 되돌리고 싶을 것입니다. 젊은이로서 이 자리에 다시 돌아와 적들에게 "우리의 목숨을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유는 절대 가져갈 수 없다!"라고 외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 말입니다.

"

.
.
.


"

투표가 아니면 총알을 선택할 것입니다
맬컴 엑스 Malcolm X

마틴 루터 킹이 흑인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얻기 위해 비폭력 운동을 주장하는 동안 한편에선 알 수 없는 모호한 운동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이 운동을 이끈 사람은 이슬람 운동가인 맬컴 엑스(1925~1965)였다.
본명은 맬컴 리틀 Malcolim Little로, 엘 하지 말릭 엘 샤바즈로도 널리 알려졌다. 네브래스카에서 태어난 이 미래의 지도자는 학업 성적이 뛰어났지만, 가족에게 닥친 비극적인 사건*과 편견으로 방황하다 절도범으로 체포되어 교도소까지 갔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맬컴 리틀은 종교를 접하게 되었다. 1952년 가석방되었을 때 그는 흑인 민족주의자의 이슬람교도 종파인 이슬람민족 Naution of Islam**의 맬컴 엑스라는 성직자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엑스'는 '알 수 없다'는 뜻으로 노예 주인들이 빼앗아간 선조들의 잃어버린 아프리카 성을 상징했다.
맬컴 엑스는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운동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혁명은 피비린내 나는 것이다. 혁명은 적대적이고, 어떤 타협 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혁명은 방해되는 모든 것을 뒤집고 파괴해버린다."
그러다가 1964년쯤 맬컴 엑스는 유연한 입장을 취하게 된다.
특히 백인을 '악마'라 믿고 있던 '이슬람민족' 단체를 거부했고, 투쟁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행위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4월 오하이오주의 한 감리교회에서 그의 가장 유명한 연설을 통해 대중에게 새로운 철학을 피력했다.


투표가 아니면 총알을 
·1964년 4월 3일, 오하이오주 코리감리교회·

… 오늘 밤 여러분에게 드릴 질문은 "흑인의 봉기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서 어디로 갑니까?" 또는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저의 식견으로 이해하기에 이 질문은 투표가 아니면 총알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 ... )

... 우리 모두는 여기, 이 나라에서 백인들의 정치적 제약과 경 제적 착취, 사회적 수모로 큰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건 우리가 반백인주의자란 의미는 아니지 만 인종에 따른 착취와 수모, 제약에는 반대합니다. 혹시 우리가 그에 반하는 사람이 되지 않길 원한다면, 그 백인에게 우리를 그만 억압하고 착취하며 수모를 주지 말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 야 합니다...
우리가 하루속히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투표가 아니면 총알을 사용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저의 생각에 여러분도 동의할 것입니다. 1964년에는 투표가 아니면 총알을 선택할 것입니다. 이제 시간이 다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 ... )

저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를 공부한 사람 도 아닙니다. 사실 저는 그 어떤 것도 공부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민주당 지지자가 아닙니다. 공화당 지지자도 아닙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과 제가 미국인이었다면, 아마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백인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미국인이 되었습니다. 폴란드인들도 미국인이 되었고, 이탈리아 난민들도 미국인이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온 모든 사람과 파란 눈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미국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사는 동안 여러분과 저는 미국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어서 맬컴 엑스는 미국 정지의 현 상황을 길게 설명한다. 남부의 차별주의적인 민주당원들, 혹은 '남부의 민주당 탈당파 당원들'이 시민권 법안을 반대하도록 놔두었기에 흑인들한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흑인의 투표권이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조리 있게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민주당이나 공화당을 반대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것에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냥 그들의 진정성과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며 우리를 이용했던 몇몇 전략에 관해 질문하는 것입니다. 민주당원들을 계속 권력의 자리에 앉도록 놔두는 행위는 남부의 민주당 탈당파 당원들한테 권력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저의 참 좋은 형제 로맥스도 제 말에 공감할 것입니다.
민주당에 투표하는 행위는 남부의 민주당 탈당파에게 투표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1964년 지금 여러분과 저는 정치적으로 더 성숙해져야 하며, 투표권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투표를 통해 무엇을 얻게 될지, 투표를 하지 못할 경우 총알을 사용하는 상황에 다다르게 될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투표가 아니면 총알인 것입니다.

-------------------------------------------------------------------

결과

맬컴 엑스의 꾸밈없는 연설은 마틴 루터 킹의 과장된 수사법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럼에도 이 연설은 억압받고 투표권을 빼앗긴 청중의 심금을 울렸다.
시민평등권 운동으로 발전되는지 아닌지는 또 다른 문제다. '총알'에 관한 연설로 맬컴 엑스는 인종 간의 신뢰를 쌓는 데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적극적인 연설 이면에는 숨겨진 이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맬컴 엑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만약 백인들이 우리의 대안이던 총알의 의미를 깨달았다면 그들은 아마도 김 박사의 연설을 더 즐겨 들었을 것입니다."
1965년 투표권법은 미국 흑인들에 대한 모든 법적 제약을 없앴다. '투표가 아니면 총알을'이라는 말은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내내 우선시 되는 무기였다. 하지만 맬컴 액스는 이런 날을 만끽하지 못했다. 19975년 마틴 루터 킹처럼 과거 자신이 속해 있던 '이슬람민족' 단체의 일원 가운에 그를 향해 복수심을 불태우던 사람의 총에 맞아 암살당했다.

-------------------------------------------------------------------

* 어느 날 백인들이 맬컴의 집을 습격해 아버지와 형제들을 살해했으며, 이때의 충격으로 그의 어머니는 정신이상이 되었다. ** 블랙 무슬림이라고도 한다.

"

.
.
.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서명한 노예해방령으로 북부에서는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다. 2년 후에는 내전(미국 남북전쟁)이 종식되었고, 노예를 소유한 남부연합이 패배함으로써 목화밭에 억류되어 고역을 치르던 수백만 명의 흑인 노예들은 새로운 자유의 새벽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잠깐 동안은 그 찬란한 새벽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남부를 점령한 연방군은 격렬한 반대에도 흑인들의 자유권과 투표권을 보장했다.
그러나 1877년 연방군은 '구세주'라 불리는 급진주의인 민주당원들에게 남부를 맡겨두고 철수했다. 그후 흑인 투표자들은 선거인 명부에 등록하는 것을 저지당했으며, 폭력단체인 큐 클럭스 클랜 ku Klux Klan(약칭은 KKK단) 등 인종차별주의적인 극우 비밀조직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차의 객차와 카페, 식수대, 대기실 등 공공장소에는 '백인 전용'이라는 표지가 하나둘 붙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1929~1968)는 이런 인종차별정책이 만연한 미국에서 태어났다. 존경받는 침례교 목사의 아들이자 인권운동가로서 젊은 마틴이 '하느님과 인류를 섬기기 위한 '내면의 권고 inner urge'을 공표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1955년 그는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었다. 1963년 킹 목사는 호소력 짙은 설교적 어투와 수사학의 천부적 재능으로 분리와 법률적 차별의 폐지를 요구하며 갈수록 규모가 커진 시민권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시민권 운동이 자신의 본분이라고 여긴 채 수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대의와 정의를 이끌었다.
그해 늦은 여름 워싱턴에 있는 링컨기념관의 그림자 아래서 킹 목사는 군중을 향해 유명한 연설을 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 링컨기념관·

( ... )

100년 전 오늘,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상징적인 그림자의 주인 공인 어느 위대한 미국인이 노예해방령에 서명했습니다. 이 중대한 법령은 자꾸만 움츠러드는 불의의 불꽃에 그슬려왔던 수백만 명의 흑인 노예에게 희망의 횃불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노예로 살아온 기나긴 밤의 끝을 알리는 환희에 찬 새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후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애석하게도 흑인의 삶은 격리라는 족쇄와 차별이라는 사슬로 말미암아 여전히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 ... ) 따라서 오늘 우리는 이런 수치스러운 상황을 생생하게 드러내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킹은 준비한 연설을 이어갔다. 이 연설은 미합중국의 헌법 제정자들을 비롯해 헌법과 관련된 글이자 큰 영향력을 가진 문서로, 차별로 말미암아 고통받은 불의에 관한 맹렬한 탄핵이었다. 연설을 낭독한 후 결국 그가 의도했던 결론에 이르렀다.)

( ... )


여러분 가운데 몇몇 사람은 크나큰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이 자리에 왔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비좁은 교도소에서 방금 풀려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유를 요구하다가 도리어 학대와 경찰의 잔인한 만행으로 고통받는 지역에서 왔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식으로 고통받는 데 이골이 나 있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런 부당한 고통에 대해 보상받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일을 계속해나갑시다. 미시시피로 돌아가십시오. 앨라배마로 돌아가십시오.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돌아가십시오. 조지아로 돌아가십시오. 루이지애나로 돌아가십시오. 이런 상황이 어떻게든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빈민가와 북부 도시들의 흑인 거주 지역으로 돌아가십시오.
(킹이 자리에 착석하려는 순간에 흑인 가스펠 가수 머핼리아 잭슨 Mahalia Jackson이 군중 속에서 외쳤다. "이들에게 당신의 꿈을 말해주세요. 마틴, 이들에게 꿈에 대해 말해주세요." 이 말에 킹은 즉흥적으로 연설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군중 사이에서는 활기가 넘쳤다.)
이제 절망의 계곡에서 뒹굴지 마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 참석 한 내 모든 친구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오늘과 내일 곤경에 처할지라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 는 아메리칸드림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바로 그 꿈입니다.
나는 언젠가는 이 나라가 국가의 신념인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자명한 진리를 받들어야 한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이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게 될 그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나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서 예전 노예들의 자식들과 예전 노예 소유주들의 자식들이 형제애라는 탁자에 둘러앉게 될 그런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나는 불의의 열기와 억압의 열기로 무더운 미시시피주까지 자 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바뀌게 될 그런 꿈을 꾸고 있습니다.
나는 언젠가 내 사랑하는 네 명의 자녀가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 수 있을 거라는 꿈이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는 잔인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주권 우위설'과 '주의 연방 법령 실시 거부'라는 말을 계속 내뱉는 주지사가 있는 앨라배마에서 흑인 소년 소녀들이 자매와 형제로서 어린 백인 소년 소녀 들과 손을 맞잡게 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모든 계곡이 높아지고, 모든 언덕과 산이 낮아지며, 거친 곳이 평평해지고, 굽은 곳이 곧게 펴지며,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서 모든 생명이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는' 그런 꿈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희망이고, 이것은 내가 남부로 돌아갈 때 가지 고 갈 신념입니다.
우리는 이 신념으로 절망의 산에서 희망의 돌을 캘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념으로 우리나라의 소란스러운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형제애의 교향곡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념으로 언젠가 자유롭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진 채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싸우고, 함께 교도소에 가며, 함께 자유를 옹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유의 날, 바로 그날은 하느님의 모든 자녀가 이런 새로운 뜻으로 노래 부를 수 있는 날이 될 것입니다.
나의 조국은 바로 자유의 달콤한 땅, 이 나라에 대해 나는 노래할 것입니다.
나의 조상이 죽은 땅, 필그림 Pilgrim의 자부심인 땅, 모든 곳에서 자유여, 울려 퍼져라!
만약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되려고 한다면,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뉴햄프셔의 거대한 언덕 꼭대기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 도록 합시다.
뉴욕의 웅장한 산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펜실베이니아의 높은 앨러게니산맥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콜로라도의 눈 덮인 로키산맥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캘리포니아의 굽이진 산비탈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비단 그뿐이 아니라, 조지아의 스톤산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테네시의 룩아웃산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미시시피의 모든 언덕과 두더지가 파놓은 흙 두둑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모든 곳에서 자유여, 울려 퍼져라!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자유를 울려 퍼지게 할 때, 모든 마을과 주와 도시에서 울려 퍼지게 할 때 우리는 흑인과 백인, 유대인과 이방인, 개신교도와 가톨릭교에 속한 하느님의 모든 자녀가 손을 맞잡고 옛 가스펠을 부르게 될 그날이 빨리 오도록 속도를 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드디어 자유다! 드디어 자유다! 
전능하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드디어 자유입니다!

-------------------------------------------------------------------

결과

킹 목사의 연설은 미국 시민권 투쟁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킹 목사는 지적 주장과 성서의 수사학, 애국적인 간곡한 권고('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라는 구절은 애국심을 담은 유명한 노랫말을 기도문으로 바꾼 것임)가 조화를 이뤄 불을 내뿜는 것 같은 말로 흑인 인권 운동가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심어주었다.
이 연설로 한창 거드름을 피우던 워싱턴의 정치인들은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 1964년 마침내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인종 분리를 없애는 시민권법을 통과시켰다. 일 년이 지나 시행된 투표권법으로 미국 흑인들은 마침내 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투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차별은 여전히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이에 환멸을 느낀 흑인 운동가들은 공격적인 투쟁을 지지하며 킹 목사의 비폭력적 수칙을 따르지 않게 되었다.
1968년 킹 목사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그는 절대 비 관하지 않았다. 그의 추종자들한테 한 연설에서 "이제 저랑은 상관없습니다. 저는 산꼭대기에도 있었고, 약속의 땅도 보았습니다. 어쩌면 여러분과 함께 그곳에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한테 국민으로서 우리는 그 약속의 땅에 닿을 수 있음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멤피스호텔 발코니에 서 있던 마틴 루터 킹은 한 백인 인종차별주의자가 쏜 총에 맞아 최후를 맞이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아홉 살이었다.

"

.
.
.

"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으십시오
존 F. 케네디 John F. Kennedy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1917~1963)는 미국 대통령이 되기 위한 길에 놓인 갖가지 어려움을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제2차 세계대전에 해군 장교로 참전했을 때 그가 타고 있던 순시선은 일본 구축함의 공격을 받아 침몰되었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조되기를 기다리며 3일간 바다 위를 표류했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고질병(희귀한 내분비장애인 애디슨병)에 시달렸지만, 스테로이드로 정치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케네디의 태생적인 덕목과 관련해서는 더 많은 장해물이 무너뜨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그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역대 후보자들 가운데 가장 젊었다. 게다가 가톨릭 신자였다. 냉전이 절정에 달하면서 케네디가 '반미적인' 길로 가고 있다는 일각의 불분명한 비판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케네디는 1960년의 대선에서 리처드 닉슨을 제치고 근소한 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제 그는 미국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큰 짐을 지게 되었다. 나이 든 백인 신교도들이(재임 중이던 아이젠하워는 그 의회에 참석한 최고령자였음) 장악하고 있던 정치권에 들어간 케네디는 취임식 연설에서 자신을 신세대라고 소개하며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했다. 이 연설은 주위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해 케네디가 직접 작성한 것이다.


취임 연설
·1961년 1월 20일,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변화와 부활을 의미하는 자유의 축제를 보고 있습니다. 이 자유는 우리의 출발점인 동시에 종착점입니다. 우리 조상이 175년 전에 정해놓았던 정식 선서를 제가 여러분과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계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 인간은 어떤 형태의 빈 곤이나 삶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조상이 자신들의 생명을 바쳐 싸운 이유와 동일한 혁명의 신념, 다시 말해 인간의 권리가 국가의 관용에서가 아닌 하느님의 손길에서 비롯되었다는 그 신념은 아직까지 세계 도처에서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 최초 혁명의 계승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혁명의 횃불이 20세기에 태어나 전쟁으로 단련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힘겹고 쓰라린 훈련을 받고, 우리 선조들의 유산을 자랑스러워하는 새로운 세대의 미국인들까지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전 세계인에게 알립시다. 그리고 이 나라가 항상 약속해왔으며, 오늘날 우리가 국내와 전 세계에 약속 한 바로 그 인권이 유린되는 것을 좌시하거나 허용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이 시각 이 장소에서 우방 국가들과 적대 국가 모두에게 알립시다.
다른 나라들이 우리에게 행운을 빌든 악운을 빌든 간에 우리는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어떤 대가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고, 어떤 괴로움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으며, 어떤 어려움도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으며, 어떤 국가와도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어떤 적과도 겨룰 준비가 되어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립시다.
우리는 이러한 많은 것들을, 아니 그 이상의 것들을 맹세해야
합니다.
우리는 문화적·정신적 기원을 함께한 우리의 오랜 우방국들에 게 동반자로서 끝까지 충성과 신의를 다할 거라는 사실을 맹세해야 합니다. 

( ... )

우리는 자유국가의 대열에 합류한 신생국들에게 진심 어린 환 영과 식민통치가 더 강한 독재로 대체되는 것을 그저 좌시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맹세해야 합니다.

( ... )

많은 고통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빈곤과 사투를 벌이는 지구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우리는 그들이 자립하도록 돕는 데 최선을 다할 거라는 사 실을 맹세해야 합니다. ( ... ) 만약 자유사회가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없다면,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 역시 구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국경 남쪽에 위치한 중남미 형제국들에게 새로운 동맹국으로서 그들과 그들의 자유정부가 빈곤의 사슬에서 벗어나도록 돕겠다는 선의의 말을 선의의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특별한 맹세를 하려고 합니다. 

( ... )

전쟁의 수단이 평화의 수단을 앞지르고 있는 이 시대에 마지막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 ... )

-------------------------------------------------------------------

결과

케네디는 지구상에 심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시기에 정권을 잡았다. 냉전은 전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채 새롭고도 아주 위험한 단계로 들어서고 있었다. 1961년 6월 케네디는 공산주의가 서방의 자본주의자들을 '매장시킬 것'이라고 경고하며 젊은 대통령을 위협하던 소련연방의 니키타 흐루시초프와의 힘겨운 회의를 잘 마무리했다.
그 후 소련을 비롯해 사회주의 진영은 자본주의 진영인 서베를린을 나누는 베를린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국이 지원했던 쿠바의 피그스만 침공 작전은 비참한 패배로 끝이 났다. 당시 확장된 소련의 미사일 실험 계획은 핵무장 경쟁을 부추겼다.
가장 도발적인 사건은 1962년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였다.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던 며칠 동안 케네디와 흐루시초프는 미국 해안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설치한 핵미사일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세계는 파멸을 예고하는 핵전쟁의 위기 상황에 내몰린 듯 보였다.
그 암울한 시기에 케네디의 연설은 탁월한 선언문으로 자리매김했는데, 이것은 미국이 어떤 도발도 이겨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음을 대내외에 알린 실로 대담한 성명이었다. 1963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리 하비 오즈월드 Lee Harvey Oswald에게 암살당하기 전까지 1,037일 동안 케네디는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이끌었다. 그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미국의 유명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

.
.
.


"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 
That's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1969년 7월 20일, 두 명의 미국인 우주비행사가 미지의 달 표면에 접근했을 때 전 세계는 마치 깨지기 쉬운 공예품을 지켜보듯 이를 숨죽인 채 지켜보았다. 마침내 이글 착륙선이 그 척박한 땅에 착륙했다. 그 달착륙선 안에서 닐 암스트롱 Nell Armstrong은 텍사스주에 있는 미 우주항공국으로 무전을 쳤다. '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기지입니다. 이글이 달에 착륙했습니다.' 
우주비행사들이 이글 착륙선의 출입구를 열기 전까지 아직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7월 21일 닐 암스트롱은 갑갑한 달착륙선에서 나와 우주로 향하는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사다리를 타고 천천히 내려와 달의 먼지 위로 발을 내딛는 순간, 그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

"

.
.
.


"

우리는 계속해서 진격할 것이다
조지 S. 패튼 George S. Patton

조지 S. 패튼(1885~1945)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뛰어난 야전 사령관으로 이름을 날리는 등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개인적으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군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전쟁사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군사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1917년에는 서부전선에서, 1942년에는 북아프리카에서, 1943년에는 시칠리아에서 공적을 세웠다. 그리고 1944년 지도자로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던 그는 독일 점령하에 있는 프랑스를 연합군과 침공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미3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혁신적인 군사 전략가이자 자기 뜻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재 주를 가진 패튼은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군인으로 명성을 얻었는데, 명성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을 아주 즐거워했다. 또한 평소 행동이 서툴러 사고를 많이 쳤지만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기는 데 뛰어난 추진력을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면 수줍음이 많고 불안해했지만, 필요한 상황이란 생각이 들면 부끄러운 기색 없이 대중 앞에서 과장된 연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헨리 5세의 용기를 주는 연설문 정리를 바쁘게 끝내는 동안 패튼은 상당히 다른 논조의 연설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작전 개시 전날에 군인들을 모아놓고 그는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미군 장병들에게 고함
·1944년 6월 5일, 작전 개시 전날의 연설·

( ... ) 여러분은 지금 세 가지 이유로 이곳에 와 있다. 
첫째, 여러분의 가정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둘째, 여러분 자신의 자존심 때문인데, 여러분은 지금 다른 어
느 곳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 않을 것이다.
셋째, 여러분은 진정한 사나이이고, 진정한 사나이는 싸우길
좋아하기 때문이다. 

( ... )

물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루속히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고 돌아가고 싶다. 전쟁을 가장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이 전쟁을 시작한 놈들을 잡아오는 것이다. 그들을 빨리 빼내 올수록, 우리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베를린과 도쿄를 통과하는 것이다. 나는 베를린에 도착하면 저 전단에 인쇄되어 있는 히틀러를 직접 처리할 것이다. 반드시 내 총으로 뱀을 쏘듯 그를 한 방에 쏴 맞힐 것이다!

( ... )

우리는 저 놈들을 그냥 총으로 쏴 죽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살아 있는 빌어먹을 내장을 밖으로 꺼내 찢어버리고, 그것으로 우리 탱크의 바퀴를 기름칠할 것이다. 우리는 저 형편없는 훈족 Huns*들을 망할 놈의 부셸 bushel 바구니로 쳐서 죽여버릴 것이다. 전쟁은 이처럼 피비린내 나는 살인을 부른다. 여러분이 그들의 피를 흘리게 했다면, 그들 역시 여러분의 피를 흘리게 하려고 안달할 것이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그들의 배를 갈기갈기 찢어놓아라. 그들의 내장 속으로 총을 쏘라. 포탄이 사방에서 떨어지고, 얼굴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그것이 흙이 아니라 한때 여러분과 가장 친했던 전우의 피와 내장인 것을 알았을 때 여러분은 그다음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저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메시지를 받고 싶지 않다. 우리는 어떤 망할 것도 지킬 필요가 없다. 독일 놈들이나 그렇게 하라고 해라. 우리는 계속해서 진격할 것이고, 적군들의 급소를 치는 것 이외에는 어떤 물건이나 땅을 차지하든 간에 그것은 관심 밖의 일이다. 우리는 그들의 급소를 공격할 것이고, 언제든 그들을 발로 차서 죽일 것이다. 우리 작전의 기본 전략은 진격이다. 적군의 위로 가든 아래로 가든, 아니면 지나가든 개의치 말고 계속해서 진격하라. 우리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적진의 땅을 지나갈 것이다. 그것도 승리의 함성을 지르며 맹렬하게 지나갈 것이다!

( ... )

이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여러분 모두가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굉장한 사실 하나가 있다. 20년 뒤 손자를 무릎 위에 앉히고 따뜻한 벽난로 앞에 앉아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그 아이가 2차 세계대전에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손자를 다른 무릎으로 옮기면서 "글쎄, 그때 할아버지는 루이지애나에서 그냥 삽질하고 있었지"라고 말하는 것에 감사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여러분은 손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자랑스러움이 한껏 묻어난 목소리로 "얘야, 할아버지는 위대한 미3군과 그 빌어먹을 조지 패튼 장군이랑 탱크를 탔었다!"라고 말해주어라!

-------------------------------------------------------------------

결과

미군은 작전 개시일로부터 한 달 넘게 지났을 때까지 노르망
디에 상륙하지 못했지만, 패튼은 상륙하자마자 그가 연설 중에 했던 말을 증명해 보였다. 그의 군대는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프랑스를 휩쓴 뒤 적국의 두 기갑부대를 포위하면서 독일군 전선을 무너뜨림과 동시에 계속 진격해 나갔다. 1945년 1월경 미3군은 역사상 가장 많은 군대와 싸웠으며 빠른 속도로 적의 영토를 잠 식해 들어갔다.
그해 봄 패튼의 군대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거침없이 밀고 들어가더니 4월에 드디어 베를린을 함락했다. 하지만 그는 히틀러를 총으로 쏴 죽이지는 못했다. 그 독재자는 소련 군대가 도시 곳곳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4월 30일 비밀 벙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선수를 쳤기 때문이다.
물론 훌륭한 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패튼은 미3군이 이룬 성공까지 모두 자신의 공적으로 돌려선 안 된다. 그의 별명은 '노장의 혈기와 배짱'이었는데, 군인들은 '우리의 혈기와 노장의 배짱'이라며 장난조로 꼬집어 말하곤 했다.

-------------------------------------------------------------------

* 특히 제1,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인을 경멸해 부르던 말이다.

"

.
.
.


"

저항의 불꽃은 꺼져선 안 되며, 꺼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샤를 드골 Charles de Gaulle

1940년 5월 초 프랑스는 독일의 침공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다. 1939년 히틀러의 나치 부대가 자국의 영토를 침략했지만 프랑스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를 방어하는 연합군의 병력이 독일군의 탱크와 비행기, 군사보다 수적으로 우세했을 뿐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 간의 주요 국경지역이던 마지노선에는 수많은 벙커가 있었다.
그러나 6월 중순 프랑스군은 독일군의 군화에 짓밟힌 채 누구도 예상치 못한 굴욕을 당했다. 독일의 기갑부대는 곰팡이가 핀 로크포르치즈를 칼로 찌르듯 연합전선을 쉽게 뚫고 계속 전진했다. 6월 14일 파리가 함락되었고, 이어 17일에는 총리인 필리프 페탱 Philippe Pétain이 라디오를 통해 프랑스는 항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페탱의 조건부 항복은 제1차 세계대전의 처참하고 끔찍한 유혈사태를 기억하고 있는 일부 프랑스 시민에게 오히려 안도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에겐 항복이라는 흰 깃발을 흔드는 것조차도 또 다른 서부전선의 대학살을 피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처럼 보였을 정도다.
그러나 적어도 한 명의 프랑스인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바로 샤를 드골(1890~1970)이었다. 그는 프랑스인 특유의 자부심과 잔혹함을 동시에 지닌 장군이었다. 프랑스군이 후퇴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그는 런던으로 도주했다.
페탱의 수치스러운 방송이 나간 다음 날 드골은 영국에서 항복 결정에 저항하는 라디오 연설을 방송 전파로 내보냈다. 그의 연설은 다른 나라에 망명 중이던 프랑스군 장교를 비롯해 프랑스 국민들을 결집시켰고, 독일 나치군에 대항하는 싸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프랑스 저항의 불꽃 
·1940년 6월 18일, BBC 방송·

지난 몇 년간 프랑스 군대를 지휘하던 지도자들이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우리 군대가 패배했다고 선언한 이 정부는 전투를 중지하기 위해 적과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 ... )

그러나 우리가 항복했다는 마지막 말을 했습니까? 이제 모든 희망을 버려야만 합니까? 우리의 패배가 마지막이고, 더는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게 "아닙니다!"입니다. 
이 전쟁의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제가 여러분에게 프 랑스의 대의명분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으니, 제발 저를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패배를 초래한 많은 요인이 언젠가는 우리를 승리로 이끌지도 모릅니다.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두십시오. 프랑스는 혼자가 아닙니다. 프랑스는 절대 고립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뒤에는 독일군에 맞서 싸울 막강한 힘을 가진 연합군이 있습니다.
프랑스는 바다를 장악한 채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대영제국과 협력할 수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는 영국처럼 미국의 거대한 산업자원에 무제한적으로 의존할 수 있습니다.

( ... )

오늘날 우리는 프랑스를 향해 돌진하는 독일 기계화 부대의 힘에 제압당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열을 가다듬어 그보다 더 뛰어난 전투력을 자랑하는 기계화 부대로 반드시 승리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프랑스의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 가의 운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지금 런던에서 저 드골이 무기를 가지고 있든 없든 간에, 현재 영국 영토에 있거나 앞으로 올 예정인 프랑스 장교와 군인들에게 전합니다.
지금 영국 영토에 있거나 앞으로 올 예정인 병기 공장의 모든 기술자와 전문 노동자에게 전합니다.
이 시간 이후로는 저와 함께할 것을 촉구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프랑스 저항의 불꽃은 꺼져선 안 되며 꺼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

결과

드골의 이 연설은 세 차례에 걸쳐 전파를 탔다.
이 연설이 방송되었을 때 소수의 청중만이 드골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저항의식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져나갔고, 프랑스를 탈출한 사람들은 상징적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지만 전투력 면에서는 보잘것없던 드골 장군의 전투부대에 합류하기 위해 런던으로 모여들었다. 
독일군에 점령당한 프랑스를 떠나지 못한 다른 사람들 역시 마음을 흔드는 드골의 마지막 말을 오래 시간 가슴속에 새겼다. 그리고 수천 명의 프랑스 남성과 여성은 더 강력해진 레지스탕스 Resistance*의 일원이 되어 독일 전선 뒤에서 용감히 싸웠다. 4년 후 샤를 드골은 승리를 거둔 자유 프랑스 해방군의 선두에 서서 파리에 입성했다.
물론 대부분의 전투를 수행한 사람들은 영국인과 미국인이었지만, 드골의 위풍당당한 풍채는 프랑스인에게 그를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군에 함락된 프랑스를 해방시킨 영웅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프랑스 제5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드골은 수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월등한 공군력을 갖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는 프랑스의 자부심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는 그의 반항적이며 고집스러운 태도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

* 프랑스어로 '저항' 이라는 뜻이다.

"

.
.
.


"

"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만 나를 따르십시오."
Let him who loves his country follow me.

주세페 가리발디 Guiseppe Garibaldi는 분단된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여러 개의 작은 국가로 이루어진 이탈리아는 서로 다투거나 외국 지배자들의 통치로 말미암아 고투를 벌여야 했다.
1848년 가리발디는 당파심으로 똘똘 뭉친 낡은 체제를 씻어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이탈리아 공화국을 세우고자 했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1849년 로마에서 그는 포위하고 있던 프랑스군에게 이제 항복을 해야 하는, 부상당하고 좌절에 빠져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누구보다 도전적이었던 그는 성 베드로광장에 모인 군중을 향해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군인들이여, 나는 로마 밖으로 나갈 것입니다. 저 낯선 자들에게 대항해 계속 전쟁을 하길 원하는 사람은 나와 함께 갑시다. 나는 급료나 막사, 식량도 제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굶주림과 갈증, 힘겨운 행군, 전쟁, 죽음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만 나를 따르십시오.

10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통일된 국가를 바라던 가리발디의 꿈은 결국에 실현되었다. 그리고 그는 근대 이탈리아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 윈스턴 처칠은 가리발디의 유명한 말에서 '피와 노고, 눈물, 땀' 연설의 영감을 얻었다.

"

.
.
.


"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

영국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총리인 처칠은 강직한 성격과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보여준 리더십,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준 연설로 유명하다. 이 연설은 됭케르크 Dunkirk 철수에 대한 보고인 동시에 최후까지 싸울 것을 선동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처칠은 됭케르크에서 해외 파견군 British Expeditionary Force을 성공적으로 철수시키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의회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작전 시행에 관한 감동적인 설명과 이를 가능케 만들어준 사람들의 영웅적 행위를 치하한 뒤에 처칠은 연설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1940년 6월 4일, 영국 웨스트민스터 하원의회·

( ... )
그럼에도 우리 군대와 수많은 군인이 대피할 수 있었던 것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간 이들을 사랑하는 가족들은 고통스러운 한 주를 보냈을 것입니다. 지금의 이 기쁨으로 말미암아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벌어진 일이 엄청난 군사적인 참사라는 사실에 대한 우리의 판단력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프랑스군은 약해졌고 벨기에군은 패했습니다. 많은 신념 위에 세운 요새화된 방어선의 상당 부분이 무너졌습니다. 가치 있는 수많은 광산 지역과 공장이 적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런 모든 참사로 영국해협 전역의 부두도 적의 수중으로 넘어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프랑스 혹은 우리 영국에게 바로 가해질 또 다른 공 격을 준비해야 합니다.

( ... )

비록 유럽의 넓은 지역들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많은 나라가 함락되거나, 게슈타포의 통제를 받고 혐오스러운 나치 부대의 수중에 모두 들어갈지라도 우리는 결코 항복하거나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도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감을 키우고 힘을 길러 하늘에서도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를지라도 반드시 이 섬을 지킬 것입니다. 우리 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비행장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항복의 흰 깃발을 흔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한순간도 그리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설령 이 나라 전체 혹은 상당 부분이 정복당한 채 굶주린다고 할지라도 바다 저편에 영국 함대의 보호를 받으며 무장된 우리의 제국은 모든 힘과 능력을 다해 옛 제국을 구원하고 해방하기 위해 전진해나갈 것이며, 하느님의 세상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때까지 계속 투쟁할 것입니다.

-------------------------------------------------------------------

결과

두 번이나 총리를 역임한 처칠은 넬슨, 셰익스피어, 엘리자베스 1세 등 영국의 수많은 위인을 제치고 가장 위대한 영국인이 되었다. 그는 영국이 풍전등화의 위기 상황에 빠졌을 때마다 행동하는 정치인이자 군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젊은 시절 인도 국경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그는 종군기자로서 전쟁에 참전해 기자와 군인 역할을 병행했고, 보어전쟁 때는 포로수용소에 갇혔다가 극적으로 탈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혼돈과 갈등으로 점철된 격변의 시대를 두둑한 배짱과 용기로 살아냈다.
명연설로 유명한 처칠은 즉흥적인 연설이 아니라 미리 준비해 완벽하게 연습했고, 기억하지 못할 때에 대비해 쪽지에 내용을 적어두기도 했다. 그의 연설에서 나오는 힘은 단순한 언어와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 탄생했다. 어린 시절에 말을 잘하지 못했던 소년은 결국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줄 뿐 아니라 가장 설득력 있고 기억에 남는 명연설을 남겼다.

"

.
.
.


"

"이때가 그들의 전성기였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윈스터 처칠 Winston Churchill

1940년 5월 10일 새벽 독일 군대는 서유럽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벨기에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독일에 함락되었다.
처칠은 영국해협을 건너 사태를 파악한 뒤 돌아오자마자 국회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그가 이 연설을 하고 있을 때 프랑스가 허무하게 항복하고 말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처칠은 독일군의 침략에 대비해 방어시설의 견고성에 대해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호소력 짙은 이 연설의 결론에서 영국이 지금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는지 말하고 있다.
처칠이 이 연설을 발표한 것은 위급한 상황을 불러온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만을 전한 그의 연설에는 독일의 급습에 대응하지 못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들의 전성기
·1940년 6월 18일, 영국 웨스트민스터 하원의회·

베강 Maxime Weygand 장군(프랑스의 총사령관)이 말한 프랑스전쟁은 끝났습니다. 조만간 영국전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투에 기독교 문명의 생존이 걸려 있습니다. 이 전쟁에 우리 영국인의 목숨,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온 제도와 대영제국의 역사가 오래도록 지속될 것인지가 달려 있습니다.
적군의 분노와 무력은 이내 우리를 향할 것입니다. 히틀러는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하면 전쟁에 패배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히틀러에게 맞서 이긴다면 유럽의 모든 나라가 자유로워질 것이며, 전 세계인의 삶은 넓고 햇빛이 따사롭게 비치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패배한다면 미국과 우리를 지지한 국가들을 비롯해 전 세계가 왜곡된 과학 지식으로 말미암아 사악하고 오랜 기간 지속될 새로운 암흑시대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단단히 대비하고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대영제국과 영연방이 수천 년 지속된다면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때가 그들의 전성기였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

결과

제1차 세계대전 때 처칠은 부인에게 이런 글을 썼다. "만물은 대이변과 붕괴의 성향을 갖고 있소. 나는 모든 것에 관심이 많고, 준비가 되어 있으니 행복하오. 모든 것이 파멸 위에 세워지는 게 끔찍하지 않소?"

처칠은 무거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자리에서 더 큰 재앙이 닥쳤을 때도 이상적인 새로운 영감을 떠올렸다. 그리고 BBC에서 방송한 연설을 통해 영국 국민에게 그런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 연설에서 그는 굴욕보다 죽음을 택하겠다는 기백을 드러냄으로써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영국이 히틀러를 두려워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큰 타격을 입지 않은 해군과 무장한 군인 수가 상대적으로 우세함에도 프랑스가 히틀러에게 항복하자 국민의 사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처칠의 '전성기' 연설이 있고 한 달이 지나기 전에 독일의 폭격 기가 처음으로 영국의 도시에 폭격을 가했다. 그해 8월 영국의 전투기 부대가 독일 공군을 막아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을 때, 처칠은 공군 조종사들에게 후세에 길이 남을 만한 명연설을 했다.
"인류의 전쟁사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적은 사람들한테 이처럼 큰 빚을 진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스스로를 지켜냈다. 그해 말 영국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정세는 서서히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1942년 11월 처칠은 북아프리카의 엘 알라메인 El Alamein에서 영국의 승리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 전투의 승리는 이 전쟁의 끝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 전쟁의 끝을 예고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전투의 승리는 이 전쟁의 서막의 끝인 것 같습니다."

"

.
.
.


"


"저에게는 자유가 아니라면 차라리 죽음을 주십시오!" 
But as for me,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미국 독립혁명의 지도자였던 패트릭 헨리 Patrick Henry를 혁명의 전설로 만든 연설은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목격자들의 기억을 토대로 구성한 이야기들을 조합한 후세 역사학자의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는 1775년 버지니아 전당대회에서 패트릭 헨리가 영국 통치에 맞선 반란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펼친 연설이다. 헨리는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연설을 마쳤고, 이 일은 독립 전쟁을 위한 외침으로 미국의 건국신화에 전해지고 있다.
우리의 형제들은 이미 전장에 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찌해서 이곳에 이렇듯 한가하게 서 있는 것입니까? ( ... ) 속박과 노예의 희생으로 얻어졌기에 생명이 그렇게 소중하고, 아니면 평화가 그렇게 달콤합니까? 전능하신 하느님,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저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길을 선택할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자유가 아니라면 차라리 죽음을 주십시오!

"

.
.
.


"

나는 더 이상 싸우지 않겠습니다
조지프 족장 Chief Joseph

1870년경 미국의 인디언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남부에는 아파치족 전투부대가 변칙적 공격을 준비 중이었고 대초원 지대에는 수족이 계속 저항적인 태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으나 서부개척시대의 전투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오리건주의 왈로와계곡에 거주하던 네즈퍼스족은 땅을 빼앗으려는 백인 개척자들의 학대로 수년간 고통에 시달려왔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조지프 족장(1840~1904)은 미군의 군사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자고 부족민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1877년 그토록 바라지 않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한 무리의 인디언 전사들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새만강 부근에서 몇 명의 백인 개척자를 죽인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미국은 곧이어 보복을 감행했다. 다행스럽게도 네즈퍼스족은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온 첫 파견대를 용맹스럽게 물리쳤다. 하지만 여자들과 아이들, 부상자들로 부족 이동이 늦어지자 조지프와 부족민들은 태평양 연안 북서부의 미개척지 쪽으로 후퇴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조지프의 인도로 미국 전역을 힘겹게 가로질러 거의 1,900킬로 미터를 이동했다. 그런데 그들은 캐나다 국경의 안전지대로부터 6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몬태나주의 베어포산에서 미국 기병대에 잡히고 말았다.
추위와 오랜 행군으로 지칠 대로 지쳐 전력이 약해진 조지프 족장이 이끈 전사들은 수적으로도 열세에 놓여 있었다. 이런 이유로 위대한 족장은 싸움 대신에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동을 결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미군 장교들을 만나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베어포전투에서의 항복 연설
·1877년 10월 5일·

하워드 장군에게(미 사령관) 내가 그의 뜨거운 열정과 용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시오. 예전에 그가 했던 말을 아직까지 내 가슴속에 담고 있습니다.
나는 오랜 싸움에 지쳤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디언들 가운데 많은 족장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루킹 글라스가 죽고, 투훌훌 소테 역시 죽었습니다. 나이 먹은 사람들 모두가 죽었습니다. 이제는 젊은이들이 "예" 혹은 "아니요"를 결정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 젊은 친구들을 이끌고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입니다.
밖은 춥고 우리는 덮을 이불도 없어 어린 생명들이 얼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부족민들 가운데 일부는 이불과 음식도 없이 언덕으로 도망쳤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행방을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미 얼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내 어린것들을 찾을 시간이 필요하고,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찾을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마도 그들 가운데 대부분을 죽음 속에서 찾게 될 것 같습니다.
내 말을 들어주시오, 나의 지배자들이여! 나는 너무나 지쳤고, 내 가슴은 아프고 슬픕니다.
해가 비치는 이곳에서부터 지금 이 순간 이후로는 더 이상 싸우지 않겠습니다.

-------------------------------------------------------------------

결과

조지프 족장은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수년 동안 네 즈퍼스족은 인디언 보호구역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미 대륙을 떠돌아다녔다. 그런 와중에 질병과 절망이 그들의 옛날 생활방식을 서서히 썩어가게 만들었다.
조지프 족장은 계속해서 살아남은 부족민들과 왈로와계곡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음에도 그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04년 그는 삶을 마감했는데, 주치의에 따르면 '마음의 고통'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지프 족장의 훌륭한 항복 연설은 그 자체만으로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 연설은 미국 인디언의 많은 연설들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되었다. 이 연설은 슬프고 간결하면서도 사람이 받는 고통을 시적 언어로 잘 표현했다. 특히 "지금 이 순간 이후로는 더 이상 싸우지 않겠습니다"라는 마지막 말은 부족 사람들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고, 조지프는 미국 인디언 비극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조지프란 이름은 인디언 부족들이 고통받았던 문화 훼손에 대
한 참혹한 역사를 대변해주고 있다. 세 음절의 영어로 변형된 그의 인디언 이름은 '힌부트투와라트켁트 Hin-mut-too-uah-lat-kekht'였다. 이 이름은 '산속에서 우르릉 울리는 천둥소리'라는 뜻이다.

"

.
.
.


"

로렌스 '티투스' 오츠Lawrence 'Titus' Oates는 로버트 스콧 Robert Scott의 불운한 남극 탐험대의 일원이었다. 1912년 1월 17일 힘겨운 사투 끝에 지구의 남극점에 도달했지만, 경쟁 상대인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 Roald Amundsen이 이끈 탐험대가 먼저 남극점에 도착했다는 실망스러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의에 빠진 다섯 명의 대원은 안전지대로 돌아가려고 출발했지만, 동상에 걸려 다리를 절뚝거리던 오츠와 함께 이동하다 보니 전진 속도가 갈수록 느려지고 있었다. 3월 16일 밤, 그는 다른 대원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전형적인 영국인의 절제된 표현으로 오츠는 "잠깐 밖에 나갔다 오겠네,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걸세"라고 말한 뒤 텐트를 떠나 거친 눈보라 속으로 신발도 없이 걸어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스콧과 대원들이 안전지대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모두 목숨을 잃어 오츠의 희생은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

"

.
.
.


"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인디애나주의 피전 크리크 Pigeon Creek에 위치한 삼면으로 대충 지어진 통나무집에서 자랐으며,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가게 점원과 우체국장 일을 했다.
1847년 링컨은 갈수록 분열되어가는 정치 체제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해 의회에 입성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노예제도였는데, 그는 이 제도에 대해 천성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노예제도의 유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기 위해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노예제도를 유지한다면 우리 공화당은 세상에 미치는 정당한 영향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노예제도를 유지한다면 자유 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우리를 위선자라고 조롱할 것입니다. ( ... ) 지금 우리 공화당의 대례복은 바닥에 질질 끌려 더럽혀지고 있습니다." 
1860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남부 지역의 노예를 소유한 정치가들과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졌다. 바로 그해 남부의 몇몇 주들이 공식적으로 미연방 탈퇴를 선언했고, 1861년에는 남부 지역의 몇몇 주로 이루어진 연합 전선이 이웃한 북부 지역의 주들에 맞서 무기를 들었다.
산업시대에 만들어진 잔인한 무기를 들고 엄청난 규모의 군대 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었고, 남북전쟁은 미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런 와중에 1863년 7월 게티즈버그에서 일어난 교전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나았다. 이 교전에서 북부군은 남부의 전진을 막아내긴 했지만 그 대가로 수많은 사람이 가족을 잃어야만 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전사자들을 추도하는 짧은 연설을 하기 위 해 불신과 낙담으로 가득 찬 전쟁터로 향했다.


게티즈버그 연설
·1863년 11월 19일,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군인공동묘지·

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를 기반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
하게 창조되었다는 신념으로 이에 부합하는 새로운 나라를 이 땅에 세웠습니다.
지금 우리는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나라가, 아 니 그렇게 세워지고 그러한 신념을 받들어 탄생한 그 어떤 나라가 과연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의 최대 격전지에 모여 있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안식처로, 치열한 격전지였던 이곳의 일부를 헌정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전적으로 타당하고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이 땅을 헌납할 수도, 봉헌할 수도, 신성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이곳에서 신념을 갖고 싸우다 살아남거나 죽은 용감한 사람들이 덧셈이나 뺄셈만 할 수 있는 우리의 단순한 능력을 넘어서서 이곳을 신성한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세계는 우리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하는지 주목하거나 그 말을 오래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용감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이룬 업적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싸운 사람들이 고결하게 추진해온 미완의 과업을 끝 내기 위해, 이제 살아 있는 우리가 이 나라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대의를 이루기 위해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한 사람들의 유지를 받들어 남겨진 대업에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만들지 않을 것이며, 하느님의 가호 아래 이 나라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킬 것이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헌신할 것임을 이 자리에서 굳게 다짐합니다.

-------------------------------------------------------------------

결과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링컨은 워싱턴 D.C.에서 기차로 오는 동 안 이 연설문을 작성했다고 한다. 게티즈버그의 사람들은 유명한 연설가인 에드워드 에버렛 Edward Everett에게 이미 기조연설을 부탁했기 때문에 그는 기조연설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2시간에 걸친 그의 추도 연설은 큰 감동을 남겼다.
링컨은 자신의 연설이 실패작이었다고 기록했으며,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또한 《더타임스》의 한 기자는 "추도식은 가엾은 링컨 대통령의 재수 없는 농담으로 별 의미 없이 끝났다"라고 기고했다.
그러나 링컨과 기자 모두가 틀렸다. 이 게티즈버그 연설은 수 사학의 대표작이 되었고,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될 뿐 아니라 종종 미국 헌장과 같은 주요 문서로 대접받고 있다.
링컨이 이처럼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승리할 때까지 전쟁을 끝까지 수행하리라 마음먹었고,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으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노예제도와 남북전쟁이 가져온 엄격한 도덕적 시험에서 살아남았다고 확신했다. 만약 링컨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미국은 분열된 채 더 작은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애석하게도 링컨은 승리의 기쁨을 오랫동안 만끽하지 못했다. 1865년 4월 15일 남북전쟁이 끝난 뒤 한 주도 채 지나지 않아 남부동맹 지지자의 총에 맞아 생을 마감했다.

"

.
.
.


"

역사상 어떤 훌륭한 글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하기 위해 1776년 7월 4일에 열린 미 대륙회의의 동의를 받아 낭독된 독립선언문만큼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토머스 제퍼슨 Thomas Jefferson은 미국 건국의 선언문을 작성하는 책임자였다. 이 선언문은 새로 세워진 국가들의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 낭독되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의 본질을 정의하는 이 선언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널리 울려 퍼지고 있다. 언어학적 면에서 영어로 쓰인 가장 유명하고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선언문의 첫 문장이다. 이는 미국의 가치관에 대한 실로 대담하고 혁명적인 서술이었다. 다음은 성명서의 일부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가 있다.

"

.
.
.


"

저는 여성이 아닙니까
소저너 트루스 Sojourner Truth

19세기로 막 들어서려고 할 때 소저너 트루스(1799~1883)는 뉴욕주 스와르테킬의 한 가정에서 노예 신분으로 태어났다. 그저 단순히 이저벨라 Isabella로 알려진 그녀는 1827년에 자유의 몸이 되기 전까지 다섯 명의 주인을 두었고, 다른 노예와 결혼할 것을 강요받았다.
이저벨라는 새로 얻게 된 자유와 함께 하느님을 만나면서 이름을 개명했다. 또한 감리교를 계승하는 종파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종교운동의 일원이 되었는데, 이들 중 한 단체는 1843년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설교했다.
그러나 1844년까지 세상은 종말을 고하지 않았고 소저너 트루스는 노예제도 폐지와 여성인권 등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몇몇 작은 마을을 방문한 뒤 오하이오주의 애크런에서 열린 여성인권운동가들을 위한 대회에 흑인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참석한 트루스는 공개석상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다. 이 연설로 그녀는 역사상 최고의 무대에 한 발짝 올라섰다.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기 위해 모인 여성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려는 목적으로 남성 목사들은 성경에서 발췌한 인용구를 이용하며 연이어 설교를 했다. 특히 지적인 우월함과 이브의 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은 체구를 가진 한 목사의 설교에 여성 청중은 차츰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잔인무도한 인종차별주의자의 행위에 대한 의견 차이로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던 그때, 키가 큰 한 흑인 여성이 단상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트루스가 무슨 말을 했는지에 관한 기록은 일치하지 않지만, 이 대회를 주최한 여성인권운동가 프랜시스 게이지 Frances Gage가 12년 뒤 쓴 기사에 보면 비교적 잘 기록되어 있다. 이 기사는 트루스를 전설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애크런 총회에서의 연설
·1851년 5월 29일, 오하이오주 애크런·

(한동안의 소동은 진정되었고, 모든 눈이 아마존에서 온 것 같은 그녀한테로 고정되었다. ... 그녀의 첫마디로 청중 사이에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굵직한 어조로 너무 크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귀에 또렷하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연설을 했다. ... )
자, 이렇게 야단법석인 것은 분명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저는 남부의 검둥이와 북부의 여성들이 지금 권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머지않아 저 백인 남성들은 궁지에 몰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 여기서 무엇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습니까? 
저기 저 남성은 여성을 탈 것으로 모셔 드려야 하고, 도랑은 안아서 건너 드려야 하고, 어디서나 최고로 좋은 자리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나를 탈 것으로 모시거나, 진흙 구덩이를 지나가는 데 도움을 주거나, 무슨 좋은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습니다!

( ... )

저는 여성이 아닙니까? 저를 보세요! 제 팔을 보라고요!... 저
는 이 팔로 땅을 갈고, 곡식을 심고, 수확을 했습니다. 그 어떤
성도 저를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는 여성이 아닙니까?
저는 남성만큼 힘든 일을 할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남성만큼이나 채찍질을 잘 견뎌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성이 아닙니까?
저는 열세 명의 자식을 낳았고, 그 아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노 예로 팔리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당시 어미 된 자의 슬픔으로 울부짖을 때 예수 말고는 아무도 제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성이 아닙니까?

( ... )

(작은 체구의 목사를 가리키며) 저기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은 그리스도가 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만큼의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누구를 통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트루스는 두 팔을 벌리고 단상에 서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굉장히 멋진 어조로 연설하면서 변화무쌍한 천둥도 진정시킬 수 없었던 군중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훨씬 더 큰 소리로 앞의 말을 강조하기 위해 되풀이해 말했다.)
과연 그리스도는 누구를 통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하느님과 여성한테서 왔습니다! 그리스도와 전혀 관계가 없었던 것은 바로 남성입니다.

-------------------------------------------------------------------

결과

게이지에 따르면 트루스는 청중에게 끊임없는 눈물과 벅찬 감 동을 주고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게이지가 연설에 대해 기록한 내용은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녀는 트루스가 북부 출신이라고 해놓고 연설에는 가짜 남부 사투리를 집어넣었다. 또한 트루스에게는 다섯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열세 명이라고 지어내기도 했다. 트루스의 '엄청난 근육의 힘'에 대해 찬탄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지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이 아닌 명마를 평가할 때 쓰는 어휘가 곳곳에 등장한다.
노예제도 폐지를 다룬 《엉클 톰스 캐빈》의 작가인 헤리엇 비처 스토 Harriet Beecher Stowe는 트루스의 또 다른 열혈 팬이었다. 두 사람은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었지만, 스토는 그녀를 '열대림이 가진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강함과 검은 피부'로 묘사하면서 강직한 성품과 훌륭한 체격을 가졌다고 칭찬했다.
소저너 트루스는 열혈 팬들이 만들어낸 고정관념 때문에 실제
모습은 묻힌 채 신화적 인물이 되어버렸다. 비록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현실적인 사람으로 비하된다고 할지라도, 트루스의 이야기와 행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고 영향력을 미쳤다.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마침내 노예해방 성명서에 서명했고, 미국에서 노예제도는 그 자취를 감췄다.

"

.
.
.


"

친위대여 잘 가거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eon Bonaparte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너무 작은 키 때문에 육군사관학교 시절 ‘꼬마 하사'라고 불렸다. 또한 프랑스를 통치했지만, 코르시카 출신으로서 자신의 강한 이탈리아 억양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혁명이라는 믿기 어려운 성공담을 창조해 낼 정도로 특별하지 않았다. 1789년 프랑스 군주제의 몰락 이후, 수년간의 혼란 속에서 나폴레옹은 혁명군에서 빠른 속도로 진급했다. 1799년 무혈 쿠데타로 제1통령이 되었고, 1804년에는 프랑스의 황제로 즉위했다.
프랑스는 적대적인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나폴레옹은 뛰어난 전술을 가진 최고의 장군으로서 포르투갈부터 발트해까지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에 속해 있던 세력이 약화된 국가들을 차례대로 점령해나갔다. 당시 막강한 힘을 가진 그의 정예부대인 '친위대'를 막아낼 수 있는 나라가 없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권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812년 그는 40만 병사들을 이끌고 동쪽 모스크바로 향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후 나폴레옹이 이끄는 대군은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에 항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동상에 걸린 생존자들은 다리를 절뚝거린 채 고통스럽게 조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1814년 나폴레옹은 완전히 패배했다. 그의 곁에 남은 군대라고는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한 역전의 정예부대 중 최고인 '친위대' 밖에 없었다.
나폴레옹은 장군들에게 버림받고 적군에 둘러싸인 절박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얼마 남지 않은 병사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친위대에게 보내는 고별사
·1814년 4월 20일·

친위대 병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작별을 고하려고 한다. 지난 20년 동안 나는 명예와 영광을 위해 그대들과 원정에 동 행했다. 우리가 번성했던 시대에 그랬듯이 근래에도 그대들은 변치 않는 용맹과 충직함의 모범이 되어주었다.
그대들과 같은 병사가 있었기에 우리의 대의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쟁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내전으로 말미암아 프랑스에 깊은 불운이 드리워졌다.
나는 프랑스 국민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많은 병사를 희생시켰다. 나는 떠나지만, 나의 동지들이여, 그대들은 계속해서 프랑스를 위해 헌신해주길 바란다.
프랑스의 안녕만이 나의 유일한 염원이다. 또한 그것은 여전히 나의 소망이기도 하다.
나의 운명을 애석하게 생각하지 마라. 그리고 내 목숨을 더 연
명하게 된다면, 남은 삶은 그대들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사용할 것이다. 나는 우리가 함께 이룬 위대한 업적을 역사에 기록할 생각이다. 잘 가라, 나의 동지들이여. 나는 가슴속에 그대들 모두를 깊이 새길 것이다.

-------------------------------------------------------------------

결과

나폴레옹은 8,000명의 병사만으로 유럽 연합군과 맞서 싸워야 하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자 자신의 위상이 더욱 실추되기 전에 선수를 쳤다. 하지만 친위대 병사들은 그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 가운데 몇몇 병사는 목놓아 흐느꼈고, 나폴레옹이 병사들의 지휘관인 프티 장군과 포옹하고 독수리 문양의 군기를 두 팔로 감싸 안자 목놓아 울기까지 했다. 
나폴레옹은 이 인사를 끝으로 황위에서 물러났다. 그 후 지중 해의 엘바섬으로 유배된 후 그는 소작농과 염소지기들이 대부분인 섬을 '황제'로서 지배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단지 역사책을 쓰며 빈둥거린 것이 아니라 많은 할 일을 계획했다는 사실이 머지않아 드러났다. 그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엘바섬을 탈출해 프랑스로 돌아온 뒤 군대를 불러 모았고,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을 이끌고 북쪽의 전장을 향해 진군했다.
나폴레옹에 맞서기 위해 영국 최고의 장군인 웰링턴 공작이 등장했다. 1815년 6월 18일 두 군대는 워털루에서 맞붙었다. 나폴레옹은 온종일 아무런 소득 없이 병력을 영국 전선으로 내보내더니 상황이 다급해지자 친위대를 전진시킬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폴레옹의 친위대는 실망
을 안겨다 주었다. 영국 총검부대의 일제 사격과 경보병대의 적시 측면 공격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상자를 내고 크게 패한 뒤 후퇴한 것이다.
친위대의 후퇴 소식을 전해 들은 프랑스군의 사기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고 남은 병사들은 도주하기에 바빴다. 나폴레옹은 다시 멀리 떨어진 대서양의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되었고, 1821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

.
.
.


"

프랑스공화국의 모토인 자유와 평등, 박애는 18세기의 한껏 고조된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당시 프랑스혁명이 낳은 철학자이자 폭군들은 새로운 유형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원칙을 내세웠다. 그것은 일련의 구호들 가운데 하나였다. 한 번은 이 세 가지 요소에 '통일성이 들어갈 뻔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성'과 '안보'도 들어갈 뻔했다. 
그러나 1790년대에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것은 우리한테 친근한 이 세 가지 이념이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이것이 구체화되어 갈 때쯤 국가 모토에 더 잔인한 뜻의 네 번째 구호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가장 오래된 혁명 플래카드에서 볼 수 있는데, 바로 'Liberté, Egalité, Fraternité, ou la Mort, 즉 자유와 평등, 박애 아니면 죽음'이었다.

"

.
.
.


"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습니다
존 볼 John Ball

14세기 후반 영국은 혹독한 시련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수십 년에 걸친 전쟁과 전염병으로 백성은 굶주림과 고통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배계층의 귀족들은 농노제를 통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농노들을 소유했는데, 이들 농노는 땅에 속박당한 채 과도한 세금으로 피폐한 삶을 살았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 유랑 성직자이자 평등을 주장하는 민중 선동가인 존 볼(1338~1381)이 등장했다. 그는 선동적인 교리를 전파한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파문을 당했으며, 왕실의 근위대는 그를 평생 감옥에 가둬두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1381년 일어난 농민 반란으로 어둠(메이드스톤  Maidstone의 황실 감옥) 속에서 잊혀가던 그는 되살아났고, 반란군의 전설이 되었다.
이 봉기는 '제3차 인두세'에 항의하는 소작농들이 일으킨 '농 민의 난'이었다. 농민 반란의 지도자 와트 타일러 Wat Tyler는 에식스주와 켄트주에서부터 쇠스랑을 갖고 모여든 농민들을 이끌고 블랙히스의 남부 도시에서 합류해 런던으로 진군했다.
이제 존 볼이 나설 차례가 되었다. 그는 성난 군중을 향해 역사에 길이 남을 연설을 준비했다.


아담은 경작하고 이브가 길쌈하고 있을 때
·1381년·

아담은 경작하고 이브가 길쌈하고 있을 때, 이들 중 누가 귀족이었습니까?
애초부터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구속이나 예속은 저 나쁜 사람들의 부당한 억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만약 하느님이 처음부터 농노를 정하셨다면, 누구를 억압하고 누구를 자유롭게 할지 정하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하신다면) 억압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자유를 찾으려는 여러분께 하느님이 주신 기회는 지금이라고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

결과

존 볼의 설교에 자극받은 반란군들은 런던을 향해 몰려갔다. 그들은 곤트 출신의 귀족인 존 John of Gaunt*의 성에 불을 지르고 캔터베리의 대주교인 사이먼 서드베리 simon Sudbury를 살해함으로써 도시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고, 도시를 큰 혼란에 빠뜨렸다.
결국 왕은 반란군과 대화하기 위해 스스로 말을 타고 나왔다. 처음에는 소작농들이 승리한 듯 보였지만 협상하는 동안 반란군의 수장인 와트 타일러가 런던 시장에게 죽음을 당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런던 시장은 타일러가 맥주를 마실 때 보인 경박스러운 태도를 마땅찮게 여겼다고 한다.
왕은 반란군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기로 약속했고, 반란군은 이 약속을 믿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이 해산하자마자 요구 사항은 철회되었고, 반란군의 주동자들은 체포되었다. 1381년 7월 12일 존 볼은 교수척장분지형**이라는 극형에 처해졌다.
볼의 반란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의 뜻은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왔다. 한 세기를 거치면서 브리튼***에서는 농노제도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동안 볼의 급진적이며 교권을 배제한 개신교가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마침내 종교개혁으로 이어졌다.
존 볼의 연설 이후 400년이 지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 개신교도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습니다"라고 선포할 때 그들 역시 무심결에 존 볼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

* 에드워드 3세의 아들로, 벨기에 곤트 출신의 영국 왕자
**絞首剔臟分肢刑, 목을 매달고 내장을 발라 사지를 토막 내는 형벌 
*** 영국, 스코틀랜드, 웨일스를 통틀어 이르는 말

"

.
.
.

"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축복이 있으니, 하늘나라가 그대들의 것이다
나사렛 예수 Jesus of Nazareth

어느 누구도 나사렛 예수(기원전 5년~기원후 30년)가 언제 산상설교를 했는지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사실 예수의 생애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을 알아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로마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라는 유대인 설교자가 있었다는 것뿐이다. 그의 생애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더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의문에도 예수가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연설을 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어쨌든 그것은 연설이었는데, 그가 직접 했다면 말이다). 사람들은 단 하나의 설교로 편찬된 복음서가 사실 3년간의 가르침을 시로 집대성한 것이라고 하며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가 죽고 나서 추종자들이 집대성한 복음서에 서술된 것처럼 무엇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무엇이 일어났다고 믿고 있는 이야기보다 아마 덜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성서인 이들 책에는 고대 종교의 전후 사정에 대한 실로 획기적인 연설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모세 때부터 내려온 수 백 년이나 된 전통적인 유대 율법을 공부했고, 그것의 절정에 올라섰다.


산상설교
·기원후 26년·

(다음 글은 마태 복음서에서 인용한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축복이 있으니, 하늘나라가 그대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축복이 있으니, 그들에게는 위로가 있을 것이다.
온순한 사람들은 축복이 있으니, 그들은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다.
정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축복이 있으니, 그들에게는
배부름이 있을 것이다.
자애로운 사람들은 축복이 있으니, 그들은 자비를 받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축복이 있으니,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다.
평화를 이루려는 사람들은 축복이 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자식들이라 불릴 것이다.
정의를 위해 핍박받는 사람들은 축복이 있으니, 하늘나라가 그대들의 것이다. 

( ... ) 

너희는 옛사람들에게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한 사람 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을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형제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분노하는 사람은 심판의 위험이 있을 것이다. ( ... ) 너희는 옛사람들에게 "간음하지 말라"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여자를 음욕을 갖고 본다면 이미 마음으로 간음을 한 것이다. ( ... ) 미리 일러준 대로,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는 사람은 이혼 증서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린다면 그 아내를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도 간음을 하는 것이다.
또한 너희는 옛사람들에게 "네가 한 맹세를 어기지 말고 주님께 한 맹세는 꼭 지켜야 할 것이다"라고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 천국을 두고도 맹세를 하지 말라. 천국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를 하지 말라, 땅은 하나님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또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를 하지 말라. 예루살렘은 위대한 왕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 ... )
너희는 옛사람들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악에 맞서지 말라. 누구든지 너의 오른뺨을 세게 친다면 다른 뺨도 돌려 내주어라.

( ... )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따라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주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음식을 주소서.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듯 우리의 죄도 용서하소서.
또한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도록 이끌어주시고, 악에서 구
하소서.
나라와 권세 그리고 영광이 영원토록 당신의 것입니다. 아멘.

-------------------------------------------------------------------

결과

이 연설은 신앙의 급진적인 새로운 체계에 대한 근간을 제시한다. '눈에는 눈'이라는 도덕을 바탕으로 한 고대의 처벌은 의분을 넘어 온순하게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를 가치 있게 여기는 확연히 다른 일련의 규칙으로 바뀌었다.
4대 전도사인 마가, 마태, 누가, 요한이 보급한 복음서는 상상 그 이상의 강력함을 보여주었다. 예수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도 채 안 되었을 때 로마의 네로 황제는 수많은 기독교인으로 골치를 앓게 되자 자신의 정원에 불을 밝힌다며 그들을 화형에 처했다.
그 후 200년이 더 지난 어느 해에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변화의 흐름을 읽고, 기독교를 독일 삼림에서 사하라사막까지 펼쳐진 로마제국의 국교로 삼았다.
1,000년이 지난 후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자신들의 제국을 확장해나갔다. 그로 말미암아 이 설교의 교훈은 세계 각지로 (때로는 무력으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는 지구상에서 여러 형태로 존재하는 가장 대중적인 종교가 되었다.

"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떠셨나요, 오늘 포스팅?

 

구독과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로그인하지 않으셔도 좋아요-추천 버튼 누르실 수 있습니다.

 

아래는 제 블로그에 있는 다른 포스팅 중 참고하실 만한 내용을 추렸습니다.

한번 살펴봐 주세요. 고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도서 리뷰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처세][재테크] 암울한 노후에 대한 보고서 《98%의 미래, 중년파산》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대출][빚][재테크] 《빚 때문에 고민입니다》, 빚부터 갚아라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부자][성공][처세] 『성격 급한 부자들』, 성공 습관 다이제스트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사회][사회학][계급] 《병목사회》 계급과 계층을 넘어 평등을 꿈꾸며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글쓰기][작문][작법]《글 쓰는 것이 아니다 짓는 것이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처세][직장생활] 《공피고아》, 고전에서 퍼올린 처세의 철학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재테크][부자] 『어려운 건 모르겠고, 돈 버는 법을 알려주세요』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동화][작법][작문] 『동화 쓰는 법』, 유익한 작법 교과서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지젝][난민][테러] 슬라보예 지젝, 『새로운 계급투쟁』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6월 항쟁][민주화] 대한민국의 힘, 100도씨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세대][세대 게임] 『세대 게임-세대 프레임을 넘어서』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글쓰기][카피] 『1초에 가슴을 울려라』, 카피 전문가의 실전적 조언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경영][인재] 당근이 필요한 인간들이 다니는 회사, 『미라이 공업 이야기』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삼국지][간편 삼국지] 간편하게 읽는 퓨전 삼국지 『3분 삼국지 톡』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처세술][전략] 처세술과 인생전략을 담은 동양 비서 『36계학』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글쓰기][기사] 새로운 글쓰기 '내러티브' 『기막힌 이야기 기막힌 글쓰기』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집중력][1일1식] 1일1식 저자가 전하는 집중력의 비밀, 하루가 달라지는 『오후의 집중력』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직장생활백서][사축생활백서] 일러스트로 읽는 직장생활백서 『회사는 다닐 만하니?』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잭 런던][강철군화] 민주주의를 잃은 자본주의, 소설 자본론 『강철군화』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쌍용차][정리해고] 의자놀이,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쌍용자동차 이야기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플롯][서사] 소설과 드라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서사 패턴 959』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마흔][42] 남자 나이 42-인생은 지금부터가 재미있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원격근무][자율 출퇴근] 더 이상 붙박이 사무실을 고집하지 마라 《리모트 - 사무실 따윈 필요 없어!》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임금][불평등] 오랜 시간 우리 사회의 임금 문제에 천착한 방송기자의 시선, 《우리의 월급은 정의로운가》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마크 트웨인][허클베리 핀의 모험] 톰 소여와 함께 잊을 수 없는 악동 《허클베리 핀의 모험》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프레임워크][비즈니스 툴] 복잡한 일과 상황을 간단하게 만들어 주는 『비즈니스 프레임워크 69』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엑셀][오피스] 《절대 엑셀》 회사에서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 엑셀 기본 교과서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마크 트웨인][톰 소여의 모험] 미워할 수 없는 영원한 악동 《톰 소여의 모험》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수필][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아나키즘][아나키스트] 빵의 쟁취, 혁명에 필요한 것은 빵이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증발][실종] 우울한 저성장 사회의 민낯 《인간 증발》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촘스키][철학] 최고의 언어학자가 말하는 인간론, 《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독서][속독] 책 한 권에 실천 하나, 《일독일행 독서법》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속독][속청] 빨리 듣고 빨리 읽는, 『속청 독서』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교정][교열] 이쯤은 돼야 교양만화, 『만화 동사의 맛』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재테크][절약] 『90일 완성 돈 버는 평생 습관』, 저절로 돈이 모이는 초간단 재테크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글쓰기][르포] 글쓰기를 대하는 자세, 『글쓰기의 최전선』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교정][교열][문장]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교정 교열 장인의 내공을 들여다본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재테크][절약] 『90일 완성 돈 버는 평생 습관』, 저절로 돈이 모이는 초간단 재테크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시][은유] 시를 시답게 만드는 『은유의 힘』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사회][언론] 대한민국 언론의 속사정, 『뉴스가 말하지 않는 것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자기계발][화술] 간단 화법 정리, 『횡설수설하지 않고 정확하게 말하는 법』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사회][인문] 불합리한 세상을 깨달아라, 《부들부들 청년》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자기계발][심리][최면] 자신감·자존감 회복 프로젝트, 나는 오늘도 나를 응원한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도대체][에세이] 마음대로 안 되는 인생,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은유][제유][패러디] 시 창작을 위한 〈시인 수업〉 3종 세트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광고][카피][글쓰기] 쉬운 글쓰기를 즐겨보자, 비틀어 글쓰기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소설][사전] 인생을 건널 말의 배를 만든다, 《배를 엮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기업윤리][사회] 기업윤리란 무엇인가? 《고장 난 거대 기업》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고전][제갈량] 제갈공명의 지혜, 《난세를 건너는 법》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소설] [풍자] 대한민국 1% 남자들의 속살 이야기,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신화][인문] 긴 겨울밤과 끝나지 않는 여름의 이야기, 닐 게이먼의 《북유럽 신화》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수필][거리] 내가 편안한 거리는 얼마일까, "약간의 거리를 둔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자기계발][업무 기술] 최고들은 어떻게 일하는가, 최고들의 일머리 법칙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소설][성장소설][복싱] 권투와 함께하는 불우한 성장소설 《스파링》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소설][사회] 묵직한 사회·회사 소설, 《누운 배》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세계사][옷] 옷을 통해 살펴본 재미있는 세계사 《옷장 속의 세계사》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성공][운][아웃라이어] 말콤 글레드웰, 아웃라이어-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화][분노][스토아]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화에 대한 조언, 《화에 대하여》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법정][최순희]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불일암 사계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인문][인디언] 어떻게 공기를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시애틀 추장의 꿈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리듬][자기계발] 다 리듬 때문이었어-삶을 바꾸는 리듬의 힘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세계 여행][여행] 마을버스로 월드 투어, 《마을버스 세계를 가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그림자 노동] 대가 없이 당신에게 떠넘겨진 《그림자 노동의 역습》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박열][가네코 후미코] 박열의 그녀, 가네코 후미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자기계발][시간관리] 시간을 요리하는 방법,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개구리를 먹어라!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소설][토익] 처절한 토익 성공기, 나의 토익 만점 수기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자기계발][경영철학] 성공하려면 끊임없이 던져라 - 피터 드러커의 최고의 질문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청소력][청소의 힘] 좋은 기운을 불러오는 청소의 힘, 청소력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법정 소설] 경쾌한 법정 소설, 미스 함무라비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모시이노][피터 드러커] 모시도라 후편 -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이노베이션과 기업가정신편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영어 공부][자기계발] 9등급 꼴찌, 1년 만에 통역사 된 비법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모시도라][피터 드러커] 재미있는 경영 소설 -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레버리지][자기계발] 레버리지, 세상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하라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자기계발][직장 고수] 〈직장의 신, 미스 김〉의 재림? - 《직장의 고수》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독공법][독서법] 독서와 공부를 한번에 끝내는 《독공법》 리뷰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우리의 소원은 전쟁][누와르] 흥미진진한 누와르 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군주론] 현실 정치 철학을 넘어 처세술로 되살아나는 고전, 《군주론》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이야기의 힘]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 《이야기의 힘》에 빠져 보자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10년 법칙] 명품 인생을 만드는 10년 법칙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졸혼][휴혼][해혼][각거] 졸혼 시대, 진정한 대안일까?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선][선불교][자기계발] 활쏘기의 선 - 손가락을 거쳐 달을 본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자기계발] 먹고사는 데 걱정 없는 1% 평생 일할 수 있는 나를 찾아서 - 저성장 사회 성공 공식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에세이][자기계발] 언어의 온도, 당신의 언어는 따뜻한가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영어 공부][자기계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 무소의 뿔처럼 우직한 영어 공부 비법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독서법][자기계발]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 읽기 50 - 독서에 관한 고찰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독서][퀀텀 독서법] 퀀텀 독서법, 언제까지 한 자씩 읽을 것인가!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자기계발] 타이탄의 도구들, 거인들의 어깨를 딛고 서는 성공 공식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어린이 소설] 맑은 날엔 도서관에 가자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뇌과학][조기교육]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 뇌에 관한 잘못된 신화를 파헤친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청소][청소 경영] 아침 청소의 힘, 청소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독서법][속독법] 1만권 독서법, 간단한 초보 속독법 안내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강요된 비만] 뱃살은 당신의 탓이 아니다, 강요된 비만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일본전산][3Q6S] 일본전산 이야기, '기본'과 '열정'이 만든 성공 신화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초서][초의식] 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인생을 바꾸는 독서혁명 프로젝트)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추천 도서][48분 기적의 독서법] 연령대별 독서 목록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독서][48분 기적의 독서법] 48분 독서로 인생 업그레이드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맞춤법][띄어쓰기] 왜 맞춤법에 맞게 써야 돼? - 맞춤법 싫어하는 아이를 위해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맞춤법][띄어쓰기] 왜 띄어 써야 돼? - 띄어쓰기가 싫은 아이들에게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어쩌면 별들이][필사 시집]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플러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어쩌면 별들이][어른을 위한 동시] 필사하기 좋은 동시 '내가 아주 작았을 때'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독서][독서법] 본깨적, 인생을 바꾸는 독서법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로봇][인공지능][AI][알파고][로봇세] 로봇 시대, 인간의 일 - 로봇 시대의 역사와 전망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애드센스][블로그] 블로그 제대로 운영해 보자, '블로그의 신'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어쩌면 별들이][도깨비] 필사하기 좋은 시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도올][김용옥] 도올 김용옥 비판 - 우리 시대의 부끄러움을 말하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경제성장][분배][저성장]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노자][도덕경] 동양 최고의 고전 1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애드센스][블로그] 구글 애드센스로 돈 벌기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영어 공부]10살 영어 자립! 그 비밀의 30분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힘이 정의다][독서][세계관]"법령과 황금률은 노예와 바보에게 차꼬를 채우느라 만든 것이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언더도그마][언더독][오버독]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결혼보다 월세 - 10년 차 경제지 기자의 재테크 에세이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부자 언니 부자 특강(평범한 월급쟁이 부자 되는 공식)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가면사축 - '사축' 탈출을 위한 비법서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사축일기 - "수고했어 오늘도~" 지친 퇴근길의 당신에게

[책 이야기-결정적 인용] -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 가볍지 않은 로맨스 

반응형